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화. 특이한 장경루
“허허, 운이 나쁜가 보군.”
멀리서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가루라가 뒷짐을 쥔 채 히쭉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목진의 완벽한 세례의 효과가 예상했던 것보다 못해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러게 말이네.”
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참으로 아쉽군. 난 자네와 용쟁호투를 벌릴 줄 알았는데 마지막 기회를 잡지 못한 모양이네.”
가루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목진의 실력이 폭등하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과 일정한 실력 차이가 존재했다.
그는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른 지 오래되어 수많은 경험을 통해 기반을 단단히 다진 반면, 목진은 겨우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르러 차이가 제법 났다.
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면 최후의 승자는 분명 자신이 될 것이다.
목진은 녀석을 한참 노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네. 참 아쉽지 않나?”
그런데 목진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 행동했고 가루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
설마 충격이 너무 커서 이성을 잃은 건가?
가루라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내가 자네 대일불멸신을 부수는 걸 보고도 지금처럼 태연하길 바라네.”
“그러겠네.”
목진도 미소를 지었는데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해 보였다. 이에 가루라는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왠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막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른 녀석일 뿐이야. 수단과 실력, 지존법신까지 나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녀석이 나와 싸워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녀석은 괜히 센 척하는 것이니 꼼수에 넘어가지 말자!’
가루라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다 한 줄기 빛이 되어 그곳을 떠났다.
잇따라 천지는 다시 떠들썩해졌고 강자들은 속속 그곳을 떠났다. 상고의 천궁에서 천지의 세례는 시작일 뿐, 안쪽에는 상고 천궁의 네 전주와 천제의 거처가 있었다. 그곳에서 계승을 한 가지라도 받으면 대천세계의 진정한 거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주염도 목진을 힐끗 보더니 소소 등한테 눈길을 돌렸는데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전의로 활활 타올랐다.
그러다 그가 한 갈래 불꽃이 되어 사라지자 소경음도 미소를 지은 채 목진을 바라보다가 떠났다.
“천지의 세례가 끝났으니 우리도 움직여야지.”
목진은 소소 등한테 다가가 고개를 들고 상고 천궁의 깊숙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다음 목적지는 상고의 천궁의 장경루였다.
그곳에 대일불멸신의 진화법이 있을 것이고, 그와 가루라의 대결도 시작될 것이다.
목진은 가루라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고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내가 자네를 상대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했으니 부디 실망시키지 말게.’
* * *
슉!
천지를 떠난 몇 갈래 빛줄기가 한 고봉에 내려앉았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목진, 소소, 임정, 구유였다.
그들은 천지의 뒤편에 서서 앞쪽의 몽롱한 세계를 바라봤는데 그 속에서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앞으로 더 가면 5전의 범위에 들어갈 거야.”
목진은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고의 천궁은 천제를 제외하면 5전 9부로 나뉘는데 일전에 9부를 건넜으니 이제는 천제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다섯 명의 전주한테 가볼 차례였다.
이에 소소 등은 흠칫했다. 다섯 명의 전주들은 천제의 막강한 조력자로 지지존 대원만급에 이른 강자로 실력이 상당했고 다들 천지존에 이를 자격이 충분하다고 들었다.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분명 대천세계의 거장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다섯 명의 전주 중, 네 번째 전주께서는 북계를 지키시다 역외족과의 대결에서 사망하셨고 나머지 네 분은 상고의 천궁에 계셔.”
목진의 말에 구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보물을 찾으려면 제4전이 가장 쉽겠지?”
비록 전주들은 사망했지만 죽기 직전에 일정한 수단으로 거처를 보호했을 것이고 이는 목진 등한테 제법 부담될 될 것이다.
“장경루는 어디 있을까?”
임정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그녀도 상고의 천궁에 장경루가 있는 걸 알고 있었고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았다. 천지가 상고의 천궁의 기반이라면 장경루는 천궁의 실력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목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내가 획득한 지도에는 그에 관한 정보가 아예 없어.”
상고 천궁의 깊숙한 곳은 파손된 영진으로 가득 차 있었고, 상고 천궁의 웅장한 영력의 여파로 위력이 상당했다. 더구나 영진은 대부분 종사급이라 파손되었다고 해도 일단 잘못 걸리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경루를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정도 바로 깨닫고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장경루라면 나한테 정보가 있어.”
그때 소소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래?”
목진 등이 이내 화색이 되자 소소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한테서 들은 건데 장경루는 상고 천궁의 어딘가에 숨어있는데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대.”
“장경루는 그 자체가 고급 성물이거든.”
목진 등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경루가 고급 성물이라니, 목진은 여태껏 고급 성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네 번째 전주 수중의 성진진마탑도 기껏해야 중급 성물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장경루가 고급 성물이라면 마음먹고 숨으면 우린 절대 찾아내지 못할 거고, 찾아낸다고 한들 들어가기도 쉽지 않을 텐데.”
구유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고급 성물은 목진 등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장경루는 공격성이 없는 대신 은닉하는 능력이 독보적이라 녀석이 마음먹고 숨으면 아무리 천지존이라도 찾아낼 수 없을 거야.”
소소가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목진 등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장경루의 은닉 능력은 아마 일부 천지존보다 뛰어날 것이다.
녀석이 공격성까지 있었다면 고작 고급 성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네 말대로라면 우리는 절대 녀석을 찾아내지 못하겠지?”
목진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역시 대일불멸신의 진화법을 획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경루를 찾아내기 힘들긴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야. 천제께서 서적 보관용으로 장경루를 둔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소소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 말에 목진은 조금이나마 안심되었다. 그는 대일불멸신의 진화법을 얻기 위해 북창령원을 떠나 천라대륙에 왔고 여태껏 애를 써왔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돼?”
구유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소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장경루의 시험을 통과하면 돼.”
소소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목진 등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시험이라니, 무슨 시험?”
이에 소소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나도 잘 몰라. 그런데 시험은 우리가 상고의 천궁에 발을 들인 순간, 이미 시작됐을 거야.”
목진 등은 다시 한번 놀랐다.
“장경루는 지능이 있어 우리가 상고의 천궁에 들어섰을 때부터 이미 감시에 들어갔을 거야.”
소소가 앞쪽 어딘가를 바라보며 한 말에 목진 등은 소름이 쫙 끼쳤다. 그들은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소소의 말을 듣고 나니 누군가 몰래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불편해졌다.
“상고 천궁의 제자 중, 갑자기 장경루의 인정을 받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다고 들었어.”
소소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임정은 흥미진진해졌다.
“그럼 우리도 잘 보여야 한단 말이야? 그런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나도 잘 몰라. 인정받은 상고의 천궁 제자 중, 수련하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도 있었고 신통에 대한 특수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도 있었으며 대결에서 뛰어난 실력을 선보인 사람도 있었어. 각자 표현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등급이 높을수록 요구가 높다고 들었어. 대신, 장경루에 들어가면 얻는 권한도 더 높겠지?”
목진 등은 상고의 천궁의 장경루가 이렇게까지 특이할 줄 몰랐다.
“인연이 닿으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안 그럼 공간 신통에 능숙한 천지존을 데려와도 절대 녀석을 찾아내지 못할 거야.”
소소의 말에 목진은 그저 웃기만 했다. 공간 신통에 능숙한 천지존을 데려올 수 없으니 혼자서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장경루는 일단 내려놓고 5전부터 가볼까? 거기서 예상치도 못했던 걸 얻을 수도 있잖아.”
장경루는 쉽게 들어갈 수 없으니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소소의 말대로라면 기다린다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만 갑시다.”
말을 마친 목진은 바로 상고의 천궁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고 소소 등도 잽싸게 뒤따랐다.
목진 등은 파손된 영진을 피해가며 1각 정도 달렸는데 주위에 몽롱한 기운이 점차 짙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목진의 영력 감응력도 엄청난 저항을 받았다.
“앞쪽에 영진이 있는데 위험하지는 않아. 아마 5전의 입구일 거야.”
목진의 영력 감응력은 엄청난 저항을 받았지만 여전히 앞쪽의 이상한 파동이 느껴졌다.
이에 소소 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슉!
목진 등은 일정한 속도로 나아가다가 수막 같은 무언가를 지났는데 순간, 주위의 공간이 무질서해진 것을 느꼈다.
공간 파동이 점차 격렬해지다가 눈부신 빛을 발하더니 목진 눈앞에 수많은 화면이 나타났다.
우뚝 솟은 웅장한 전각에서는 숨 막힐 정도의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이는 5전이었다.
목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쳐 지나가는 화면을 살피며 가슴에 새겼다. 만약 화면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목진은 갑자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전은 파손되었지만 여전히 웅장했고 깊숙한 곳에 해골이 널브러져 있었다. 가장 깊숙한 곳, 암홍색 옥석으로 이뤄진 연화대에 십수 장 정도의 요염한 꽃이 피어있었다.
목진은 검은 꽃을 보더니 이내 화색이 되었다. 그는 이를 본 순간 바로 알아챘다.
이건 필경 만다라의 본체인 상고의 만다라일 것이다.
파손된 상고의 대전의 깊숙한 곳에 암홍색 옥석으로 만들어진 연화대가 놓여있었는데 이는 부드러운 빛을 발하는 것이 상당히 신비로웠다.
목진은 연화대보다는 요염한 검은 꽃에 눈길이 갔다.
십수 장 정도 되는 검은 꽃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부적이 새겨졌고 부적마다 천지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자세히 보면 아름다운 꽃은 봉오리 하나가 꺾여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안타까웠다.
목진은 꺾인 꽃봉오리에서 만다라가 크게 다친 뒤, 가지를 꺾어 봉오리를 잘라낸 뒤, 본체를 봉인하고 분신으로 상고의 천궁에서 간신히 벗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다라의 본체는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지만 목진은 그 속에서 무서운 기운이 느껴졌다. 이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의미했다.
몰래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자아내던 목진은 큰 짐을 덜어내듯 환히 웃었다. 그는 장경루보다 만다라의 본체를 먼저 찾아낼 줄은 몰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는 바로 웃음을 거뒀다. 대전에 한껏 쌓인 해골과 파손된 상황으로 보아 이곳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 분명했다.
목진은 고요한 대전에서 위기를 느끼고 주위를 쓰윽 훑었는데 열 개도 넘는 대전의 돌기둥 밑에 백골이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전에는 해골이 많아 이들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목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세히 관찰해보았다. 돌기둥 밑에 앉아있는 녀석들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고 주위에서도 아무런 파동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뭔지 모를 위험한 기운을 내뿜었다.
또한, 그들의 위치는 아무렇게 흩어져 있는 것 같지만 전부 연결하면 영진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목진의 예상대로라면 해골들 사이에 영진이 있는 것이 분명했고 그 위력은 엄청날 것이다.
만다라는 육원의 습격에 중상을 입고 상대방을 죽이려 들었을 텐데 봉인 상태를 유지한 것을 보면 이곳이 그녀를 보호하는 기능도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백골과 그들이 형성한 영진은 목진을 막을 것이다.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는 치명적인 위협감을 주는 백골 수비들이 절대 그를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걸 어쩐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