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화. 용섬(龍島)
다들 빙령우에게서 놀라운 영력 파동을 느끼고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른 빙령우라니…….”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중얼거리더니 바로 도망갔다. 이 정도 등급의 빙령우를 내세울 수 있는 존재라면 그들이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다들 눈썰미가 엄청나군.”
목진은 풍부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더니 이내 감탄했다. 그들이 대전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곳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
목진 등이 풍부에서 가장 좋은 보물을 수중에 넣었으니 망정이지 일이 하마터면 더 복잡해질 뻔했다. 목진은 다시 주염의 모습이 떠올라 입을 삐쭉 내밀었는데 구유는 그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어찌 된 일인지 천라대륙 강자방 4위권에 든 사람들이 전부 다 너를 싫어하네?”
이에 목진도 피식 웃었다. 구유 말대로 목진이 하홍의 한쪽 손을 부러뜨렸으니 하우는 절대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강자방 3위인 가루라와는 반드시 싸워야만 했다. 또 유일하게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소경음도 이상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1위인 주염과도 불쾌한 일이 생겼으니…….
일반인들은 그중 한 사람만 건드려도 겁에 질려 어쩔 바를 모르는데 목진은 네 사람 모두 건드렸으니 말썽꾸러기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목진은 후회하지 않았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목진은 분명 똑같이 행동 했을 것이다.
목진은 여태껏 수많은 강자를 적으로 뒀지만 최종 승자는 언제나 변함없었다.
하여 목진은 앞으로도 그 결과는 변치 않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앞쪽을 바라봤다. 자신마저 믿지 못하면 무슨 수로 강해진단 말인가?
“일단 적당한 곳을 찾아 휴식하자.”
목진은 일전의 대전으로 영력 소모가 엄청 났고 상태가 너무 안 좋아 휴식이 필요했다. 게다가 막 획득한 풍신선도 제련해 온전히 그의 물건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와도 쉽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이에 호풍술을 연구하려던 구유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임정은 묵묵히 그들을 따랐다.
이렇게 세 사람은 풍부에서 나와 한참 지나서야 자그마한 외진 섬을 찾았다. 이곳은 수호 영진마저 없어 너무 평범해 다들 들어오지 않은 곳이었다. 이에 목진 등은 이곳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그들은 섬에 있는 파손된 석탑으로 들어갔다. 목진은 석탑의 1층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자그마한 수호 영진을 친 뒤에야 깊게 숨을 들이켜며 청색 깃털 부채를 꺼내 이를 탐욕스럽게 쳐다봤다.
풍신선은 목진이 획득한 두 번째 성물이었다. 성진진마탑보다는 못하지만 그럴 만도 한 것이 성진진마탑은 전주의 물건이고 풍신선은 부주의 물건이었다. 지위가 현저히 차이가 나는 두 물건의 위력이 비슷할 리 없었다.
그러나 목진은 오히려 기뻤다. 그는 아직 지지존이 아니라 너무 강대한 성물은 장악하기가 어려웠다.
현재 그한테는 풍신선 정도가 딱! 이었다.
목진은 바로 영력을 끌어올려 풍신선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영력 화염이 활활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청색 깃털 부채를 감쌌는데 그 엄청난 온도에 주위의 공간마저 일그러졌고 공기에서 불에 그을린 냄새가 전해졌다.
그러나 영력 화염이 아무리 뜨거워도 청색 깃털 부채는 끄떡없었고 발하는 청광마저 영력 화염을 무시하듯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러나 목진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성물이 그리 쉽게 제련할 수 있는 물건이었으면 오히려 의심했을 것이다.
또한, 풍신선의 주인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성물은 벌써 그를 공격했을 것이다.
그때 목진이 풍신선을 노려보며 옷깃을 휘날리자 지존영액으로 이뤄진 홍류가 주위에 나타났고 웅장한 영무가 피어올라 석탑을 가득 채웠다.
풍신선의 제련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목진은 대량의 지존영액의 힘을 빌려 천천히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준비를 마친 목진이 서서히 눈을 감자 지존영액으로 이뤄진 영력 줄기가 부단히 목진의 체내에 스며들며 소모한 영력을 보충해 주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목진 주위를 맴돌던 지존영액은 점차 줄어들었고 영력 화염으로 온몸을 감싼 풍신선은 흐릿해지더니 안개가 피어오르며 미세한 청색 소용돌이를 이뤘다.
소용돌이는 작고 정교했지만 녀석의 출현에 주위의 공간이 순간 휘청거렸고 그 구역에 광풍이 휘몰아쳐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목진은 꼭 감았던 눈을 뜨고 풍신선의 중심에 나타난 소형 소용돌이를 보고는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건 풍신선의 핵심으로 구천에서 만 년이란 시간이 지나야 겨우 생성되는 한 갈래 현황 강풍이었다. 풍신선이 진정한 성물이 될 수 있었던 건 진귀한 현황 강풍을 핵심 재료로 했기 때문이었다.
하여 풍신선을 제련하려면 현황 강풍에 자기만의 낙인을 남겨야 했다.
후우.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혀를 깨물어 정혈을 내뱉었는데 순수한 영력이 깃든 정혈 때문에 영력 소모가 확 늘어났다.
영력이 깃든 정혈은 상당히 진귀해 많이 잃을수록 본체에 타격이 컸고 자칫 잘못하면 영력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목진은 진정한 성물을 제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절대 정혈을 내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정혈은 풍신선의 중심에서 휘몰아치는 현황 강풍으로 향했는데 곧바로 스며들지 않고 저항을 받은 듯 겉돌았다.
이에 목진이 다시 눈을 감고 영력 화염을 움직여 고온을 방출해 현황 강풍을 뜨겁게 달구자 정혈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목진은 조용히 기다리다가 정혈이 강풍에 완전히 스며든 뒤, 낙인을 남기기만 하면 풍신선은 비로소 목진의 것이 될 것이다.
이리되면 누구든 풍신선을 강제로 빼앗으려 해도 실력이 그보다 훨씬 강하지 않고서는 절대 그의 정혈 낙인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
만약 목진이 정혈 낙인으로 풍신선의 핵심을 없애 성물의 폭발을 유도하면 그 위력은 진정한 지지존이라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성물을 탐내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에 목진은 정혈까지 내세우며 시간을 들여 낙인을 남기려는 것이었다.
이제 목진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 뿐이었다.
* * *
한편, 구유는 눈을 감은 채 허공에 조용히 서서 영력을 거둔 채 두 손을 활짝 펴고 호풍술의 심결을 읊었다.
잠시 후, 하늘에 바람이 모이더니 구유의 주위를 맴돌았는데 몸이 점차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이 천지를 마음껏 날아다니는 바람이 된 것 같았다.
호풍술은 보조 작용의 소신통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오묘해 수련에 성공하면 그 속도가 진정한 지지존 못지않을 것이다.
지지존을 제외하고 아무리 주염이라도 절대 구유의 속도를 따르지 못할 것이다.
구유는 벌써 기대가 되었다.
* * *
목진과 구유가 수련하느라 정신없었을 때 임정은 자그만 섬을 돌아보며 보물을 찾으러 다녔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 시무룩해져 돌아왔다.
그는 두 사람을 방해할 수 없어 한참 기다리다가 몰래 섬에서 나와 혼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람들을 적잖게 마주쳤고 다들 여인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몹쓸 궁리를 했는데 엄청난 한기를 내뿜는 빙령우가 동행하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바로 도망갔다.
그 후로 임정은 거침없이 돌아다니며 돌섬들을 살피다가 보물을 제법 발견했다. 하지만 목진과 함께 돌아다닐 때와 비교하면 훨씬 못 미쳤다.
이에 임정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평범한 보물은 성에 차지 않았고 마음에 드는 보물은 단 한 가지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행히 임정은 그사이, 용부에 관한 정보를 획득했다.
용부도 구부 중 하나로 풍부보다 실력이 더 강했다.
하여 임정은 혼자서 용부로 향했는데 정작 도착해보니 그 주위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소식을 듣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풍부보다 훨씬 더 떠들썩했다.
주위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다들 감히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임정이 주위를 쓰윽 훑어보고는 바로 알아챘다. 거대한 돌섬에 은은한 안개가 피어올랐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용식독(龍息毒)이었다.
“용식독이라니, 이것 때문에 다들 감히 들어가지 못했던 거였군.”
임정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용식독은 용족의 용시로 제련한 맹독으로 지극히 난폭해 하위 지지존이라도 일단 대량 흡입하면 크게 다칠 것이고 지지존에 이르지 않은 강자들은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임정은 가볍게 웃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용식독으로 임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임정이 빙령우를 거두고 주먹을 꽉 쥐자 정교한 백옥 조롱박이 나타났고 그 속에서 백옥 광막을 내뿜어 온몸을 감쌌다.
준비를 마친 임정은 아무렇지 않게 돌섬으로 들어갔다.
이와 동시에, 거대한 섬의 다른 쪽에 서 있던 한 여인도 느긋하게 섬에 들어갔다. 그녀는 고운 빛깔의 치마를 입었고 곱슬거리는 장발에 아름다운 몸매를 갖고 있었다. 절세의 미모 또한 얇은 천으로 가렸는데도 감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푹 빠졌다.
이어 그녀의 어깨에 채색 뱀이 나타나더니 입을 쩍 벌려 용식독을 모조리 흡수했다. 용족마저 피하기 바쁜 독기는 자그마한 뱀한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렇게 채색 치마를 입은 신비로운 여인도 서서히 섬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섬은 폐허가 된 채 은은한 안개가 피어올랐고 방대한 지역에서는 생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악.
미세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한 여인이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나타나 암석에 뛰어오르더니 멀리 내다보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이렇게 오래 걸었는데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다니…….”
임정은 얇은 광막을 뒤집어쓴 채 주위의 독 안개를 완전히 차단했다. 용도는 일전에 발견했던 풍도보다 훨씬 컸고 독 안개 때문에 한 치 앞을 보기 힘들어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임정은 여태껏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방법을 바꿔봐야겠어.”
임정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손바닥에 빛이 모이더니 갓난아기 주먹만 한 벌레가 나타나 머리에 달린 더듬이를 부단히 흔들었다.
이건 진귀한 보물을 찾는 벌레로 악조건의 환경에서 천지의 미세한 파동을 느끼며 어딘가에 숨은 보물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다만, 독 안개로 가득 찬 환경에서는 녀석도 다칠 수 있기에 지금껏 아껴왔는데 녀석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시간만 낭비할 것이다.
“가거라.”
임정이 손을 가볍게 들자 녀석은 날아다니며 주위를 쓰윽 훑더니 오른쪽 어딘가를 향했다.
그러다 1각 정도 날아가 폐허가 된 건물에 내려앉았다. 임정은 독 안개가 몸에 깃들어 온몸이 까맣게 변한 벌레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고마워.”
그녀는 벌레의 몸을 가볍게 흔든 뒤, 정화 작용이 있는 액체로 가득 찬 옥병에 넣어 체내의 독을 없애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위를 훑더니 이내 화색이 되었다.
먼 곳에 거대한 폐허가 보였는데 한때는 규모가 상당했던 큰 대전 같았다.
폐허를 대충 훑은 임정은 그 중심으로 눈길이 갔는데 백골 왕좌가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그 위에 강력한 압박감이 남아있었다. 원고 시기, 백골 왕좌의 주인은 분명 큰 인물이었을 것이다.
잇따라 그녀는 고개를 들고 왕좌의 위쪽을 쳐다봤는데 사람 머리 정도의 큰 수정 구슬이 있었다.
동그란 용령주는 은은한 빛을 발했고 그 속에 백룡이 누워있었으며 웅장한 영력 파동을 내뿜었다.
“이건…… 용령주(龍靈珠)잖아?”
임정은 백룡이 깃든 광주를 보더니 흠칫 놀랐다. 실력이 강대한 용족은 죽을 때, 자기 영력을 봉인해 용령주를 만들어낸다고 했는데 이는 주인의 일생의 순수한 영력이 모였을 뿐만 아니라 혈맥의 힘까지 깃들어 있었다. 그걸 제련해 흡수하면 수련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용령주는 아마 용부의 주인의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생전에 풍부의 주인보다 더 강한 상위 지지존에 가까운 실력자였으니 용령주의 가치는 목진이 획득한 풍신선 못지않을 것이다.
“드디어 좋은 물건을 발견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