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9화. 감응
“하우가 목진의 손에 죽었다니, 그럴 리가!”
사람들은 차마 믿기지 않은 눈치였다. 심지어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른 진경칩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바라봤다. 그는 이번에 경지를 돌파하면 하우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녀석은 이미 목진의 손에 죽었다.
“그…… 그럴 리 없어!”
천지의 어딘가에 서 있던 하홍은 어느새 사색이 되었고 대하 황조의 강자들도 소름이 쫙 끼쳤다. 그들은 목진을 귀신 보듯 온몸을 파르르 떨며 바라봤다.
그들은 하우가 천지에서 목진과 싸울 줄은 알았지만 목진을 쓰러뜨리기는커녕, 되려 개죽음당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목진은 여전히 태연하게 서서 가루라를 힐끗 쳐다봤다. 녀석이 이리 말하는 데는 분명 뭔가가 있었다.
“궁금하면 한 번 싸워보겠나?”
목진의 질문에 가루라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네. 그리고 자네가 저리 강한 사람들을 곁에 뒀을 줄은 몰랐네. 이리되면 상고의 천궁의 기회는 외부인들에게 내주는 꼴이 아닌가?”
가루라가 먼 곳에 서 있는 소소, 임정 등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그들을 노려봤다.
“교활한 녀석!”
구유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가루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녀석의 말 한마디에 목진은 천라대륙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녀석은 목진을 천라대륙의 적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목진은 사람들의 눈빛을 못 본 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상고의 천궁은 선배님들의 유물이네. 상고 천궁의 선배님들은 역외족의 침략을 막고 대천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전부 사망하셨으니 이곳의 물건은 대천세계의 물건이지. 자네는 이것으로 대천세계를 이간질하려는 건가? 그게 역외족의 악마들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목진의 말에 사람들은 낯 뜨거워졌다. 대의로 흘러넘치는 목진의 말에 반박하면 대천세계를 이간질하고 역외족의 악마들을 돕는 중죄를 덮어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루라는 물론이고 천지존이 와도 꼼짝 못 할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가루라를 힐끔거렸다. 녀석도 목진의 말에 적잖게 놀란 모양이었다.
“목진은 참 독한 녀석이군.”
사람들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가루라는 사람들의 시선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목진이 자기가 친 덫에서 손쉽게 빠져나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덫에 자신을 빠져들게 만들 줄은 몰랐다.
역외족은 대천세계의 천적으로 그 어떤 원한이든 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기 마련이었다.
하여 역외족과 엮이면 대천세계의 공동의 적이 되기 쉽다.
그렇다고 목진의 한 마디에 가루라가 그리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체면은 분명 잃을 것이다.
“쌤통이다.”
구유 등은 순간 속이 후련해져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가루라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금세 마음을 가라앉히고 목진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 말을 참 잘하는군. 그런데 실력도 그만큼 뛰어날지 모르겠군.”
사람들은 태연해 보이는 가루라의 말에 엄청난 한기와 살기가 깃든 것을 바로 알아챘다.
“그건 자네가 직접 확인해봐야 알지 않겠나?”
목진은 대수롭지 않은 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놀라운 살기를 내뿜은 채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다들 그들이 서로를 왜 이렇게까지 미워하는지 궁금해했다.
“허허, 지금 바로 싸우지 않을 거면 우리가 세례를 받는 데 영향을 주지 말았으면 하네.”
그런데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소경음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목진과 가루라가 엄청난 살기를 방출했지만 지금 당장 싸우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소경음의 말에 가루라도 살기를 거두고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결은 다음번에 해야겠군.”
“난 언제든지 괜찮네.”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소경음은 입을 삐쭉 내밀며 기지개를 켜더니 발을 가볍게 굴렀다. 그러자 영패에서 웅장한 빛을 방출하며 광점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잇따라 모든 사람을 초월한 영력 파동이 휘몰아치자 진경칩마저 안색이 어두워진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저건…… 천지의 령이 90알이나 되지 않나?”
다른 강자들도 이내 감탄하며 소경음을 쳐다봤다. 다들 적잖게 놀란 듯했다.
위잉!
90알의 천지의 령이 하늘의 별처럼 주위에 맴돌자 소경음은 손을 번쩍 들었는데 천지가 미친 듯이 회전해 천 장 정도의 소용돌이를 이뤘다. 이는 진경칩이 형성한 것보다 훨씬 컸다.
같은 고급 세례라도 획득한 천지의 령의 개수가 많을수록 규모가 큰 모양이었다.
쿵!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굵직한 빛줄기가 솟구쳐 하늘과 땅을 연결하더니 하늘에 영광이 모여 영룡한 하천을 이뤘다. 역시나 진경칩이 이룬 하천의 십수 배 정도 되었고 그 속에 깃든 힘도 훨씬 순수하고 강대했다.
그 광경에 다들 소경음을 부러워했다.
쏴아아!
잠시 후, 하천이 쏟아져 내리자 소경음은 허공에 앉아 지존법신이 아닌 미간에 숨겼던 선홍색 누에고치를 꺼냈다.
누에고치는 영롱한 하천을 모조리 흡수했는데 녀석의 육신에 오래된 부적이 나타나더니 균열이 일기 시작했고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자 누에고치가 부서지고 한 갈래 적광이 방출되었다.
누에고치는 요염한 선홍색 나비로 진화해 소경음의 주위를 하늘하늘 날았는데 녀석이 날개를 펼칠 때마다 강대한 영력 파동을 내뿜었다. 이에 9급 지존경 원만급 강자마저 흠칫 놀랐다.
“저건 소경음의 본명 영충인가?”
목진도 선홍색 나비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충사는 본명 영충이 있기 마련인데 태어나기 전까지는 보탬이 안 되지만 일단 녀석이 태어나면 주인의 실력이 강해지는 것만큼 강해질 뿐만 아니라 중요한 때에 주인을 대신해 죽기도 한다.
본명 영충이 있는 충사는 목숨이 두 개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경음은 자신의 실력을 끌어올리지 않고 본명 영충에게 양보했는데 녀석은 운 좋게 알을 까고 나왔다.
이리되면 소경음의 실력도 폭등할 거라 다시 등용문의 시험을 본다면 금룡 제자의 신분을 얻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잇따라 구유도 더는 참지 못하고 세례를 시작하였는데 그녀가 수집한 천지의 령은 78알로 소경음보다는 못하지만 진경칩보다는 많아 효과가 제법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소소와 임정의 도움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구유의 실력으로 홀로 천지의 령을 상대했다면 천지의 령을 이렇게까지 많이 수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소소와 임정이 수집한 천지의 령의 개수는 훨씬 많았다.
두 여인의 금룡 영패에서 상당히 눈부신 빛을 발하며 천지의 령들이 하늘의 별처럼 날아올라 주위를 맴돌았는데 무려 99알이나 되었다.
이건 고급 세례의 한계였다.
목진은 두 사람이 포획한 천지의 령의 개수를 헤아리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소소와 임정도 백 번째 천지의 령을 얻는 방법을 깨우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목진도 자신의 방법이 정확하단 확신이 없었다. 그 또한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주염과 가루라도 연달아 천지의 령을 꺼냈는데 임정, 소소처럼 천지의 령이 99알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천지의 령 99알은 고급 세례의 한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들은 왜 99알밖에 수집하지 못한 거지?”
누군가 어리둥절해 말했다. 주염 등의 실력으로 천지의 령을 99알 포획할 수 있으면 마지막 한 알도 쉽게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완벽한 세례는 보통 방법으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보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사람들은 이 이유가 아니고서야 그들이 포획한 천지의 령의 개수가 99알뿐일 리 없다고 확신했다.
위잉.
한편, 주염 등의 아래쪽에도 거대하기 그지없는 소용돌이가 형성되더니 그 속에서 굵직한 빛줄기가 솟구쳐 하늘에 영운이 모였다.
소경음보다는 못하고 진경칩보다 많은 수백 장 크기의 하천을 이룬 구유의 세례와 비교하면 소소, 임정, 주염과 가루라의 세례는 남다른 기세를 뽐냈다.
그들이 형성한 소용돌이의 직경만 해도 수천 장이었고 머리 위에 형성한 영광은 수천 장 정도의 거대한 호수를 네 개나 이뤘다. 영광이 번쩍이는 호수의 영력이 너무 순수한 나머지 진득해 영광의 다리를 형성한 것이 오묘할 따름이었다.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거대한 호수를 바라봤다. 이것과 비교하면 소경음의 하천은 새 발의 피였다.
“이것이 바로 고급 세례의 한계인가? 이렇게 강하다니!”
이 정도 세례를 받으면 누구든 실력이 확 늘어날 것이다.
“목진은 왜, 그냥 서 있는 거지?”
누군가 목진이 아직 세례를 시작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말했다. 목진의 금룡 영패는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자네 금룡 영패에는 왜 천지의 령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는 건가?”
가루라는 자신이 형성한 거대한 영광 호수를 바라보고는 피식거리며 목진한테 질문을 던졌다.
이에 다들 목진을 힐끗거렸고 소소, 임정과 구유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들도 목진의 금룡 영패에 영광이 깃들지 않은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천지의 령이 한 알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설마 천지의 령을 수집할 때, 엄청난 변고라고 생긴 걸까?
누군가 이리 생각하며 피식거렸다. 특히, 가루라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때 목진은 서서히 눈을 감고 천지의 깊숙한 곳의 파동에 집중했는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목진도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 예상에 벗어나면 그는 천지의 세례를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목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지의 깊숙한 곳의 미세한 물소리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쿠쿵.
잠시 후, 천지의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괴상한 소리가 전해지자 목진은 꼭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는 이내 화색이 되었다.
일전에 천지의 령들한테 남겼던 흔적이 다시 느껴졌다.
천지의 깊숙한 곳에서 이상한 파동이 전해지자 목진은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가 천지의 령에 남긴 흔적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전해진 파동은 전과 같지만은 않았다. 99알이 아니라 오직 한 개였다.
한 개의 흔적에서 전해진 파동에 목진은 적잖게 놀랐다. 일전의 99알의 천지의 령은 하늘의 별이었다면 지금은 태양처럼 이 세상을 비출 무궁무진한 힘을 지닌 것 같았다.
놀라운 변고에 목진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의 예상은 결코 어긋나지 않았다.
백 번째 천지의 령은 역시 보통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쿠쿵!
이와 동시에 주염, 소소, 가루라, 임정의 머리 위에 나타난 영광으로 이뤄진 거대한 호수가 파르르 떨리더니 폭포로 쏟아져 이들을 감쌌다.
지극히 순수한 힘이 깃든 폭포수는 진득하다 못해 반짝이는 가루까지 가끔 보였다.
이는 영력이 극도로 응축되어야 이룰 수 있는 형태로 한 알이 지존영액 수만 방울보다 값졌고 그 속에 깃든 영력도 놀라울 정도로 순수햇다.
하여 주염 등은 바로 지존법신을 소환해 세례를 받을 준비를 했다.
주염이 지존법신을 소환하자 웅장한 화염이 뒤쪽에 모여 거대한 그림자를 이뤘는데 녀석은 온몸에서 난폭하기 그지없는 불이 활활 타올라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졌고 멀리서 보면 화신이 강림한 것 같았다.
“저것이 바로 주염이 수련한 염신법신인가? 이는 염령족의 핵심으로 99등급 지존법신 중 34위라고 들었네!”
주염의 화신 같은 지존법신이 나타나자 다들 화들짝 놀랐고 부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 지존법신은 대하 황족 같은 정예 세력에도 없었기에 얼마나 희귀한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