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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688화 (687/1,000)

688화. 영패

“도대체 누구기에 저따위 짓을 한단 말인가?”

구유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신수를 짐승 부리는 것처럼 대하는 수레의 주인이 못마땅했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막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참 돈도 많지. 그런데 황금색 수레에 새겨진 무늬로 보면 동역의 대하 황조 사람 같지 않나?”

“쯧, 동역의 패주인 대하 황조도 왔다니. 그럼 수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대하 황조의 황자겠지?”

“허허,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면 대하 황족의 4황자 하홍이 틀림없을 것이네.”

“4황자 하홍이라…… 설마 천라대륙 젊은 강자 순위권 중 20위인 하홍을 말하는 건가?”

“당연하지. 하홍은 이미 9급 지존경에 이르렀는데 수련법이 괴이하여 속도가 이토록 빠르다고 들었네.”

목진과 구유는 주막 사람들의 대화를 듣더니 미간을 확 찌푸렸다. 역시 대하 황조의 4황자가 아니고서는 절대 이렇게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대하 황조는 동역의 패주로 실력이 막강하고 재산도 엄청나 이 정도로 꾸미고 나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대하 황조가 대단하긴 해.”

목진도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북계와 비교하면 동역은 더없이 평화로웠는데 가장 큰 이유는 대하 황조 때문이었다.

이에 구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 하려 했는데 주막 사람들의 대화가 다시 들렸다.

“하홍도 괜찮지만 대하 황조의 태자와 비하면 천지 차이네.”

“허허, 당연한 소리. 대하 황조의 태자는 젊은 강자 순위권의 4위로 하홍보다야 훨씬 강하네.”

누군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보아하니 그는 대하 황조의 태자를 진심으로 숭배하는 것 같았다.

정작 구유와 목진은 흠칫 놀라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대하 황조의 태자가 이렇게나 대단하다니, 순위권 4위면 가루라와 실력이 비슷할 것이다.

대하 황조는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고 천라대륙도 엄청난 대륙답게 정예 강자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 허공에 뜬 황금색 수레에서 한 사내가 여인을 둘이나 끌어안고 걸어 나왔다. 황금색 도포를 입은 채 존귀한 기운을 내뿜는 사내는 생김새가 훤칠했고 흰 피부를 지녔다. 그러나 표정은 제법 사악해 꽤 매력 있었다.

그는 바로 대하 황조의 4황자, 하홍이었다.

하홍은 제왕이 군림한 듯 주위를 쓰윽 훑더니 바로 목진과 함께 있는 구유를 발견했다.

구유는 여전히 검은색 치마를 입고 영롱한 몸매를 한껏 뽐냈는데 불사조의 혈맥을 각성해 자연스레 고귀한 기운이 흘렀다.

하홍은 구유를 보자마자 흠칫 놀랐다.

그런데 하홍이 자세히 관찰하기도 전에 그 눈빛을 발견한 구유가 바로 쏘아보았고 하홍은 위협을 느끼고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흥미롭군.”

하홍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처음 보는 미녀가 자신 못지않은 실력자일 줄 몰랐다. 그는 비록 상고의 천궁 때문이었지만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홍은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구유를 바라보다가 바로 눈길을 거뒀다. 그는 목진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구유의 태도는 여전했고 오히려 잘난 척하는 하홍을 손봐주러 나설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옆에 앉아있던 목진이 갑자기 구유의 손을 잡으며 생긋 웃었다.

“대단한걸? 바로 황족의 눈에 들다니 말이야.”

이에 구유는 괜히 목진을 노려봤는데 하홍을 볼 때보다 표정이 훨씬 부드러워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 광경에 하홍은 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이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고 하홍을 바라봤다.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 사이에 한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목진과 하홍은 떠들썩한 도성에서 한기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영력을 끌어올린 것 같더니 곧바로 다시 거뒀다.

하홍은 가볍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는데 왠지 소름이 끼쳤다.

목진도 태연하게 서서 미소를 지었다.

“허, 상고의 천궁 때문에 별 같잖은 존재들이 다 모였군.”

하홍은 목진의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태도가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반보 9급 지존으로 아직 9급 지존경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감히 자신을 무시하다니 하홍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서지 않았다. 목진과 구유의 실력으로 보아 뒷배가 상당할 것 같은데 잘 알아보지도 않고 함부로 나섰다가는 일이 복잡해 수 있었다.

그는 눈길을 거두고 부하에게 목진과 구유에 대해 알아보라고 일렀다. 그들의 뒷배가 수수하면 하홍은 목진을 쓰러뜨리고 구유를 데려가고 싶었다. 실력이 뛰어난 구유는 화홍이 데리고 나온 여인들보다 훨씬 강해 잘만 흡수하면 실력 증진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하홍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목진과 구유를 쳐다보고는 옷깃을 휘날렸다. 이에 네 마리의 신수가 포효하며 뇌광이 되어 황금색 수레를 끌고 도성의 다른 쪽으로 향했다.

“눈빛이 참 거슬려.”

구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하홍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봤다. 하홍은 속내를 잘 감췄지만 구유는 녀석의 더러운 생각을 바로 알아챘다.

아마 녀석의 강대한 뒷배가 아니었다면 구유는 먼저 나서서 녀석들 때려잡았을 것이다.

이에 목진도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조심하자. 그러다 녀석이 정말 이상한 마음을 품으면 제아무리 대하 황조의 황자라도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대하 황조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목진은 구유를 위해서라면 그들과 맞서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가 지금껏 원한을 맺은 세력은 수도 없이 많아 대하 황조 하나쯤 더 늘어난다고 해서 큰 문제는 아니었다.

목진과 구유는 자연스레 화두를 돌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하늘에서 다시 난폭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고 수많은 빛줄기가 도성으로 향했다.

하나 같이 웅장한 영력 파동을 내뿜는 것으로 보아 실력을 제법 갖춘 사람들이 분명했다. 도성 속 사람들은 상대방의 정체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저건 점룡각(潛龍閣)의 소각주 목산(穆山)이 아닌가? 그는 천라대륙 젊은 강자 순위권 중 20위 안팎이라고 들었는데…….”

누군가의 말소리에 목진도 고개를 돌렸는데 커다란 교룡이 포효하며 하늘을 날아다녔다. 교룡이 지닌 용족 혈맥은 그리 순수하지는 않지만 기회가 닿으면 진정한 신수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때 교룡의 머리 위에 한 사내가 뒷짐을 쥔 채 모습을 드러내자 주위에 형성된 파동으로 인해 공간이 격렬하게 떨렸다.

사내는 교룡을 타고 바로 서성으로 날아들었다.

“검선종(劍仙宗)의 강릉(江淩)이군. 강릉은 검선종의 검묘(劍墓)에서 3년 동안 수련하여 마침내 9급 지존경에 이르렀다고 들었네.”

목산이 떠나자마자 갑자기 검이 날아왔는데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장검을 디딘 채 예리한 검기를 싣고 하늘을 가르며 서성에 들어갔다.

“쯧쯧, 천애루(天涯樓)의 심아(沁雅) 아씨도 왔군. 천애루는 정보 매매가 가장 능하여 소식통이 제일 빠를 텐데 직접 여기까지 오다니. 서성에 확실히 큰일이 일어날 것 같네.”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빨간색 치마를 입은 여인으로 수려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몸매가 화끈했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사내들은 침을 삼키기 바빴다.

여인은 보물로 영력 파동을 숨겨 진정한 실력을 알 수 없었다.

슈슉!

하늘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부단히 서성에 몰려들었는데 그중에는 천라대륙에서 유명한 사람이 제법 있어 서성은 더 떠들썩해졌다.

반 시진이 지나서야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고 다들 경계하며 주위를 살폈다.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서성에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한편, 목진과 구유는 점차 조용해진 하늘을 보다가 이내 감탄하는 사람들을 쓰윽 훑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렇게 많은 젊은 천재들이 서성에 모인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천라대륙 세력들은 하나 같이 극서의 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깊숙한 곳의 공간이 온전하지 않아 지지존들은 감히 발을 들이지 못하고 휘하의 가장 훌륭한 젊은 강자들을 파견해 상고의 천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게 했다.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아.”

구유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필경 상고의 천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일단 백황 등의 소식을 기다려보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주막은 너무 시끄럽고 다들 의문만 가득할 뿐, 정확한 정보는 없어 백황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한 시진 정도가 지나자 백황, 담추, 석왕이 돌아왔다.

“허허, 서성에 모여든 천재들을 보셨죠?”

백황이 웃으며 묻자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모여든 이유는 알아봤는가?”

이에 옆에 서 있던 담추가 생긋 웃으며 답했다.

“네, 일전에 한 무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극서의 땅 깊숙한 곳에 난 공간 균열에 들어갔다가 겨우 살아남았는데 그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오늘에야 빠져나왔다고 하네요.”

“획득한 물건은 있고?”

목진은 바로 질문을 던졌다. 만약 아무런 수확도 없이 나왔다면 각 정예 세력의 젊은 강자들이 먼 길을 달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획득한 물건이 한 가지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중, 유난히 특이한 물건이 있었다고 해요. 운 좋게 그 물건을 획득하자마자 상고의 천궁에 영력 돌풍이 일어 사람 십수 명이 그 속에 휘말려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졌다고 들었어요. 그 물건은 아마 상고의 천궁의 중요한 물건인가 봐요.”

담추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영패인 것 같아요.”

“영패라…….”

백황의 말에 목진은 구유와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정색했다. 오래된 유적지에서 영패 같은 것보다 구미가 당기는 보물은 없었다. 해당 영패로 얼마나 대단한 걸 소환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천운이 따르면 단 한 번의 기회로 한순간에 실력이 부쩍 늘어날 가능성도 파다했다.

“영패에 ‘제이(第二)’ 자가 새겨졌다고 들었어요.”

“제이(第二)라…….”

담추의 말에 목진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만다라의 말에 따르면 상고의 천궁에는 전주가 다섯 명 있었고, 대수렵전에서 봤던 사람은 네 번째 전주였다. 그럼 ‘제이(第二)’가 적힌 영패는 설마 상고의 천궁 두 번째 전주의 것이란 말인가?

목진은 구유를 힐끗 쳐다봤는데 구유도 같은 생각을 한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들 영패 때문에 온 것이군.”

목진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 물건의 주인은 어떤 방식으로 정해지는 것이냐?”

구유는 다시 질문은 던졌다. 영패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수중에 넣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럼 상고의 천궁에 들어갔을 때,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허허, 다들 뒷배가 상당한 세력 출신들인데 싸우기라도 할까요? 그리되면 좋을 것 하나 없고 조용히 서서 지켜보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되겠죠. 저들은 멍청이가 아니랍니다.”

백황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가장 평범한 방식인 경매를 통해 값을 비싸게 부르는 사람이 획득하게 될 거예요.”

이에 목진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상대방의 뒷배와 실력 때문에 잔뜩 경계하고 있으니 경매가 그나마 가장 공평한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영패의 주인이 정해진 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떡할 건가요?”

담추의 질문에 목진과 구유는 서로 마주 보더니 피식 웃으며 답했다.

“어떡하긴, 이리 알았는데 모른 척 넘길 수야 없지 않을까? 내일 우리도 경매장에 가봅시다. 그러다 영패를 수중에 넣을 수 있으면 좋고…….”

상고 천궁의 영패가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면 나머지 경쟁자들은 분명 기회를 봐서 빼앗을 거라 목진 등한테도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목진의 말에 백황, 담추와 성왕은 동의하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목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유와 함께 주막에서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서성의 중심을 바라봤는데 먹구름이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 곧 폭우가 내릴 것 같았다.

목진은 서성의 중심을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외진 북계에서만 지냈던 목진은 내일, 천라대륙의 천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부디 실망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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