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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679화 (678/1,000)

679화. 숙청

“이번에 용비지존(龍臂至尊)과 고노인(枯老人)이 새로운 황의 자리에 도전한다고 들었는데 이런 성사에도 구유궁은 참석하지 않는 건가?”

7급 지존 네 사람 중 가장 앞쪽에 서 있던 중년 사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용비지존과 고노인은 최근에 대라천역에 들어온 정예 강자들로 실력이 9급 지존경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상당히 유명했다. 그들은 대라천역의 황위를 탐낸 지 오래되었는데 일전에는 대라천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서지 못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나설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두 사람이 정말 대라천역의 새로운 황이 된다면 형세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중년 사내는 구유궁이 황이 될지도 모르는 용비지존과 고노인과 가깝게 지냈으면 하고 바랐다. 대라천역에서 황은 역주 다음으로 권력이 막강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중년 사내는 허곤(許坤)으로 7급 지존이었고 만다라가 보낸 네 사람 중 최강자였다. 구유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실력이 제일 강해 다들 그 말을 잘 따랐다.

이에 당빙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도 구유궁을 대표해 용비지존과 고노인을 한 번쯤 만나보려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당빙은 물론이고 목진과 구유마저 무시하는 눈치였고 태도도 전혀 살갑지 않았다. 역주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절대 구유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역주라도 9급 지존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한다. 9급 지존은 정예 세력에서 역주를 제외한 최정예 실력자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당빙은 굳이 구유궁 사람들을 데리고 그들을 만나러 가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목진과 구유가 없는 상황에서 용비지존과 고노인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이에 당빙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구유궁은 미친 듯이 성장했지만 당빙의 명망은 점점 줄어들었다. 새로 온 강자들이 실력은 막강했으나 윗선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 아니었다. 또, 당빙의 실력이 평범해 그들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당빙은 허곤만은 잘 알았다. 녀석은 용비지존, 고노인과 아는 사이라 일부러 저러는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이 황위에 오르면 대라천역의 형세는 확 바뀔 것이고 그 두 사람의 지지를 얻으면 허곤의 미래는 주인이 없는 구유궁에 있는 것보다 훨씬 밝아질 것이다.

이리 생각하는 건 허곤뿐이 아니었다. 이에 그의 말에 동의하며 나서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조용했던 대전은 순간 떠들썩해져 당빙이 장악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당 집사, 정 원치 않으면 나만이라도 왕급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게.”

허곤은 피식 웃더니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용비지존 등도 도움이 필요하니 그가 가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면 좋을 것 같았다.

이에 일부 강자들은 바로 그 뒤를 따르려 했고 나머지는 고민에 빠졌는데 당빙은 그 광경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러나 허곤은 당빙이 화를 내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당빙은 비록 두 궁주의 사람이긴 했지만, 실력으로만 따지면 자신은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또 궁주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분명 자신을 지지할 것이다. 당빙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허곤이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려 하자 당빙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거기 서거라!”

이에 허곤이 멈춰 서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당 집사, 난 자네 부하가 아니네!”

대전 분위기는 순간 살벌해졌고 사람들은 어쩔 바를 몰랐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갑자기 대전에 울려 퍼졌다.

“허허, 1년도 안 되는 사이, 구유궁의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단 말인가?”

긴장감 넘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졌다.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고개를 들었는데 텅 비었던 왕좌에 소리 없이 두 사람이 나타나 미소를 지은 채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없이 상냥한 목진의 미소에서 왠지 모를 위압감을 느꼈고 당빙도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이내 화색이 되어 외쳤다.

“구유 언니, 목진아, 드디어 돌아온 거야?”

당빙의 말에 다들 화들짝 놀라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들은 바로 구유궁의 주인인 구유왕과 목왕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들한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다들 어리둥절해졌다.

허곤도 잠시 멈춰서서 목진과 구유를 보고는 어리둥절해 물었다.

“당신들이 구유왕과 목왕인가요?”

7급 지존인 허곤은 구유와 목진이 그리 두렵지 않았다. 그는 7급 지존급 강자 중에서도 상위에 속했고 북계에서 제법 유명했다. 또한, 목진과 구유의 실력이 6, 7급 지존경 밖에 안 된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기에 그들 앞에서 주눅이 들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이에 목진은 아무렇지 않게 녀석을 힐끗 보며 물었다.

“넌 누구냐?”

허곤은 목진의 무덤덤한 태도에 왠지 모르게 소름이 쫙 끼쳤다.

“소인은 역주의 명을 받고 구유궁의 호법으로 온 허곤입니다.”

허곤의 말에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쓰윽 훑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들이 전부 말을 마치고 나자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눈빛을 거뒀다. 사람들은 그제야 엄청난 위압감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이렇게 젊은 소년한테서 왜 이토록 강력한 위압감이 흐르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목왕과 구유왕은 6, 7급 지존경 밖에 안 되지 않는가?

“궁주님, 첨대유리가 인사를 올립니다.”

그때 아래쪽에 서 있던 첨대유리가 목진한테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첨대 낭자군.”

목진은 첨대유리가 구유궁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잇따라 그는 낯설지만 기고만장해 보이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너희가 구유궁에 들어오기 전에 얼마나 유명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여기 들어온 이상, 반드시 우리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당빙은 나와 구유왕이 함께 뽑은 집사로 우리를 제외하고 권위가 가장 높은 사람이니 앞으로 잘 따라야 할 것이다.”

목진과 구유는 대라천역을 떠난 사이에 구유궁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들은 구유궁을 관리할 시간이 없어 모든 것을 당빙한테 믿고 맡겼다.

목진과 구유는 실력이 강한 허곤 등과 당빙 사이에서 고민 없이 바로 당빙을 선택했다.

이에 허곤 등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들은 구유와 목진이 돌아오자마자 모든 권한을 당빙한테 건네줄 줄 몰랐다.

구유와 목진이 대라천역에 없을 때, 허곤 등은 당빙을 그리 존대하지 않았고 그녀의 권한을 나눠 가져 집사에서 끌어내리려 했는데 목진의 말 한마디에 그의 야심은 와장창 깨졌다.

“목왕, 당빙 집사는 구유궁의 노참이긴 하지만 실력이 미약하여 강대해진 구유궁을 관리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저런 사람이 우리를 통솔하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 같군요!”

허곤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잇따라 그의 말에 동의한다며 나서는 사람이 제법 있었는데 보아하니 허곤이 미리 자기편으로 만든 사람들 같았다.

그들까지 나서자 허곤은 더 기세등등해졌고 조금 굽혔던 몸을 곧게 펴고 목진을 직시했다. 그러나 무덤덤한 소년의 표정을 보더니 괜히 불안해졌다.

그런데 그때, 목진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위를 쓰윽 훑으며 물었다.

“내가 너희와 의논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냐?”

무덤덤한 목진의 말에는 엄청난 패기가 깃들어 있었기에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허곤도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목…….”

쿵!

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목진이 쏘아보자 천지의 영력이 갑자기 폭동을 일으켰다.

퍽!

허곤은 사방에서 몰려오는 무서운 압박감에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었고 등에 산 한 채를 거머쥔 듯 몸이 무거웠다. 목진이 바로 살수를 두면 웅장한 영력은 허곤을 바로 으깨어버릴 것이다.

사람들은 목진의 체내에서 화산처럼 솟구치는 무서운 영력 파동에 안색이 확 어두워졌고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서 있었다.

이건 무려 9급 지존경에 이른 강자의 영력 파동이었다!

무릎을 꿇은 허곤은 미친 듯이 식은땀을 흘렸다. 목왕은 6급 지존경 밖에 안 된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 영력 위압감이면 용비지존, 고노인과 비슷할 것이다.

퍽! 퍽!

상황을 살피던 사람들도 황급히 무릎을 꿇었고 더는 감히 목진을 무시하지 못했다.

9급 지존경에 이른 목진과 비교하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목진이 그들을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때 목진은 아무렇지 않게 서서 자신을 향해 무릎을 꿇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 뜻을 거스를 사람이 또 있는가?”

목진은 자신의 부하가 될 사람들을 부드럽게 다스리지 않았다. 녀석들에게는 직접적이고 난폭한 수단을 써야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역시나 허곤 등은 두려워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감히 뭐라 하지 못했고 당빙은 입을 떡 벌린 채 사나워진 목진을 바라보고는 몰래 혀를 내둘렀다. 지금의 목진은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서서 목진과 구유를 힐끗거렸고 더는 그들을 모셔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다들 목진이 선보인 실력에 적잖게 놀란 모양이었다.

“나도 구유궁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구나. 그런데 구유궁에 들어온 이상, 더는 앞뒤가 다른 사람은 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안 그럼 난 너희를 대라천역에서 내쫓을 것이다.”

목진의 말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구유궁에서 쫓아낸다는 것이 아니라 대라천역에서 쫓아낸다고 했기 때문이다.

대라천역에서 쫓기면 북계에서도 생존하긴 어려울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목진의 말에 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충심을 전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목진의 강력한 실력을 직접 확인한 사람들은 이 정도 실력과 대라천역에서의 지위라면 누군가를 내쫓는 것쯤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세등등하던 허곤마저 더는 우쭐거리지 않고 머리를 조아렸다.

목진은 그제야 구유를 바라봤는데 구유도 만족하듯 미소를 지었다.

“오늘 왕급 회의를 한다죠?”

내부 문제를 완벽히 처리한 뒤, 목진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용비지존과 고노인이라…….”

당빙이 다가와 왕급 회의 내용을 전했다. 목진은 북계에서 유명한 강자인 용비지존과 고노인마저 대라천역에 들어온 것을 알고 흠칫 놀랐다. 그들은 대라천역의 황이 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용비지존과 고노인은 대라천역에서 명성이 자자하고 황이 될 실력도 갖춰 가능성이 제법 있어 보여.”

당빙이 입을 삐쭉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들이 구유궁을 대하는 태도가 그리 좋지 않아.”

당빙은 최대한 유연하게 돌려 말을 했다. 용비지존과 고노인은 구유궁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구유궁의 주인인 구유와 목진도 무시했다.

용비지존과 고노인은 구유궁이 역주 덕분에 발전했다고 생각했고 이따위 세력은 충분히 무시할만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구유는 당빙의 말에 뭔가를 알아챈 듯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이만 믿고 우쭐거리는 사람이 얄밉긴 하지.”

잇따라 목진은 자리에서 일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만 갑시다.”

목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피식 웃으며 한 말에 당빙이 멈칫했다.

“어딜 가려고?”

“왕급 회의인데 우리가 빠져서는 안 되겠지?”

목진은 옷깃을 휘날리며 피식 웃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와 구유도 황의 자리가 탐 나는걸요.”

목진의 말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순간 넋을 잃었다.

상고의 천궁이 나타난 상황에서 목진은 대라천역에서의 지위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가서 대라천역의 힘을 빌려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여 목진은 반드시 대라천역의 새로운 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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