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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720화 (719/1,000)

720화. 가루라와의 첫 만남

역시나 소소는 하우를 힐끗 보더니 바로 눈길을 거뒀고 임정은 무언가 생각난 듯 황금 족자를 꺼내 휘두르며 말했다.

“대하 황조의 태자였군. 그럼 동생이 나한테 빚진 지존영액 일억 방울이나 주게. 저 녀석이 나더러 대하 황조 사람한테서 받아내면 된다고 했으니.”

이에 하홍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고 옆에 서 있던 하우는 입가를 파르르 떨며 동생을 쏘아봤다. 지존영액 일억 방울이라니, 이건 대하 황조의 국고를 탈탈 털어야만 가능한 숫자였다. 그는 물론이고 하황도 절대 쉽게 내주지 않을 것이다.

“대하 황조에서 약속을 어기겠다는 말인가?”

임정은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양이 너무 많아 내가 결정할 수 없으니 아바마마한테 찾아가게.”

하우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누구든 하황한테 황금 족자를 들이밀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감히 대하 황조에서 재물을 빼앗아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임정은 그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대하 황조의 하황을 찾아가야겠군.”

그녀의 말에 하우, 하홍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임정을 바라봤다. 그런데 목진, 구유가 똑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왠지 불안해졌다.

그러나 목진은 그 이유를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언젠가 임정의 신분을 알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자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이만 가도 되겠나?”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하우를 바라봤다.

그는 여기서 하우 등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상대편의 수가 많아 싸움이 시작되면 시간을 제법 낭비할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천지의 세례를 받는 것이었고 하우를 손봐줄 날은 언젠가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우는 목진의 미소에 화가 나 주먹을 꽉 쥐며 마음을 다스렸다. 자신이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사람을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는 느낌이 너무도 불쾌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원통해도 꾹 참기로 했다. 여기서 싸워봤자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하 황조의 강자들도 조용히 서 있었다. 하우가 나서지 않은 상황에서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몰래 피식거렸다. 일전에 하우가 목진을 쉽사리 짓밟을 수 있을 줄 알고 오만하게 굴었는데 금세 꼬리를 내렸으니 말이다.

하우도 사람들의 반응을 바로 눈치챘지만, 표정만 일그러졌을 뿐 끝까지 참았다.

이에 목진은 하우 등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바로 떠났고 소소, 임정, 구유도 신속하게 그 뒤를 따랐다.

이번엔 그들 앞을 막아 나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우 무리는 조용히 서서 목진 등이 떠나가는 모습을 쳐다보기만 했는데 그 모양새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형님…….”

하홍이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 이번 기회에 목진을 제대로 짓밟아 복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우마저 감히 나서지 못할 정도로 강한 두 여인을 곁에 두다니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 입 닥치거라!”

하우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하홍을 쏘아봤다. 하홍이 목진을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그들은 이처럼 비참한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하우라도 목진 등을 상대하는 건 버거웠다. 그는 목진 한 사람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었지만 나머지 두 여인은 아니었다.

“그럼 이대로 끝내잔 말인가요? 아바마마께서 대하 황조의 명성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우리 대하 황조는 반보 9급 지존경 따위가 짓밟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하홍은 표정이 한껏 일그러진 채 씩씩거렸다.

이에 하우는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 등이 떠나간 방향을 보더니 한참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오늘 일은 이대로 넘기지 않을 것이다. 흥, 녀석이 어디서 실력이 저리 뛰어난 여인들을 찾아냈는지는 모르지만 나한테도 방법이 있다. 가루라 등도 갑자기 튀어나온 금룡 제자인 목진을 없애려 할 테니 그들과 손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하우는 독기를 품으며 말을 이어갔다.

“목진, 대하 황조를 건드렸으면 그 대가를 치를 준비도 해야 할 것이야!”

목진 등이 용도에서 보물을 획득했단 걸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아무도 감히 그들의 뒤를 쫓거나 보물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용도를 떠나 다른 섬을 탐색하지 않고 곧장 천지로 향했다. 다른 섬에서 엄청난 보물을 찾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현재 그들한테 천지의 세례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천지의 세례는 지지존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한테는 엄청난 기회로 소소, 임정같이 뒷배가 상당한 사람들마저 탐낼 정도였다. 그러니 목진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목진 등은 전력으로 달려 반나절이 지나서야 무궁무진한 섬을 완전히 벗어났다.

* * *

목진 등은 외진 섬에 내려앉아 주위를 쓰윽 훑었다. 백 리 범위의 하늘은 텅 비었고 전처럼 하늘에 돌섬이 떠 있지도 않았다.

“드디어 상고 천궁의 깊숙한 곳에 가까워지고 있어.”

목진은 고개를 들고 멀리 내다보며 말했다. 이곳의 영력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웅장했고 하늘에 영롱한 영운(靈雲)까지 나타났다. 영운은 영력이 일정한 농도를 이뤄야 형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또 멀리 겹겹이 쌓인 산맥과 산 정상에는 파손된 석탑이 보였으며 더 멀리에는 오래된 전각도 어렴풋이 보였다.

이곳은 조용하고 오래된 기운으로 휩싸여 있었다.

“돌섬에서 벗어났으니 천지에 가까워졌겠군.”

목진이 지도를 꺼내 보고는 소소 등한테 말했다.

이에 소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살폈다. 주위는 조용해 아무런 위기도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느꼈어?”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임정도 어리둥절해 물었다. 그녀도 소소와 같은 생각이지만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고 구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기 있는 빛기둥이 보여?”

목진은 주먹만 한 빛기둥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는 하늘에 떠다니는 영운이 발사한 것으로 멀리서 보면 자연스레 내리쬔 빛 같았다.

소소, 임정, 구유는 그제야 빛기둥에서 이상한 파동을 읽었다.

소소가 손가락을 튕기자 영력이 휘몰아치며 거대한 암석을 들어 올려 빛기둥에 내던졌는데 암석은 빛기둥에 닿자마자 반으로 갈라졌다. 절단면은 예리하기 그지없는 칼에 잘린 것 같았다.

“뭐지?”

임정 등은 깜짝 놀랐다.

“영운에 영진이 쳐져 있는데 영력이 한데 모여 굴절되어 거대한 그물을 만들었어. 빛기둥들은 상당히 날카로워서 아무리 9급 지존경이라도 살짝만 닿아도 바로 팔다리가 잘려나갈 거야.”

목진은 하늘에 떠다니는 영운을 가리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에 임정 등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이를 모르고 함부로 건드렸다가 엄청난 대가를 치를 뻔했다.

“상고의 천궁은 왜 어딜 가든 치명적인 함정뿐이야?”

구유가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건 상고 천궁의 방어 수단으로 역외족이 천라대륙에 들어왔을 때, 가동되었을 거야.”

목진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답했다. 그는 저 멀리 대지에 수많은 해골과 갑옷, 부서진 무기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골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것으로 보아 생전에 실력이 막강한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과거 이곳에서 참혹한 대전이 일어나 상고의 천궁 강자들이 많이 사망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역외족의 시신은 보이지 않지?”

목진은 역외족의 시신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역외족이 수련한 사악한 힘은 대천세계와 어울리지 않아서 죽으면 시신이 점차 사라지게 되어있어.”

임정이 나서서 설명해주었다. 임정은 무조의 딸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역외족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럼 이만 떠날까? 빛기둥이 많긴 하지만 조금만 조심하면 피하기 어렵지 않을 거야.”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임정 등에게 말을 건넸고, 먼저 속도를 줄이면서 앞장섰다. 위력이 상당한 빛기둥은 목진이 곁을 지나든 말든 가만히 있었고 뒤쫓아가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방어 조치에도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상황을 살피던 소소 등도 그제야 안심하고 목진의 뒤를 따랐다.

목진 덕분에 그들은 영운으로 뒤덮인 위험천만한 구역을 느리지만 안전하게 건넜고 반 시진 정도 달리다가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다시 속도를 줄였다.

쏴아아.

이건 맑은 물소리였다.

그런데 목진 등은 물소리를 듣더니 체내의 영력이 이끌림을 받은 듯 저도 모르게 들끓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이는 꼭 목말라 죽을 것 같던 사람이 물을 만난 것처럼 사람을 미치게 했다.

목진 등은 곧바로 비등하는 체내의 영력을 강제로 짓눌렀다. 한참 지나서야 다시 안정을 되찾았지만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

물소리 뿐만으로도 체내의 영력이 요동치다니, 소리의 원천은 바로 그들의 목적지인 천지임이 분명했다.

목진 등은 이내 화색이 되어 속도를 끌어올려 앞쪽에 우뚝 솟아오른 고봉을 건넜고 시야가 확 트이더니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영력으로 눈을 보호했는데도 너무 아파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후, 드디어 빛에 적응한 이들은 다시 눈을 뜨고 앞쪽을 바라보고는 소름이 쫙 돋았다.

그들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별을 가득 수놓은 듯 반짝반짝 빛났다. 요동치는 파도에서는 정석을 내뿜었는데 이는 영력이 지극히 응결된 형태로 떨어지자마자 다시 물이 되었다.

또한, 바다 위는 영기가 너무 그윽한 탓에 영무가 피어올랐다.

더구나 이 바다는 하늘에 떠 있었다.

바다의 변두리 쪽 공간은 모조리 부서졌고 파도가 일자 공간이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목진은 바다가 그들과 다른 공간에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이건 지극히 강대한 존재가 무서운 수단으로 이곳에 새로 공간을 마련한 것이 틀림없었다.

목진 등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넋 놓고 한참 보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잔뜩 놀란 표정을 짓고는 금세 화색이 되었다. 그들은 다른 공간에 봉인된 바다가 바로 그들이 찾아 헤매던 천지란 것을 알아챘다.

“역시 상고의 천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남다르군.”

뒷배가 엄청난 소소마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상고 천궁의 천제께서는 분명 심혈을 기울이고 방대한 자원을 들여 천지를 만드셨을 것이다. 이는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세력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에 임정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바로 천라대륙 패주의 재력이었고,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때 목진도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천지에서 시선을 거두며 뭐라 말하려다 갑자기 흠칫 놀라 저 멀리 산맥을 바라봤다. 그곳에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산 정상에 서 있었는데 압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범상치 않은 사람이 분명했다.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자연스레 경계 태세를 취했다.

목진은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와 초면이었지만 바로 그 정체를 알아챘다.

육신이 이렇게까지 반응할 정도면 대일불멸신을 수련한 가루라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그와 동시에, 상대방도 눈치를 채고 목진을 쏘아봤다.

두 사람의 눈빛에 공간마저 일그러졌다.

미소를 지은 채 목진을 노려보던 가루라는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체내의 영력이 이상하게 요동치더니 뒤쪽 공간이 파르르 떨리며 거대한 그림자가 모이려 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가 수련한 지존법신으로 자신도 모르게 튕겨 나오려 했다.

그러나 가루라는 강제로 이를 억누르고 살기 가득한 눈으로 목진을 노려봤다.

순간 가루라의 체내에서 지극히 강대한 영력 파동이 화산처럼 폭발해 주위가 확 어두워졌고 주위에 압박감이 형성되었다. 그가 서 있던 산맥도 곧 부서질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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