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0화. 쟁탈전
이렇게 파해주의 가격은 지존영액 천 사백만 방울까지 올랐고 금옥루 소루주와 천랑채 채주 역시 엄청난 가격에 주춤하기 시작했다.
“지존영액 천 육백만 방울이오.”
그때 누군가 느긋하게 소리쳤다. 다들 흠칫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대하 황조의 4황자였다.
이에 금옥루 소루주와 천랑채 채주는 파해주를 포기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대하 황조는 그들이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고 재력만 봐도 훨씬 뒤처졌다.
정작 하홍은 대수롭지 않게 두 사람을 힐끗 보더니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보다 더 높이 부를 사람이 있는가?”
히쭉거리는 하홍의 말에 다들 언짢았지만, 감히 나서지는 못했다. 지존영액 천 육백만 방울은 일류 세력 한 해의 수입이나 마찬가지였다.
석대에 서 있던 한비는 조용해진 현장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더는 나설 사람이 없으니 파해주는 4황자한테 넘기겠네.”
말을 마친 한비가 손뼉을 치자 파해주를 들고 있던 소녀는 석대에서 조용히 내려갔고 두 번째 소녀가 조심스럽게 올라왔다.
사람들은 아쉬운 듯 파해주를 보고는 바로 두 번째 은색 쟁반에 집중했다.
첫 번째 보물로 예열을 마친 현장은 훨씬 들끓었고 다들 마음에 들면 바로 두 번째 보물의 경매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하여 한비가 바로 옷깃을 휘날리자 두 번째 은반에서 발하던 영광이 사라지고 그 속에 숨어있던 물건이 나타났는데 목진은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은반에 청동 족자가 놓여있었는데 파손되긴 해도 목진은 내뿜는 특수한 파동에서 영진 진도임을 바로 발견했다. 해당 영진 진도는 적어도 천품일 것이다.
반면, 두 번째 경매품이 영진 진도인 것을 발견한 사람들은 대부분은 시무룩해졌다. 이건 영진사한테만 유용한 물건이라 관심을 가질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여러분, 이 물건은 구룡시선진으로 종사급 영진이란 소문이 있네.”
한비는 흥미로워하는 사람들에게 바로 보물의 정체를 알렸다.
“종사급이라니!”
사람들은 순간 화들짝 놀랐고 영진사가 아닌 사람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족자를 쳐다봤다. 영진 종사면 지지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영진 종사는 지지존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종사급 영진도 지지존급의 힘을 지녔다.
이 정도 등급의 진도는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한테도 없을 텐데 어찌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상황을 살피던 목진은 흠칫 놀라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족자를 쳐다봤다. 청동 족자는 특수한 파동을 내뿜긴 하지만 종사급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영진 진도가 확실히 종사급인가?”
누군가 목진처럼 이상한 낌새를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자 한비는 머쓱한 듯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완전한 구룡시선진은 확실히 종사급 영진이네.”
“그럼 이건 완전하지 않단 말인가?”
다들 한비의 말에서 바로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다.
“해당 진도는 확실히 파손되었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9급 지존경 정상에 이른 강자를 쓰러뜨리기엔 충분하네.”
한비가 어색하게 웃으며 한 말에 대부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은 영진사가 아니라서 고가에 파손된 영진 진도를 구매할 필요가 없었다.
“두 번째 경매품인 구룡시선진의 경매 가격은 지존영액 오백만 방울이고 가격을 올릴때는 오십만 이상을 덧붙여 불러야 하네.”
한비가 무안한 듯 말했다.
그러나 영진 진도는 파해주보다 훨씬 쌌지만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영진사들도 고민에 빠졌다. 파손된 영진 진도로 영진을 치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가 문제라 일단 실패하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하여 사람들은 파손된 영진 진도를 얻기 위해 지존영액을 오백만 방울이나 들이기가 아까웠다.
이렇게 현장은 다시 조용해졌고 한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도 두 번째 경매품이 판매하기 가장 어려운 물건이란 걸 잘 알아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영진사들을 타이르려 했는데 그때 소년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
“지존영액 육백만 방울이오.”
한비가 멈칫하여 고개를 들어보니 3층에 앉아있는 한 소년이 칠흑 같은 눈동자를 굴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존영액 육백만 방울이오.”
갑자기 들려온 느긋한 목소리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주위를 훑어보더니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를 가진 한 소년한테 눈길을 멈췄다.
“저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영진도를 사려고 하는 걸 봐서 영진사가 아닐까?”
“글쎄, 천라대륙의 천재가 하도 많이 모여 누가 누군지 모르겠군. 그런데 낯선 얼굴로 보아 그리 유명한 사람은 아닌 것 같네.”
“그런데 주위를 맴도는 영력 파동을 보니 반보 9급 지존인 것 같은데 그 정도면 나쁘지 않네.”
* * *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고 목진의 정체를 잘 몰라 어리둥절해 그를 쳐다봤다.
위층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4황자 하홍은 미간을 찌푸리며 목진을 쓰윽 훑었다.
“허허, 저 친구가 지존영액 육백만 방울을 불렀는데 그보다 더 높게 부를 사람이 있나?”
석대에 서 있던 한비도 목진을 힐끗 보더니 바로 눈길을 거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에 사람들은 다시 조용해졌는데 구룡시선진에 관심 있는 영진사들이 잠시 고민하다가 나섰다.
“지존영액 육백오십만 방울이오.”
장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는데 옷에 새겨진 수많은 영문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저 사람은 선진종의 제자 모백으로 이미 영진 대사가 되어 천품 중급 영진을 다룰 수 있는 대단한 젊은이라네.”
누군가 바로 장발 사내의 신분을 알아보고 흠칫 놀라 말했다.
이와 동시에, 모백이라 불리는 장발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겸손하게 목진과 인사를 나눴다.
목진도 가볍게 웃으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먼저 인사를 건네 호감이 갔지만 그렇다고 파손된 영진 진도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지존영액 칠백만 방울이오.”
목진의 말에 모백은 멈칫하더니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존영액 팔백만 방울이오.”
목진과 모백은 파손된 영진 진도가 상당히 탐 나는 모양이었다. 이건 보통 사람들한테는 아무런 소용도 없지만 영진사한테는 엄청난 보물이라 해당 영진을 치는 데 실패한다고 해도 영진에 관한 수련에는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의 대결에 사람들은 점차 흥미진진해졌지만 분위기는 제법 평화로웠다. 그러나 아무도 먼저 포기하려 하지 않아 다른 영진사들도 경매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반나절 후, 파손된 영진 진도의 가격은 지존영액 천 백만 방울까지 올라갔고 이건 준 성물의 가격과 비슷해져 다들 물러나고 결국 다시 목진과 모백 사이의 싸움이 되었다.
“지존영액 천 이백만 방울이오.”
목진이 무덤덤하게 외쳤다. 이 가격도 절대 낮지 않았다. 지존영액 천 이백만 방울은 아무리 구유궁이 장대해졌다고 해도 한꺼번에 내주기 아까울 정도의 양이었다. 이번에 만다라가 지존영액을 많이 쥐여주지 않았더라면 목진도 이쯤에서 포기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파손된 영진 진도 따위의 경매가 이렇게까지 치열할 줄 몰라 수군대기 시작했고 모백도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고민에 빠졌다. 지존영액 천 이백만 방울은 그한테도 한 해 동안의 수입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고민을 마친 모백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자리에 앉았다.
목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모백이 값을 더 비싸게 부르면 얼마 안 되어 그도 포기했을 것이다.
“지존영액 천 사백만 방울이오!”
그런데 그때, 갑자기 3층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와 다들 고개를 번쩍 들었는데 표정이 이상해졌다.
3층에 앉아있던 대하 황조의 4황자 하홍이 무덤덤하게 앉아 수중의 검은색 석주를 만지작거리며 값을 부른 것이었다. 검은색 석주는 일전에 그가 구매한 파해주인데 그는 이 물건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 사람들의 눈빛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당연히 목진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꼭 목진 따위는 눈에 담을 가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다들 하홍과 목진 사이가 안 좋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다.
“저 녀석이!”
구유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하홍을 노려봤다. 녀석은 목진이 이렇게 쉽게 원하는 바를 이루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일부러 저러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까지 예상했던 목진은 태연하게 서서 하홍을 힐끗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존영액 천 오백만 방울이오.”
“지존영액 천 육백만 방울이오.”
하홍은 꿈쩍도 하지 않고 외쳤다.
순식간에 현장 분위기가 발칵 뒤집혔다. 목진과 모백의 쟁탈전이 평화로웠던 것에 비해 목진과 화홍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구유는 살기를 품고 주먹을 꽉 쥐며 무서운 영력 파동을 내뿜었고 그 뒤에 서 있는 백황, 석왕, 담추도 안색이 썩 좋지 않았다.
“지존영액 천 칠백만 방울이오.”
목진은 여전히 무덤덤하게 서서 말했는데 하홍마저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들어 목진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참 부유한 사람인가 보군. 그럼 오늘은 자네한테 파손된 영진 진도를 양보하겠네.”
하홍의 말에 다들 몰래 혀를 내둘렀다. 그는 분명 파손된 영진 진도에 관심이 없는데 일부러 값을 비싸게 불렀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목진은 지존영액을 오백만 방울이나 더 냈으니 말이다.
“고맙네, 4황자.”
목진은 화를 내기는커녕, 미소를 지으며 하홍을 바라봤다.
“오늘, 이 물건을 나한테 넘긴 것을 후회하지 말게. 나한테 잘못 걸리면 자네가 치러야 할 대가는 절대 지존영액 천만 방울이 아닐 걸세.”
목진의 말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면, 하홍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지만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반보 9급 지존 따위가 파손된 영진 진도로 뭘 해낼 수 있단 말인가? 대하 황조의 군사가 오면 목진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하홍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그럼 지켜보겠네. 그때 가서 부디 실망시키지나 말게.”
이에 목진은 더는 상대방과 말을 섞지 않았다.
“너무 얄미운 녀석이야!”
구유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녀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지존영액의 양보다는 하홍의 비열한 수법에 더 화가 났다.
“대라천역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요?”
담추도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말했다. 대라천역은 비록 대하 황조만큼은 안 되지만 전력을 다해 싸우면 절대 뒤처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목진은 가볍게 손을 저으며 웃었다.
“괜찮아, 내 언젠가 녀석이 파손된 영진 진도를 나한테 넘긴 걸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했잖아.”
목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는 구룡시선진은 범상치 않은 물건일 거라 확신했다. 그가 일단 해당 영진을 치는 데 성공하면 그 가치는 지존영액 천만 방울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구유 등은 목진의 모습을 보고는 조금이나마 안심했다. 그들은 비록 구룡시선진의 위력이 어떤지 모르지만 목진이 그리 말했으니 무조건 믿기로 했다.
그 시각, 석대 위의 한비는 구룡시선진의 경매를 마치고 물건을 목진한테 보낸 뒤, 세 번째 경매품의 경매를 시작했다.
세 번째 경매품은 오래된 신통으로 위력이 상당했지만 파손되어 있었다. 그러나 목진은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욕심을 부리다 한 가지도 장악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파손된 신통은 지존영액 천 팔백만 방울의 가격으로 천애루의 심아 아씨의 수중에 들어갔고 사람들은 갑자기 손에 땀을 쥔 채 네 번째 은반을 노려봤다.
경매장에 온 세력들은 대부분 소문이 자자한 마지막 경매품 때문에 먼 길을 달려 여기까지 왔다.
한비는 마지막 경매품을 향한 사람들의 뜨거운 눈빛에 직접 은반을 들고 영광을 거뒀다.
은반에는 파손된 흔적이 있는 황금색 영패가 놓여있었는데 고대의 글자체로 ‘제이(第二)’ 두 자가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이건 역시나 두 번째 전주의 영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