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2화. 불멸화신조(不滅火神罩)
“9급 지존경이라니…….”
드넓은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구유를 바라봤다. 구유왕의 실력은 7급 지존경이라고 들었는데 어찌 이렇게까지 강해졌단 말인가?
구유에 대해 잘 아는 수라왕, 열산왕 등도 깜짝 놀랐다. 구유가 대라천역을 떠났을 때까지만 해도 왕들 중 3, 4위 정도의 실력이었는데 지금은 수라왕마저 돌파하지 못한 9급 지존경에 이르렀다.
“밀법으로 잠시 실력을 끌어올린 건가?”
누군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그건 아닐 걸세! 밀법으로 실력을 잠시 올릴 수는 있지만 영력을 완벽히 장악하긴 힘드네. 그런데 구유왕의 체내에서 폭발한 영력을 보게. 전혀 무질서해지지 않았네. 이건 온전히 구유왕의 실력이네!”
“그런데 1년도 안 돼 무슨 수로 실력이 저렇게나 많이 늘었단 말인가?”
왕들을 포함해 다들 수군댔지만 다들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동안 구유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실력이 이렇게까지 늘었는지 궁금했다.
석대에 올라간 고노인도 믿기 어렵다는 듯한 눈빛으로 구유를 노려봤는데 금세 마음을 추슬렀다. 그는 더는 구유를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고노인은 구유가 내뿜은 무서운 영력에서 위험한 기운을 느꼈다.
구유왕은 구유족 출신이었고 신수의 전투력은 강력하기 그지없어 똑같은 9급 지존이라도 싸우면 구유가 우세를 차지할 것이다. 고노인은 더는 필승의 자신이 없었다.
그는 그제야 목진이 왜 그렇게까지 자신만만했는지 알 것 같았다. 구유왕은 9급 지존으로 대라천역의 황위에 오를 자격이 충분했다.
“일전엔 내가 몰라봤네. 그럼 잘 부탁하네.”
고노인은 구유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삐쩍 마른 손을 천천히 쥐었는데 혼탁한 눈에서 눈부신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쿵!
고노인의 메마른 몸에서 웅장한 영력이 폭발했는데 회색을 띤 영력이 지나가자 대지마저 시들시들해졌다. 고노인의 영력에도 독특한 힘이 깃든 모양이었다.
역시 북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9급 지존 중 호락호락한 상대는 없었다.
두 갈래의 웅장한 영력이 사정없이 충돌했다. 두 사람은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위압감을 형성해 사람들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고노인의 혼탁한 눈이 또렷해지자 앞으로 한 보 나섰는데 순간 웅장한 영력이 솟구쳐 회색 빛줄기를 형성해 구유를 공격했다.
쇠패한 기운을 내뿜는 영력 빛줄기가 지나간 곳마다 공간마저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저건 고노인의 고영(枯榮) 영력으로 일단 적중하면 육신이 바로 부패할 것이고 체내의 영력도 사라질 것이네.”
해당 영력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크게 다칠 것처럼 사람들은 겁에 질린듯한 눈빛으로 회색 영력을 바라봤다.
고노인이 현장을 마구 공격하면 아마 이곳은 순식간에 시체의 무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구유는 상대방의 웅장한 공격을 힐끗 보고는 길쭉한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볍게 찍었다.
쿠쿵!
웅장한 영력이 만 장의 파도를 일으키며 휘몰아쳤는데 무서운 고온을 방출해 주위의 공기마저 들끓었다.
치익!
그러다 두 갈래 영력이 부딪쳤는데 생각보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양자는 서로를 집어삼키느라 바빴고 부딪친 곳에는 검은색 흔적이 생겨났다.
그런데 회색 빛줄기가 아무리 미친 듯이 공격하고 쇠패한 기운이 아무리 짙어도 구유 주위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고노인의 영력도 괴이했지만 구유도 절대 범상치 않았다. 불사조 수존 덕분에 진정한 불사의 화염을 수련하는 데 성공한 그녀는 영력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불사의 화염 자체에 생사의 기운이 깃들어 고노인의 고영 영력보다 훨씬 난폭했기에 고영 영력이 다른 영력을 집어삼킬지는 몰라도 구유의 영력을 흐리는 것은 절대 불가능해 보였다.
사람들은 고노인이 아무리 공격해도 구유 주위에는 얼씬도 못 하는 것을 보고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고노인,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면 오늘 황위에 오르기엔 글렀네.”
구유가 석대 위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노인의 공격은 강력해 보이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이에 고노인은 서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숙연해진 채 두 손을 모아 결인했다. 웅장한 영력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며 거대한 영력 허상을 이뤘다.
영력 허상은 사람의 형태를 했지만 가지와 나뭇잎이 자란 것이 멀리서 보면 커다란 나무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것 같았고 내뿜는 쇠패한 기운에 주위의 영력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저건 고노인이 수련한 지존법신인 고영법신이네!”
사람들은 고노인의 뒤쪽에 나타난 커다란 나무를 보더니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고노인이 수련한 고영법신은 99등급 지존법신 중 61위로 상당히 특이했다. 쇠패한 기운을 끌어모아 수련해야 하는지라 고노인은 무한의 고갈의 땅에서 다년간 수련해서야 마침내 고영법신을 만들어냈다.
법신에 깃든 쇠패한 기운은 일단 몸에 닿으면 육신이 부패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력마저 모조리 사라지는 아주 난폭하고 괴이했다.
이는 고노인의 필살기로 쉽게 선보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구유와 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존법신을 소환한 것으로 보아 보통 수단으로는 구유를 절대 쓰러트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고노인은 지존법신의 머리 위에 내려앉아 구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구유왕이 나의 고영의 힘을 받아낼 수 있으면 패배를 인정하겠네.”
이에 구유는 고개를 들어 사악한 쇠패의 기운을 내뿜는 고영법신을 보더니 생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고영법신이 나의 화신조를 뚫고 나올 수만 있으면 나도 바로 패배를 인정하겠네.”
말을 마친 구유는 웅장한 영력을 한데 모아 하늘을 가릴 정도로 큰 검은 새를 이루고는 날개를 떨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잇따라 녀석은 맑은 울음소리를 내며 입을 쩍 벌려 투명한 화염을 내뿜었는데 그 화염은 상당히 특이해 보였다.
“불멸화신조!”
나지막한 외침과 함께 화염이 휘몰아치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만 장 정도의 화신조를 이뤄 고영법신을 감쌌다.
활활!
투명한 화신조가 온몸을 감싸자 고노인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구유왕, 너무 자신만만한 것 아닌가? 이따위 화신조로 날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고노인은 피식 웃으며 말하더니 금세 정색하며 인법을 바꿨는데 고영법신이 파르르 떨며 수많은 회색 빛줄기를 내뿜었다.
“고류불천수(枯柳拂天手)!”
그러다 수많은 회색 빛줄기가 한데 모여 회색 거수를 이뤘는데 메마른 거수에서 내뿜는 쇠패한 기운에 하늘마저 어두워졌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것은 고노인의 진정한 필살기로 이토록 사악한 공격에 맞으면 8급 지존이라도 즉사할 것이다.
고노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구유를 상당히 경계하는 듯했다. 그는 혹시라도 대결에서 패배해 황위에 오르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쿵!
메마른 거수가 하늘을 가르며 공격을 개시했는데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 같은 공격의 위력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그때 화신조도 파르르 떨며 화염을 내뿜어 메마른 거수로 향했다.
쿠쿵!
양자가 부딪치자 무서운 온도가 느껴졌는데 고노인은 투명한 화염이 지나가자 메마른 거수가 고목처럼 활활 타오른 것을 발견하고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화염이 이렇게 난폭할 줄이야!”
구경꾼들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천취황과 영동황도 투명한 화염에서 엄청난 위협감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이건…… 진정한 불사의 화염이 아닌가?”
고노인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투명한 화염을 바라보았고 목소리마저 떨렸다. 그가 수련한 고영법신의 장점은 음산하고 사악한 쇠패한 힘으로 양강의 힘이 천적이었다. 그중 불사의 화염이 최강자였는데 쇠패한 힘이 얼마나 강력하든 영생불멸의 불사의 화염을 이기지는 못했다.
반면, 구유는 미소를 지은 채 사색이 된 고노인을 바라봤다. 불멸화신조는 불사조 수존께서 가르쳐주신 것으로 일단 공격을 펼치면 고노인을 크게 다치게 할 수는 없어도 가두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고노인, 어디 해보게.”
구유의 말에 고노인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고민하더니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구유왕은 역시 천재군. 이번 대결은 내가 졌네.”
고노인이 이대로 패배를 인정할 줄 몰랐던 사람들은 순간 넋이 나갔다. 그런데 고노인은 잘 알았다. 그가 전력을 다하면 강제로 화신조를 뚫고 나갈 수는 있겠지만 많은 시간을 소모할 뿐만 아니라 구유에게 자신을 쓰러뜨릴 기회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결국 대결이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럴 바에는 패배를 인정하고 깔끔하게 물러나는 것이 훨씬 나았다.
“고맙네.”
구유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거대한 화신조는 투명한 화염으로 변해 그녀의 입으로 쏙 들어갔고 주위의 온도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고노인은 석대에서 내려와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 용비지존한테 다가갔다.
“구유왕의 실력을 보니 목왕도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닐 것이네.”
“센 척하는 것뿐이네.”
용비지존은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목진을 힐끗 보더니 다시 고노인한테 말을 건넸다.
“구유는 신수인 데다가 불사의 화염이 있어 상대하기 어렵겠지만 나와 같은 인간인 목진은 1년 사이에 절대 9급 지존경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네!”
말을 마친 용비지존은 거대한 석대에 올라가 목진을 쏘아보며 외쳤다.
“목왕, 나한테서 황위를 빼앗으려거든 진정한 실력을 보여주게!”
용비지존은 뒷짐을 쥔 채 서 있었는데 그 모습만으로도 묵직한 기운을 내뿜어 대지가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실력이 비슷한 용비지존과 고노인은 북계의 정예 강자이긴 하지만 용비지존이 더 유명했다. 과거 신각에서 그를 영입하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신각에서 파견한 객주가 용비지존과의 대결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것이었고, 그 실력과 명성은 더욱 널리 퍼졌다.
그와 비교하면 목진은 북계에서는 제법 유명해졌지만 대부분은 아직 그를 젊은이들과만 비교했다. 하긴, 1년 전의 목진은 용비지존 등과 힘을 겨룰만한 실력자가 아니었다.
하여 용비지존이 석대에 오르자 다들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구유가 선보인 반전에 다들 감히 목진을 무시하지 못했다. 목진에게 엄청난 필살기가 없었다면 절대 용비지존과 같은 정예 강자와 싸우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목진이 준비한 필살기가 과연 용비지존을 얼마나 위협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목진은 태연하게 서서 강력한 위압감을 내뿜는 용비지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바로 석대로 올라갔다.
“목왕, 자네도 실력을 감춘 건가? 설마 자네도 9급 지존경에 이른 건가? 그렇다면 정말 대단하네!”
용비지존은 히쭉거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아무리 구유의 선례가 있어도 그는 목진이 절대 9급 지존경에 이르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인간인 목진은 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다양하고 많아도 절대 이렇게 빨리 실력을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만약 그가 천운이 따라 9급 지존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분명 기반이 흔들려 앞으로의 수련에 큰 저항을 받을 거라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본 목진은 화를 내기는커녕,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9급 지존경에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목진의 말에 용비지존은 자연스레 긴장이 풀렸다. 9급 지존만 아니면 목진이 아무리 강해 봐야 절대 자신의 상대가 아닐 거라 확신했다.
상황을 살피던 일부 왕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목진마저 9급 지존경에 이르렀다면 대라천역의 노참인 그들은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