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4화. 소경음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등용문을 쳐다보더니 수군대기 시작했다.
“정말 등용문이 있다니…….”
목진은 석문을 한참 쳐다보더니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저게 뭔지 알아?”
구유를 포함한 북계 연맹 사람들은 깜짝 놀라 목진을 쳐다봤다.
이에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고의 천궁에 들어오기 전, 만다라한테서 이곳에 관한 정보를 제법 들었는데 그중에 바로 등용문에 관한 정보도 있었다.
“등용문이 뭐야?”
임정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상고의 천궁 제자들은 등용문을 통해 천궁에 들어간다고 들었어. 등용문은 그들의 실력과 잠재력 등을 평가하고 상응한 신분을 정해주는데 일부는 최고의 평가를 받고 평범했던 신분에서 벗어나 최고 등급의 제자로 거듭난다고 하여 등용문이라고 이름을 지었대.”
“신분이라…….”
다들 흠칫 놀랐다.
“우리가 일전에 발견한 시신들 수중의 청랑패를 기억해? 그것도 신분의 상징이야.”
목진은 모든 사람을 내부와 차단한 커다란 석문을 흥미진진하게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상고의 천궁 제자는 네 가지 등급으로 나뉘는데 각각 랑패, 응패(鷹牌), 교패(蛟牌)와 용패(龍牌)로 뒤로 갈수록 등급이 높으며 같은 등급 사이도 색깔로 우열을 가리지, 그중, 하얀색이 최약체이고 그 위에 청색과 금색 두 가지가 더 있어.”
“우리가 일전에 봤던 시신들은 생전에 상고의 천궁의 랑패 제자들일 거야.”
“그리고 용패를 획득한 정예급 제자들은 상고의 천궁 핵심 성원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방대한 수련 자원을 획득할 수 있고 상고의 천궁 장로, 심지어 전주가 될 수도 있다고 들었어.”
목진의 말에 사람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용패 제자로 꼽히면 엄청난 신분 상승이라 등용문이란 이름은 제법 적절했다.
“등용문은 상고의 천궁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 같은데 그러려면 일단 상고의 천궁 제자가 되어야겠군.”
목진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등용문을 노려보며 말했다. 만다라의 말대로 등용문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는 반드시 용패 제자가 되어야만 했다.
상고의 천궁 장경루의 가장 깊숙한 곳은 용패 제자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상고 천궁의 신비로운 장경루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등용문에서 반드시 용패 제자의 신분부터 따내야 했다.
안 그러면 장경루가 있어도 신분 때문에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고, 그제야 땅을 치며 후회해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대일불멸신의 진화법을 얻으려면 목진은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야 했다.
“히히, 제법 흥미로운걸? 난 뭐가 나올까?”
임정은 배시시 웃으며 말하더니 커다란 눈으로 석문을 빤히 쳐다봤고 구유는 주위를 쓰윽 훑더니 흠칫 놀랐다. 어느새 이곳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였고 그중에는 실력이 뛰어난 자들도 제법 있었다.
“등용문이 무엇인지 너만 알고 있는 게 아닌가 봐.”
구유가 나지막하게 한 말에 목진은 그리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들은 상고의 천궁을 다년간 연구했으니 등용문의 정체를 아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상고의 천궁 외곽에 등용문이 세 개 있고 이건 그중 하나일 뿐이야. 아마 등용문이 하나였으면 전장은 더 치열했을 거야.”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가?”
구유도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현재, 이곳에는 천라대륙의 정예급 천재들이 한가득 모였다. 목진은 그들이 어떤 신분을 얻을지 무척 궁금했다.
이에 임정과 구유도 동의하듯 흥미진진한 얼굴로 상황을 살폈다. 그들도 목진처럼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신분을 따내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폭우처럼 내려앉아 그곳은 점점 더 떠들썩해졌다.
“저건 음귀문(陰鬼門)의 귀수, 유회가 아닌가? 저 사람도 왔다니!”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예급 강자도 하나둘씩 나타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목진 등도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눈길을 돌렸는데 십수 갈래의 회색 그림자가 날아와 커다란 나무 위에 내려앉았다. 우두머리는 회색 도포를 입은 사내로 수수하게 생겼지만 눈동자는 회백색이었고 음산한 기운을 내뿜어 주위의 온도가 확 떨어졌다.
“귀수 유회는 강자방 17위로 9급 지존경 정상에 이르렀지.”
목진은 상대방을 바라보며 일전에 봤던 강자방 정보를 떠올렸다.
“강자방 16위인 왕통현도 왔군.”
유회가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어 황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대붕처럼 날아왔다.
* * *
1각도 안 되는 사이, 강자방 20위권에 든 천재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전부 9급 지존경 정상에 이른 실력자들로 하홍보다 강했고 순위권도 그의 앞쪽에 있었다.
그들과 비교하면 하홍을 대체한 강자방 20위 목진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한편, 그들도 등용문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다들 최적의 시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뭐지?”
그런데 그때 목진은 갑자기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어딘가에서 예리하기 그지없는 검기가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슉!
눈 깜짝할 사이, 청색 검광이 휘몰아쳐 주위의 산맥에 닿았고 검광이 사라지자 청색 장검을 등에 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준수하게 생긴 사내가 칼 같은 눈빛으로 주위를 쓰윽 훑자 목진은 피부가 찌릿했다.
또한, 사내가 내뿜는 지극히 강대한 검기에 주위의 공간은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그 사내의 등장은 바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고 일전에 나타난 천재들은 상대방을 쳐다보더니 안색이 순간 어두워진 채 경계 태세를 취했다.
“저 사람은…….”
구유도 이내 정색하며 중얼거렸다. 그녀도 위험한 파동을 읽은 모양이었다.
“저 사람은 강자방 5위인 진경칩이야.”
목진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강자방 20위권에 든 사람들이 이렇게 놀랄 정도면 5위인 진경첩 외에 없을 것이다.
녀석은 비록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9급 지존경 정상이었지만 전투력은 이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정작 진경칩은 사람들의 시선을 전부 무시한 채 등용문을 쳐다보기만 했다.
“우리 쪽에 정예급 인물이 왔군.”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진경칩은 현장에서 순위가 가장 높은 사람으로 천라대륙 젊은이 중에서도 정예급에 속했다.
그러니 진경칩이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도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9급 지존경 정상에 이른 유회 등도 무시했다.
유회, 왕통현 등은 녀석의 그런 태도가 언짢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진경칩은 그들과 같은 9급 지존경 정상이지만 정작 싸우면 아무도 그의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자방 5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위잉.
그때 갑자기 어딘가에서 울림이 들려오자 진경칩은 순간 안색이 확 어두워져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봤다. 목진은 녀석의 표정 변화에 깜짝 놀랐다.
도대체 누구기에 진경칩이 이토록 놀란단 말인가?
설마…….
목진도 한껏 정색하며 고개를 들어 먼 곳 하늘을 쳐다봤는데 미세한 검은 반점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
그건 몇 장 정도 되는 검은색 날벌레로 날개가 네 개나 나 있었는데 녀석한테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검은색 날벌레 위에는 하얀색 치마를 두른 여인이 서 있었는데 머리를 대충 묶은 채 옥적을 쥐고 생긋 웃는 모습이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사나운 검은색 날벌레와 엄청난 대비를 이뤄 다들 얼떨떨해졌다.
한편, 목진은 하얀색 치마를 입은 여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는데 구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천라대륙 젊은이 중에서 진경칩이 이렇게 경계하고 특이한 방식으로 등장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바로 강자방 2위인 충사, 소경음이었다.
소경음마저 여기 오다니!
사람들은 어느새 허공에 떠 있는 백의 여인한테 시선을 모았다. 그림에서 걸어 나온 듯한 아름다운 여인과 달리, 날개가 네 개나 달린 벌레가 내뿜는 엄청난 살기에 다들 소름이 쫙 끼쳤다.
엄청난 대비로 인해 백의 여인은 왠지 괴이해 보였다.
한편, 잠시 조용해졌던 사람들은 갑자기 경외의 눈빛으로 소경음을 쳐다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소경음이라니!”
“저 사람이 정말 소경음이란 말인가? 참 예쁘군. 그런데 타고 온 검은 벌레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소경음은 충사라 전투 수단이 영충 배양이네. 저 날벌레의 이름은 사익령충(四翼靈蟲)으로 속도가 엄청 빠른데 전력을 다해 비행하면 9급 지존경 원만급 강자를 따라잡을 수 있다네.”
“강자방 2위는 역시 남다르군.”
* * *
목진도 한껏 정색한 채 소경음을 노려봤다. 그 또한 그녀의 남다른 품위에 놀랐지만 바로 위험한 기운을 감지했다.
목진은 엄청난 적을 만난 듯 상당한 위협감을 느꼈다.
소경음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긴, 가루라 같은 인물을 꺾고 강자방 2위에 오른 여인이 상대하기 쉬울 리 있을까? 비록 순위가 모든 걸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소경음이 충분히 강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편, 임정은 흥미진진하게 소경음 쪽을 쳐다봤는데 여인보다는 그녀가 타고 온 검은색 날벌레가 더 궁금한 모양이었다.
정작 소경음은 사람들의 반응 따위는 무시한 채 강자방 20위권에 든 유회, 왕통현 등을 쓰윽 훑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경음이 자신한테 관심을 기울일까 봐 겁이 난 듯했다.
여리여리해 보이는 소경음은 외모와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가장 좋아하는 일은 바로 강한 상대와의 대결을 통해 영충을 배양하는 것이었다.
강자방 20위권에 든 사람 중 주염, 가루라 등 최정예급 강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소경음을 우연히 마주치면 보통 영충의 배양을 위해 한 번쯤은 싸웠었다.
그런데 포악한 영충을 상대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 소경음은 진경칩을 바라보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진경칩, 너도 여기 왔구나. 저번에 너와 내 영검충은 아직 승패를 가리지 못했어.”
진경칩은 순간 표정이 확 굳어졌다.
“너와 놀아줄 시간이 없으니 다른 사람을 찾아.”
이에 소경음은 가볍게 웃더니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자네가 바로 반보 9급 지존경의 실력으로 하홍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목진인가?”
소경음이 궁금한 듯 질문을 던지자 다들 목진한테 시선을 돌렸다. 목진도 놀란 듯 멈칫하더니 금세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운이 좋았을 뿐이니 그리 놀랄 것 없네.”
진경칩 등의 태도로 봤을 때, 여리여리해 보이는 소경음은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에 목진은 최대한 빨리 대화를 끝내려 했다.
“허허, 상당히 신비로운 지존법신을 수련했다고 들었는데 나한테 보여줄 수 있겠나?”
소경음이 미소를 지으며 묻고는 옷깃을 휘날렸는데 한 줄기 흑광이 솟구쳐 눈 깜짝할 사이에 십수 장 정도로 큰 영충으로 변했다.
사지를 포함해 몸통까지 회백색을 띤 영충은 암석과 같았고 표면에 영력 무늬가 가득 새겨졌으며 강력하기 그지없는 힘이 폭발했다.
쿵!
회백색 영충이 빠르게 목진한테 달려가 주먹을 휘두르자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파문이 일었다.
소경음은 목진의 뜻을 물어보지도 않고 갑자기 나섰고 목진은 영충이 주먹을 휘두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