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화. 전설
“그럼 1위는 누구지?”
소경음마저 2위일 뿐이라니. 목진은 1위가 더 궁금해져 가장 아래쪽에 쓰인 글을 살폈다.
“강자방 1위, 주염(祝焱), 염령족(炎靈族) 소족장, 9급 지존경 원만급 강자, 99등급 지존법신 순위권 중 34위인 염신법신(炎神法身)을 수련, 천라대륙에서 지금까지 대결하여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목진은 가장 아래쪽에서 번쩍이는 글을 한참 보더니 한껏 정색하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순위권 1위가 염령족 소족장이라니, 역시 1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염령족은 대천세계에서 지극히 강한 종족으로 역사가 유구하고 종족에 강자도 상당히 많았다. 해당 종족은 천라대륙의 세력들보다 실력이 훨씬 강했다.
“염신법신이라…….”
목진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그건 그가 여태껏 들어본 법신 중 순위가 가장 높은 지존법신이었다.
반면, 그가 수련한 대일불멸신의 순위를 정하면 기껏해야 30위 정도라 위력상 염신법신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염령족의 소족장도 천라대륙에서 수련하고 있다니…….”
구유도 감탄하며 주염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염령족의 주염 말이야?”
옆에 앉아있던 임정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조금 놀란 듯 물었다.
“이 사람을 알아?”
목진도 임정의 반응에 조금 놀랐다. 이에 임정은 입을 삐쭉 내밀며 답했다.
“염령족은 빙 이모의 빙령족의 천적으로 원한 관계가 깊어. 그래서 난 그들에 관한 정보를 제법 알고 있는데 주염은 염령족 소 족장이 아니라 후보 중 한 사람이야. 지금은 밖에서 수련하며 최대한 빨리 지지존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 그래야 종족에 돌아가 족장 선발에서 조금이나마 우세를 차지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무경의 무조는 아내가 두 사람으로 그중 한 분이 임정의 어머니였는데 지난번에 만났던 선녀처럼 생긴 아름다운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다른 한 분은 빙령족의 족장, 임정이 말한 빙 이모였다.
“염령족이 무능한 건 아니나 그리 유능한 것도 아니야. 안 그럼 과거 염제와 내기를 해서 종족의 진족 신화마저 잃지는 않았겠지. 비록 이 일로 종족의 침수노조(沈睡老祖)까지 나섰지만 결국 염제의 손에서 신화를 빼앗지 못했지.”
임정은 빙령족 편인지라 염령족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무한의 화역 주인 염제를 말하는 거야?”
목진이 흠칫 놀라 물었다. 그는 북계의 용봉천에서 만났던 채소가 떠올랐다. 그녀의 아버지가 바로 염제일 것이다.
“그래.”
임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흥미진진하여 말을 이어갔다.
“염제야말로 대단하지. 아버지께서도 그분은 실력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으니 말이야.”
“두 사람이 싸운 적이 있단 말이야?”
목진은 흥미진진해서 물었다. 무조와 염제는 현재, 대천세계의 유명한 거장으로 하위면 출신인데 이룬 성과는 대천세계의 다른 천지존들이 부끄러워할 정도로 엄청났다.
하여 두 사람 중 실력이 더 강한 사람이 누군지는 아마 모든 사람의 관심사일 것이다.
“아버지께 우연히 들은 바로는 서로 싸운 적이 있는데 무승부로 끝난 것 같아. 더구나 우리 무경은 대천세계의 남극 지역을 수호하고 무한의 화역은 북극 지역을 수호하는데 이 두 지역은 상당히 중요해. 그래서 아버지와 염제께서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어 힘을 겨룰 기회도 거의 없어.”
임정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고 목진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그 두 지역은 역외족의 땅과 이어져 있어.”
임정이 자신을 힐끗 보며 대답하자 목진은 흠칫 놀랐다. 그는 그제야 염제와 무조가 대천세계의 엄청난 대륙을 차지하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보호막을 형성해 역외족을 견제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계셨던 하위면은 과거 역외족 이마종족(異魔種族)의 침략을 당했는데 빙 이모가 아버지를 돕기 위해 자신을 불태워 겨우 대결에서 이겼지. 하여 아버지께서는 대천세계에 올라와 고향인 하위면을 기반으로 무경을 만드셨고 하위면을 수호하는 동시에 역외족 녀석들이 더는 대천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고 계시지.”
“무조 선배는 참 대단하셔.”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그도 무조에 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접했는데 임정이 말한 것처럼 자세하지 않았다.
역외족과의 전쟁은 대천세계의 수많은 강자의 희생을 통해 잠시나마 끝내고 현재의 세상을 구축했다. 무조는 하위면의 힘으로 역외족의 이마족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위면의 제한을 뚫고 대천세계에 올라와 자신으로 보호막을 형성했다니, 이런 전설은 듣는 것만으로도 피가 끓어올랐다.
“당연하지.”
임정도 으쓱하여 말했다. 그녀도 아버지가 상당히 자랑스러웠다.
이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임정을 바라봤다. 그런 아버지라면 확실히 자랑할만했다. 목진 등이 대천세계에서 별다른 걱정 없이 수련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무조, 염제와 같은 거장들이 변방을 지키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그것만으로도 무조, 염제와 같은 존재들한테 경외의 마음이 생겼다.
또한, 임정이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대천세계의 최상층에는 강대한 보호막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무조, 염제 등 대천세계의 거장들이었다.
그러나 대천세계의 일반 강자들은 이런 정보를 알 리가 없고 목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직 이를 받아들일 만한 자격이 없었다.
대신, 목진은 언젠가 염제나 무조 정도의 강자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다스리고 양피지에서 시선을 거뒀다. 무조, 염제처럼 진정한 강자가 되려면 목진은 반드시 대일불멸신의 진화법부터 얻어야 했다.
목진은 거칠어 보이는 양피지를 만지작거리더니 손가락으로 순위권 중 1위인 주염의 이름을 가볍게 내리찍었다.
진정한 강자가 되려면 경쟁 상대를 꺾으며 나아가야 했고 목진은 여태껏 그리해왔으니 이번에도 분명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어느새 전의로 활활 타올랐다.
목진은 북령경, 북창령원, 대라천역 출신으로서 천라대륙의 천재들을 상대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천라대륙의 극서 지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떠들썩해졌다. 변두리에 있는 모든 도성에는 사방에서 몰려온 세력들로 가득 찼는데 평소에 보기 어려운 지지존급 강자들도 가끔 볼 수 있었다.
한편, 목진은 드디어 북계 연맹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북계 연맹은 서성에 온 것이 아니라 바로 극서의 땅 내부로 들어갔다. 그곳은 극서의 땅 깊숙한 곳과 제일 가까웠고 상고의 천궁이 모습을 드러낸 곳이기도 했다.
정예 세력들은 이미 그 주위에 터를 잡고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목진은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구유 등과 함께 서성을 떠나 북계 연맹을 찾으러 갔고 임정은 목진과 함께 움직였다. 사람이 많은 것을 좋아하는 그녀가 천라대륙의 대사인 상고의 천궁을 보러 가지 않을 리 없었다.
반나절이 지나 석양이 아래쪽 황량한 지면을 겨우 비출 때쯤, 목진 등은 북계 연맹이 있는 곳 부근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사람들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 느껴졌다. 그들은 주위에 숨어든 첩자들로 7, 8급 지존경에 이르러 실력이 상당했다.
목진은 상대방의 눈빛에 흠칫 놀랐다. 이번에 북계 정예 세력들에서 정예들을 전부 거느리고 나왔단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녀석들은 바로 목진을 알아보고 눈길을 거뒀고 목진 등은 무사히 방어벽을 뚫고 북계 연맹이 있는 고봉으로 올라갔다.
목진은 산 정상에 오르자마자 만다라를 발견했는데 보아하니 목진이 올 것을 미리 알고 나와 기다린 듯했다.
“며칠 사이 벌써 천라대륙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더구나.”
만다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이미 목진과 하홍의 대결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홍 때문에 괜히 대하 황조와 원한을 맺었어.”
목진이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그게 뭐 대수인가? 대하 황조의 하황보고 언제든지 대라천역에 찾아오라고 해. 난 전혀 두렵지 않아.”
만다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녀는 이미 상위 지지존에 이르러 하황 정도는 걱정조차 되지 않았다.
“하황은 신분 때문에라도 널 건드리지는 않을 거야. 대신 대하 황조의 태자는 조심해. 혹시라도 마주치면 너 스스로 해결해야 해.”
하황이 나서지 않으면 만다라도 나설 수 없었다. 젊은이들의 대결에 지지존들이 끼어들면 세력 사이의 싸움으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대하 황조의 태자가 지지존만 아니면 난 두렵지 않아.”
목진은 비록 반보 9급 지존경 밖에 안 되었고 대하 황조의 태자는 9급 지존경 원만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파다하지만 이길 자신이 있었다.
“사람이 제법 온 것 같네?”
목진이 주위를 쓰윽 훑으며 말했다. 산 정상에는 천막이 제법 많았고 그 속에서 내뿜는 무서운 영력 파동에 공간마저 진동했다.
이에 만다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나를 제외하면 이곳에 하위 지지존이 다섯 명 정도 있어.”
만다라의 말에 목진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그 정도 수라면 북계의 지지존이 전부 나선 것이다. 북계의 세력들은 상고의 천궁이 어지간히 탐난 모양이었다.
이들이 협력하면 천라대륙의 최정예급 세력과도 상대할 수 있었다. 아무리 대하 황조라도 상위 지지존 한 명에 하위 지지존 다섯 명은 없을 테니 말이다.
목진은 그들이 전부 대라천역 사람이 아닌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대신,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달라 전투력에 영향은 주겠지만 외적을 상대할 때엔 적당한 작용을 할 것이다.
“참, 이쪽은 내 친구, 임정이야.”
목진은 뒤에 서 있던 임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만다라는 임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체내의 영력을 알아보려 하자 지극히 난해하고 미세한 배척이 느껴졌다. 이건 만다라마저 압력을 느낄 정도였다.
소녀의 체내에는 실력이 막강한 강자가 수호의 작용으로 남긴 낙인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에 만다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임정을 바라봤다. 만다라는 임정의 뒷배가 엄청날 것이라 예상했다. 낙인만 봐도 지지존 대원만급이 아니고서야 절대 불가능한 위력이었다.
임정도 배시시 웃으며 인사하더니 흥미진진한 얼굴로 상대방을 관찰했다. 임정 또한 대라천역의 역주가 귀여운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상고의 천궁은 언제쯤 들어갈 수 있어?”
목진이 물었다. 북계 연맹이 한데 모였으니 드디어 상고의 천궁에 들어가 보물을 찾아낼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만다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산 끝으로 걸어가 저 멀리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뒤를 따라가 멀리 내다보던 목진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산 너머에 황량한 초원이 펼쳐졌는데 그 깊숙한 공간은 부서져 있었고 날카로운 공간 파편이 날아다녔다. 보아하니 지지존이 아니고서야 공간 파편에 닿으면 바로 육신이 반으로 갈라질 것이다.
초원의 깊숙한 공간은 잔뜩 화가 난 원고의 흉수처럼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면 누구든 바로 집어삼킬 기세를 보였다.
목진은 공간 균열 너머로 오래된 전각이 홍황의 기운을 내뿜는 것이 느껴졌다.
“황원을 중심으로 정예 세력들이 잔뜩 모였는데 아무도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있어.”
만다라가 난폭하기 그지없는 공간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공간 파편은 지지존이 아닌 목진 등한테 엄청난 위협이 될지는 몰라도 만다라 등한테는 괜찮을 텐데 말이다.
“저쪽 공간은 상고의 천궁 때문에 곧 부서질 거라 지지존에 이른 강자가 들어가면 한계치를 넘어 공간이 폭발할 거야. 아무리 상위 지지존이라도 그 정도 파멸의 충격을 견뎌내기는 힘들 거야. 부서진 공간에 갇히면 허무한 공간에서 추방될 수도 있어. 대신, 운 좋게 하위면을 발견하면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죽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