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5화. 발칵 뒤집힌 구유족
장로원은 구유족에서 권위가 가장 큰 곳이었다. 현재 대전 안은 상당히 숙연하고 숨이 막혔다. 대전에 서 있는 사람 중 대부분은 노인들이었지만 그들이 형성한 엄청난 위압감에 묵봉과 묵령은 완전히 제압되었고 활발하던 묵령마저 조용히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때 구유족의 천황 족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묵봉과 묵령한테 물었다.
“구유와 목진은 왜 너희와 함께 돌아오지 않은 것이냐?”
이에 목진한테 불만이 컸던 청포 장로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녀석은 우리가 준 임무를 완성하지 못해 구유와 함께 도망갔나 보죠. 멍청하기도 하지.”
그런데 청포 장로의 말에 묵령은 입을 삐쭉 내밀며 반박에 나섰다.
“목진 오라버니가 도망갔다고 누가 그래요? 이번에 목진 오라버니가 아니었으면 구유 언니는 절대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뭐?”
묵령의 말에 장로들은 온몸을 파르르 떨며 두 눈을 부릅뜨고 묵령을 바라봤고 천황 족장도 눈가를 파르르 떨며 물었다.
“뭐라고 한 것이냐? 구유가 정녕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획득한 것이냐?”
“목진 오라버니께서 불사조 수존 선배님의 임무를 완성하고 구유 언니와 함께 선배님의 보상을 취하러 갔을 거예요. 그런데 뭘 받았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묵령이 득의양양하여 답했다.
“불사조 수존이라니!”
청포 장로는 너무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다들 원고 시기, 신수지원의 진정한 천지존인 세 수존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불가능하단다! 불사조 수존께서는 돌아가신 지 만 년도 넘는데 무슨 수로 만났단 말이냐?”
청포 장로는 묵령의 말이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천황 족장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묵봉아, 너희가 신수지원에 들어간 뒤로 일어난 일을 빠짐없이 알려줄 수 있겠느냐?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그는 목진 녀석이 신수지원에서 도대체 뭘 했는지 제대로 알고 싶었다!
이에 묵봉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지원에서 그는 목진에 대한 생각이 많아 달라졌고 지금은 소년이 대단하단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을 있는 그대로 알려 장로들도 자기처럼 생각이 바뀌길 바랐다.
하여 묵봉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신수지원에 들어간 뒤로 일어난 일을 하나둘씩 말하기 시작했다.
목진은 연체탑의 수련을 전부 마치고 만수묘에 뛰어들어 다보수의 보물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빙황족의 천재 백명과 싸워 이기기까지 했다.
묵봉의 말에 대전은 순간 조용해졌고 장로들뿐만 아니라 천황 족장마저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유족 천재들도 연체탑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마지막 관문까지 넘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목진이 이를 해냈다.
그리고 만수묘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아는데 목진이 감히 그곳에 들어가다니…… 더구나 다보수의 보물은 장로들과 천황 족장마저 탐내는 보물이었다.
목진은 다른 종족과의 쟁탈전에서 이겼을 뿐만 아니라 묵봉 등과 함께 들어가 각각 준 성물을 획득하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다들 애써 진정할 수 있었는데 목진이 빙황족의 백명과 싸워 이겼다는 말에 순간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들은 빙황족에서 키운 천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았고 백명은 봉황족에서 혈맥이 그렇게까지 고귀한 신수는 아니지만 구유족 젊은이 중에서 녀석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 일로 봉황족에서 구유족을 적잖게 비웃었는데 목진이 감히 백명과 싸워 이기기까지 했다니.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장로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잘했군! 녀석, 내가 목진을 너무 하찮게 생각했네!”
장로 중 하나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손잡이를 ‘탁’ 치며 외쳤다. 빙황족은 구유족과 사이가 안 좋은 데다가 그들을 적잖게 비웃었는데 저들이 애써 키운 천재가 7급 지존밖에 안 되는 목진에게 이기지 못했다니.
앞으로 빙황족은 더는 구유족 앞에서 우쭐거리지 못할 것이다.
목진은 비록 구유족 사람은 아니지만 구유와 혈맥을 연결한 이상, 몸에 구유족의 피가 흐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여 목진도 사실 구유족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일부 장로들은 어느새 목진이 구유와 혈맥을 연결한 일로 비아냥거리던 것을 잊고 목진을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군.”
천황 족장마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색이 조금씩 밝아졌다. 그는 구유와 혈맥을 연결한 존재가 평범한 걸 원치 않았다. 만약 목진이 더없이 평범한 존재였다면 구유가 뭐라 하든 천황은 바로 양자의 혈맥 연결을 끊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구유의 안목은 대단했다.
“불사조의 계승 정혈은 백명을 이기고 얻은 것이냐?”
천황 족장이 질문을 던졌다. 이제 그는 일전에 묵령이 한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또한, 구유가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획득해 완벽한 혈맥을 이룰 거라는 생각에 천황의 신분에도 참지 못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구유는 최근 만 년 사이, 구유족에서 원고의 불사조로 거듭난 유일한 존재가 될 것이고 구유족의 지위는 부쩍 올라 봉황족도 더는 감히 그들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묵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불사조의 정혈을 취하자마자 변고가 생겼어요. 갑자기 신수지원에서 사망한 역외족 왕들의 잔념으로 이뤄진 마물이 나타난 거예요. 다행히 세 명의 수존이 령영으로 녀석을 제압했고 목진이 전진사의 신분으로 천수군의 전의를 장악해 치명적인 일격을 날려서야 녀석을 완전히 죽였죠.”
말을 마친 묵봉은 주위가 다시 조용해진 것을 발견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장로들과 천황 족장이 넋 놓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묵봉의 말에 천황 족장과 장로들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역외족의 왕들과 수존 세 명에 천수군이라…….
그 단어들이 뭘 의미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천황과 장로들은 머릿속이 완전히 뒤집혔다.
역외족의 왕급 강자는 천지존이나 다름없는 무서운 존재이고 수존 세 명도 원고 시기, 상당히 유명한 정예 강자들이었다.
그리고 천수군은 당시 명성이 자자한 강대한 군대로 지지존급 강자를 수도 없이 죽였다고 들었다.
하여 천황 등은 묵봉의 말에 녀석들이 시간을 거슬러 원고 시기에 돌아갔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이 아무리 전진사라도 천수군을 장악하긴 버겁지 않았을까?”
가장 빨리 정신을 차린 천황 족장이 믿기지 않은 듯 묻자 장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이 천수군마저 장악할 수 있다면 대천세계 어디든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뒤처져도 군대만 있으면 대원만급 지지존마저 소년을 두려워할 것이다.
“천수군은 전성기 때의 실력이 아니라 수존들이 특수한 수단으로 일부 실력을 보존한 것뿐이에요. 그리고 불사조 수존께서 목진에게 대비책을 마련해주셨어요. 그런데도 목진은 결국 크게 다쳤죠.”
묵봉은 일부러 과장하거나 부풀리지 않았다. 그리 말하면 천황 족장과 장로들은 오히려 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천황 족장 등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들은 묵봉의 말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천수군이 일부 실력을 보존했을 뿐이라고 해도 지지존을 쓰러뜨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목진이 불사조 수존이 준 대비책을 사용했어도 천수군의 전의를 장악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전진사 방면에 천부적인 재능과 조예가 남다르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다.
언젠가 목진은 천수군과 실력이 비슷한 강대한 군대를 장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목진은 필경 대천세계에서 유명한 거장이 될 것이다.
장로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고 목진의 실력과 신분에 대해 의견이 있었던 청포 장로마저 입을 꾹 닫았다.
언젠가 구유족마저도 목진의 보살핌이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목진이 지금 선보인 재능만 봐도 그날은 분명 올 것이다.
“불사조 수존께서 목진한테 엄청난 보상을 내린다고 하셨고 구유는 목진이 걱정되어 그곳에 남았어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목진 덕분에 함께 보상을 받으러 간 것 같네요.”
묵봉이 마지막 한마디를 마치고 뒤로 물러나자 대전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불사조 선배님의 가르침을 받다니, 그건 그들도 탐낼 엄청난 기회였다.
그때 천황 족장이 손잡이를 ‘탁’ 치며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눈을 뜨고 위험천만한 눈빛으로 주위를 쓰윽 훑었다.
“앞으로 더는 혈맥 연결에 관한 일로 목진을 나무라지 말거라.”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제 그들이 돌아오면 난 목진을 구유족의 장로로 임명할 것이다.”
천황의 말에 다들 화들짝 놀라 뭐라 하려다가 결국 말하지 못했다. 목진의 실력으로 장로가 되기에 아직 역부족이었지만 잠재력을 보면 충분했다.
신수지원의 시험이 끝나자 신수 종족들은 떠들썩해졌다. 비록 목진이 놀라운 실력을 선보이긴 했지만 논쟁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신수지원에 참가한 신수 종족은 제법 되었지만 모든 신수 종족을 포함한 것은 아니었다. 용족 등의 신수 종족들은 사람을 파견하지 않았고 백명은 봉황족에서도 빙황족의 젊은 천재일 뿐이었다. 녀석이 유명하긴 해도 봉황족 고등 혈맥을 가진 천재들을 대표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봉황족의 미래를 대표했기에 신수지원에 그렇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은 이번에 신수지원에 참가한 젊은이들의 실력이 전보다 못해 목진이 유명해졌다고 생각했다. 만약 각 정예 종족의 진정한 천재를 상대했다면 목진은 분명 지금처럼 위풍당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뭐라 말하든 전부 추측일 뿐, 목진의 진정한 실력을 확인하려면 직접 싸워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목진의 실력이 너무 강해서인지 아니면 백명이 너무 약해서 대결에서 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 *
신수지원에서 발생한 일은 신수 종족의 일일 뿐이라 방대하기 그지없는 대천세계에는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고, 천라대륙의 북계에도 관련 소식은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하여 대라천역은 여느 때처럼 조용했다.
대수렵전을 마치고 신각이 사라진 뒤, 만다라는 북계 연맹을 수립해 북계는 전보다 훨씬 평화로워졌고 각 정예 세력들은 신각의 유산을 소화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와 동시에, 대라천역도 부쩍 유명해져 전성기 때의 신각을 따라잡을 기미가 보였다.
비록 북계 연맹에는 진정한 주인은 없지만 사람들은 현재의 대라천역을 따라갈 세력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머지 정예 세력의 주인들도 대라천역의 역주 만다라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현재 만다라는 북계에서 유일하게 상위 지지존에 오른 사람이었고, 그녀의 실력은 다른 정예 세력의 주인을 훨씬 뛰어넘었다.
대라천역은 북계의 패주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몇 개월 사이, 하나둘씩 대라천역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에 대라천역은 전보다 훨씬 유명해졌고 커지는 속도도 상당히 빨랐다.
심지어 천라대륙의 다른 지역 정예 세력들까지 북계의 대라천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