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737화 (736/1,000)

737화. 좌 장로

가루라를 노려보던 목진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만다라의 본체는 성마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숨어든 거라 그는 이곳을 잘 알 것이다. 그러니 육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만다라가 본체를 획득하는 것을 막을 것이다.

그리고 가루라가 그 명을 받고 온 듯했다.

가루라 혼자라면 전혀 두렵지 않을 텐데 녀석은 도와줄 사람까지 데리고 왔다.

가루라 옆에는 흑백 도포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는데 목진은 그한테서 아무런 영력 파동도 읽어내지 못했다.

이런 사람이 더 위험한 법, 그가 평범하다면 수많은 관문을 뚫고 여기까지 왔을 리 없었다.

목진의 시선에 가루라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와 싸워 대일불멸신의 우열을 가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럴 기회가 없을 것 같군.”

말을 마친 가루라가 나이를 알 수 없는 사내에게 허리를 굽히더니 공손하게 말을 건넸다.

“좌 장로(左長老)님, 잘 부탁합니다. 궁주께서 이 대전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좌 장로라…….”

가루라의 공손한 모습에 목진은 흠칫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흑백 도포를 입은 사내를 쳐다봤다. 저 사람이 성마궁의 장로라니!

이 정도로 중요한 임무를 맡고 가루라마저 허리를 굽히게 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지지존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런데 상고의 천궁은 지지존급 강자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성마궁의 장로가 어째서 쥐도 새도 모르게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목진은 여태껏 좌 장로를 발견하지 못했고 천지에서도 보이지 않았었다.

“허허, 이상한가?”

목진이 깜짝 놀라자 가루라는 피식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상고의 천궁은 지지존급 강자의 힘을 견뎌낼 수 없어 우리 성마궁에서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서야 겨우 좌 장로를 몰래 들였네. 그런데도 나설 기회는 단 한 번뿐이고 실력도 폭락해 이곳에서 나가 원래 실력을 되찾으려면 적어도 수십 년은 지나야 한다네.”

가루라의 말에 목진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성마황은 역시 지독한 존재였다. 만다라가 본체를 찾는 일을 방해하기 위해 휘하의 하위 지지존에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하다니.

그러나 가루라의 말에 목진은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성마궁의 장로의 실력이 최정상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록 하위 지지존의 실력이 폭락해도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른 강자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긴 하지만 현재의 목진은 더 이상 일반 9급 지존경 원만급 강자가 아니었다.

하여 가루라는 목진이 필경 죽을 거라 여겨 두려움에 몸 둘 바를 모르는 꼴을 보려고 했는데 녀석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바다 밑 대전에서 목진이 피식거리는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력이 폭락한 하위 지지존이었군.”

목진의 나지막한 말소리가 조용한 대전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피식거리던 가루라는 흠칫하여 목진을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정신줄을 놓은 건가?”

가루라는 가여운 눈빛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그는 목진이 너무 당황해 저러는 거라고 여겼다.

하긴, 목진이 반나절도 안 되는 사이에 지지존을 상대할 수 있는 무서운 필살기를 확보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때 가루라의 옆에 서 있던 흑백 도포를 입은 사내도 창로한 기운을 내뿜은 채 고개를 들고 목진을 지그시 쳐다봤다.

그는 바로 목진의 실력이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르렀다는 걸 발견했는데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의 실력으로 9급 지존경 원만급 강자를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기 때문이다.

하위 지지존인 좌 장로의 실력이 비록 전성기 때의 반절이라고 해도 말이다.

9급 지존경 원만급과 하위 지지존의 차이는 천지 차이였다.

“가루라, 먼저 가거라. 난 궁주의 명대로 이곳에 벌레 한 마리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좌 장로라 불리는 사내는 목진을 힐끗 보더니 가루라한테 느긋하게 말을 건넸다.

이에 가루라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허허, 첫 번째 전주가 뭘 남기셨을지 궁금하네요.”

말을 마친 가루라가 목진한테 다가가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이렇게 내가 친 덫에 빠져들다니 아쉽군. 자네와 제대로 한번 싸워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걱정 말게. 자네가 죽은 뒤, 성마궁에서 대라천역도 바로 없앨 테니 자네 세력 사람들도 곧 자네와 함께할 것이네.”

가루라가 씨익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녀석을 바라봤다.

“글쎄…… 다음에 만나면 다시 봅시다.”

다음에 만나다니…….

가루라는 멈칫했지만 더 교활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목진이 다음번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우스웠다.

목진은 마음의 안정을 잃어 괜히 센 척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가루라는 목진을 지나 파손된 대전에 들어가 첫 번째 전주의 유품을 찾기 시작했다.

한편, 목진은 가루라의 앞을 막아 나서지 않았다. 그의 상대는 성마궁의 좌 장로이고 가루라는 언젠가 마주칠 날이 있을 것이다.

가루라가 떠나자 대전은 다시 조용해졌고 좌 장로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목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성마궁의 형벌을 책임진 사람이라 다들 죽기보다 못한 고통을 겪다가 이생을 마감하곤 한단다. 그러니 지금 당장 자결하면 훨씬 편히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좌 장로의 목소리에 깃든 음산한 기운에 목진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좌 장로는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상고의 천궁에 들어왔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런데 목진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운이 어지간히 좋은가 봐요.”

목진이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구사일생이었을 목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도 좌 장로를 상대할 힘이 없었는데 반나절 사이, 그는 도령위를 장악했다.

하여 결과는 바뀌게 될 것이다.

“내 손에 고통 없이 죽는 것도 운이 좋은 편이긴 하지.”

목진의 말에 좌 장로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목진이 편히 죽는 것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라 여겼다. 9급 지존경 원만급 강자가 하위 지지존과의 대결에서 편히 죽는 것은 행운이었다.

이에 목진은 멈칫하더니 피식 웃었다.

“실력이 폭락한 노인네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죠? 지금 당장 꺼지시면 살려는 줄게요.”

목진의 한기 어린 말투에 좌 장로는 표정이 확 굳더니 한참 지나서야 안정을 되찾고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쳐다봤다.

“벌레만도 못한 녀석이 감히 나에게 이딴 식으로 말하다니!”

좌 장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목진을 쓰윽 살피더니 두 손을 가볍게 떨었다. 그러자 무서운 영력 파동이 파멸의 기운을 실은 채 미친 듯이 솟구쳤다.

쿠쿵!

대전은 좌 장로의 무서운 영력 충격에 못 이겨 검은색 균열이 일었고 목진은 광풍 속 미세한 불씨처럼 바람이 조금이라도 세게 불면 확 꺼질 것 같았다.

목진도 어느새 정색한 채 상대방을 바라봤다. 상대방의 무서운 위압감에 그는 피부가 찌릿했다. 지지존의 힘은 역시 무서웠다. 이는 9급 지존경 원만급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그러다 웅장한 영력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자 좌 장로는 표정이 한껏 일그러진 채 목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자네에게 죽기보다 못한 고통이 무엇인지 원 없이 겪게 해주겠네. 그때가 되면 죽음도 사치란 것을 알게 될 것이네.”

그는 목진에게 자결이라는 막대한 은혜를 베풀었는데 멍청한 녀석이 감히 그런 말을 지껄이다니. 그는 제대로 화가 났다.

“과연 그럴까요?”

일반 9급 지존경 원만급 강자는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워할 좌 장로의 영력 위압감에 목진은 씨익 웃으며 오래된 병부를 꺼냈다.

“허허, 전 오래전부터 지지존의 힘을 얻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 꿈을 이루게 되었네요.”

목진이 좌 장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자 수중의 병부에서 눈부신 빛과 함께 수많은 빛줄기가 솟구쳤다.

쿵! 쿵!

빛줄기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땅에 내려서자 대전 바닥이 와르르 무너졌고 묵직한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잇따라 그들의 체내에서 선홍색 전의가 피어올라 좌 장로 체내에서 폭발한 무서운 영력 위압감을 모조리 물리쳤다.

그 광경에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좌 장로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이건 군대가 아니냐?”

좌 장로는 대전에 나타난 갑옷을 입은 군사들을 보더니 입이 떡 벌어졌다.

그들은 정예 군대로 체내에서 내뿜는 무서운 전의만 봐도 지지존을 상대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너! 너한테 어찌 이렇게 대단한 군대가 있단 말이냐?”

좌 장로는 믿기 어렵다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정도 실력을 갖춘 군대는 성마궁 뿐만 아니라 천라대륙에도 몇 없었다. 9급 지존경 원만급 밖에 안 되는 녀석이 무슨 수로 군대를 장악했단 말인가?

한편, 도령위 뒤에 서 있는 목진은 무궁무진하고 무서운 전의를 느끼고는 마음이 벅차올라 꼭 쥐었던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이건 그가 꿈에도 그리던 막강한 힘이었다.

그는 마침내 엄청난 힘을 얻게 되었다.

“왜요? 많이 놀랐나 봐요?”

목진은 고개를 들고 안색이 확 어두워진 좌 장로를 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엄청난 걸 얻었구나. 네가 막강한 정예 부대를 획득해 그리 자신만만했구나. 하지만 수중에 넣기만 한다고 그 힘을 완전히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좌 장로는 잠시 생각하더니 피식 웃으며 물었다.

강한 군대는 실력이 강한 전진사가 장악해야 비로소 전의의 힘을 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런데 목진이 수중의 군대를 장악하려면 백만문급 전진사는 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존재는 천라대륙 전체를 훑어봐도 몇 명 없었다.

그러니 좌 장로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목진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과연 그럴까요?”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마치고는 서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이에 좌 장로는 왠지 불안해져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잇따라 엄청난 실력의 군대가 수중의 장창을 힘껏 내리찍자 무서운 선홍색 전의가 두꺼운 혈운처럼 위쪽에 미친 듯이 모여들었다.

그 광경에 좌 장로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좌 장로는 이제야 자신이 무시했던 녀석이 정말 이 강력한 군대를 장악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찌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크으으으!

파손된 대전에 나타난 이천 명의 도령위가 나지막하게 외치자 선홍색 전의는 홍수처럼 휘몰아쳐 위쪽에 두꺼운 혈운을 이뤘다.

이는 목진이 장악한 군대 중 전의가 가장 강한 군대였고 이 정도 전의는 하위 지지존도 감히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한편, 전의가 요동치자 주위의 공간도 부단히 무너져 검은색 공간 균열을 이뤘으니, 이것만으로도 도령위의 전의가 얼마나 난폭하고 강력한지 알 수 있었다.

석문 앞에 서 있던 성마궁의 좌 장로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 상황을 살폈는데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어느새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 대전 전체를 감싼 전의의 혈운을 보더니 도령위의 뒤쪽에 태연하게 서 있는 목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도 목진이 이처럼 실력이 막강한 정예 부대를 장악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럴 수가!”

좌 장로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그는 갑작스러운 변고에 어쩔 바를 몰랐다. 자신이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상대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마저 두려워질 만큼 무서운 힘을 획득했으니 말이다.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난 이 군대를 장악할 수 있어요.”

목진은 좌 장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것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예전 같으면 그는 일단 하위 지지존과 마주치면 도망가기 바빴을 텐데 지금은 상대방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성장했다.

목진은 수중의 오래된 병부를 힐끗 보고는 꼭 쥐었다. 지금은 도령위의 힘을 빌려야 하위 지지존을 상대할 수 있지만 머지않아 꿈에도 그리는 힘을 분명 얻게 되리라 굳게 믿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