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692화 (691/1,000)

692화. 영력으로 이루어진 영체

“큰소리야 누구든 칠 수 있지만, 지존영액 사천 오백만 방울은 아무나…….”

하홍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정은 바로 옥병을 꺼냈다. 그러자 ‘꽈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영력 하천이 솟구쳐 경매장 위쪽 하늘을 웅장한 영력으로 가득 채웠다.

넋 놓고 영력 하천을 살피던 사람들은 바로 옥병에 든 것이 지존영액이란 것을 발견했다. 그 수량과 질도 최상급이었다.

더는 앳된 소녀가 헛소리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심아 등도 이내 정색하여 임정을 쳐다봤다. 이렇게 많은 양의 지존영액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뒷배는 정말 엄청날 것이다.

보통 정예 세력은 절대 지존영액 사천 오백만 방울을 이렇게 쉽게 내놓지 못할 테니 말이다.

쏴아아.

잇따라 임정은 손을 가볍게 휘둘러 지존영액을 거둔 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자신을 바라보는 하홍을 힐끗 보며 물었다.

“인제 더 할 말이 남았나?”

임정은 표정이 한껏 일그러진 하홍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값을 더 불러도 되네. 자네가 한 번만 더 나서면 나는 아마 포기해야 할 것이네.”

하홍은 순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임정이 말은 저리했으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보면 수중에 지존영액이 더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하홍이 값을 얼마나 비싸게 부르든 임정은 그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낚아챌 것이다.

또한, 지존영액 사천 오백만 방울이라니, 하홍의 형님이라도 재삼 고민했을 것이다. 대하 황조의 재력이 상당하긴 하지만 이렇게 마구 낭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덧 사람들은 히쭉거리며 하홍을 쳐다봤다. 일전에 녀석은 돈이 많다고 우쭐거리더니 그보다 더 독한 소녀한테 걸려들어 감히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하홍은 잔뜩 화가 나 끝까지 임정과 싸워 보려다가 엄청난 가격과 후과를 생각하고는 씩씩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임정은 그제야 느긋하게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돈을 많이 챙겨왔어.”

임정은 일전에 한 푼도 없이 집에서 나와 목진의 도움을 받았던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작 목진 등은 소녀를 한참 쳐다보더니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존영액 사천 오백만 방울을 날렸단 생각에 마음이 아팠는데 임정이 무조의 딸이란 걸 생각해내곤 그럴 만하다고 여겼다.

무경은 대천세계의 엄청난 세력으로 천라대륙의 모든 세력을 더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무경의 주인은 진정한 천지존으로 대천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거장이었다. 무조가 얼마나 강한지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강한 아버지를 둔 임정은 밖에서 아무리 큰 사고를 쳐도 괜찮았다.

한편, 한비도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신령을 바라보듯 임정을 쳐다봤다. 그는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돈을 내놓는 사람을 오늘 처음 보았다.

“어흠, 저분이 지존영액 사천 오백만 방울을 불렀는데 이보다 더 높게 부를 사람이 있는가?”

한비가 주위를 쓰윽 훑으며 묻자 다들 그를 쳐다봤다. 하홍도 물러난 마당에 누가 감히 나선단 말인가?

이에 한비는 괜히 머쓱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럼 마지막 경매품인 영패의 주인은 저분으로 결정하겠네!”

한비가 말을 마치자 누군가 영패를 들고 빠르게 임정한테로 향했다. 만일에 대비해 호위 무사가 수십 명이나 동행했다.

다행히 과정은 순조로웠고 한비는 대량의 지존영액을 확인한 뒤, 손을 파르르 떨며 공손하게 황금색 영패를 임정에게 건넸다.

임정은 대수롭지 않게 영패를 목진에게 던졌고 사람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지존영액 사천 오백만 방울이나 주고 산 물건을 이렇게 함부로 다룬단 말인가? 그러다 부서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데 그때, 임정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자, 지난번에 네가 나한테 천화옥수를 사줬으니 이번엔 내가 이걸 줄게. 거절하지는 마. 안 그럼 이걸 버릴 거야!”

임정의 결정에 사람들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화옥수는 기껏해야 지존영액 만 방울밖에 안 하는 물건이고 신비로운 영패는 무려 지존영액 사천 오백만 방울이나 줬는데 물물교환이라니!

사람들은 자못 목진이 부러워졌다. 이런 친구라면 누구라도 곁에 두고 싶을 것이다.

목진도 제법 놀란 듯 임정을 바라보더니 그녀가 한 마지막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물건을 거뒀다.

“고마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목진의 통쾌한 결정에 임정도 생긋 웃었다. 사람들은 보통 그녀의 신분을 알면 아부하기 바쁜데 목진은 전혀 그러지 않았고 무경의 공주마마가 아니라 온전히 임정이란 사람으로만 대했다.

하여 임정은 목진이 오늘 일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비록 그녀의 신분으로 목진이 뭘 주든 놀랍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 그럼. 그런데 내가 딱히 갈 곳이 없어서 그러는데 날 거둬줘.”

임정이 생긋 웃으며 말했고 목진도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경매로 따낸 영진 진도를 가지고 구유 등과 함께 곧바로 경매장을 떠났다.

이를 지켜보던 하홍은 한참 지나서야 고개를 살짝 젖히며 누군가에게 말을 건넸다.

“저 여자아이의 신분에 대해 알아보게.”

“그리고 저들을 감시하고.”

“감히 내 손에서 물건을 빼앗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지!”

서성의 경매는 드디어 끝이 났다. 다들 마지막 보물이 지존영액 사천 오백만 방울이란 거액으로 낙찰된 것에 적잖게 놀랐고 그 주인인 임정의 신분에 대한 추측을 남발했다.

하지만 황금색 영패의 일이 이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었다. 서성에 강자가 가득 모인 데다가 다들 대라천역에서 영패를 획득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경매로 물건을 얻은들 이들이 영패의 진정한 주인이란 법은 아니었다.

대라천역은 북계에서 실력 최강자이긴 하지만 천라대륙 전체를 놓고 보면 평범한 세력일 뿐이었다. 또한, 서성에는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만 해도 여러 군데나 있고 하홍 등은 현재, 천라대륙 젊은이 중 정예급 강자라 각 세력의 수령이 오지 않은 이상, 이들을 이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라천역의 목진도 실력이 수수하진 않지만 반보 9급밖에 안 되어 하홍 등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하여 사람들은 대라천역에서 마지막 경매품을 획득했단 소식에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희망으로 가득 찼다. 정예 세력들은 분명 목진 등을 호시탐탐 노릴 것이고 혼전이 펼쳐지면 다른 세력에서 운 좋게 영패를 획득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목진 등을 걱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신비로운 영패를 가진 목진 등은 운이 안 좋을 뿐이고 이번에 대라천역은 큰 타격을 입을 거라 여겼다.

떠들썩한 서성에서 엄청난 음모가 무르익었다.

* * *

목진은 서성 어딘가의 조용한 정원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원은 문이 꼭 닫혀 있었고 영진이 쳐져 있어 외부의 시선이 완벽히 차단되었다.

“지금쯤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을 거야.”

이에 구유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영패를 들고 이곳을 떠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아.”

“사람들은 우리가 영패를 지켜낼 자격과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봐.”

목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대라천역은 확실히 천라대륙에서 그리 유명한 세력이 아니었고, 9급 지존인 구유 말고는 반보 9급 지존인 목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가 괜히 영패를 사서 너를 귀찮게 만든 거 아니야?”

정원 한쪽에서 어린 새를 관찰하고 있던 임정이 고개를 들고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목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임정을 살폈는데 영력 파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특수한 보물로 실력을 감춘 듯했다.

과거 임정도 목진처럼 지존법신을 수련하는데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고 있었으니 무경의 공주마마로서 천지존인 아버지의 가르침까지 받았다면 아마 실력이 구유 못지않을 것이다.

더구나 무경은 재력이 남달라 목숨을 건질만 한 중요한 보물도 몸에 수두룩할 것이고 지지존이 나타나도 임정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이 물건을 간직할만한 실력조차 없다면 스스로 내놓는 편이 낫지 않을까?”

목진은 임정의 말을 듣더니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임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목진의 모습에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께서 그날, 목진을 칭찬했을 때까지만 해도 임정은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목진은 확실히 범상치 않은 소년이었다.

“그럼 어떡할 계획이야? 보아하니 우리가 서성을 떠나자마자 달려들 것 같은데 말이야.”

구유의 질문에 목진은 고개를 축 젖히며 답했다.

“그럼 일단 기다리자. 다들 대라천역을 무시하는 것 같은데 누가 먼저 참지 못하고 덤비는지 봐야지.”

“우린 첫 번째 주자를 이용해 체면을 세울 필요가 있겠어.”

* * *

어느덧 어둠이 깃들었다.

목진은 방에 조용히 앉아 천지의 영기를 부단히 흡수하며 수련하다가 한참 지나서야 서서히 눈을 뜨고 파손된 영진 진도와 영패를 꺼냈다.

목진이 경매에서 획득한 구룡시선진과 신비로운 영패였다.

두 물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목진은 영진 진도를 만지작거렸다. 해당 영진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면 종사급일 것이고 그가 일단 영진을 치는 데 성공하면 지지존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영진 종사는 영진사들이 꿈에도 그리는 경지로 해당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영진 수련을 대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한 최정예급 영진사는 말로만 듣던 대종사였다.

천지존이나 다름없는 대종사는 대천세계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적은데 목진은 자신의 어머니가 그중 한 사람이란 것에 왠지 뿌듯했다.

‘어머니께서는 괜찮으신가? 영계 누이는 어디에 있을까? 북창령원에서 헤어진 뒤로 전혀 왕래가 없었는데 어머니를 찾으러 갔다는 사람이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목진은 오래된 영진을 관찰하다 잡다한 생각을 하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비록 반보 9급 지존경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부족했다.

목진은 실력이 강해질수록 어머니를 가둔 신비로운 종족이 얼마나 강대한지 더 잘 느껴졌다. 비록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지만 영진사 대종사급에 진입한 그녀마저 두려워할 정도라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목진은 이리 생각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다시 집중해 파손된 영진을 관찰하다가 서서히 눈을 감고 오래된 족자에 영력을 주입했다.

쿵!

목진의 뇌리에서 순간 폭발음이 울려 퍼지더니 눈부신 빛을 발하며 화면이 확 바뀌었다.

산봉우리에 백발노인이 뒷짐을 쥔 채 서 있다가 옷깃을 휘날리자 수많은 영인이 밀물처럼 휘몰아쳐 허공에 스며들며 복잡하기 그지없는 영력 무늬를 형성했는데 이는 얽히고설켜 천지의 영력마저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 영인들이 점차 형태를 갖추자 백발노인은 다시 손가락을 튕겼는데 용음과 함께 아홉 갈래의 빛줄기가 솟구쳤다.

잠시 후, 빛이 가시자 영진에 스며든 아홉 갈래의 빛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는 아홉 개의 용골이었다!

용골 아홉 개가 영진의 중요한 자리 아홉 군데를 차지하자 영진은 되살아난 듯 도천의 영광을 내뿜으며 용골에 모여들어 영력으로 피와 살을 만들어냈고 용골은 진정한 용으로 거듭났다.

녀석들은 진정한 육신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영력으로 이루어진 영체였다.

녀석들이 내뿜는 무서운 위압감은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슉!

그러다 구룡시선진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자 산맥 앞쪽에 갑자기 누군가 나타났는데 기세등등한 것을 보니 지지존급 강자였다.

이에 백발노인은 상대방을 힐끗 보더니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는데 용 아홉 마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날아올라 지지존을 공격했다.

퍽!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지지존은 미친 듯이 피를 토하며 추락했고 영력 위압감은 빠르게 무너졌다. 크게 다친 것이 분명했다.

그 뒤로 장면은 사라지고 대량의 정보가 뒤따라 흘러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