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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689화 (688/1,000)

689화. 경매

이튿날, 서성은 날이 밝기 전부터 떠들썩해졌다. 각 세력 천재들이 한곳에 모인 데다가 한 무리가 상고의 천궁에서 신비로운 영패를 얻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극서의 땅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상고의 천궁 유적지 때문에 이곳에 왔다. 하지만 그곳은 깊숙하고 무질서해 감히 들어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궁의 영패가 출현했다고 하니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정예 세력들이 신비로운 영패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자신들이 획득할 가능성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들 도성의 중심 구역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누구든 천운이 따르면 신비로운 영패를 얻을 수도 있으니 그 엄청난 기회를 포기할 사람은 없었다. 영패 덕분에 실력이 부쩍 늘어 천라대륙의 유명인사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편, 도성의 중심 구역에는 오래된 경매장이 있었는데 비워둔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은 천라대륙 도성에서 주최한 경매 못지않게 사람이 많았다.

경매장 내부는 3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최하층은 일반 구역으로 위로 갈수록 시야 확보가 더 잘 되고 편하게 경매에 참여할 수 있었다.

목진 등은 3층으로 올라갔다. 빙화초(冰火貂)의 털로 만들어진 담요를 만지작거리다가 그 위에 앉았는데 푹신하니 너무 좋았다.

이 모든 일은 전부 담추가 진행했는데 목진은 알아서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 있어 훨씬 편하다고 느꼈다. 목진이었으면 그냥 대충 1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것이다.

“경매는 누가 주최한 거지? 설마 어제 우리가 봤던 사람 중에 있나?”

만약 그들 중 누군가라면 지금처럼 마음 편히 앉아있으면 안 되었다.

“경매는 이곳의 세력이 주최하였는데 실력이 그리 뛰어난 건 아니고 대하 황조 등 정예 세력과 아무런 관련도 없어요. 아무도 다른 정예 세력에서 경매를 주최하는걸 원치 않을 겁니다. 그러다 봉변이라도 당하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들은 이곳 세력에서 경매를 주최하기로 협의를 봤죠.”

백황의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경매장이 갑자기 떠들썩해져 목진이 주위를 쓰윽 훑어보니 입구에 여러 무리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기세등등했고 무리의 수령은 어제 봤던 대하 황조의 4황자 하홍, 점룡각의 목산, 검선종의 강릉과 천애루의 심아 아씨였다.

그들은 천라대륙 젊은이 중 정예로 순위권에도 이름을 남긴 존재들이라 자연스레 이목을 끌었다.

“허허, 여러분, 대하 황조에서 영패를 꼭 따낼 것이니 괜한 다툼은 하지 맙시다. 이 은혜는 반드시 잊지 않겠네.”

대하 황조의 4황자 하홍은 방대한 누각에 모인 사람들을 쓰윽 훑더니 돌아서서 미소를 지으며 나머지 세 수령들한테 말했다.

그때 녀석의 말을 들은 점룡각의 소각주 목산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내가 몰래 지존영액 오백만 방울을 줄 테니 경매에 참여하지 말게. 점룡각에서 절대 자네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네.”

목산은 대하 황조가 전혀 두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대하 황조가 동역의 패주이긴 하나 점룡각과 천만리 정도 멀리 떨어져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에 천애루의 심아 아씨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피식 웃기만 했고 검선종의 강릉은 3척 정도 되는 청봉 장검을 안은 채 무덤덤하게 서 있기만 했다.

“그럼 목 소각주가 지존영액을 충분히 가져왔길 바라네.”

하홍은 히쭉 웃으며 목산을 바라보더니 옆에 서 있는 빨간색 치마를 입은 수려한 미인 심아 아씨한테 눈길을 돌렸다.

“심아 아씨, 나와 함께 경매를 보지 않겠나?”

“어머, 우린 곧 경쟁 상대가 될 텐데 함께 있으면 오히려 어색하지 않겠어?”

심아는 밝게 빛나는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며 하홍을 거절한 뒤, 우아하게 혼자 3층으로 올라갔다. 거절당한 하홍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들어 심아의 영롱한 몸매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더니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심아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던 하홍은 갑자기 멈춰서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누각의 다른 쪽을 바라보는 심아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그 상대는 어제 마주쳤던 목진과 구유였다.

“심아 아씨, 혹시 저들과 아는 사이인가?”

하홍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정보통 천애루 출신인 심아 아씨는 낯선 강자들에 관해 그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이에 심아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들은 아마 북계 대라천역 사람들일 것이네. 최근 북계에 새로운 황인 목황과 구유황이 생겼다고 들었는데 저들인 것 같네.”

“북계? 대라천역? 참 겁도 없는 녀석들이군.”

하홍은 흠칫하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북계는 천라대륙의 구석진 곳에 있는 데다가 분쟁이 끊이지 않아 동역을 일통한 대하 황조처럼 여태껏 패주가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리 유명한 세력도 아니었다.

하홍은 목진이 감히 자신을 무시해서 엄청난 뒷배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작 대라천역이었다.

심아는 하홍의 표정에서 바로 이들 세 사람 사이에 원한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다만, 하홍은 아직 북계 상황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현재 북계에 패주는 없지만 대라천역이 패주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대라천역은 대하 황조보다는 못하겠지만 대라천역의 역주도 상위 지지존이라 대하 황조의 하황과 실력이 비슷했다.

‘만약 하홍이 대라천역의 새로운 황 두 명한테 몹쓸 짓이라도 하면 대라 역주는 절대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하황이 직접 온다고 해도 일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이리되면 대하 황조의 적이 늘겠군.’

이러한 생각에 심아는 가볍게 웃으며 다른 쪽 누각으로 향했고 하홍, 목산 등도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들과 동시에, 심아 등을 몰래 지켜보던 목진은 하홍이 피식거리는 것을 보고 바로 뭔가를 깨달았다.

“누군가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

목진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구유가 히쭉거리며 쳐다봤다.

“여긴 북계가 아니라서 아무도 네가 누군지 몰라.”

“내가 뭐 그리 유명하다고…….”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더니 갑자기 멈칫했다.

“대신 누구든 날 무시해서 덤비면 절대 무사히 집에 돌아가지 못할 거야.”

목진의 말에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그는 북창령원에서 나와 지존법신을 만들기 시작해서부터 반보 9급 지존경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강적을 수도 없이 많이 만났지만 결국 그의 승리로 대결을 끝마쳤다.

그래서 그게 누가 됐든 두렵지 않았다.

목진은 하홍이 이대로 더는 말썽을 피우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딴마음을 품으면 자만의 대가를 제대로 보여주리라 결심했다.

말을 마친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구유를 발견하고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왜 그래?”

구유는 패기 넘치는 목진을 한참 바라보고는 이내 감탄했다. 지금의 목진은 더는 이전의 앳된 소년이 아니었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전보다 훨씬 눈부셨다.

목진은 참 많이도 성장했다.

쿵!

그런데 그때, 방대한 누각에서 갑자기 종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바로 대화를 멈추고 중심에 놓인 커다란 석대를 바라봤다. 중년 사내가 석대에 오르고 있었다.

“난 서한종(西寒宗)의 한비(韓非)로 이번 경매를 주최하게 되었네.”

한비라 불리는 중년 사내의 말과 함께 뒤쪽에서 아름다운 소녀들이 은반을 들고 천천히 석대로 올랐다.

이에 사람들이 영력 파동을 완벽히 차단한 영력 광막으로 뒤덮인 은반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한비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들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 바로 경매를 시작하겠네.”

커다란 누각에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지금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다들 석대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미녀들이 들고 있는 은반에 놓인 물건은 영력 광문이 광막을 이뤄 내부의 영력 파동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랐다.

“그럼 지금부터 첫 번째 경매품의 경매를 시작하겠네.”

한비라 불리는 중년 사내가 사람들의 뜨거운 눈빛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한 소녀가 은반을 들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는데 영광을 발하던 은반의 빛이 가시자 그 속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반에는 상처 가득한 검은색 석주가 놓여있었고 그 속에서 난해하고 오래된 기운이 방출되었다.

그때 미간을 찌푸린 채 석주를 바라보던 목진의 미간이 찢어지더니 어두운 빛을 발했다. 그는 검은색 석주에 깃든 방대한 영력을 바로 발견했다.

“저건 뭐야?”

구유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석주는 그냥 보면 상당히 평범해 보였다.

“준 성물일 거야. 위력이 엄청나.”

목진은 미간의 균열을 거두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멸생동으로 석주에 강대한 힘이 깃든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준 성물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보물로 멸생동 못지않아 보였다.

목진은 상고의 천궁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석주 하나만 해도 이렇게 강대한 힘을 가졌다니, 이건 목진이라도 수중에 넣고 싶을 정도였다.

사람들도 이내 떠들썩해졌다. 비록 대부분은 신비로운 석주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지만 눈이 매서운 일부 사람들은 이를 알아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허허, 여러분, 이 물건은 파해주(破海珠)로 상고의 천궁에서 큰 공을 세운 정예 제자한테만 하사하는 물건으로 준 성물이네. 파해주는 바다를 가를 수 있을 만큼 위력이 엄청나 9급 지존경도 감히 무시할 수 없을 것이네.”

석대에 서 있는 한비가 미소를 지은 채 말하자 떠들썩했던 누각은 발칵 뒤집혔고, 사람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파해주를 쳐다봤다. 준 성물은 정예 세력에서도 보기 드문데 파해주는 보통 준 성물보다 훨씬 강해 더 말할 나위 없었다.

“파해주의 경매가는 지존영액 천만 방울이고 매번 가격을 올릴 때, 적어도 백만 방울은 붙어야 하네. 구미가 당기면 경매에 참여하게.”

지존영액 천만 방울이란 말에 현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정예 세력이 아니고서야 혼자서는 절대 이렇게 많은 양의 지존영액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있다고 해도 다들 수련에 사용하려 할 것이다. 지존영액은 수련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라 일단 부족하면 수련 속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서성에는 각종 정예 세력의 천재들이 모여있었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온 이들은 파해주의 강력한 힘만 보고 덤비려 했다.

“지존영액 천 백만 방울이오!”

그때 2층에 있던 백의 사내가 소리를 지르자 다들 고개를 돌리며 수군댔다.

“저 사람은 금옥루의 소루주로 7급 지존경 정상에 이르렀다지?”

“어쩐지, 지존영액 천 백만 방울이라니. 그 정도 양이면 8급 지존경에 이르기에도 충분할 것이네.”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을 한 몸에 받은 백의 사내는 수중의 부채를 가볍게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때, 또 다른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지존영액 천 이백만 방울이오!”

이에 백의 사내가 표정을 확 굳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얼굴에 칼자국이 커다랗게 난 중년 사내가 음산한 눈빛으로 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닌 듯했다.

“어머, 저 사람은 서북 천랑채(天狼寨)의 천랑 채주가 아닌가? 저분도 여기 왔다니…….”

정작 목진은 조용히 앉아서 상황을 살피기만 했다. 파해주가 탐나긴 했지만 목진은 이번 경매에 참여할 마음이 없었다. 멸생동의 위력이 파해주 못지않아 굳이 대량의 지존영액을 들이면서까지 파해주를 얻을 필요가 없었다.

천만 방울도 넘는 양의 지존영액은 아무리 현재의 구유궁이라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될 정도의 양이었다. 이 일을 당빙이 알면 아마 화가 나 목진을 죽이려 들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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