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5화. 전문(戰紋)
목진은 소경음을 노려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자넨 황충 때문에 상고의 천궁에 들어왔을 것이고 황충의 가치는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네. 녀석 체내의 힘은 도령위의 것인데 왜 괜한 욕심을 부리는 건가?”
“난 양보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니 알아서 하게.”
말을 마친 목진은 눈을 감고 조용히 서 있었다. 도령위 이천 명을 장악하지 못하면 만다라의 본체를 꺼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야 했다.
반면, 소경음은 눈을 꼭 감은 목진을 보더니 너무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더는 협상의 여지가 없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결인했는데 황충이 다시 비명을 지르며 선홍색 빛을 발했다.
잇따라 밝은 빛을 발하던 황충의 육신이 빠르게 어두워지자 소경음은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와 반대로 도령위는 혈광을 흡수하더니 서서히 힘의 파동을 되찾았다.
“이제 됐네.”
목진은 그제야 꼭 감았던 눈을 뜨고 도령위를 살피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목진의 말에 소경음은 바로 혈광을 거두고 황충을 집어넣고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왜 더 달라고 하지 그러는가? 자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내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이에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이네.”
도령위 이천 명은 목진의 한계치였다.
“도령위 이천 명을 정말 장악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소경음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녀는 목진이 도령위 이천 명을 정말 장악할 수 있을 거라 여기지 않았다. 도령위는 두 번째 전주가 직접 배양한 군대로 지지존마저 손쉽게 죽였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비록 의식을 잃었고 그 수도 확 줄어들어 전투력이 급감했지만 일단 장악하는 데 성공하면 하위 지지존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목진이 그저 웃으며 옷깃을 휘날리자 구룡시선진이 파르르 떨리더니 균열이 다시 생겼고 소경음은 바로 뛰쳐나왔다.
소경음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차가운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봤다. 그러나 목진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은 곳에서 무서운 영력이 새어 나왔다.
“영진을 잃은 자네가 내 상대가 될 것 같나?”
소경음이 선홍색 황충을 만지작거리며 묻자 목진은 웃으며 답했다.
“아마 안 되지 않을까?”
소경음이 황충을 내세우면 목진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었다.
소경음은 목진의 답변에 멈칫하더니 한껏 일그러졌던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그녀가 교활한 여우 같은 목진의 말을 믿을 리 없었다. 그러다 목진이 목숨이라도 걸고 덤비면 아무리 그녀라도 목진을 죽인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완전히 죽일 수 없다면 적으로 두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안 그럼 평생 목진 때문에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소경음은 하우 같은 녀석도 대수롭지 않게 죽인 목진과 적지 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는 하우가 엄청난 조건을 제시해서 도왔는데 이것으로 없던 일로 합시다.”
잠시 고민하던 소경음은 결국 영력을 거두며 말했다.
그녀는 신중한 고민 끝에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고맙네.”
사실 목진은 소경음이 구유 앞을 막아 나선 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소경음이 진심으로 하우의 편을 들어주려 했다면 목진은 절대 녀석을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까짓 일로 소경음을 적으로 내몰 이유는 없었다.
“노파심에 말하는데 너무 욕심부리지 말게. 도령위를 장악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네.”
소경음은 대전의 뒤쪽에 서 있는 도령위를 힐끗 보고는 바로 한 줄기 빛이 되어 떠났다.
목진은 그녀가 멀어진 뒤에야 다시 도령위한테 눈길을 돌렸는데 의지로 활활 타올랐다.
목진이 도령위를 장악할 수만 있다면 지지존경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지지존급 강자를 상대할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건 엄청난 실력 향상으로 그때가 되면 목진은 천라대륙에서도 정예 강자급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구룡시선진을 넘어 도령위한테 다가갔다.
소경음은 황충을 취하고 떠났으니 인제 목진이 도령위를 장악할 차례가 되었다.
목진이 구룡시선진에 들어서자 허공을 날아다니던 거대한 용 아홉 마리는 어느새 사라졌고 영진은 다시 조용해졌다.
목진은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왕좌에 다가갔고 돌계단에 오르려 했다. 그러자 힘을 돌려받은 도령위 군사들의 육신에서 빛을 발하며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 이에 대전이 순간 격렬하게 진동하며 무서운 압박감이 휘몰아쳐 목진에게 향했다.
이에 목진은 멈칫하고는 바로 뒤로 물러나자 압박감은 바로 사라졌고 도령위도 다시 물러났다.
“의식이 없어도 두 번째 전주를 수호한단 말인가?”
목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도령위는 힘을 잃어 소경음의 앞을 막아 나서지 않았지만 지금은 힘을 돌려받아 본능적으로 두 번째 전주를 수호했다.
일전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소경음은 왕좌에 가까이하자마자 이천 명이나 되는 도령위의 파멸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운이 참 좋은 여인일세.”
목진은 이내 감탄하더니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쿵!
도령위 이천 명의 눈에 빛이 모이더니 무서운 위압감이 다시 휘몰아쳤는데 이번에는 녀석들의 체내에 혈광이 휘몰아치며 지극히 무서운 힘이 위쪽에 모였다.
이건 전의의 힘이었다.
지지존급 강자의 힘과 맞물리는 무서운 전의가 형성되자 목진은 바로 병부를 꺼냈다. 병부는 무언가의 이끌림을 받은 듯 파르르 떨며 창망하고 오래된 호각 소리를 방출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원고 시기에서 전해진 것만 같았다.
잇따라 목진을 공격하려 했던 도령위는 바로 멈춰 섰고 위쪽에 모였던 전의도 금세 사라졌다. 그들은 목진이 서 있는 쪽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녀석들은 시병이 되어 지능이 없는지라 소리를 낼 수 없었는데 무릎을 꿇는 순간, 공간마저 파르르 떨렸다.
목진은 그제야 화색이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위풍당당했던 도령위가 시병이 되었어도 병부는 여전히 유용했다.
그러나 목진은 병부가 있다고 도령위를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어 금세 마음을 추슬렀다.
만약 도령위의 전투력을 완전히 끌어내지 못하면 이를 얻었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목진은 돌계단을 올라 왕좌 옆에 다가가더니 도령위를 힐끗 본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군대를 거느리고 싸운 지 오래됐지만, 전진사에 관한 조예가 그대로인 것은 아니었다. 목진은 정신과 더불어 전진사에 관한 조예도 향상되었다.
다만, 이를 선보일 적당한 기회가 없을 뿐이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그동안 수련해 더 깊어진 전진사의 실력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목진은 눈을 서서히 감았다가 번쩍 떴는데 눈동자가 어느새 투명해졌고 특이하고 강대한 파동이 휘몰아쳤다.
이는 파괴력은 없지만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던 도령위의 눈에서 혈광이 발했고 위쪽 하늘에 선홍빛이 모여 두꺼운 혈운을 이뤘다. 혈운은 점차 퍼져 거대한 궁전을 가득 채웠다.
목진은 두꺼운 혈운에서 느껴지는 무서운 파동에 소름이 쫙 끼쳤다. 혈운은 도령위의 전의로 이뤄진 것으로 그 속에 깃든 힘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는 목진이 여태껏 본 것 중 가장 강력한 전의였다.
더구나 이건 오천 명 중 절반도 안 되는 죽은 군사들이 이룬 전의였으니, 전성기 때의 전의는 얼마나 무서웠을지는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역시 지지존을 죽였다는 것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목진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의지로 활활 불태웠다. 전진사라면 누구든 이런 정예 부대를 손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요리사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식재를 찾아내고 조각가가 제일 좋은 재료를 찾아낸 것과 같았다. 전진사는 정예 부대를 장악해야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나타낼 수 있다.
군대를 거느리지 않은 전진사는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목진이 벅차오르는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한 손으로 결인하자 체내에서 특이한 파동을 방출하더니 허공에서 갑자기 일그러져 수많은 무늬를 형성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용의 비늘 같았다.
정작 목진은 무늬를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전문으로 전의를 장악하지 않아도 자신이 전문을 얼마큼 이룰 수 있는지 가늠이 갔다.
그전까지만 해도 목진은 더없이 평범한 만문 전진사였는데 지금은 실력이 훨씬 향상되었다.
특이한 무늬는 허공에서 신속하게 퍼져 눈 깜짝할 사이에 십만 갈래가 되었다.
십만 문 전진사는 9급 지존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녔다.
그러나 목진은 여전히 태연하게 서 있었다. 쉽게 닿을 수 없던 십만 문 전진사는 인제 그한테 아무것도 아니었다.
목진이 전문을 십만 문밖에 만들어낼 수 없다면 절대 도령위를 장악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지존마저 죽인 도령위를 장악한 사람은 적어도 백만 문 전진사라 지금은 도령위가 큰 타격을 받았지만 이를 완벽히 장악하려면 적어도 60만 전문은 이뤄내야 했다.
“60만 전문이라…….”
목진의 미간에서 의식의 힘이 화산처럼 폭발하자 허공에 형성된 무늬는 놀라운 속도로 증가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전문이 40만 개로 폭등했다.
이 정도 양도 엄청났지만 목진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듯했다.
‘조금만 더!’
목진이 속으로 고래고래 외치자 미간에서 영롱한 빛의 소용돌이가 나타나 체내의 모든 의식의 힘을 방출했고 허공의 전문의 수량은 점점 많아졌다.
43만…… 46만…… 50만…… 54만…….
전문의 수량이 60만 개가 가까워지자 목진은 안색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누군가 머리를 베어내는 것처럼 아팠다.
그건 의식이 다 닳아 끊어지기 직전이라는 의미였다.
“조금만 더!”
그런데 목진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며 엄청난 고통을 참았고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미간에서 영롱한 빛이 부단히 솟구쳤다.
이렇게 잠시 멈췄던 전문은 다시 서서히 많아지기 시작했다.
…… 58만…… 59만…… 60만!
전문의 수량이 60만 개가 되자 목진은 이명과 함께 눈앞이 핑 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깊게 숨을 들이켜며 간신히 안정을 취한 뒤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자 허공에 형성된 60만 전문이 홍류가 되어 도령위의 위쪽에 형성된 두꺼운 혈운에 스며들었다.
목진은 도령위의 전위의 충격을 견뎌내야 인정을 받고 녀석들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쿵!
순간, 목진은 주위의 환경이 바뀐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는데 그곳은 전쟁 중인 오래된 전장으로 갑자기 지극히 무서운 힘의 파동이 휘몰아쳤다.
이에 목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허공에 수천 명의 군사가 그의 주위를 감쌌다.
그들은 다름 아닌 도령위였고 심지어 전성기 때였다.
또한, 목진은 어느새 연로한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고 몸에서 지극히 무서운 영력을 방출했는데 이는 지지존에 이른 강자의 힘이었다.
목진은 흠칫하더니 금세 깨달았다. 연로한 노인은 아마 도령위가 죽였던 지지존일 것이다.
쿵!
그때 그의 주위를 둘러싼 도령위가 공격을 개시하자 백만 갈래의 혈광이 파멸의 기운을 실은 채 휘몰아쳐 목진의 의식을 공격했다.
목진은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