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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693화 (692/1,000)

693화. 본때를 보여주다

후우.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눈을 뜨고는 잔뜩 놀란 듯 중얼거렸다.

“엄청 강대하고 복잡한 영진이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가 획득한 정보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대충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있었다. 구룡시선진은 크기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용골이 필요했다.

용골의 기운과 더불어 영력으로 녀석에게 육신을 만들어주면 영진의 위력은 진정한 지지존 못지않을 것이다.

“영진 진도가 파손되어 수련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사룡지진이 최선이겠군. 이건 구룡지진과는 천지 차이일 텐데…….”

목진은 아쉬운 듯 고개를 젓더니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구룡시선진이 완전한 형태였다면 목진의 조예로는 절대 이를 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진도가 파손되어 잘만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용골을 많이 수집해서 연구해야겠군.”

그가 획득한 정보에 따르면 용골 주인의 생전 실력이 강할수록 구룡시선진의 위력도 강해진다.

다행히 목진은 아직 고급 용골까지는 필요가 없어 수집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목진은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돌려 세월의 흔적이 듬뿍 담긴 오래된 황금색 영패을 바라봤다.

목진은 세월의 흔적이 듬뿍 담긴 오래된 황금색 영패에 빛을 쪼였다. 그러나 빛을 전부 흡수하고는 조금도 반사하지 않는 모습이 상당히 신비로워 보였다.

잇따라 목진은 황금색 영패에 새겨진 ‘제이(第二)’ 두 글자를 만지작거렸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왠지 모르게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에 목진이 이내 정색하며 영력을 주입했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제련할 수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목진은 자신의 피를 묻혀 영력으로 영패를 제련하려 했지만 영패는 여전히 끄떡없었다. 표면에 묻은 피도 액체 방울처럼 굴러다니기만 할 뿐 전혀 스며들지 않았다.

영패의 겉면에 강대하기 그지없는 보호막이 있는 것 같았다.

한참 애를 쓰던 목진은 실망한 듯 한숨을 쉬었다. 영패는 역시 쉽게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목진은 물건을 획득한 것에 전혀 후회는 없었다. 알아내기 어려운 물건일수록 그 가치도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목진이 언젠가 영패의 작용을 알아낸다면 분명 지존영액 사천 오백만 방울을 훨씬 뛰어넘는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목진은 다시 황금색 영패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는데 순간 표면에서 지극히 희박하고 난해한 파동을 발견했다. 그러나 너무 미약해서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는 못했다.

다만, 이 물건은 분명 상고의 천궁 두 번째 전주의 물건일 것이다. 표면에서 느껴지는 강대하고 오래된 위압감은 오랜 세월이 지나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놀라웠다.

이런 위압감을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은 상고의 천궁의 전주급 강자 외에는 없었다.

“천천히 연구해 봐야겠군.”

목진은 일단 영패 연구를 중단했다. 이건 상고의 천궁 유적지에 들어가서 연구해도 늦지 않을 것이고 분명 엄청난 작용을 할 것이다.

“그럼 일단 구룡시선진부터 연구해볼까?”

목진은 황금색 영패를 거두고 다시 구룡시선진의 진도를 꺼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최대한 빨리 연구를 마치고 영진을 칠 수 있길 바랐다.

* * *

목진은 서둘러 서성을 빠져나가기보다는 구룡시선진을 연구하는 데 집중했다. 어차피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사람들 몰래 도망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목진은 그런 방식으로 보물을 지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 사이, 백황과 임정을 제외하고 아무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백황은 목진의 부탁으로 용골을 수집하러 다녔고 임정은 정원에만 갇혀 있기 싫다며 도성을 활보했다. 돈주머니나 다름없는 임정이 어딜 가든 사람들은 호시탐탐 노려보았지만, 감히 덤비지는 못했다. 다들 임정의 뒷배가 두려운 듯했다.

이렇게 하루가 훌쩍 지나 이튿날 황혼 무렵, 목진은 정원의 석정에 앉아 구유와 함께 바둑을 두고 있었다.

“우리가 지내는 곳은 어느새 서성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 되었어.”

구유는 정원 밖을 쓰윽 훑으며 말했다. 지금 보면 아주 조용한 것 같지만 호시탐탐 그들을 노리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다.

이에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어디 계속 참아보라고 해. 마침 구룡시선진도 연구해야 하고 대라천역 사람들도 기다려야 하잖아?”

구유는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영수 토끼를 잡아 온 임정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가볍게 웃으며 말하자 구유는 흠칫 놀랐다. 이맘때쯤이면 백황은 이미 돌아왔어야 했다. 그는 절대 시간을 어길 사람이 아니었다.

이에 목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앉아 중얼거렸다.

“드디어 나서려는 건가?”

바로 그때,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강력한 영력을 감싼 채 뇌명처럼 도성 전체에 울려 퍼졌고 영진으로 둘러싸인 정원에도 전해졌다.

“허허, 대라천역의 여러분, 당신들 부하가 나한테 있으니 얼른 와서 데려가게.”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대하 황조의 4황자, 하홍이었다.

하홍의 말에 사람들은 흠칫 놀랐다.

녀석, 드디어 나선 것인가?

“참 얄미운 녀석이야!”

구유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제법 신중하군.”

목진은 하홍이 곧장 정원으로 찾아올 줄 알았는데 백황을 납치하다니. 아마도 목진이 이곳에 수많은 영진을 미리 쳐놓고 기다리고 있을까 봐 걱정된 모양이었다.

“대인, 이제 어떡할까요?”

담추의 물음에 목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틀이나 기다린 사냥감이 덫에 걸려들었는데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지.”

“대라천역의 체면은 저 녀석을 이용하여 세우면 되겠구나.”

말을 마친 목진은 한 줄기 빛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구유, 담추와 석왕은 살기 가득한 모습으로 뒤따랐다.

“흥미진진한걸? 반보 9급 지존이 무슨 수로 9급 지존경에 이른 녀석을 이길지?”

임정은 생긋 웃으며 상황을 살피더니 기대에 찬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신속하게 그 뒤를 따랐다.

* * *

서성 어딘가에 숨어있던 수많은 이들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하홍이 있는 곳으로 전력 질주했다.

서성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였다.

대라천역 사람들은 과연 신비로운 영패를 지켜낼 수 있을까?

한편, 서성의 다른 세 구역에서 상황을 살피던 천애루의 심아 아씨, 잠룡각의 목산 소각주, 검선종의 강릉은 목진이 머물던 곳에서 하늘 높이 날아오른 빛줄기들을 보더니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정말 하홍을 만나러 가다니, 대라천역의 목진은 참 겁도 없어. 하홍이 아무리 얄미워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닌데 말이야. 일이 갈수록 흥미로워지는걸?”

세 사람은 피식 웃으며 각자 있던 곳에서 사라졌고 그 뒤로 각각의 부하들이 신속하게 따랐다. 하나 같이 웅장한 영력을 내뿜는 것이 범상치 않았다.

이렇게 서성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 * *

서성의 중심 구역에 있는 저택에는 방대한 연무장이 있었다. 하홍은 양쪽에 미인을 안은 채 그곳에 놓인 옥좌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 뒤쪽에 웅장한 영력을 내뿜는 강자 십수 명이 조용히 서 있었다.

그중,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유난히 강해 보였는데 체내에서 방출한 영력마저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연무장의 한쪽 기둥에는 쇠사슬로 누군가 묶여 있었는데 다름 아닌 백황이었다. 영력 부적 때문에 체내의 영력이 봉인되었다.

“왕공, 녀석이 오긴 할까?”

하홍이 수중의 잔을 만지작거리며 히쭉 웃자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녀석이 오든 안 오든 결과는 똑같아요. 영패는 대라천역 따위가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에 하홍은 잔 안의 술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들어 떠들썩해진 주위를 살폈다. 이미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역시 왔군. 제법 담대한걸?”

하홍은 허공의 어딘가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잇따라 연무장의 위쪽 하늘에 몇 갈래 빛줄기가 내려앉아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는 바로 목진이었다.

목진은 나타나자마자 하홍을 힐끗 보고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백황을 묶어둔 쇠사슬을 부순 뒤, 조심스럽게 데려왔다.

“영패와 두 미인을 나한테 넘기면 무사히 보내 주지.”

하홍은 목진의 모습을 보고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자네 대가리를 좀 빌려야겠네.”

목진도 가볍게 웃고는 하홍을 노려보며 말했다.

목진의 말에 구경꾼 중 일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대라천역에서 온 녀석이 참으로 담이 크다고 생각했다.

반보 9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녀석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하홍이 거느린 강자들뿐만 아니라 하홍만 봐도 9급 지존경에 이르렀고 천라대륙 젊은 강자들 중에서도 20위권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또한, 하홍은 9급 지존이긴 하지만 실제 전투력은 훨씬 강해 일전에 9급 지존경 정상에 이른 강자와 싸운 적이 있는데 무사히 물러났었다.

이 정도만 해도 실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반면, 목진은 비록 젊은 나이에 반보 9급 지존경에 이르렀지만 현재, 극서의 땅에 천라대륙의 젊은 천재가 수도 없이 모였는지라 이 정도 실력은 놀라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한편, 연무장의 위쪽 하늘에서 상황을 살피던 심아 아씨, 목산과 강릉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덤비는 목진의 반응에 흥미진진해졌다.

목진은 정녕 하홍을 이길 자신이 있어 저리 말한 것인가?

“대가리라니…….”

하홍도 미간을 찌푸린 채 목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감히 나 하홍을 받침돌로 딛고 오르려 하다니.”

그는 바로 목진의 의도를 파악했다. 목진은 하홍을 발판 삼아 이번 대결에서 이겨 천라대륙에서 명성을 떨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더는 감히 목진한테 덤비지 못할 것이다.

“내 앞에 주어진 발판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지 않겠나?”

목진은 하홍의 위험한 눈빛을 무시한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 따위가 감히?”

하홍은 피식 웃더니 손을 가볍게 휘두르며 말을 이어갔다.

“왕오(王五), 저 녀석을 죽이게.”

퍽!

하홍의 말에 그의 뒤쪽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자 웅장한 영력이 돌풍처럼 휘몰아쳤다.

녀석도 반보 9급 지존경에 이르렀다.

왕오는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목진을 향해 달려가더니 살기가 깃든 선홍색 장고를 휘둘렀다. 보아하니 그는 전투에 능수능란한 것 같았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적잖게 놀랐다. 대하황조는 역시 동역의 패주답게 황자를 따라다니는 부하마저 반보 9급 지존경의 실력을 지녔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다른 지역의 정예 세력에서도 정예급 전력일 것이었다.

녀석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목진한테 다가가 수중의 장도를 휘두르자 혈광이 솟구쳐 선홍색 조각달처럼 목진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녀석의 전력을 다한 공격은 같은 반보 9급 지존이라 해도 즉사할 정도였다.

그러나 목진은 여전히 태연하게 서 있었고 앞쪽에서 요동치는 살기 가득한 도광을 완전히 무시했다. 뒤에는 구유가 꼼짝 않고 서 있었고 백황 등은 피식거리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임정은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살폈다. 그녀는 그동안 목진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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