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화. 주염
오묘하기 그지없는 광인에는 무궁무진한 돌풍이 깃들었는데, 그건 세상이 만들어지고 생긴 첫 번째 돌풍처럼 파멸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광인에서 엄청난 흡입력이 폭발해 청색 소용돌이를 꿀꺽 삼켰고 그곳은 순식간에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자그마한 광인만 덩그러니 남았다.
위잉!
광인이 파르르 떨더니 갑자기 풍부의 주인에게 향했고, 광인이 지나간 곳마다 공간이 폭발해 수많은 공간 파편이 되었다. 이는 사라지지 않고 광인의 주위에 모여 거대한 용의 형태를 이뤘다.
크으으으!
엄청난 공격에 풍부의 주인은 나지막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는 목진의 공격에서 파멸의 기운을 느끼고 체내의 흑기를 미친 듯이 방출했는데 흑기는 그의 앞쪽에 모여 백 장 정도의 구멍을 만들었다. 사악하기 그지없는 구멍은 세상 만물을 오염시키고 삼킬 것만 같았다.
쿵!
청색 광인은 수많은 공간 파편과 함께 사정없이 검은색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검은색 구멍에서 청광을 발하더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충격이 폭발했다!
쿠쿵!
검은색 구멍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이에 대전의 돌기둥이 무너지면서 견고하기 그지없는 바닥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목진 등은 무서운 충격파에 닿을까 봐 황급히 피신했다.
난폭한 충격파는 한참 지나서야 점차 사그라들었고, 목진 등은 대전 내부가 완전히 조용해진 뒤에야 고개를 들고 상황을 살폈다.
풍부의 주인은 여전히 저 멀리 허공에 서 있었지만 온몸을 감싸고 있던 흑기는 거의 다 사라지고 육신에 균열이 일더니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다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떨어져 나갔고 그 속에서 새로운 풍부의 주인이 나타났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괴상해 보이지 않았고 사악한 기운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위잉.
청색 깃털 부채가 날아가 풍부의 주인 주위를 맴돌며 나지막하게 울었다.
“저 사람이 진정한 풍부의 주인 같아.”
사악한 기운은 전부 사라졌지만 풍부 주인의 육신이 투명한 것으로 보아 곧 사라질 것 같았다.
그때 서서히 눈을 뜬 풍부의 주인은 아수라장이 된 대전을 둘러보다가 주위를 맴도는 청색 깃털 부채를 보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청색 깃털 부채를 가볍게 때리더니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없애줘서 고맙다는 듯 목진 등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잇따라 그의 투명한 육신이 점차 흐릿해지더니 체내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건 영체도 곧 사라질 거라는 의미였다.
이에 주위를 맴돌던 청색 깃털 부채는 괴로운 듯한 소리를 냈는데 풍부의 주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겨 세 갈래 빛줄기를 목진 등에게 쐈다. 빛줄기는 풍부 주인의 기운이 깃든 세 갈래 청색 돌풍이 되어 세 사람에게 향했다.
이건 풍부 주인의 증표로 이것만 있으면 목진 등은 천지의 세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목진 등이 공손하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자 풍부의 주인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고 그 육신도 바로 부서져 사라졌다. 청색 깃털 부채에서 발하던 빛도 서서히 사그라들더니 주인이 없는 상태로 돌아가 허공에 조용히 더 있었다.
그 광경에 목진 등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이곳을 떠났더라면 증표는 물론이고 풍부의 보물들을 수중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목진이 나서서 주인이 없는 청색 깃털 부채를 거두려 했는데 멀지 않은 곳에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암장이 흐르는 거수가 나타나 부채를 낚아채며 뜨거운 화염이 깃든 것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때마침 잘 왔군. 풍신선(風神扇)은 내 것이 되려 했나 보군.”
암장 거수가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주인이 없는 청색 깃털 부채를 쥐자 목진은 표정이 확 굳어졌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꼼수에 넘어갈 줄 몰랐다.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몰래 숨어서 이따위 짓을 하는 건가?”
구유도 이내 정색하며 외쳤다. 자신이 애써 획득한 전리품을 누군가 갑자기 낚아채면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하여 구유는 바로 투명한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보라색 깃털을 소환했는데 무서운 온도에 주위의 공간이 격렬하게 일그러졌다.
슉!
보라색 깃털은 빠르게 암장 거수를 공격했다.
그런데 보라색 깃털이 막 닿으려 할 때, 그곳 공간에 다시 파동이 일더니 또 하나의 암장 거수가 나타나 투명한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보라색 깃털을 낚아챘고 암장을 흘려 투명한 화염과 대결을 펼쳤다.
암장 거수 주인의 실력이 더 강해 투명한 화염은 결국 꺼졌다.
“음? 이건 무슨 화염이기에 이렇게 완강하단 말인가?”
투명한 화염은 꺼졌지만 암장 거수의 주인은 흠칫 놀랐다. 일반 화염은 그한테 아무런 타격도 주지 않았는데 투명한 화염에서 위협감을 느낀 것이다. 암장 거수 주인의 실력이 더 강하지 않았다면 이를 억제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잇따라 암장 거수를 내민 공간이 파르르 떨리다가 누군가 걸어 나오자 목진 등은 바로 시선을 돌렸는데 불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적발에 온몸에서 화염이 철철 흐르는 것이 화산 같았다. 그의 몸에서는 지극히 난폭하고 위험하며 뜨거운 파동이 방출되었다.
목진은 상대방의 출현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상대방한테서 일전에 마주친 소경음보다 훨씬 위험한 파동을 읽었다. 천라대륙에서 이런 존재는 아마 한 사람뿐일 것이다.
“무려 강자방 1위인 주염이 이따위 짓을 할 줄은 몰랐네.”
목진은 무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옆에 서 있던 구유도 전혀 놀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상대방의 정체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이에 적발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수중의 청색 깃털 부채를 만지작거렸다.
“보물은 인연이 닿은 사람이 얻는 법, 난 여기 들어오자마자 부채가 주인이 없는 것을 발견해 수중에 넣었을 뿐이니 이 부채가 나와 인연이 있다는 것 아니겠나?”
“쳇, 염령족 사람들은 왜 그리 철면피야?”
옆에 서 있던 임정이 피식 웃으며 말하더니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주염을 노려봤다.
“빙아, 저 녀석을 혼 좀 내줘!”
말을 마친 임정이 손을 휘두르자 빙령우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한기를 방출하며 주염의 뒤쪽에 나타나 한기로 가득 찬 장창으로 녀석의 뒤통수를 찔렀다.
쿵!
그런데 그때, 주염이 갑자기 뒤로 손을 휘두르자 손바닥에서 무섭기 그지없는 뜨거운 영력이 분출되었다.
퍽!
장창은 바로 녹아내렸고 빙령우도 큰 타격을 입고 수천 장 정도 튕겨 나가서야 간신히 멈춰 섰는데 팔에 그을린 흔적이 남았다.
주염은 바로 지극히 강력한 실력을 선보여 단번에 실력이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른 빙령우를 물리쳤다.
목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살폈는데 주염이 괜히 강자방 1위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라면 주염은 아마 9급 지존경 원만급 정상에 이르렀을 것이고 지지존과는 반보 차이일 것이다. 목진은 녀석의 엄청난 실력에 적잖게 놀랐다.
“음? 빙령우라니, 자네 빙령족 사람인가?”
빙령우를 물리친 주염은 흠칫 놀라며 임정을 바라봤다.
빙령우는 빙령족 사람만 만들 수 있는 물건으로 염령족 사람인 그는 그 속에 깃든 특수한 한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너랑 무슨 상관이야.”
그의 물음에 임정은 상당히 언짢아하며 인상을 확 썼다.
“빙령우가 대단하긴 하지만 나를 상대하기엔 조금 부족해서 말이네.”
주염이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하더니 목진 등을 바라봤다.
“당신들이 보통 사람이 아닌 건 잘 알지만, 이 부채는 나한테 넘기면 안 되겠나?”
“자네가 뭐라고 우리가 부채를 줘야 한단 말인가?”
구유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성물의 가치는 지존영액을 적어도 일억 방울은 줘야 얻을 수 있는 보물로 정예 세력을 탈탈 털어도 모자랐다. 그런데 주염은 입만 대충 놀리고 타인의 전리품을 가져가려 하고 있었다. 이에 구유는 너무 화가 났다.
녀석의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으면 그녀는 이미 나섰을 것이다.
“내가 널 쓰러뜨리지 못할 것 같아?”
임정은 어느새 안정을 되찾고 주염을 노려보며 물었다.
이에 주염은 흠칫하며 임정을 바라봤다. 그는 어여쁜 소녀한테서 왠지 모를 위협감을 느꼈고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볍게 드리우며 말했다.
“그럼 어디 싸워봅시다.”
목진 등이 숨긴 필살기가 있든 말든 상관없었다. 주염은 염령족의 차기 소족장이라 자부심이 엄청 났다. 하지만 그가 목진 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 보물만 얻고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떠났을 것이다.
그때 임정이 무덤덤한 얼굴로 앞으로 나서며 길쭉한 손끝에 영광을 모았다.
그런데 목진이 갑자기 앞에 막아 나서자 임정은 흠칫 놀라 목진을 바라봤다. 임정은 목진의 성격상 절대 주염의 유명세에 겁이 나서 이러는 것은 아닐 거라 확신했다.
“나한테 맡겨.”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임정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는 목진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싸우면 목진은 절대 주염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목진은 막 9급 지존경에 이르렀지만 주염은 9급 지존경 원만급 강자였다.
임정은 결국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절대 승산 없이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주염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목진을 쓰윽 훑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자넨 절대 날 못 이기네.”
목진을 무시해서 한 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그는 신비롭고 어여쁜 소녀 외에 목진과 구유한테서 전혀 위협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목진의 무모함에 조금 놀랐다.
그런데 목진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옆에 놓인 거대한 돌기둥을 두드렸다. 그건 대전에 남은 유일한 기둥이었다.
“지금이라도 물건을 돌려주면 없던 일로 하겠지만, 아니라면 자네도 무사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네.”
목진의 말에 주염은 피식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 말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주염은 겨우 9급 지존경에 이른 녀석이 자신한테 이리 말한다는 것이 너무 우스웠다. 이런 일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 제안을 거절한 건가?”
“그렇네, 거절이네.”
목진이 입을 삐쭉 내밀며 묻자 주염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목진은 한숨을 쉬며 돌기둥을 가볍게 때렸다.
“너무 아쉽군. 자네 실력은 확실히 강하지만 최후의 승자가 꼭 실력이 제일 강한자란 법은 없지 않나?”
“음?”
주염은 고개를 숙여 손에서 흘러내리는 빨간색 암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최후의 승자는 누구란 말인가?”
“운이 좋은 사람이네.”
목진이 웃으며 한 말에 주염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잇따라 목진은 다시 옆에 놓인 돌기둥을 두드렸는데 주염은 상대방의 손에서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기둥에 스며든 것을 발견했다.
순간, 대전이 파르르 떨렸고 위쪽에서 암석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주염은 바로 고개를 들었는데 천장이 쩍 갈라지더니 와르르 무너져 외부의 하늘이 보였다. 그는 드디어 대전 밖의 청색 돌풍으로 이뤄진 거대한 영진을 발견했다.
주염은 미리 준비했는데도 한참이나 애를 써서야 영진을 뚫고 대전에 들어왔기에 이 영진만큼은 절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대전 밖의 종사급 영진이 목진과 미묘한 연계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는 순간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그때 목진도 고개를 들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넸다.
“떠나고 싶지 않으면 영원히 여기 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