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8화. 귀환
“이번 수련으로 엄청난 걸 얻었군.”
목진은 흐뭇하게 웃으며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신해의 공간에서 2년이 지났으니 바깥세상은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갑자기 늘어난 목진의 실력에 모두 깜짝 놀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옷깃을 휘날렸고 귀신같이 구유가 있는 섬에 나타났다.
“허허, 축하해.”
목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구유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쓰윽 훑은 목진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9급 지존경에 이른 거야?”
목진이 흠칫 놀라 물었다. 목진은 구유한테서 위압감이 느껴졌는데 이건 진정한 9급 지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선배님의 계승 정혈 덕분이지 뭐.”
구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더니 활짝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구유도 이번 수련의 성과가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정작 목진은 2년 동안 애써 수련해봐야 겨우 반보 9급일 뿐인데 구유는 큰 무리 없이 9급 지존경에 이르러 괜히 질투가 났다.
“신수의 수련은 사람과 완전히 다르고 각자만의 우세가 있으니 너무 개의치 말거라.”
그때 옆에 서 있던 불사조 수존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곧 사라질 것 같은 수존의 모습에 어깨가 축 처졌다. 머지않아 불사조 수존은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목진은 불사조 수존이 정말 고마웠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목진은 지금의 실력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한 해는 고생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기반이 든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작 궁장을 입은 부인은 개의치 않은 듯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난 이미 죽었고 마물이 신수지원을 더럽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 령영을 남긴 것뿐이다. 이제 계승자를 찾았으니 여한이 없단다.”
“언젠가 제가 이곳을 계승할 능력이 생기면 반드시 대천세계를 수호하는데 전력을 다할 거예요.”
목진이 허리를 굽히며 정중하게 말했다. 궁장을 입은 부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집념이 사라진 듯 육신이 훨씬 투명해졌다.
“저곳을 지나가면 구유족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니 내가 완전히 사라지면 너희도 바로 이곳을 떠나거라.”
궁장을 입은 부인이 손가락을 튕겨 앞쪽 공간에 공간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목진과 구유는 다시 경건하게 인사를 올렸다.
이에 궁장을 입은 부인은 주위를 쓰윽 훑더니 더는 미련이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몸은 점차 투명해지다가 수많은 광점이 되어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쿠쿵!
때마침 웅장한 신해도 한때, 신수지원의 최고급 강자한테 인사를 올리듯 미친 듯이 요동쳤다.
목진과 구유는 한참 서 있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마주 보고는 함께 공간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목진과 구유가 떠나자 공간 파동이 폭발해 소용돌이가 점차 사라졌고 웅장한 영력이 깃든 신해의 공간은 다시 조용해졌다. 언젠가 목진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는 진정한 강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 * *
무질서한 공간 파동은 목진과 구유의 영력 감응을 흐렸는데 곧바로 앞쪽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더니 주위 환경이 확 달라졌다. 멀리서 사람들이 이곳의 공간 파동을 알아채고 우르르 몰려왔다.
목진과 구유는 낯익은 공간을 쓰윽 훑어보노라니 감개무량했다.
“족장님과 장로들을 만나러 갈 거예요.”
구유가 손을 휘두르며 말하자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두 사람을 바라봤다.
구유의 선배인 그들은 반년 만에 나타난 구유가 발하는 엄청난 위압감에 제법 놀랐다. 그건 장로들한테서만 느낄 수 있던 위압감이었다.
구유는 무슨 수로 짧은 반년 동안 실력이 이렇게까지 늘었단 말인가?
그러나 아무도 감히 그 이유를 묻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천황 족장과 구유족의 장로들은 대전에 나타난 구유와 목진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구유야, 너희들…….”
천황 족장은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는 반년 사이에 7급 지존경에서 바로 9급 지존경에 이른 구유의 모습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게다가 목진은 6급 지존경에서 반보 9급 지존경이 되었다.
제아무리 박식한 천황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에 구유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불사조의 계승 정혈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불사조 수존 선배님의 가르침을 받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실력이 부쩍 늘 수 있었습니다.”
구유는 신해의 공간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그곳은 지지존급 강자마저 탐낼만한 곳이었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를 목진이 쥐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골치 아파질 것이다.
“역시 불사조 수존이었단 말인가…….”
천황 족장 등은 이내 감탄하며 구유를 쳐다봤다. 그들은 구유가 말한 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았지만 더는 캐묻지 않았다.
천황 족장은 장로들과 눈을 마주치고는 목진을 바라봤는데 눈빛이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목진은 이번에 구유를 도와 계승 정혈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실력까지 폭등했다. 이제 그는 구유족의 대은인이었다.
“목진아, 지금부터 우리는 너와 구유의 혈맥 연결을 더는 문제 삼지 않을 거란다. 대신 앞으로 주의하려무나.”
“고맙습니다, 족장님, 장로님들.”
천황 족장의 말에 목진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드디어 한시름 놓았다. 그는 구유 때문에라도 구유족과 잘 지내고 싶었다.
“그리고…….”
천황 족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
“상의 끝에 너를 구유족의 장로로 임명하려 하는데 어떤 것 같으냐?”
목진과 구유는 순간 멈칫했다. 구유족의 장로는 실력이 아무리 못해도 9급 지존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나 목진은 지금도 겨우 반보 9급 지존이라 자격 미달인 데다가 구유족 사람도 아니었다.
또한, 구유족 사람이라 해도 장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잘만 하면 구유족은 목진한테 큰 힘이 될 것이다.
구유족은 대라천역보다 더 강한 정예 세력이니 말이다.
목진은 언젠가 필요할 그 날을 위해 잠시 고민하다가 바로 웃으며 승낙했다.
“동의합니다.”
천황 족장과 장로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 부드러워졌다. 이제 목진은 구유족의 가족이 되었다.
“참, 일전에 대라천역의 만다라 역주가 소식을 전해왔더구나.”
천황 족장은 옥책을 목진한테 건넸다. 그 속의 내용을 확인한 목진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옥책에는 한 마디밖에 적혀있지 않았지만, 그 한 마디만으로 목진은 더 이상 진정할 수가 없었다.
“상고의 천궁이 나타났으니 빨리 돌아와!”
대수렵전을 통해 북계의 최강 세력이었던 신각이 없어진 현재, 북계의 형세는 확 바뀌었다. 신각에서 많은 자원을 가져간 이들은 제2의 신각이 되고 싶어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라천역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북계의 진정한 최강 세력으로 거듭났다. 다른 정예 세력과 함께 만든 북계 연맹도 만다라 덕분에 실질적인 의미를 지녔으며 다들 실력이 상위 지지존에 이른 만다라를 북계 연맹의 맹주로 생각했다.
이건 다른 정예 세력의 주인들마저 묵인한 사실이었다. 현재, 만다라와 대라천역은 확실히 북계의 최강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대라천역은 자연스레 북계 강자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수많은 강자가 대라천역의 식구가 되려고 애를 썼다. 이에 대라천역의 확장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러나 대라천역이 마냥 커진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대라천역의 노참들은 신참들과 이익과 권력을 갖기 위해 다툼을 벌였고 만다라는 이를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는 시간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 * *
대라천이 갑자기 떠들썩해지며 사방에서 사람들이 잔뜩 흥분한 채 우르르 몰려왔다.
오늘은 대라천역의 왕급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대라천역의 규모가 커져 왕도 어느새 18명으로 늘었는데 만다라가 거르고 또 걸러 정하지 않았다면 아마 왕만 해도 상당히 많아졌을 것이다.
매번 회의할 때마다 새로운 왕, 심지어 황이 나타날 수 있어 현재, 왕급 회의는 대라천역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가 되었고 한 번 주최할 때마다 대라천역 휘하의 성주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러나 대라천 북쪽에 있는 구유궁은 웅장한 기운만 방출할 뿐, 더없이 조용했다.
방대한 궁전에 검은색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고 위쪽 하늘에 강대한 영력 파동을 내뿜는 영진에서는 영문이 아른거렸다.
현재의 구유궁은 목진과 구유가 떠났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휘하의 도성과 강자의 수도 반년 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다들 구유궁의 목진과 구유가 만다라와 사이가 좋다는 걸 잘 알아 3황마저 그들을 막 대하지 못했고 자원이 있으면 먼저 구유궁부터 챙겨줬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유궁이 너무 부러웠다. 대라천역에서 구유궁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엄청난 자원과 뛰어난 강자들이 구유궁으로 가곤 했다. 구유궁은 곧 대라천역의 최강 세력이 될 것이다.
반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 몰래 기회를 엿보곤 했다. 그들은 구유궁의 주인인 목진과 구유를 6, 7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 실력은 대라천역에서는 제법 뛰어나지만 최정예급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 정도 실력으로 지금의 구유궁을 통솔하고 방대한 자원을 누리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이에 대라천역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목진이 준 보물 때문에 만다라가 구유궁을 다른 세력보다 더 보살핀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인정을 받지 못한 목진과 구유는 언젠가 구유궁을 망칠 거라 확신했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만다라가 나서도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흩어진 인심은 아무리 지지존이라도 다시 끌어모을 수 없는 법이었다.
* * *
떠들썩한 대라천과 달리, 구유궁은 왕급 회의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처럼 아주 조용했다.
하긴, 왕이 없으니 상관없긴 했다.
당빙이 대라천역을 떠난 두 주인을 대신해 왕급 회의에 참석할 수는 없었기에 근 1년 사이, 구유궁은 단 한 번도 왕급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빙은 궁중 사무를 처리하는 능수능란했지만, 구유와 목진의 뜻을 함부로 전했다가는 논쟁이 일어날 거라 여기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구유궁은 현재 만다라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말이 많았다.
구유궁의 대전은 제법 웅장해졌다. 당빙과 당유는 텅 빈 두 왕좌 아래쪽에 서 있었고 그 아래에 하얀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앉아있었다. 수려한 외모에 조금 창백해 보이는 소녀가 내뿜는 영력 파동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구유궁에서의 지위는 당빙과 당유 다음으로 보였다.
그녀는 바로 목진이 대수렵전에서 만난 신각의 전진사, 첨대유리였다.
신각이 없어진 뒤, 첨대유리는 목진 덕분에 가족과 함께 대라천역으로 들어왔으나 전진사라는 신분 때문에 다들 그녀를 휘하에 두려고 했다.
대라천역에서 전진사는 목진 한 사람뿐이라 첨대유리만 원하면 만다라는 대라천군마저 건네줄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독립하지 않고 구유궁에 들어와 구유위를 장악했다.
첨대유리의 영력 실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전진사의 힘을 빌리면 보통 7급 지존은 절대 그녀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첨대유리의 아래쪽에는 수십 명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었다. 특히 가장 앞쪽에 서 있는 네 사람은 이미 7급 지존경에 이른 듯했다.
이 정도 실력이면 대라천역에서는 이미 왕이 될 자격을 갖췄다.
그들은 만다라가 보낸 사람들로 당빙을 도와 점점 커지는 구유궁을 관리하라는 명을 받았다.
“오늘은 왕급 회의로 구유궁은 전처럼 참석하지 않겠다. 오늘 구유궁은 하루 동안 폐궁할 것이다.”
대전의 위쪽에 서 있던 당빙은 규모가 부쩍 늘어난 구유궁을 쓰윽 훑더니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그 말에 다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안타까워했다. 구유궁이 이렇게 큰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