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4화. 함정을 파다
선홍빛 도광이 닿을 무렵, 목진이 반항을 포기한 듯 서서히 눈을 감자 다들 화들짝 놀랐다.
“멍청한 녀석!”
왕오는 콧방귀를 뀌며 외쳤다.
도광이 곧 목진의 몸에 닿으려 할 때, 목진의 몸에서 금광을 방출하더니 용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잇따라 금광이 폭발해 자금색 용이 목진의 몸에서 날아올랐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위압감이 휘몰아쳐 도광은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크으으으!
커다란 자금색 용이 목진의 주위를 맴돌며 주먹을 쥐더니 용권을 힘껏 휘둘러 도광에 맞섰다.
퍽!
난폭하기 그지없는 힘이 휘몰아쳐 공간이 파르르 떨렸고 금광이 폭발하자 상대방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파멸의 힘이 자신의 칼을 거쳐 전해지는 것이 느껴졌는데 영력을 한껏 끌어올려 방어하려 했지만 한순간에 무산되었다.
선홍색 장도는 맥없이 끊어졌고 녀석도 큰 타격을 입고 미친 듯이 피를 토하며 멀리 튕겨 나갔다. 그는 바닥에 천 장 정도의 깊숙한 흔적을 남긴 채 추락했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기세등등했던 대하 황조의 강자가 한순간에 중상을 입을 줄 몰랐다.
목진은 제자리에 서 있었을 뿐인데 상대방은 이미 인사불성이 되었다.
슉!
사람들이 목진한테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자금색 용이 계속해서 울부짖으며 목진의 주위를 맴돌았고 숨 막히는 압박감을 형성했다.
그러나 정작 목진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 제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이 기운은…… 용족에서도 상당히 보기 드문 존재일세!”
누군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거대한 자금색 용이 일반 용과 다르단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설마 목진이 용족 사람이란 말인가?”
“목진은 확실히 인간이네. 대신 용족과 관련된 수련술을 익힌 모양이군!”
안목이 뛰어난 누군가가 목진 대신 답했다.
“거대한 자금색 용은 실물인 듯 보이나 흐릿한 감이 없지 않네. 그런데 녀석이 방출한 힘으로 보면 반보 9급 지존급 강자는 훨씬 뛰어넘었네.”
“스스로 수련해낸 용 한 마리로 반보 9급 지존을 때려잡다니!”
사람들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도대체 얼마나 강대한 수련법이란 말인가? 목진은 역시 범상치 않았다. 그가 하홍을 상대로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거대한 자금색 용과 목진 본인의 힘을 더하면 진정한 9급 지존도 상대할 자격이 충분했다.
임정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의 주위를 맴도는 거대한 자금색 용을 쳐다봤다.
“진정한 용의 기운이라니…….”
임정은 바로 거대한 자금색 용의 정체를 알아챘는데 발하는 기운이 상당히 순수한 것으로 보아 정통이 틀림없었다.
무경에 있을 때, 용족에서 아버지인 무조를 뵈러 진정한 용을 파견한 적 있었는데 그때 느낀 진정한 용의 기운은 위험천만한 것이 이 세상 모든 생물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런데 임정은 목진의 주위를 맴도는 거대한 자금색 용에서 똑같은 기운을 느꼈다.
그 외에 어좌에 앉아있던 하홍은 한순간에 패배한 부하를 보더니 표정이 확 굳어졌고 술잔을 꽉 쥔 채 목진을 노려봤다.
정작 목진은 녀석을 무시하고 주위를 맴도는 진정한 용의 령을 살피더니 하홍한테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번엔 내 차례인가?”
말을 마친 목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앞으로 반보 나서며 주먹을 휘두르자 체내에서 눈부신 금광을 발했다.
크으으으!
이와 동시에, 주위를 맴돌던 거대한 자금색 용도 이내 포효하며 자금색 빛으로 변해 목진의 주먹에 스며들었다.
쿵!
천 장 정도의 방대한 자금색 권광은 용의 형태를 이루고 무서운 힘의 파동을 방출해 대지가 와장창 무너졌다.
목진의 공격은 일전에 나선 하홍 부하의 공격보다 몇 배는 더 강력했다.
그 공격에 현장에 있는 9급 지존들마저 안색이 어두워졌다.
쿵!
금광을 발하는 용권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하홍한테 날아갔다. 이에 하홍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지만 결코 피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럼 자네의 진정한 실력이 어떤지 두고 보지! 자네가 과연 내 앞에서 우쭐거릴 자격이 있는지 말이야!”
말을 마친 하홍이 손을 휘두르자 손끝에서 어두운 빛이 발하며 공간이 찢어졌고, 영광을 번쩍이는 손에서는 커다란 흑호를 이루었다. 녀석은 하늘을 집어삼킬 듯 입을 쩍 벌렸다.
“구수지존법(九獸至尊法), 호마탄천조(虎魔吞天爪)!”
쿵!
하홍의 호마탄천조는 금광을 발하는 목진의 용권과 힘껏 부딪쳤다.
쿵!
황금색 용권의 권망이 휘몰아치며 날아가 하홍의 호마탄천조와 부딪치자 아래쪽 땅이 격렬하게 진동했고 하홍의 발아래에서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파동이 퍼져 먼지가 일었다.
이어 대지가 순식간에 갈라졌다.
금광과 어두운 광은 미친 듯이 서로를 집어삼키며 무서운 충격파를 형성하더니 영력이 다 닳아 서서히 사라졌다.
이에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보니 먼지가 가신 연무장 중심에 하홍이 공격을 개시한 자세로 가만히 서서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홍은 일전의 강대한 충격파에도 끄떡없었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하홍의 뒤쪽에 놓인 황금으로 만든 것 같은 옥좌는 바람이 불자 순간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 광경에 다들 흠칫 놀랐다. 목진의 공격은 하홍한테 큰 타격을 주지 못했지만 하옹의 방어를 뚫고 그 뒤에 놓인 옥좌를 산산이 부쉈으니…… 이건 일부러 한 짓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효과가 좋았다. 사람들이 목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다들 반보 9급 지존경 밖에 안 되는 목진의 실제 전투력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제법이군.”
잠룡각의 목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홍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그는 녀석이 비참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놀랍긴 하네. 하지만 하홍은 더는 방심하지 않을 것이네. 전력을 다한 하홍은 그리 상대하기 쉽지 않을 걸세.”
천애루의 심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목산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홍과 싸운 지 오래된 그는 단 한 번도 대결에서 이기지 못했고 천라대륙 젊은 강자 순위권에서도 하홍의 뒤에 있었다. 그는 하홍이 전력을 다해 대결에 임하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목진이 아무리 대단해도 오늘의 대결에서 이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홍이 고개를 들어 목진을 쏘아보더니 천천히 손을 거두며 말했다.
“제법이군.”
그는 자신의 방어벽을 조금이나마 뚫은 목진의 공격을 후하게 평가했다.
“오늘의 대결이 무미건조할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 보니 괜한 걱정을 했군.”
하홍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영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가 멈춰 설 때쯤 형성한 위압감에 백황, 담추 등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들은 순간 체내의 영력 흐름이 느려진 것을 느꼈다.
하홍은 진정한 9급 지존이었다.
하홍은 목진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실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면 오늘, 여기서 벗어나긴 힘들 것이네.”
하홍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와 비슷한 웅장한 영력이 치솟아 녀석이 형성한 영력 위압감을 없앴다.
이에 하홍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돌풍처럼 휘몰아치는 웅장한 영력을 주위에 휘감은 구유를 바라봤다.
구유는 수중에 활활 타오르는 투명한 화염을 쥐고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하홍을 노려보았다. 그녀가 이내 손가락을 튕기자 투명한 화염은 한 갈래 화염 빛줄기를 형성해 빠르게 하홍한테 날아갔다.
슉!
그런데 하홍의 앞쪽에서 갑자기 회색빛이 발하더니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 메마른 손으로 화염 빛줄기를 휘어잡았다. 그는 손바닥에서 강력한 영력을 방출해 화염 빛줄기를 부쉈다.
“허허, 전하께서 선택한 사냥감이니 다른 사람들은 끼어들지 말게.”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구유의 공격을 받아낸 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구유는 갑자기 나타난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을 보더니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음산한 영력이 상당히 강대한 것으로 보아 9급 지존경 정상에 이르는 실력자로 일반 9급 지존들보다 실력이 훨씬 강해 보였다.
슉!
이와 동시에, 연무장 뒤쪽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 십수 명이 나타나 연무장 주위를 감싸며 구유 등을 완벽히 포위했다.
담추 등은 흠칫 놀랐다. 상대편에는 반보 9급 지존경에 이른 강자가 네 명 정도 있었고 나머지는 7급, 8급 지존들이었다.
이는 목진쪽 실력보다 훨씬 뛰어났고 대하 황조의 강자들이 현장을 완벽하게 포위해 목진 등은 도망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후회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지 않나?”
하홍은 가볍게 웃으며 구유의 늘씬한 몸매를 쓰윽 훑더니 뒤쪽에 서 있는 어여쁜 임정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싸우는 건 심심하니 도박이나 한판 하는 것이 어떤가?”
그런데 목진은 구미가 안 당기는 듯 무덤덤하게 서 있기만 했다. 이에 임정이 나서며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무엇을 걸고 싸울 건가?”
“나와 목진의 대결로 승패를 가립시다.”
하홍은 목진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대결에서 지면 당신들을 무사히 보내줄 뿐만 아니라 준 성물 세 가지를 주겠네.”
하홍의 말에 다들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준 성물 세 개라니, 하홍은 돈이 많아서 그런지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자네가 승리하면 어떡할 건가?”
임정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럼 두 미녀가 나와 함께 떠나야 할 것이네.”
하홍이 피식거리며 한 말에 임정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우리 둘로 준 성물 세 개밖에 바꾸지 못하다니, 이거 너무 한 거 아닌가? 대하 황조의 황자가 이리 옹졸해서야 쓰나…….”
“그럼 어떡하면 좋겠나?”
하홍이 흠칫하며 묻자 임정은 잠시 고민하더니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일단 차용증부터 쓰고 영인까지 찍게. 자네가 만약 대결에서 패배하면 나한테 지존영액을 일억 방울 주겠다고 말이네.”
사람들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하홍마저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지존영액 일억 방울은 대하 황조의 국고를 탈탈 털어야 겨우 모을 수 있는 양이었다.
지존영액 일억 방울이면 진정한 성물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홍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건 너무 비현실적이네. 내가 그대한테 차용증을 적어준들 대하 황조에서 일전 한 푼 받아 가지 못할 것이네.”
하홍의 말은 틀리지는 않았다. 누가 차용증을 들고 가든 대하 황조에 가면 그의 아버지가 호되게 혼낼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상위 지지존이라도 절대 대하 황조에서 지존영액 일억 방울을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그 말에 임정은 언짢은 듯 입을 삐쭉 내밀었다.
“지존영액 일억 방울을 내줄 담력도 없으면서 도박은 왜 하자는 건가? 그냥 싸우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임정의 말에 하홍은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정 원한다면 그리해주겠네.”
말을 마친 하홍은 황금으로 만든 족자를 꺼내 영력으로 글을 적은 뒤, 피 한 방울로 영인을 형성했다.
잇따라 그는 황금 족자를 연무장에 놓인 돌사자의 입에 넣었다.
“내가 이번 대결에서 패배하면 자넨 저걸 가져가게.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대하 황조에 오면 죽음은 면치 못할 것이네.”
하홍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임정이 괜히 센 척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은 절대 대결에서 패배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다 자신이 정말 대결에서 패배한다고 해도 감히 대하 황조에 가서 지존영액 일억 방울을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그건 자네가 알 바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임정은 여우처럼 피식 웃으며 말하더니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목진아, 지금부터는 너한테 달렸어. 네가 대결에서 이기면 지존영액의 절반을 너한테 줄게!”
임정의 말에 목진은 조금 무안해졌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하홍이 왠지 불쌍해 보였다.
임정이 무경의 공주마마이고 그 아버지가 대천세계의 유명한 거장인 무조인 걸 알면 하홍의 표정은 상당히 볼만할 것이다.
대하 황조가 아무리 대단해도 임정의 뜻을 거슬렀다가는 상위 지지존 두어 명이 찾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홍은 임정이 파놓은 함정에 제 발로 들어갔다. 이에 목진과 구유는 하홍이 가여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멍청한 녀석, 어쩜 저리 생각이 짧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