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화. 강자방(強者榜)
모임을 시작하자 심아 등은 임정의 신분을 알고자 질문을 계속 던졌지만 임정은 대충 넘겨버렸다. 그녀는 자신이 무조의 딸이란 사실을 이들한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임정의 성격은 쾌활해 지내기 쉬울 것 같지만 그녀와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아 등은 결국 임정의 신분을 알아내려는 것을 포기하고 목진, 구유 등과 극서의 땅에 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상고의 천궁에 관한 정보도 들어있었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어 목진 등이 떠나려 하자 심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충고의 말을 건넸다.
“하홍이 오늘, 자네 때문에 크게 다쳤으니 앞으로 한 사람을 꼭 조심하게.”
“그게 누군가?”
목진이 흠칫 놀라 묻자 심아는 이내 정색하며 답했다.
“하우(夏禹)일세.”
목진은 바로 녀석의 정체를 알아채고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하우는 대하 황조의 태자로 천라대륙 젊은 강자 순위권 4위에 오른 사람이었다. 3위인 가루라보다 조금 뒤처졌지만 엄청난 실력자였다.
* * *
서성에서의 대전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아직도 그날의 대결에 관해 이야기했고 소문을 퍼트렸다. 하여 현재, 극서의 땅에 있는 사람 중 북계 대라천역에서 온 젊은 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목진은 자연스레 유명해졌다.
그러나 목진은 하홍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뒤, 바로 서성을 떠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정보를 수집해야 했고 하홍의 패배로 함부로 목진한테 덤빌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보다 안전하고 조용한 곳은 없었다.
목진은 며칠 동안, 서성에 머물렀는데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우쭐거리며 거리를 활보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점차 목진한테서 눈길을 거뒀다. 극서의 땅에 천라대륙의 천재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기에 이와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에 목진에게 끝까지 집중하는 사람은 없었다.
목진이 하홍을 쓰러뜨렸지 대하 황조의 태자와의 대결에서 이긴 건 아니었다.
* * *
쿠쿵!
조용한 정원의 허공에서 갑자기 웅장한 영광이 폭발하더니 복잡한 영인들이 연결되어 현란한 광선을 이뤘다. 광선들이 이룬 일정한 형태를 갖춘 존재에서 오묘한 기운이 풍겼다.
목진은 방대한 영진 모형의 중심에 서서 미간을 찌푸린 채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광선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옷깃을 휘날렸는데 몇 갈래의 백광이 솟구쳤다.
잇따라 용음이 들려 백광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 속에 용의 위압감을 방출하는 새하얀 뼈가 들어있었다.
이건 용골이었다.
용골이 영진으로 들어가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는데, 영진에 깃든 무서운 영력이 미친 듯이 용골에 모이기 시작했다.
위잉!
영진의 영력이 점차 난폭해지자 용골에 미세한 균열이 일었고 미친 듯이 진동하다가 결국 부서졌다.
쿵!
난폭하기 그지없는 영력 충격파가 휘몰아쳐 영진도 순식간에 부서졌다.
이에 목진은 실망한 듯 한숨을 쉬며 웅장한 영력으로 광막을 형성해 최대한 충격파를 막아냈다.
“종사급 영진은 파손되었다고 해도 만들어내기 어렵군. 또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할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형태를 유지하지조차 어려워.”
목진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거의 매일 파손된 구룡시선진을 치려고 애를 썼지만 계속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았다. 그는 실패할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했고 이렇게 조금씩 개선하면 언젠가 종사급 영진을 치는 데 성공할 거라 믿었다.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또 실패한 거야?”
눈을 감고 수련하던 구유가 천천히 눈을 뜨고 목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무려 종사급 영진이야. 그리고 파손되어서 더 힘들 거야. 네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모형을 만들어낸 것도 대단한 거야.”
임정은 부드러운 담요를 덮고 석정에 느긋하게 앉아 고적을 보고 있었다. 겉면을 보니 수련 서적은 아니었고 이 세상의 진귀한 과일을 기록한 책이었다. 그녀는 흥미진진하게 책을 보다가 사라지는 영진을 힐끗 보더니 조금 놀란 듯 입을 열었다.
임정은 비록 영진사는 아니지만 신분이 남달라 종사급 영진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이에 바로 목진이 친 영진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봤다.
그녀는 짧은 시간에 목진이 처음 보는 파손된 종사급 영진을 이렇게라도 친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데 목진은 임정의 말에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곳을 노리는 사람이 많이 적어졌겠지?”
목진은 석정에 들어가 공손하게 서 있는 담추한테 물었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다들 감히 이곳을 감시하지는 못하네요.”
담추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목진과 하홍의 대결 효과는 제법 있었다. 안 그럼 지금쯤 목진은 끊임없이 몰려드는 세력들 때문에 상당히 귀찮아졌을 것이다.
“오늘 대라천역에서 소식이 왔는데 북계 연맹 사람들은 닷새 안에 도착할 거랍니다.”
담추의 말에 목진은 조금이나마 안심되었다.
극서의 땅에는 각종 정예 세력이 모여있는데 모두 뒷배가 상당할 것이다. 그러니 만다라 등이 극서의 땅에 도착하기 전까지 목진은 최대한 겸손하게 처신해야 했다. 그러다 지지존의 눈에 띄면 큰코다칠 것이다.
“그리고 목 대인께서 분부하신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말을 마친 담추는 양피지 한 장을 꺼내어 목진한테 건넸다.
“잘했구나.”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양피지를 건네받았다. 그는 담추에게 천라대륙 젊은 강자들의 정보에 대해 알아 오라고 시켰었다.
북계를 떠나 천라대륙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목진은 젊은 강자들의 순위가 뭘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여기에는 천라대륙 젊은이들의 패주가 적혀있었고 순위권에 오른 사람 중 혁혁한 전공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목진은 양피지를 펼쳤는데 영광이 번쩍이는 종이의 가장 위쪽에 강자방 석 자가 적혀있었고 아래쪽에 영광이 번쩍이며 글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자방 20위, 목진, 북계 대라천역 출신, 반보 9급 지존경, 신비로운 지존법신을 소유, 전력이 엄청남, 서성에서 대하 황조의 4황자 하홍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유명해졌다.”
가장 먼저 나타난 정보에 목진은 깜짝 놀랐다. 그는 강자방의 20위가 설마 자신일 줄은 몰랐다. 강자방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갱신하는 듯 변고가 생기면 정보가 바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하홍이 20위였는데 목진과의 대결에서 패배해 목진이 대신 순위권에 오른 모양이었다.
그러나 목진은 순위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다른 정보를 훑어보기로 했다.
“강자방 19위, 육산(陸山), 진악종(鎮嶽宗)의 친전(親傳) 제자, 9급 지존경, 만악진마법신(萬嶽鎮魔法身)을 수련, 맨손으로 산 한 채를 들 정도로 힘이 세다.”
* * *
“강자방 16위, 왕통현(王通賢)…….”
“강자방 13위…….”
계속해서 나타난 정보들은 천라대륙에서 제법 유명한 젊은이들을 대표했는데 그들의 실력과 성과에 목진은 적잖게 놀랐다. 천라대륙의 젊은이들은 목진이 신수지원에서 봤던 신수족 천재들보다 강했다.
목진은 아래로 갈수록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강자방 5위, 진경칩(秦驚蟄), 청련검종(青蓮劍宗)의 소종주, 9급 지존경 정상, 청련검종 진종 법신 중 하나로 99등급 지존법신 순위 중 49위인 청련령검체를 수련, 한때 검 한 자루를 들고 9급 지존경 정상급 강자 세 사람과 싸웠는데 패배하지 않았다.”
“혼자서 세 사람을 상대하면서 패배하지 않았다니, 정말 대단하군.”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진경칩은 대결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패배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5위에 오를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잇따라 나타난 정보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자방 4위, 하우, 대하 황조의 태자, 9급 지존경 정상, 99등급 지존법신 순위권 중 45위인 대천왕법신(大天王法身)을 수련,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르는 힘을 지녔다는 말이 있다.”
“대천왕법신이라…….”
하우는 역시 대하 황조의 태자라 그런지 수련한 지존법신이 하홍이 수련한 구흉천수신보다 더 강력했다.
또한, 성과에 간단하게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르는 힘을 지녔다고만 적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강자방 3위, 가루라, 성마궁의 성자, 신비로운 법신을 수련하여 99등급 지존법신 순위권에 없지만 상당히 강력함. 1년 전, 9급 지존경 정상의 실력으로 성마궁 9급 지존경 원만급 실력자인 배신자 장로를 추격하여 격살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는 나서지 않았다.”
“지금은 아마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르렀을 것이고 실제 실력은 가늠하기 어렵다.”
목진은 가루라에 관한 평가를 한참 쳐다봤다. 가루라는 역시 엄청난 상대였다. 9급 지존경 정예급 실력으로 9급 지존경 원만급 강자를 때려잡다니, 지금은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르렀으면 지존경 중 최정예급 강자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대는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목진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의욕이 활활 타올랐다. 강자가 되려면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다.
“이번엔 네가 내 상대로구나.”
목진은 칼 같은 눈빛으로 가루라의 정보가 적힌 곳을 노려보며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살기를 거둔 목진은 1, 2위에 관한 정보가 궁금해졌다. 가루라보다 더 강한 사람은 도대체 어떤 괴물이란 말인가?
목진은 오래된 양피지에 영광이 번쩍이며 나타난 글자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강자방 2위, 소경음(蘇輕吟), 9급 지존경 정상, 만충노조(萬蟲老祖)의 친전 제자로 충사(蟲師)다.”
2위에 관한 정보는 상당히 적었는데 목진은 적잖게 놀랐다. 강자방 2위가 충사라니!
대천세계는 오묘하기 그지없고 진정한 강자가 되는 방법도 삼천 가지나 되는데 아무도 자신의 방법이 제일 좋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끝까지 가는 사람만이 대천세계의 거장이 될 수 있었다.
목진이 수련한 영진사, 전진사…… 그리고 충사처럼 말이다.
목진은 오래전, 북령경에서 충사의 유골을 본 적 있었고 그곳에서 획득한 충적(蟲笛)은 큰 도움이 되었었다. 여러 해가 지난 오늘, 여기서 진정한 충사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충사는 독특한 방식으로 강대한 영충을 배양한다고 들었는데 영충은 강력하기 그지없고 그중, 최강자는 지지존 못지않은 실력을 지녔다고 들었다.
또한, 충사는 보통 영충으로 공격을 개시하는데 영충의 종류도 다양해 공격을 예상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다만, 충사의 수량도 극히 적어 해당 직업은 베일에 싸였고 목진은 지금껏 충사는 처음 보았다.
“이 사람이 만충노조의 친전 제자라니…….”
목진은 만충노조 네 글자에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북계에 오래 머물며 만충노조에 관한 소문을 적잖게 들었다.
그는 천라대륙의 괴짜로 실력은 천라대륙 지지존급 강자 중 최정예급이었고 가장 무서운 점은 그가 배양한 신충이 강력하기 그지없어 상위 지지존을 정면 상대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했다.
그래서 천라대륙의 각 정예 세력 주인들은 만충노조를 상당히 경계했다. 일단 그와 싸우면 혼자서 두 명의 지지존을 상대해야 하는데 신충은 심지어 상위 지지존급 실력자였다.
다만, 세력을 만들어도 충분한 만충노조는 여전히 혼자였고 제자를 몇 명 둔 것 외에 별다른 행보가 없었다. 아마 소경음이 제자 중 으뜸인 것 같았다.
비록 소경음의 뒷배는 그리 강대하지 않지만 만충노조 혼자서도 충분했다.
“역시 강자방에 이름을 올린 사람 중 호락호락한 상대는 하나도 없군.”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소경음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만충노조의 계승을 받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