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1화. 삼수존(三獸尊)
궁장을 한 아름다운 부인이 생긋 웃으며 쳐다보자 목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목진의 전진사 신분을 알아챈 것이 분명했다.
목진은 신수지원에 들어선 뒤로 단 한 번도 전진사의 신분을 드러낸 적이 없었는데 한눈에 알아보다니, 천지존이 이렇게 무서울 정도로 강하단 말인가? 천지존의 앞에서 비밀 따위는 없는 듯했다.
한편,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목진을 쳐다보자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목진이 전진사라니!”
누군가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목진의 전진사 신분에 적잖게 놀란 모양이었다. 이건 목진이 백명을 상대하면서 선보인 수단 외에도 아직 알리지 않은 필살기가 남아 있단 말이었다.
사람들은 목진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우리를 도와줄 수 없을까?”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미소를 지은 채 목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너희도 결코 무사히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거란다.”
슉!
여인의 말에 사람들이 자신한테 눈길을 돌리자 목진은 순간 긴장했다. 목진이 그 제안을 거절하면 세 명의 수존이 나서기도 전에 이곳에 모인 강자들이 목진을 덮칠 것이다.
구유도 씁쓸하게 웃으며 상황을 살폈다. 불사조 선배의 남다른 안목 때문에 목진이 도망갈 수 없게 되어 안타까웠다.
“선배님께서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 같네요. 7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 어찌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요?”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알아챈 목진이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해봐야 알지 않을까?”
황수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너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너희가 나서야하지 않겠느냐?”
목진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상황은 목진 등과 연관이 있긴 하지만 주요한 원인이 아닌데 그렇게 말하다니, 황수는 책임을 떠넘기는데 선수인 듯했다.
한때는 천지존이었던 이들과 따지고 드는 것은 멍청한 짓이란 걸 깨달은 목진은 머쓱하게 웃고는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껄껄!
그런데 그때, 제단 밖의 마지에 나타난 악마의 얼굴이 점차 커지더니 피식 웃으며 입을 쩍 벌려 안개를 내뿜었다. 이는 마룡처럼 하늘을 가르며 제단으로 향했다.
“흥!”
이에 만령조가 기합을 넣으며 옷깃을 휘날리자 다채로운 광이 폭발했다. 신비로운 힘이 깃든 다채로운 광은 그윽한 안개와 닿자 서로를 침식하느라 바빴고 이로 인해 주위의 만 장 범위의 공간은 부서진 유리처럼 부단히 무너졌다.
제단에 서 있던 목진 등은 양자의 공격에 깃든 엄청난 파괴력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힘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그들은 바로 잿더미가 될 것이다.
다채로운 광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단히 부서졌고 마안은 계속해서 안개를 내뱉었다. 녀석은 제단을 부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만약 수존들이 나서도 마영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여기서 죽게 될 것이다.
“마물이 더 고약해졌군.”
황수가 이내 정색하며 말하더니 장풍을 쐈는데 오래된 부적이 가득 새겨진 장인은 천지마저 견뎌낼 수 없을 듯한 힘을 실은 채 상대방에게 향했다.
황수 덕분에 미친 듯이 요동치던 안개는 더는 제단 가까이 오지 못했고 쌍방은 허공에서 대치 상태를 이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안이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마지가 진동하며 균열이 일었고 그 속에서 마영들이 나타나 마의 기운을 내뿜었다.
마안은 오늘을 위해 오래도록 준비한 모양이었다. 세 명의 수존마저 녀석의 공격을 물리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비록 수존들은 본인이 아니라 령영일 뿐이지만.
이를 지켜보던 목진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수존들이 있어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수존들의 령영이 없어지면 그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마물은 역외족의 왕 다섯 명의 잔념으로 이뤄진 존재로 수많은 역외족 강자들의 시체를 집어삼키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형태를 갖췄단다. 그런데 우리가 녀석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우리가 죽어 령영을 남겨 제압할 수밖에 없었단다.”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은 목진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이에 목진 등은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마물은 역외족 왕 다섯 명의 잔념으로 이뤄진 것이라 이리 강한 것이었다. 역외족 왕은 대천세계에서 천지존과 비슷한 존재였다.
녀석은 비범한 존재로 수존 세 분이 남기신 령영들마저 녀석을 물리치지 못했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목진이 공손하게 물었다.
“우리와 함께 녀석을 죽이자꾸나!”
여인이 살기 가득한 얼굴로 적을 노려보며 말했고 목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제 실력으로는 전력을 다해봐야 마물한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할 거예요.”
목진의 말에 여인이 생긋 웃으며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제단이 빛을 발하며 진동하더니 그 속에서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에 다들 고개를 돌려보니 영수 갑옷을 입은 튼실한 사내들이 눈을 꼭 감은 채 서 있었다. 웅장한 살기가 주위를 맴도는 것이 꼭 살육의 신이 강림한 것 같았다.
또한, 그들은 목진 등 못지않은 실력자들이었는데 기세로만 보면 목진 등을 훨씬 뛰어넘었다.
더구나 이 무리는 수만 명이나 되었다.
수만 명이나 되는 강력한 전사 부대는 목진이 본 것 중에서 실력이 제일 강했다. 이토록 강력한 군대를 장악하면 아마 지지존이라도 감히 덤비지 못할 것이다.
“이게 설마 말로만 듣던 천수군이란 말인가?”
목진 뿐만 아니라 제단에 서 있던 사람들마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군대를 쳐다봤다.
“천수군이라…….”
그러나 목진은 신수 종족 사람이 아닌지라 천수군에 관해 전혀 몰랐다.
“과거 신수지원의 수존 휘하에는 상당히 강력한 군대가 있었는데 그들은 지지존마저 죽일 수 있는 무서운 힘을 갖고 있었어. 그들이 바로 천수군으로 우리 앞쪽에 나타난 바로 저들이지.”
구유가 이내 감탄하며 말하자 목진은 그제야 놀란 듯 눈빛이 변했다. 지지존마저 죽일 수 있는 군대라니. 그 실력이 도대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전진사라면 누구라도 이 정도의 정예 부대를 거느리고 싶을 것이다. 일단 그들을 장악하면 대천세계에서 무엇이 무서울까?
“진정한 천수군은 과거 수존들과 함께 죽었고 저들은 전사들의 해골로 제련한 것이란다. 생전의 일부 실력을 보존했을 뿐이지만 마물을 죽일 최후의 수단이기도 하단다.”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수존들은 영령일 뿐이지 더는 가벼운 손짓 하나만으로도 천지존을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에 외부의 힘이 절실했고 그들은 전진사가 아니었다. 천수군을 이끌던 전진사는 이 자리에 없었다.
“저더러 천수군을 장악해 저들의 전의로 마물을 죽이라는 말인가요?”
목진의 질문에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조금은 난감해졌다. 그가 비록 전진사이긴 하지만 기껏해야 만문 전진사일 뿐이고 십만 문 전진사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 그런데 천수군은 인수만 해도 수만 명이나 되고 백만, 심지어 천만 명도 넘는 일반 군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춰 만문 전진사가 장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목진이 강제로 천수군을 장악하려다가는 오히려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은 바로 목진의 마음을 꿰뚫고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는데 한 줄기 빛이 날아가 목진의 미간에 스며들었다.
“이 물건이 너를 보호해줄 거란다. 그러나 천수군의 전의는 유난히 강력해 네 힘으로는 장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단다. 내가 너한테 준 물건이 있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지. 그러니 잘 생각하고 선택하길 바란다.”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이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다들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사람들은 목진이 혹시라도 발뺌할까 봐 무서웠다. 그리되면 그들은 전부 이곳에서 죽어야 할 수도 있었다.
종청봉, 공령, 육후 등도 복잡한 표정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도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상황에서 과연 목진이 물러날 수 있을까? 목진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나서야 했다. 그러다 수존들의 영력이 닳으면 그들은 분명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불사조의 신분과 지위는 남달라 목진이 일단 마물을 죽이는 데 성공하면 분명 엄청난 보상을 줄 것이다. 목진은 그 보상이 탐났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궁장을 입은 여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선배님, 말만 하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목진의 대답에 궁장을 입은 여인은 그제야 미소를 짓더니 손을 휘익 저었고 한 줄기 빛이 목진한테 날아갔다. 그건 손바닥만 한 석인으로 수많은 영수가 그려져 있었는데 얼핏 녀석들의 포효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건 천수군의 군인이란다. 이 물건으로 천수군의 전의를 장악하여 다룰 수 있을 거란다.”
부인의 말에 다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목진의 앞쪽에 떠 있는 석인을 쳐다봤다. 석인만 손에 넣으면 실력이 지지존에 이르는 무서운 군대를 장악한 거나 다름없었다. 이건 엄청난 보물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석인이 탐나도 감히 빼앗을 수는 없었다. 목진이 천수군을 장악하지 않으면 여기서 살아남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었다.
목진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석인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수중에 넣었다. 그는 수수해 보이지만 무서운 힘이 깃든 석인을 보자 마음이 뜨거워졌다.
석인을 북계에 가져갈 수만 있다면 목진 혼자서 정예 세력 하나를 상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진이 정말 석인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해도 현재 목진의 실력으로는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 천수군을 장악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한껏 정색한 채 만령조, 황수의 령영과 대치 중인 마물을 쳐다봤다.
쌍방의 대결은 엄청났다. 공격이 오갈 때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부서지며 공간이 깨질 것 같았다. 제단의 수호가 없었다면 이곳에서 수존들의 령영만 빼고 다들 그 여파에 적중하여 즉사했을 것이다.
또한, 마물의 힘은 점차 강해지고 있어 도천의 마의 기운도 계속해서 제단을 향해 몰려왔다.
“녀석이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군. 녀석을 제압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군.”
궁장을 입은 여인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수존들은 이미 죽었고 령영을 남긴 것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비록 천수군이 있긴 하지만 여태껏 실력이 충분한 전진사를 만나지 못해 그 힘을 빌려 마물을 완전히 죽이지 못했다.
지금도 전진사를 어렵게 구했지만 너무 어린 데다가 천수군의 전의를 장악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실패라도 하여 마물이 이곳에서 벗어나면 신수지원은 물론이고 대천세계도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저 목진한테 기댈 수밖에 없었다.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이 천천히 허공에 떠올라 제단의 최상 측에 서서 만령조 수존과 황수 수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세 사람은 동시에 인법을 바꿨다. 그러자 무서운 영력이 휘몰아쳤는데 꼭 천하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세 갈래의 웅장한 영력이 휘몰아쳐 제단에 있는 세 개의 석상에 스며들었다.
위잉!
석상에서 빛을 발하고는 ‘퍽!’ 하며 폭발하자 세 갈래 빛이 솟구쳐 하늘에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거물을 이뤘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저들은 바로 수존들의 본체로 허상이 아니라 사망했을 때 남긴 해골이었다.
령영의 소환에 그들의 해골은 다시 생기를 되찾아 천지존의 위엄을 내뿜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마안도 이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녀석은 세 거물한테서 강한 위협을 느꼈다.
크으으으!
이에 마안이 아우성치며 마의 기운을 내뿜자 얼굴에 마의 무늬를 형성했는데 마안은 순식간에 백 배 정도로 커졌다. 멀리서 보면 수만 장의 지역을 감싼 것 같이 무서워 보였다.
사람들은 마물의 마의 기운에 순간 사색이 되었다.
쿵!
그때 세 거물이 바로 달려가 불사의 화염, 다채로운 빛, 홍황의 주먹을 휘둘러 사정없이 마안을 공격했고 마안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의 기운을 방출해 수많은 마영을 이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무서운 공격에 맞섰다.
쌍방은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싸웠는데 공격이 오갈 때마다 천지를 부술 듯 요란 법석이었다.
목진은 이내 정색하여 피 튀기는 싸움을 바라보고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천수군한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