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화. 탄천망(吞天蟒)
임정도 눈을 부릅뜨고 소소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염제의 딸이야? 나도 아버지한테서 염제 선배님에 관해 듣곤 했는데 선배님을 아주 좋아해. 네가 염제의 딸인 줄 알았으면 절대 용령주를 탐내지 않았을 거야.”
임정은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고 아버지와 실력이 비슷한 염제도 숭배했다. 그런데 소소가 염제의 딸이라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소소는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필살기까지 내세우며 싸우다가 무경과 무한의 화역의 사이까지 나빠질 뻔했다.
용령주 하나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상황을 살피던 목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여인은 성격이 완전히 달랐고 성질을 부리다가 싸우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리되면 목진의 입장만 난처해질 것이다.
목진은 금세 사이가 좋아진 두 사람을 보고는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고의 천궁에는 왜 왔어?”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상고의 천궁은 무려 천제께서 만드신 곳이잖아? 마침 수련을 마쳐 한번 와봤어. 북계에 가서 너를 찾으려 하다가 너라면 분명 여기 있을 것 같아 바로 왔지.”
소소는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쓰윽 훑더니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실력이 빨리 늘었네?”
목진은 용봉천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3급 지존경이었는데 2년도 안 된 사이에 9급 지존경에 이르렀다. 그의 엄청난 수련 속도에 소소는 적잖게 놀랐다.
“너보다야 할까?”
목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소소의 진정한 실력에 목진도 적잖게 놀랐다. 그녀는 주염 못지않은 실력자로 9급 지존경 원만급 강자 중 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이게 용령주야?”
목진은 폐허 속 백골 왕좌의 위쪽에 있는 수정 구슬을 가리키며 물었다. 임정과 소소는 이 물건 때문에 싸우기 시작한 듯했다.
이에 두 여인은 서로 마주 보더니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떡할 생각이야?”
용령주는 하나뿐이라 한 사람은 포기해야 했다.
“내가 포기할게. 소소는 아직 증표를 획득하지 못했고 난 용령주가 없어도 돼.”
임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용령주가 진귀하긴 하나 이보다 더 진귀한 물건을 수도 없이 봐온 그녀는 소소와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소소는 임정의 말에 멈칫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 임정아. 난 확실히 용령주가 필요해. 앞으로 다른 보물을 획득하면 너한테 줄게.”
잇따라 채소의 자그마한 채색 뱀이 다시 나타났는데 혀를 날름거리며 용령주를 바라보았다.
“별말씀을, 얼른 용령주나 가져.”
임정이 배시시 웃으며 한 말에 소소는 바로 백골 왕좌로 향했다. 그런데 그 주위 백 장 범위에 들어서자 목진이 앞을 막아 나섰다.
“왜?”
소소는 어리둥절하여 목진을 바라봤고 임정과 구유도 바로 달려왔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뭔가 수상해.”
목진은 백골 왕좌를 보더니 주위를 쓰윽 살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소소가 왕좌에 가까워지자 폐허에서 지극히 은밀한 파동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소소, 임정마저 이를 발견하지 못해 바로 막아 나섰던 것이다.
목진이 바닥에 손을 대고 눈을 감자 소소, 임정, 구유는 바로 그 주위를 감쌌다.
잠시 후, 목진이 다시 눈을 떴는데 손에서 영광이 번쩍였다.
“역시!”
쿵!
목진이 손을 힘껏 휘두르자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영력 파도가 그의 손을 중심으로 주위로 퍼져나갔다.
퍽! 퍽! 퍽!
폐허 속에서 수많은 암석이 폭발하더니 대지가 와르르 무너지며 영력 광선이 나타나 얽히고설켜 거대한 영진을 이뤘다. 이는 마침 백골 왕좌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또한, 움푹 파인 대지에는 거대한 백룡이 누워있었고 사망의 기운으로 휩싸인 녀석의 눈에서는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녀석은 죽은 것처럼 조용히 누워있었다.
영진 덕분에 목진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었다.
“시괴룡(屍傀龍)이라니…….”
소소 등은 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찬 백룡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그들은 녀석이 두렵지 않았지만 거대한 영진에서 위험한 파동을 느꼈다.
“이건 무슨 영진이야?”
소소가 질문을 던졌다. 그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뛰어들었다면 아마 크게 다쳤을 것이다.
“이건 시영진(屍靈陣)으로 일단 들어가면 영력이 억제돼. 저 안에 모인 사망의 기운으로 보면 9급 지존경 원만급 강자는 기껏해야 7급 지존경의 실력밖에 사용할 수 없을 거야.”
목진의 말에 소소와 임정은 깜짝 놀랐다. 그들이 7급 지존경 정도의 실력밖에 사용할 수 없으면 분명 시괴룡한테 잡아먹힐 것이다.
폐허에 엄청난 살기가 숨어있었다.
“그럼 어떡해?”
소소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강제로 영진을 뚫으면 용령주에 영향을 줄 것이다.
“영진은 나한테 맡겨.”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목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두 손을 모아 신속하게 결인했다. 그러자 영광이 요동치며 영인을 이뤄 앞쪽 허공에 스며들었다.
해당 영진이 완전한 형태였으면 종사급 정도는 될 텐데 만 년도 넘는 시간 동안 조금씩 망가져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덕분에 공략할 곳이 많아 목진이 이토록 자신만만했던 것이었다.
잇따라 영진이 파르르 떨리더니 영력 광선이 간섭을 받은 듯 점차 흐릿해졌다.
그렇다고 영진을 직접 부수지는 않았다. 그리하면 많은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에 그는 영진의 중요한 부위만 망가뜨려 혼란을 일으킴으로써 영진이 스스로 부서지도록 했다.
영진이 파르르 떨리자 옆에 서 있던 소소는 조금 놀란 눈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그가 이 정도로 영진에 조예가 깊은 줄 몰랐다.
위잉.
미세한 파동이 일더니 영력 파동이 폭발했고 영진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순간 영력 광점이 사정없이 휘몰아쳤고 그 속에 깃들었던 사망의 기운도 미친 듯이 솟구쳤다. 이에 하늘마저 어두워졌다.
다행히 목진 등은 미리 웅장한 영력으로 육신을 감싸 사망의 기운을 막아냈다.
1각이 흐르자, 사망의 기운은 완전히 사라졌고 소소, 임정 등이 고개를 들어보니 영진 역시 완벽히 사라지고 없었다.
“제법이군. 안 본 사이에 실력이 많이 늘었네?”
소소는 가볍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녀는 목진의 수단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녀였으면 강제로 영진을 뚫었을 텐데 그랬다면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 있는 취약한 용령주까지 상하게 했을 수도 있었다.
“시괴룡도 있어.”
목진은 온몸에서 사망의 기운을 방출하는 백룡을 가리키며 말했다. 녀석이 내뿜는 사망의 기운은 너무 난폭해서 일단 체내에 깃들면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저건 내가 해결할게.”
소소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니 어깨에 누워있던 채색 뱀을 손에 쥐고 가볍게 머리를 다독였다.
슉!
자그마한 채색 뱀이 일어서더니 한 갈래 채색 빛이 되어 날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백룡의 위쪽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크으으으!
백룡은 이미 죽었지만 본능적으로 나지막하게 울부짖으며 입을 쩍 벌려 회색 사망의 기운을 내뿜었고 사망의 기운이 지나간 곳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그러나 자그마한 채색 뱀은 아무렇지 않았고, 사망의 기운이 곧 닿을 때가 돼서야 서서히 입을 벌려 흑광을 모았다.
스읍!
채색 뱀의 입은 크지 않았는데 무서운 흡인력이 폭발하자 요동치는 사망의 기운을 전부 흡수했다. 체내에 사망의 기운이 깃들었지만 녀석은 여전히 끄떡없었다.
녀석은 다시 입을 쩍 벌리며 혀를 날름거리더니 흑광을 방출해 백룡의 육신을 감싼 뒤 조금씩 끌어당겼다.
백룡은 상대방의 구속에서 벗어나려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흑광이 더 꽉 조였다. 그는 결국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반면, 자그마한 채색 뱀은 백룡을 꿀꺽 삼키더니 배가 부른 듯 트림을 하고는 느긋하게 돌아가 소소의 몸으로 숨어들었다.
그 광경에 목진 등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시괴룡이 죽었다.
녀석은 비록 지능은 없지만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르는 강자나 다름없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제법 골치 아팠을 텐데 자그마한 채색 뱀은 아무렇지 않게 백룡을 꿀꺽 삼켰다.
“얜 도대체 뭐야?”
목진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 아이는 칠채탄천망으로 대천세계의 신수가 아니야. 대신 잘만 키우면 대천세계의 엄청난 신수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게 되지.”
소소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임정이 덧붙였다.
“아버지한테서 들은 바로 무한의 화역의 안주인께서도 신비로운 뱀을 키우시는데 그 뱀은 천지를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상위 지지존을 산 채로 집어삼킨 적도 있다고 들었어. 용족의 강자도 신비로운 뱀은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고 하셨어.”
“그 사람이 바로 내 어머니야.”
소소가 생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어머니의 탄천망은 내 것보다 훨씬 강해. 이 아이가 시괴룡을 쉽게 죽일 수 있었던 건 녀석이 지능이 없어 피할 줄 몰라서였어. 만약 녀석이 피할 수 있었다면 절대 그리 쉽게 죽지 않았을 거야.”
목진은 혀를 끌끌 차며 감탄했다. 그는 탄천망에 대해 처음 들었는데 위력을 보니 어른이 되면 놀라운 존재로 거듭날 것 같았다.
무한의 화역은 역시 대단했다. 안주인의 실력이 이렇게 놀라운데 말로만 듣던 염제는 어떨까?
그는 아마 천지존 중에서도 최정예급에 속할 것이다.
잇따라 시괴룡을 없앤 소소는 곧장 백골 왕좌에 다가가 용령주를 취했고 자그마한 채색 뱀은 다시 나타나 입을 쩍 벌려 구슬을 삼키더니 체내에서 은은한 빛을 발했다. 몸 표면의 채색 무늬가 전보다 산뜻하고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
용령주를 삼킨 탄천망은 정력 소모가 많은 듯 소소에게 숨어들어 휴식을 취했다.
이를 지켜보던 목진은 흠칫 놀랐다. 탄천망이 용령주를 삼키자 소소 체내의 영력 파동마저 강력해진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소와 탄천망은 서로 연결되어 통하는 듯했다.
소소도 용령주의 효과에 만족하듯 생긋 웃더니 손을 들었는데 손등에 거대한 용이 누워있는 모양의 광문이 나타났다. 이는 용부 주인의 증표였다.
“축하해.”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용부 주인의 증표만 있으면 소소도 천지 세례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더 고마워.”
소소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목진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소소는 임정과 치열한 혈투를 벌였을 것이고 대결의 결과도 어떻게 흘러갔을지 알 수 없었다. 임정은 무경의 공주였고 믿은 구석 없이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물을 취했으니 이제 천지로 가자.”
목진은 나머지 7부에는 가지 않았고 갈 생각도 없었다. 증표는 많아 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었고 오히려 다른 세력의 눈 밖에만 날 것이다. 상고 천궁에 들어온 사람들의 뒤에는 지지존경에 이른 강자들이 있었으니, 적들이 많아지면 아무리 만다라라도 상대하기 버거울 것이다.
임정, 소소, 구유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증표를 획득했으니 나머지를 차지할 생각이 없었다.
목진 등은 겹겹이 쌓인 독 안개를 뚫고 섬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자 용도에 몰려든 사람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상고의 천궁에 떠 있는 섬은 너무 많고 대부분은 영진으로 막아놔서 하나씩 찾아다니는 것은 시간 낭비라 다들 훤히 보이는 용도에 몰려든 것이다.
그중, 한 무리가 섬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한 채 상황을 살피고 있었는데 그들은 사람들이 섬에 가까이하지 못하게 막았다. 사람들은 언짢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해당 무리는 수십 명이나 되었고 그중 열 사람은 9급 지존경 정상에 이른 강자로 강자방 15위권에 든 유명인사들이었다.
특히,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사내는 황금색 도포를 입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 강력한 위압감을 내뿜어 아무도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
그 사람은 바로 대하 황조의 태자, 하우였다.
“태자님, 우린 안 들어가나요?”
옆에 서 있던 강자 하나가 나지막하게 묻자 하우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위험한 일은 저들이 하면 될 터, 우리는 용도에서 나온 사람을 데려와 잘 타이른 뒤, 수중의 물건을 획득하면 될 것이다.”
강자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우의 말대로 여기서 지키고 있으면 누가 용도에서 보물을 획득하든 나오자마자 빼앗으면 될 것이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보물을 찾는 일은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그때, 독 안개가 파르르 떨리더니 누군가 이를 뚫고 나왔다. 하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목진이라니, 녀석 참 운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