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화. 불노화염(佛怒火蓮)
“염제?”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대천세계에서 무한의 화역의 염제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대천세계의 진정한 최정예급 강자 중 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가 만든 무한의 화역은 수백 년 사이에 대천세계의 엄청난 세력으로 거듭났고 전체적인 실력은 오래된 상고의 신족 못지않았다.
그 외, 대천세계에서 염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사람은 무경을 이룬 무조 외에는 없었다.
현장에 있는 천라대륙의 거장들은 무한의 화역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무한의 화역의 실력은 염제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천라대륙의 모든 세력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염제는 평소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만나고 싶어도 딱히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 눈앞에 나타난 염제한테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더구나 지금은 그들에게는 생사를 오가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목진도 잔뜩 놀라 고개를 들고 염제를 바라봤다. 그는 말로만 듣던 염제가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랐다.
“저 사람이 염제야?”
목진은 무한의 화해를 딛고 온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느긋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었는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도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강대함이었다.
역시 절세의 강자다웠다.
목진 뒤에 서 있던 소소도 고개를 들고 드디어 나타난 아버지를 힐끗 보며 긴장을 풀었다.
“어머, 저분이 네 아버지야? 우와! 내가 드디어 염제를 보다니!”
소소 옆에 서 있던 임정이 잔뜩 흥분해 소리치자 소소는 입을 삐쭉 내밀며 답했다.
“그래, 늘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기 좋아하는 노인네지. 돌아가면 반드시 어머니한테 이를 거야!”
“에헴, 내가 일부러 늦게 왔나? 이곳을 찾아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단다.”
세 여인의 앞쪽 공간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염제가 나타나 무안한 듯 어깨를 들썩이며 말하자 소소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휙 돌렸다.
이에 염제는 소소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더니 옆에 서 있는 임정과 구유와도 인사를 나눴는데 너무 상냥한 모습에 두 여인은 흠칫 놀랐다.
“일단 벌어진 일부터 처리부터 해야겠구나. 너희가 이번에 사고를 크게 쳤구나.”
염제는 미소를 지으며 목진한테 다가가 그를 쓰윽 훑고 어깨를 다독이며 말을 건넸다.
“잘했구나. 녀석, 진짜 사나이구나.”
목진은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존재가 이렇게 상냥할 줄은 생각지 못했고 그 말에 괜히 머쓱해졌다.
“여인을 먼저 죽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요.”
목진의 말에 염제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딸을 구해줘서 고맙구나. 이 은혜는 꼭 갚을 거란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나한테 맡기거라.”
염제의 말에 목진은 묵묵히 끄덕이고 뒤로 물러났다. 이건 목진이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염제가 나서자 천지의 기운은 확 달라졌고 무형의 위압감이 휘몰아쳤다.
한편, 염제가 막 모습을 드러냈을 때까지만 해도 피식거렸던 마제는 상대방의 엄청난 기운에 이내 정색했다.
그는 염제한테서 상당히 위험한 기운을 느꼈는데 과거의 천제보다 더 강력한 것 같았다.
대천세계에 또 이토록 무서운 존재가 있었다니, 이건 절대 역외족한테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해, 정예 강자가 거의 다 출동해서야 겨우 대천세계를 구했는데 또 자네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니, 참으로 아쉽군.”
마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만약 오늘 온 사람이 일반 천지존이었다면 그는 무사히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의 그의 상태는 최정상이 아니었다.
“‘천, 현, 유’ 중 어떤 등급인가?”
염제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천, 현, 유’란 역외족 마제를 나눈 세 가지 등급인데 대천세계의 일반 강자들은 모르는 정보였다.
“자네가 역외족에 대해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
마제가 흠칫 놀라 말하자 염제는 길쭉한 손에 불을 붙였다.
“여태껏 내 손에 죽은 마제가 열 명도 넘어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네.”
염제의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마제가 되려면 실력이 천지존에 이르러야 하는데 염제가 그런 존재를 열 명도 넘게 죽였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마제도 놀란 듯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그는 그제야 눈앞에 서 있는 사내가 역외족의 천적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과거의 천제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었다.
마제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난 탄천마제(吞天魔帝)라네.”
염제도 멈칫하더니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천마제였군. 그래서 천제를 상대할 수 있었던 거였어.”
천마제는 마제 중에서도 최정예급 존재였다.
“자넨 누군가?”
탄천마제가 말을 마치자 도천의 마의 기운이 휘몰아쳐 공간마저 무너지기 시작했고 무서운 마의 위엄을 방출했다.
그때 염제가 손을 들자 손바닥에 모인 현란한 화염은 서서히 회전하는 화련으로 변했다.
“염제, 소염이네.”
염제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소리가 주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염제의 말이 천제릉원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주위의 온도가 폭등하는 것이 느껴졌다. 허공에서 휘몰아치는 무한의 화해는 제왕을 반기는 듯 비등했다.
사람들은 순간 파멸의 화염 공격에 잿더미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와 멀리 떨어진 탄천마제도 안색이 확 어두워져 염제와 그가 딛고 있는 화해를 보더니 이내 정색했다.
그는 봉인을 뚫고 나오자마자 바로 천제릉원을 떠나지 않은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 그랬더라면 바로 숨어들어 대천세계의 천지존들의 구속에서 벗어난 뒤, 몰래 역외에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일을 크게 벌여놓은 탓에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더구나 전성기 때였으면 염제를 상대하기에 충분했을 테지만 현재 마제의 실력은 그보다 훨씬 뒤처졌다.
다만, 그도 보통이 아니라 바로 마음을 추슬렀다. 그해, 천제와의 대결에서 살아남은 것만 봐도 마제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탄천마제는 대천세계에서 가장 눈부신 존재를 앞에 두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럼 대천세계의 천지존이 과거보다 얼마나 뒤처졌는지 한 번 볼까나?”
말을 마친 탄천마제가 앞으로 나서자 발아래에서 검은색 마의 기운이 미친 듯이 솟구쳤다.
“마화천지!”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그가 서 있던 대지는 빠르게 검은색으로 물들었고 그 속에서 진득한 마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주위 수십만 리의 땅이 마의 기운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은 수십만 리의 구역이 마의 기운에 물든 것을 느꼈다. 그들이 일단 마의 기운을 흡입하면 체내의 영력이 사라져 악마로 거듭날 것이다. 마의 기운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염제가 없었다면 아마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육원 같은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정작 염제는 미소를 지으며 허공에 손가락을 가볍게 찍었다.
활활!
순간, 무궁무진한 화해가 휘몰아쳤는데 목진 등은 처음 보는 현란한 화염에서 무서운 기운을 느꼈다.
화염은 염제와 같은 등급인 천지존이라도 감히 가까이하려 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치익!
현란한 화해가 지나가자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의 기운으로 물들었던 악마의 땅이 까맣게 타버렸다.
1각도 안 되는 사이, 탄천마제가 이룬 마의 땅은 염제의 화염으로 인해 절반 정도 사라졌다.
그 광경에 탄천마제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원고 시기, 그는 대천세계의 천지존들과 제법 싸워봤고 그중, 화염 영력을 아주 잘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염제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마의 땅이 절반이나 망가지자 마제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다시 발을 힘껏 굴렀다.
“대마결(大魔訣), 탄천멸세수(吞天滅世手)!”
쿵!
십만 리 정도의 마의 땅은 바로 부서졌고 그 속에서 만 장 정도의 마의 기운과 함께 거대한 손이 뻗어 나갔다.
사악의 끝을 보여주는 검은 손은 하늘을 가릴 듯 거대했고, 단번에 제국을 없애버릴 것만 같았다.
이것과 비교하니 수만 장 정도 되는 지존법신은 상당히 왜소해 보였다. 이에 지지존들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대천세계에서 제법 유명한 정예 강자들이지만 이제야 지지존과 천지존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제대로 실감이 났다.
한편, 무한의 마수가 지나가자 공간이 모조리 부서져 까맣게 변했다. 다들 마수를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는데 마수에 검은 입이 달려 있었다.
검은 입은 이 세상 모든 물체를 집어삼킬 것 같았는데 일단 빨려 들어가면 지지존 대원만급에 이른 정예 강자라도 즉사할 것 같았다.
만약 마수를 이대로 두면 언젠가 천라대륙마저 꿀꺽 삼킬 것이다.
탄천마제는 보통 방법으로는 염제를 쓰러뜨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최강수를 둔 듯했다.
과거 역외족이 대천세계에 왔을 때, 탄천마제는 이 방법으로 수많은 강자를 집어삼켰다.
“참으로 무서운 힘이네…….”
목진도 깊게 숨을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그는 방대한 마수를 보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수의 힘은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탄천마제는 보통이 아니야. 상고 시기, 역외족에서의 지위도 상당하다고 들었어.”
만다라가 어느새 목진한테 다가가 마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염제께서 상대하실 수 있겠지?”
구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염제는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라 그가 쓰러지면 모든 사람은 탄천마제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만다라는 태연하게 서 있었다. 그녀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목진이나 구유 등보다 염제의 실력을 더 느낄 수 있는 모양이었다.
“탄천마제의 상태가 최정상이었으면 모를까, 지금은 일반 천지존이나 마찬가지야.”
이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탄천마제의 상태가 최정상이었을 때는 분명 상당히 무서웠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천제와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제는 절세 신통인 일기화삼청을 수련해 자신을 세 명의 천지존으로 나눌 수 있는데도 결국 목숨을 내놓고 마제를 봉인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것만 봐도 탄천마제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때 염제가 고개를 들더니 무덤덤하게 마수를 쳐다봤다.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마저 겁에 질릴 정도의 무서운 공격이었지만 그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네의 상태가 비록 최정상급은 아니지만 이 정도 실력이면 제법 뛰어나긴 하네. 그런데 천제를 이길 것까지는 아닌데 어찌…….”
염제가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밀자 손바닥에서 화련이 서서히 회전했다.
정교한 화련은 예술품처럼 아름다웠고 다채로운 빛을 발했는데 자세히 보니 꽃잎의 색깔이 제각각 달랐다.
이는 단순한 색깔 변화가 아니라 실력이 강대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독특한 화염으로 이룬 것이었다.
또한, 이 화염은 일반 화염이 아니라서 파괴력이 상당했지만 염제의 손에서는 아주 고분고분했다.
그러다 염제가 손가락을 튕기자 정교한 화련이 움직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만 리 정도 되는 마수 앞에 나타났다.
마수와 비교하면 화련은 먼지처럼 작아 보였다.
그런데 탄천마제는 이러한 화련의 출현에 안색이 확 어두워지더니 무한의 마의 기운으로 앞쪽에 수백만 개의 마의 방패를 형성했다.
쿵!
화련이 마수를 공격하자 화염이 폭발해 하늘과 땅이 일그러졌고 마의 기운은 순식간에 증발해 사라졌으며 마수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 광경에 천라대륙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염제가 무서운 탄천마제의 공격을 이렇게 쉽게 해결했단 말인가?
쿠쿵!
무궁무진한 화해가 휘몰아치자 수백만 개의 마의 기운으로 이뤄진 방패도 부서졌고 그 충격파는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도망가려던 탄천마제를 공격했다.
쿵!
천지가 진동하자 탄천마제가 있던 공간이 산산이 부서졌고 도천의 마의 기운도 완벽히 사라졌다.
염제는 부서진 공간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공격은 불노화련이라고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