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1화. 기세등등
만다라가 다시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대라천역에 황위를 두 자리 더 둘 것이다. 자격이 되는 사람은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만다라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최전방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쳐다봤는데 용비지존과 고노인은 여전히 여유작작해 보였다. 황위가 두 자리가 났으니 그 자리는 분명 자신들의 몫이라 생각한 것이다.
반면, 수라왕, 열산왕 등 노참들은 한숨밖에 안 나왔다. 그들이야말로 황위에 오를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었는데 대라천역이 대폭 확장되자 실력이 뛰어난 신참이 많아져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용비지존과 고노인의 실력으로 황위 쟁탈전에 참가할 자격이 충분했고 수라왕 등은 대라천역에서 오래 생활한 것 외에 내세울 것이 전혀 없었다.
그 외, 천취황과 영동황도 서로 마주 보더니 아무렇지 않은듯한 표정을 한 채 상황을 살폈다. 고노인과 용비지존 때문에 앞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황위 쟁탈전에 참가할 수 있다.”
황금색 왕좌에 앉아있는 만다라가 무덤덤하게 말했고 그 말에 용비지존과 고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훑어보며 가볍게 웃었다.
“혹시 우리와 싸워볼 사람이 있는가? 만약 우리가 패배하면 황위를 기꺼이 내놓겠네.”
패기 넘치는 용비지존과 고노인의 말에서 아무도 자신의 황위를 빼앗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에 뒤쪽에 앉아있는 수라왕 등은 안색이 확 어두워져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몰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의 실력으로 함부로 나섰다가는 체면만 구길 것이다.
두 사람의 말에 사람들은 점점 더 조용해졌고 한참이 지나도 나서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용비지존이나 고노인의 상대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광경에 용비지존은 괜히 으쓱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황위는 우리 둘이…….”
용비지존이 말을 마치려는데 멀리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허허, 급하기는. 우리 두 사람도 황위에 관심이 있네.”
갑작스러운 변고에 사람들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수라왕 등마저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봤는데 휘몰아치는 영광과 함께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전방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준수한 젊은이와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수라왕 등은 멍하니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목왕, 구유왕?”
이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두 사람을 쳐다보더니 수군대기 시작했다.
“구유궁의 두 궁주인 목왕과 구유왕이라니!”
“그동안 사라졌던 두 사람이 다시 돌아왔군…….”
“목왕은 대라천역에서 지위가 상당하다고 들었네. 역주님께서 상위 지지존에 이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목왕 덕분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건 우리도 잘 아네. 안 그럼 구유궁이 지금처럼 번창했을까?”
대부분 구유궁에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목왕이 뭐라 했는지 들었나? 구유왕과 함께 황위에 도전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역주께서 아무리 예뻐하신다고 해도 그렇지. 어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감히 황위 쟁탈전에 참가하려 하는지 참!”
“틀린 말은 아니네. 목왕이 감히 용비지존, 고노인과 황위를 다투려 하다니, 꿈도 야무지지.”
* * *
드넓은 광장은 제법 떠들썩해졌고 목진에 대해 아는 사람이든 전혀 모르는 사람이든 그의 말을 웃어넘겼다.
황위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용비지존과 고노인도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어 목진과 구유를 보고는 히쭉 웃었다.
“누군가 했더니 소문만 자자한 목왕과 구유왕이로군. 두 분이 대라천역에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는데 감히 황위를 엿보려 한다면 이 말밖에 해줄 것 없네.”
“누울 자리를 보고 팔을 뻗게.”
용비지존의 말에 현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여 용비지존을 쳐다봤다. 특히 대라천역의 노참들은 기분이 썩 안 좋아 보였다. 용비지존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유명해도 대라천역에 큰 공을 세운 목진한테 그런 망언을 하면 안 됐다.
대수렵전에서 목진이 아니었으면 만다라는 절대 상위 지지존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고 신각을 없애기는커녕, 그날 없어진 세력이 대라천역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이건 대라천역 사람들한테 엄청난 은혜라 3황마저 목진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용비지존의 말에 목진이 화를 내기도 전에 대라천역의 노참들이 먼저 씩씩거리며 나섰다.
“용비지존, 자네가 북계에서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대라천역에서는 신인일 뿐이네. 자네는 대라천역이 강대해진 것을 보고 온 것이 아닌가? 목진이 아니었으면 대라천역은 절대 이렇게까지 강대해지지 않았을 것이네.”
용비지존과 고노인에 불만이 많았던 수라왕이 가장 먼저 나섰다.
“허허,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대라천역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행패를 부리면 안 되네.”
열산황도 피식 웃으며 말하자 혈응왕 등 노참들도 덩달아 나섰으나 새로 왕위에 오른 사람들은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기만 했다. 그러다 용비지존과 고노인이 정말 황위에 오르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에 용비지존과 고노인은 멈칫하더니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북계에서 이름을 날린지 오랜된 두 사람은 자부심이 상당했고 목진을 무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목진이 대수렵전에서 무슨 수로 큰 공을 세워 역주의 아낌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특수한 관계로 생존하는 이들을 매우 혐오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부딪히고 말았다. 용비지존과 고노인이 뭐라 하기도 전에 천취황과 영동황이 덩달아 입을 열었다.
“목왕과 구유왕은 대라천역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고 너희 역시 아직 황위에 오른 것이 아니니 같은 왕한테 무례하게 굴지 말거라.”
용비지존과 고노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천취황과 영동황은 대라천역 노참들이 나서자 덩달아 말을 덧붙였다. 느긋하게 앉아있던 수황도 동의하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비지존과 고노인은 순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들은 자신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 몰랐다.
자신의 실력과 유명세로 젊은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안 될 거라 여겼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두 사람은 황금색 왕좌에 앉아있는 만다라를 보며 뭐라 말하려 했는데 만다라는 자는 척 눈을 감고 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천취황 등을 다그치려 하지도 않았다.
만다라의 이러한 태도에 용비지존과 고노인은 심장이 철렁했다. 만다라가 9급 지존경에 이른 강자를 논쟁의 중심에 세우면서도 구유와 목진을 지지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누구를 더 중히 여기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에 고노인과 용비지존은 안색이 잔뜩 어두워졌고 상당히 언짢아졌다. 그러나 애써 마음을 달래며 고개를 들어 목진과 구유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가 잘못했네. 목왕, 일전에 내가 했던 말은 무시하게.”
용비지존과 고노인은 화가 났지만 일단 굽신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더 많이 사람이 나서서 목진의 편을 들면 두 사람은 싸워보기도 전에 체면을 잃고 더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한편, 허공에 떠 있던 목진은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상황을 살피고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의 대라천역은 전보다 확실히 강대해진 대신, 훨씬 혼잡해졌다. 용비지존과 고노인이 목진을 질책하자마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반기를 든 것을 보면 두 사람이 여태껏 미움을 사는 짓을 적잖게 해온 모양이었다.
“불쌍한 녀석들…….”
목진은 몰래 중얼거리더니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역주님께서 황위 쟁탈전은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우리 두 사람이 참여해도 될까요?”
이에 왕좌에 앉아있던 만다라가 다시 눈을 뜨고 금광을 발하는 눈동자를 굴리며 목진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웃었다.
목진과 구유는 비록 영력 파동을 숨겼지만 상위 지지존인 만다라의 두 눈에는 두 사람의 실제 실력이 보였다.
“그러거라.”
만다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사람들은 다시 떠들썩해졌고 수라왕 등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목진과 구유를 바라봤다. 그들은 목진과 구유가 정말 용비지존, 고노인과 황위 쟁탈전을 벌이려 할 줄 몰랐다.
용비지존과 고노인은 막 9급 지존경에 이른 무서운 실력자들이라 천취황과 영동황마저 겨우 이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수라왕 등은 목진과 구유가 대라천역을 떠나 있는 동안 실력이 늘었다고 해도 기껏해야 7, 8급 지존경에 이르렀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실력으로는 용비지존과 고노인을 상대할 수 없었다.
용비지존과 고노인도 눈가를 파르르 떨며 상황을 살피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목진과 구유는 대라천역에서 명성이 자자해 보통 수단으로는 절대 끌어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먼저 찾아왔으니 제대로 손을 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패배하면 앞으로 대라천역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목왕, 구유왕. 황위 쟁탈전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니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단다.”
천취황도 이내 정색하며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그는 목진과 구유의 주위에 맴도는 영력 파동을 보고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역시나 두 사람의 실력이 확 늘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말씀 고맙습니다.”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목진의 자신만만한 답변에 천취황은 깜짝 놀랐다. 목진은 나이는 어리지만 신중하여 승산이 없는 일에 무턱대고 뛰어들 사람이 아니었다. 설마 엄청난 수단을 확보해 9급 지존경에 이른 정예 강자마저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더구나 목진은 영진사에 전진사란 신분까지 있어 천취황은 조금이나마 안심되었다. 그는 목진이 대결에서 이겼으면 했다. 안 그럼 구유궁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허허, 두 분이 포기하지 않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후배를 건드려야겠군.”
고노인은 씨익 웃으며 말하더니 바로 광장에 놓인 거대한 석대로 달려가 히쭉거리며 목진과 구유를 쳐다봤다.
“누가 나와 싸울 건가? 내가 싸움에서 지면 깔끔하게 물러날 것이네.”
이에 사람들은 목진과 구유를 쳐다봤는데 기대에 찬 눈빛이 있는가 하면, 목진과 구유가 패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유명한 고노인은 내가 상대하겠네.”
그때 구유가 활짝 웃으며 고노인한테 다가가 말했는데 눈가에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건 뜨거운 전의였다.
신해의 공간에서 불사조의 계승 정혈과 불사조 수존의 가르침 덕분에 구유의 실력은 부쩍 올랐는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실력이 강한 상대가 필요했다. 그리고 고노인이 바로 최적의 상대였다.
고노인은 구유를 힐끗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가까이에서 살펴보자 그는 구유가 일부러 영력을 숨긴 것을 발견했다.
“실력을 숨긴 건가?”
고노인이 어리둥절하여 묻자 구유는 가볍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잠시 후, 억제했던 영력이 화산처럼 미친 듯이 솟구쳐 천지가 파르르 떨렸고 무서운 영력 위압감이 형성되었다.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구유를 바라봤다. 수라왕 등도 화들짝 놀랐고 천취황, 영동황도 안색이 확 변했다. 그들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구유를 바라보고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구유가…… 구유도 9급 지존경에 이르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