670화. 마변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령도 금광을 발하며 부단히 불사의 화염을 흡수해 피해를 줄이려 했지만 목진의 피부는 여전히 활활 타올랐다. 멀리서 보면 난폭한 불사의 화염이 곧 그를 집어삼킬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목진한테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만령조의 석상과 황수의 석상 앞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중, 만령조가 만 장 정도의 빛을 발하자 맑은 새의 울음소리와 함께 종청봉은 엄청난 위압감에 바로 무릎을 꿇었고 뼈가 부러지는 것처럼 괴로워했다. 황수 석상 역시 커다란 발을 내밀어 육후를 짓밟았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사람들은 수존 세 분께서 마지막 시험을 남기셨다는 것을 알아챘다. 세 사람은 마지막 시험까지 넘어야 비로소 계승 정혈을 얻을 수 있었다.
종청봉과 육후는 신수일뿐만 아니라 각자 석상이 지닌 혈맥과 연관이 있어 그나마 견디기가 쉬웠는데 목진은 인간일 뿐이라 버티기가 더 힘들었다.
수정같이 영롱한 빛을 발하는 화염이 활활 타오르자 목진의 피부가 쩍하고 갈라졌는데 목진은 마지막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죽으러 가는 것 같았다.
“흥, 멍청한 녀석. 인간 따위가 감히 신수 종족의 물건을 탐내다니!”
그 광경에 백빈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껏 초라해진 봉황족이 조금이나마 체면을 되찾은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반면, 구유는 불사의 화염에 육신을 태우는 목진을 보고는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이건 육신에 대한 시험이었다. 원고의 불사조는 자신의 계승 정혈을 아무런 연관도 없는 존재한테 넘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구유 언니, 어떡하면 좋을까요?”
묵령이 황급히 물었다. 목진을 휘감은 불사의 화염은 점차 강렬해졌다. 원고의 불사조는 목진이 죽을 때까지 화염을 거두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에 구유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를 악물고 팔목을 그어 피를 취한 뒤, 목진에게 뿌렸다.
구유 체내에 불사조의 혈맥이 깃들었으니 자신의 피로 목진을 적시면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여긴 것이다.
목진은 피범벅이 되었지만 표면에서 활활 타오르던 화염이 점차 줄어들었고 고통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는 겨우 안정을 되찾았는데 사그라드는 불사의 화염을 보고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불사의 화염은 최고의 불꽃이라 난폭하고 순수할 뿐만 아니라 웅장한 생기까지 깃들어 있었다. 하여 목진이 이를 제련하고 흡수해 체내의 영력과 융합할 수 있다면 영력은 무궁무진하고 훨씬 단단해질 것이다.
엄청난 고통을 주는 불사의 화염은 분명 쓸모가 있을 것이다. 하여 목진은 이토록 진귀한 물건을 이대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에 목진이 강제로 수정처럼 영롱한 불사의 화염을 흡수해 지존해에 주입하자 영력이 순간 비등하기 시작했다. 잇따라 목진이 영력 홍류를 만들어 불사의 화염을 주입하자 영력은 제련을 통해 점차 단단해졌다.
불사의 화염이 힘을 다하면 목진의 지존해의 영력은 훨씬 강력해질 것이고 목진의 전투력에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잠시 후, 석상이 불사의 화염을 거두자 목진의 몸은 금광을 발했는데 몸에 난 상처는 용봉체 덕분에 빠르게 치유되었고 발하는 빛도 더 밝아졌다. 또 그 속에 깃든 힘은 더 웅장해졌다.
목진은 꽉 쥐었던 주먹을 풀고 안색이 창백해진 구유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녀가 자신의 피로 목진을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쓰러졌을 수도 있었다.
“이런 젠장!”
반면, 백빈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목진을 노려봤다. 그는 목진이 불사의 화염에 타서 죽길 바랐다. 그리되면 그가 나서서 불사조의 정혈 계승을 받으려 했는데 구유가 나서서 목진을 도와줄 줄은 몰랐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백빈은 그저 치밀어오르는 화를 잠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 목진이 자신의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하면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잠시 후, 마지막 한 갈래의 불사의 화염이 사라지자 석상은 눈으로 다시 눈부신 빛을 발했고 목진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는 더는 조각상 때문에 낭패를 보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불사조의 조각상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더니 입을 쩍 벌려 손바닥만 한 선홍색 보석을 내뱉었는데 그 속에 자그마한 불사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목진은 선홍색 보석을 보자마자 흥분이 되어 어쩔 바를 몰랐다. 이건 필경 불사조의 계승 정혈일 것이다.
이것만 수중에 넣으면 구유의 혈맥은 완벽해질 거고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천지존과 다름없는 진정한 원고의 불사조로 거듭날 수도 있었다.
목진은 조심스럽게 선홍색 보석을 수중에 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드디어 원고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얻었다!
* * *
선홍색 보석은 제법 따뜻했다. 그 속에서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고 불사조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상당히 기묘해 보였다.
목진은 수중의 불사조 계승 정혈을 보고는 화색이 되었다. 신수지원에서 지금껏 고생한 이유가 바로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얻기 위해서였는데 드디어 목적을 달성했다.
이제 구유족에서도 더는 목진과 구유가 혈맥을 연결한 일로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구유야, 받아.”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수중의 불사조의 정혈이 한 줄기 빛이 되어 구유에게 향했다.
이에 구유는 계승 정혈을 건네받고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불사조의 계승 정혈은 그녀한테 더없이 중요한 물건이었다. 이를 제련해 흡수하면 구유는 불사조의 혈맥을 획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 기회가 되면 진정한 불사조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정말 그리되면 대천세계 전체가 구유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
원고의 불사조는 천지존과 맞먹는 실력자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제단에 서 있던 강자들은 목진이 목숨을 내던지며 고생해 얻은 계승 정혈을 구유한테 넘기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고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토록 진귀한 보물을 대수롭지 않게 내주다니, 목진은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목진은 사람들의 눈빛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구유를 도와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얻기 위해 신수지원에 들어온 것이다. 구유가 여태껏 도와준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잇따라 종청봉과 육후도 각각 만령조와 황수의 계승 정혈을 획득했다.
종청봉과 육후도 이내 화색이 되어 계승 정혈을 거뒀다. 그들은 계승 정혈만으로도 신수지원에 들어온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 목진은 석상들의 색이 어두워지며 그 속에 깃든 영광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위잉!
잇따라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목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백명이 쓰러졌던 곳의 피는 어느새 사라졌는데 검은색 대지가 암홍색으로 변한 것이 괜히 거슬렸다.
목진은 갑자기 다보호 밑에서 발견했던 신비로운 동굴이 생각나 왠지 모르게 불안해져 구유 등한테 외쳤다.
“당장 이곳을 떠나자!”
목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지가 격렬하게 떨리며 제단마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목진 뿐만 아니라 다들 진동을 느끼고 제단 밖의 검은색 대지를 바라봤다. 대지는 호수처럼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지면에서 사악한 기운이 솟구쳐 하늘이 확 어두워졌다.
“이곳은 너무 괴상하니 바로 철수합시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도망가려 했다.
슉!
제단의 외곽에 서 있던 무리가 바로 괴이한 신묘원을 벗어나려 했는데 검은색 대지가 파르르 떨리더니 갑자기 커다란 얼굴이 나타나 입을 쩍 벌렸다. 검은색 안개가 휘몰아쳐 녀석들을 감쌌고 처량한 비명과 함께 녀석들은 커다란 얼굴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얼굴은 도망가려던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껄껄 웃었는데 이로 인해 사람들 체내의 영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녀석이 사악한 기운을 내뿜자 그곳은 순식간에 지옥이 되었다.
“피, 난 피가 필요하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커다란 얼굴은 제단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더니 입을 쩍 벌려 사악한 안개를 내뿜었다.
이에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서 있기만 했다.
“젠장, 이건 분명 역외사족이 남긴 것이네!”
누군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사악한 기운은 대천세계의 강적인 역외족의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곳은 역외족이 신수지원을 공격했을 때,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었다. 역외족의 강자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알 수 없고, 그중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위잉!
그때 제단에서 만 장의 빛이 발하더니 수많은 오묘한 부적을 이뤄 검은색 안개를 모조리 없앴다.
사람들은 이내 화색이 되어 황급히 고개를 돌렸는데 석상들이 부활한 듯 빛을 발하더니 세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고의 불사조 석상은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고귀하고 단아한 여인은 어여쁜 외모에 아름다운 몸매를 지니고 존귀한 기운을 내뿜었다.
또 만령조는 다채로운 옷을 입은 사내로 준수하고 의젓해 보였고, 상고의 황수는 튼실한 사내로 거뭇거뭇한 피부를 지니고 있어 서 있는 것만으로도 듬직해 보였다.
그들이 나타나자 갑자기 오래된 돌풍이 휘몰아쳤고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압감이 형성되어 지옥 같았던 어두운 곳이 다시 밝아졌다.
“저들은 신수지원의 수존들이야!”
구유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아무리 멍청한 영수라도 눈앞에 나타난 존재가 신수지원에서 사망한 수존들의 령영(靈影)이란 걸 알아챌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던 마안도 세 명의 수존을 발견한 듯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를 냈는데 수만 명의 귀신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너희가 나를 이곳에 가둬둔다고 나를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어림도 없는 소리. 만 년도 넘게 갇혀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다시 나오지 않았느냐, 껄껄!”
이에 불사조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낸 아름다운 부인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마물은 역시 완전히 없애기가 어렵군.”
잇따라 다채로운 옷을 입은 사내가 제단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쓰윽 훑어보며 말했다.
“백 년은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저들이 계승 정혈을 이렇게나 빨리 가져갈 줄이야…… 결국 봉인이 느슨해졌군.”
“흥, 마지는 강대한 생기가 깃든 혈기가 있어야 부활하는데 도대체 누가 한 짓이란 말인가!”
황수 석상 위에 나타난 사내의 고함이 뇌명처럼 귓가에 울려 퍼져 체내의 기혈이 요동쳤다. 이에 다들 자연스레 목진과 백명을 바라봤다.
마지는 강력한 생기가 깃든 봉황족의 혈맥을 지닌 백명의 피가 흘러들어 부활한 것이었다.
이에 사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목진과 백명을 바라봤는데 목진은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고 막 깨어난 백명도 너무 무서워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사내는 황수의 영령일 뿐이지만 두 사람을 죽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 그때,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 일은 저들 탓이라고만 볼 수 없네. 마물은 이미 준비를 마쳐 시간문제일 뿐이었네. 이렇게 된 이상, 녀석을 완전히 없앨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우리는 남아 있는 영령일 뿐이라 녀석을 완전히 죽이지 못할 것이네.”
튼실한 사내가 나지막하게 말하고는 사람들을 쓰윽 훑고 콧방귀를 뀌었다.
“후배들이 하나 같이 무능하군. 어찌 된 것이 9급 지존이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 이따위 실력으로 우리의 계승 정혈을 얻어갔단 말인가?”
그 말에 다들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수존과 비교하면 7급, 8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쳐다봤다.
“너희 중에 전진에 능한 사람이 있느냐? 우리를 도와주면 엄청난 보상을 줄 거란다.”
궁장을 입은 여인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도 전진에 능통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목진 역시 나설 생각이 없었다. 지금의 실력으로 함부로 나섰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목진은 구유를 바라보며 몰래 고개를 젓고는 뒤로 물러나려 했는데 갑자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이에 목진이 위쪽을 쳐다보니 불사조인 여인이 생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