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7화. 서성(西城)
보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고 만다라는 그동안 대라천역의 출전 인원을 정했다. 인원수는 많지 않았지만 전부 대라천역의 최정예급 강자들이었다.
이번에 만다라뿐만 아니라 5황과 왕들도 전부 나섰고 실력이 뛰어난 성주들도 함께였다. 50명 정도 되는 무리 중 실력이 가장 뒤처지는 사람도 5급 지존경이었다.
상고의 천궁은 위험천만한 곳이라 어떤 변고가 생길지 몰라 사람을 많이 이끄는 것은 절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하여 만다라는 인원수는 적지만 하나 같이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만 이끌고 떠났다.
한편, 대라천역 외에 북계 정예 세력으로 이뤄진 연맹의 다른 세력들도 사람을 파견했다. 그들은 취합 속도가 조금 느려 만다라는 목진과 구유에게 왕들과 함께 먼저 상고의 천궁 유적지가 나타난 곳에 가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라고 명했다.
이에 목진은 흔쾌히 승낙했다. 상고의 천궁에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었던 그는 연맹의 다른 세력을 기다리면서 대라천역에 남아봐야 큰 효과를 볼 수 없었기에 먼저 가서 정보를 수집하는 편이 나았다. 그곳은 북계와 한참 떨어져 상위 지지존인 만다라라도 한눈에 관련 정보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 * *
목진은 대라천의 전송 영진 밖에 서서 뒷짐을 쥔 채 구유와 함께 서 있었고 그 뒤에는 세 명의 강자들이 공손하게 서 있었다.
각각 노인, 중년 사내와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그중, 백발노인이 내뿜는 영력 파동은 제법 강한 것이 8급 지존경에 이르렀는데 그는 다름 아닌 대라천역의 새로운 왕, 백황(白皇)이었다.
백황의 실력은 왕들 중 정예급일 뿐만 아니라 천라대륙 곳곳을 누비고 다녀 경험이 풍부했다. 이번에 백황을 동참시킨 것은 바로 그 이유였다.
또한, 중년 사내와 아름다운 부인도 7급 지존으로 실력이 제법 좋았다. 그들 둘은 최근 들어 구유궁에 자주 찾아온 사람들로 혼자서 수련하다가 보호가 필요해 대라천역을 찾아왔는데 황이 두 명이나 있는 구유궁을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하고 자주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목진과 구유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오히려 집사인 당빙이 신중한 고민 끝에 두 사람을 구유궁에 들여도 될 것 같다며 의견을 올렸다. 중년 사내와 아름다운 부인은 수련에 게을리하지 않았고 강인할 뿐만 아니라 상황이 불리해졌다고 배신할 간신배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당빙은 구유궁을 관리한 지 오래되어 안목이 제법이었기에 목진과 구유는 그녀를 믿고 두 사람을 들이기로 했고 상고의 천궁에 가는 데도 동참시켰다.
“목 대인, 전송 영진은 대라천역 외곽의 도성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전송 영진을 몇 번 더 갈아타는 것이 북계를 가장 빨리 떠나는 방법일 거예요.”
아름다운 부인이 말했다. 부인의 이름은 담추(譚秋)로 다들 추왕(秋王)이라 불렀으며 왕들 중에서 그녀를 마음에 둔 사람이 제법 있다고 들었다.
“알겠다.”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구유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이만 갈까?”
이렇게 두 사람이 바로 전송 영진으로 들어가자 영광이 번쩍이더니 순간 눈앞에서 사라졌다.
잇따라 백발노인은 아름다운 부인과 무뚝뚝해 보이는 중년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역주께서 목황과 구유황의 실력이 출중하지만 아직 젊으니 경험이 있는 우리더러 옆에서 많이 도와주라고 하셨네. 그러니 두 분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두 분을 따르게. 그러다 목황과 구유황께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는 바로 대라천역에서 쫓겨날 것이네.”
“네, 백황. 목황과 구유황께서 저를 거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니 당연히 그래야죠.”
담추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 목황과 구유황에게 불리한 행동을 하려 한다면 내 시체부터 밟고 지나가야 할 거예요.”
튼실한 사내가 가슴팍을 두드리며 정중하게 말했다.
사내는 무뚝뚝하기로 유명해 다들 그를 석왕(石王)이라 불렀다.
이에 백발노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과 함께 전송 영진으로 들어가 신속하게 사라졌다. 이에 주위의 공간에만 가볍게 파동이 일었을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 * *
천라대륙의 극서의 땅은 황망한 곳으로 재앙이 끊이지 않고 산 한 채를 부수고도 남을 정도의 위력을 지닌 강풍이 휘몰아치칠 뿐만 아니라 눈이 내려 십만 리 땅을 꽁꽁 얼렸다. 또한, 똑똑하지는 않지만 따돌리기 어려운 영수들이 나타나곤 했다.
하여 일부러 영수를 사냥하거나 천재지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천라대륙의 극서의 땅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반년 사이, 그곳의 깊숙한 곳에 공간이 부서지며 상고의 천궁이 나타날 기미가 보이자 상황은 확 달라졌다.
상고의 천궁이라는 말만으로 사람들은 황망한 땅에 벌레떼처럼 몰려들었고 이제 그곳은 대륙의 중심에 있는 번화한 도시만큼 떠들썩해졌다. 게다가 그곳에 머무른 강자의 수와 실력은 강했다.
천라대륙의 패주였던 상고 천궁의 출현으로 현재의 극서의 땅은 천라대륙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그곳은 바로 목진 등의 목적지이기도 했다.
* * *
목진 등은 천라대륙의 반절을 뛰어넘어서야 비로소 극서의 땅에 이를 수 있었다. 만약 북계에서 비행해 갔더라면 목진 등은 아마 반년이 걸려도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송 영진이 많아 다행이었지만 극서의 땅에 가까워질 때는 이미 보름 정도가 지난 뒤였다.
목진 등은 극서의 땅 주변에 있는 작은 도성 속 다원에 들어가 잠시 쉬었다. 외진 곳이라 그런지 극서의 땅으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 일손이 모자란 것 같았다. 지금도 수많은 빛줄기가 하늘을 가르며 극서의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원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내뿜는 영력 파동을 보니 다들 제법 실력을 갖춘 모양이었다.
“목 대인, 구유 대인, 극서의 땅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는데 더는 사용할 수 있는 전송 영진이 없네요.”
목진 옆에 앉아있던 담추의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극서의 땅은 너무 황량하고 외져 시간을 들여 그곳에 전송 영진을 만들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그들은 극서의 땅 근처에 있어 며칠만 더 가면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지금껏 획득한 정보에 따르면 극서의 땅 변두리에 서성이란 중요한 도성이 있는데 그곳은 극서 지방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도성으로 강자들이 대부분 그곳에 모여있다고 들었어요. 그중에는 극서의 땅에 다녀온 사람도 있으니 상고의 천궁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을 거예요.”
백발노인 백황이 공손하게 말을 올렸다.
“간 큰 녀석들은 상고의 천궁에 난 균열을 비집고 들어가 그곳에서 보물을 얻어 고가에 팔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가?”
목진은 그제야 구미가 당긴 듯 입을 열었다. 상고의 천궁 유적지가 나타난 곳의 공간은 무질서하여 조금만 잘못하면 공간 균열에 빨려 들어갈 것인데 녀석들은 참 겁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상고의 천궁 물건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해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상고의 천궁에서 좋은 기회나 보물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서성부터 가야겠구나.”
구유의 말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천라대륙의 최정예급 젊은 강자들이 얼마나 강한지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럼 서성으로 갑시다.”
말을 마친 목진은 바로 다원에서 나와 한 줄기 빛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구유 등은 잽싸게 그 뒤를 따라붙었다.
이와 동시에, 멀리 떨어진 다른 도성에서 하얀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객잔에서 나왔는데 수려한 외모에 커다란 눈을 지닌 것이 그림에서 걸어 나온 선녀 같았다.
그녀는 바로 놀라운 영력을 발하는 진귀한 영과를 꺼내 꿀꺽 삼키며 손을 털고 고개를 들며 중얼거렸다.
“그 녀석도 천라대륙에 있는데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빚진 것도 있는데 말이야…….”
소녀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삐쭉 내밀며 느긋하게 도성을 떠났다.
* * *
서성은 극서의 땅 변두리에 있는 중요한 도성이긴 하지만 드나드는 사람이 점차 적어져 한산하고 적막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상고의 천궁 덕분에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그 엄청난 인기와 번창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치도 못한 것이었다.
목진 등은 서성 밖의 한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는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빛줄기는 사정없이 몰려들었다.
또, 방대한 도성에서 내뿜는 수많은 영력 파동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현저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천지의 영기마저 비등할 것 같았다.
“상고의 천궁은 역시 대단해. 일반 도성을 이렇게 번성시키다니 말이야.”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영력이 웅장한 도성에서 난해하고 강대한 영력 파동이 적잖게 느껴졌다. 그 주인들은 실력이 막강한 강자들로 목진마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현재, 도성에 모인 강자들은 대라천역의 정예를 모아놓은 것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그냥 비교일 뿐, 만다라가 혼자 나서도 서성을 없앨 수 있다. 도성에는 상위 지지존 같은 무서운 존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만 갑시다.”
목진과 구유가 먼저 떠나자 백황, 담추와 석왕도 바로 뒤를 따랐다. 이렇게 그들은 다섯 갈래의 빛줄기를 이뤄 빠르게 방대한 도성으로 진입했다.
목진 등은 적당한 주막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고 백황과 담추는 정보를 캐러 갔으며 석왕은 호위 무사처럼 두 사람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목진은 일을 알아서 척척 해나가는 세 사람을 보고는 이들을 데리고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럼 목진이 직접 나서 정보를 수집해야 했을 것이다.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노련한 백황이 있어 목진과 구유는 자리에 앉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목진은 주막에 앉아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주막도 사람이 제법 많아 정보를 수집하기 좋은 곳이었다.
“성북에서 청포를 입은 사내가 금창을 들고 누군가와 싸웠다고 들었네. 듣자 하니 8급 지존경 정상에 이른 강자인 것 같네.”
“그 사람은 황금 성창 유명으로 서역 출신이네. 그는 젊은 나이에 8급 지존경 정상에 이르렀고 요즘 들어 싸움을 그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사람은 수두룩하다고 들었네.”
“천부적 재능이 제법 뛰어나군. 그런데 아마 며칠 전에 나타난 청령 검객보다는 못할 걸세. 그 사람은 반보 9급 지존인 것 같던데 그날, 단번에 8급 지존 네 사람의 팔을 잘랐네.”
“그리고 보름 전에는…….”
* * *
사람들의 말에 목진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극서의 땅에 천라대륙 강자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다른 지역에서도 분명 젊은이 중 정예급 강자들일 것이다. 그런 존재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꽈르릉!
그런데 그때, 도성의 위쪽 하늘에서 갑자기 뇌명이 들리더니 멀리서 뇌광이 번쩍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도성으로 들어왔다.
이에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고는 화들짝 놀랐다.
목진도 고개를 들고 상대방을 쳐다봤는데 뇌광 속에서 화려하기 그지없는 황금색 수레가 보였다. 한편, 수레에 새겨진 황금색 용의 무늬에서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황금색 수레는 신기였다.
그런데 이보다는 수레를 끌고 온 말인 듯 사자처럼 생긴 네 마리의 영수가 더 이목을 끌었다.
발에서 뇌광이 번쩍이는 녀석들의 몸에 신수의 혈맥이 깃들어 잘만 성장하면 진정한 신수로 거듭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수레나 끌고 있으니, 그 주인의 정체는 엄청날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