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2화. 숙청
“원고 시기, 탄천마제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네.”
무조는 멈칫하다가 다시 말했다.
“바로 구시천마제(九屍天魔帝)라네.”
“구시천마제?”
목진 등은 멍하니 무조를 쳐다봤고 염제는 뭔가 생각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탄천마제는 한 명이 아니라 아홉 명이네! 심지어 아홉 명이 전부 마제라네!”
무조는 청색 빛덩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탄천마제는 역외족의 탄마족(吞魔族) 출신으로 탄마족에 마제가 아홉 명이 있었는데 실력의 향상을 위해 하나가 되었다네.”
목진은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그럼 천제는 한 사람과 싸운 것이 아니라 아홉 명과 싸웠던 것이었다.
“안 그럼 탄천마제가 어찌 일기화삼청을 수련한 천제를 이겼을까?”
무조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해, 천제께서는 일기화삼청으로 7마를 죽이셨지만 결국 영력이 다 닳아 나머지 2마를 봉인하셨네. 일전에 염제가 느낀 마심의 파멸은 여덟 번째 마제가 자폭한 거라 나머지 한 명이 살아있었던 것이네.”
목진 등은 역외족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녀석들에게는 괴이한 수단이 너무 많았다. 천제께서 봉인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또한, 이들은 천제께서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도 알게 되었다. 천제께서는 하나가 된 아홉 명의 마제 중 일곱 명이나 죽였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두 명을 봉인했으니, 역시 대단한 분이었다.
“그렇군.”
염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금세 숙연해졌다. 그는 괴이한 수법이 많은 마제를 신중하게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시천마제가 괜히 역외족 10위권에 든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인물은 절대 풀어줘서 안 되네.”
이에 무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이야말로 녀석은 끝이네. 우리 두 사람이 나섰으니 더는 대천세계를 해치지 못할 것이네.”
무조의 말에서 패기가 흘러넘쳤다. 제아무리 구시천마제의 상태로 돌아갔어도 염제와 무조한테 잡혀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을 죽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천제이신데…….”
염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무조도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서 있던 목진과 만다라는 깜짝 놀랐다. 설마 천제께서 아직 돌아가지 않으셨단 말인가!
“천제…… 천제께서는 이미 돌아가지 않으셨나요?”
염제의 말에 목진과 만다라는 깜짝 놀랐다.
“천제께서는 돌아가셨지만 봉인을 지키는 흔적은 남아있단다.”
만다라의 질문에 염제는 무조와 눈을 마주치며 답했다.
이에 만다라는 순간 시무룩해졌다. 그는 자신한테 큰 은혜를 베푼 천제를 아버지처럼 생각했기에 살아계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염제는 만다라의 표정에서 바로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하고 산맥 내부의 광장에 놓인 커다란 검은색 머리를 쳐다봤다.
“저것이 천제란 말인가요?”
목진은 염제의 눈빛에 흠칫 놀랐다. 다들 검은색 머리가 마제라고 생각했는데 천제의 모습을 한 존재가 마제였다.
“탄천마제는 상당히 교활해 천제의 모양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천제의 유골을 저따위 마제의 모습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파괴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염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고는 옷깃을 휘날렸는데 현란한 화염이 날아가 검은색 머리에 깃든 마의 기운을 모조리 몰아냈다.
잇따라 검은색 머리는 영롱한 빛이 되더니 한데 모여 하얀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모양을 이뤘다.
훤칠하게 생긴 그는 제왕의 위엄을 내뿜었고 이에 우리는 저절로 우러러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경외의 눈빛으로 하얀색 도포를 입은 사내를 쳐다봤다. 그가 바로 상고의 천궁의 창시자인 천제란 말인가?
“이 한 몸 던져 악마를 봉인했는데도 죽지 않았고 오히려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니, 부끄럽구나.”
하얀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무조 수중의 청색 빛덩이를 보더니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선배님의 대의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염제와 무조는 과거 대천체계에서 최정예급 강자였던 천제에게 더없이 공손했다.
그들은 절세의 천재라 대천세계에서 같은 등급인 천지존도 안중에 없지만 천제는 대천세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마제를 봉인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존경할만했다.
목진 등도 천제의 수호에 감사 인사를 올렸다.
이에 천제는 흐뭇하게 미소를 짓더니 염제와 무조를 번갈아 훑었다.
“그해, 대천세계는 역외족을 상대하느라 많은 사람을 잃었는데 만 년이 지난 지금, 또 이렇게 훌륭한 인물들이 나타났구나. 대천세계는 아직 희망이 있구나.”
천제는 비록 지금 령영 상태였지만 바로 염제와 무조의 비범한 실력을 알아보았다.
그가 전성기였어도 아마 두 사람을 이기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괜히 뿌듯했다. 대천세계는 겁난을 겪고 쇠퇴해진 것이 아니라 더 번창해진 모습이었다.
염제와 무조는 탄천마제를 봉인한 빛덩이를 그에게 건넸다. 그들은 천제한테 녀석의 처분권을 맡기기로 했다.
천제가 빛덩이를 건네받자 탄천마제의 얼굴이 드러났는데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천제를 노려보며 외쳤다.
“천제, 저들이 끼어들지만 않았으면 자네가 진 것이네!”
그러나 천제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닌 것 같네. 탄마족에서 심혈을 기울여 겨우 역외족 10위권에 드는 자네를 배양했으니 내가 그때 자네를 떠나보냈다면 대천세계의 다른 곳도 분명 엄청난 피해를 받았을 것이네. 내가 자네를 여태껏 봉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네. 대천세계는 여전히 존재하고 훌륭한 인물도 여럿 생기지 않았는가? 그러니 패배한 사람은 내가 아니네.”
천제의 말에 탄천마제는 화가 나 마의 기운을 내뿜으며 발버둥 쳤지만 결국 청광 봉인을 뚫고 나오지는 못했다.
한편, 염제와 무조는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천제는 그때 그 전쟁으로 대천세계가 살아남긴 했지만 절반 정도의 땅을 잃고 역외족은 만 년 동안, 여전히 대천세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대천세계는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해야 적합했다. 또한, 역외족은 포기를 모르는 존재였기에 언젠가 다시 돌아오면 분명 더 무서운 전쟁을 벌일 것이다.
많은 생각이 스쳐갔지만 염제와 무조는 그저 가볍게 웃기만 했다. 그때 두 사람은 대천세계에 없었지만 지금은 이곳이 그들의 터전이었다. 그들은 역외족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보고 싶었다.
천제는 염제와 무조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눈길을 돌려 뒤에 서 있는 가녀린 소녀를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만다라, 네가 무사한 것을 보니 정말 좋구나.”
멍하니 천제를 바라보던 만다라는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졌고 천천히 다가가 천제의 손을 잡았다. 천제는 곧 시들 것 같은 꽃을 쓰다듬듯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잇따라 천제는 미소를 지으며 천제검을 든 목진을 쓰윽 훑었다.
“상고의 천궁에 천부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불후금신을 수련해내지 못했는데 오늘 이리 만나게 되었구나. 역시 하늘은 날 저버리지 않았어.”
“운 좋게 선배님께서 남기신 불후금신의 수련에 성공했어요.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목진은 천제께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천제께서 남기신 불후금신의 수련법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직도 방법을 몰라 헤맸을 것이다.
이에 천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밀었다.
“잠시 천제검을 빌려도 될까?”
목진이 바로 천제검을 건네자 천제는 한 손으로 결인하며 막연한 눈빛으로 봉인된 탄천마제를 쳐다봤다.
파멸의 위기를 느낀 것 같은 탄천마제는 미친 듯이 포효했지만 천제는 이를 완전히 무시한 채 수중의 천제검을 힘껏 휘둘렀다. 천제검은 억만 점의 별을 내뿜었는데 그 속에 지극히 무서운 힘이 깃들어있었다.
천제는 령영일 뿐이라 탄천마제를 상대할 힘이 부족해 천제검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치익!
억만 점의 별이 청광을 지나 봉인 속 마안을 공격하자 처량하기 그지없는 포효가 울려 퍼졌다.
“우쭐거리지 말아라. 역외족이 다음번에 다시 올 때는 그날이 바로 대천세계의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
엄청난 포효와 함께 봉인 속 탄천마제는 완전히 생기를 잃고 허무가 되어 사라졌다.
위잉!
이와 동시에, 누군가 갑자기 천제릉원의 끝자락에 나타나 도망가려 했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이놈, 그때 도망갔으면 그만이지 악마를 도와 봉인을 뚫게 하다니, 네 죄를 인정하느냐?”
천제의 말에 육원은 화들짝 놀라 체내의 마의 기운을 한껏 끌어올려 검은색 교룡으로 변했다. 육원의 본체는 상고의 혈교인데 지금은 마교가 되었다.
본체로 변한 육원이 꼬리로 공간을 부수고 도망가려 하자 수정 같은 빛과 함께 예리한 검기가 천지를 가르며 내려앉아 마교의 머리가 순식간에 바닥에 꽂혔다. 웅장한 검기가 폭발하자 녀석의 방대한 육신은 산산이 부서졌고, 신백은 파괴되었다.
천제는 육원의 배신에 상당히 화가 난 듯했다. 녀석은 겨우 상위 지지존일 뿐이라 천제의 공격에 즉사했다.
천제는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쓰윽 훑었다.
“오늘 일은 이제 마무리됐으니 이만 돌아가거라.”
천제의 말에 주위의 공간에 파동이 일더니 사람들의 옆에 공간 통로가 생겼다.
다들 일기화삼청 때문에 남아있었지만, 천제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했다. 더구나 염제와 무조가 있었기에 일기화삼청이 다른 사람들한테 주어질 리가 없다는 생각에 다들 아쉬운 듯 한숨을 쉬며 공간 통로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떠나고 천제릉원이 다시 조용해지자 천제는 염제와 무조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혹시 내 일기화삼청에 관심이 있느냐?”
천제의 우스갯소리에 염제와 무조는 멈칫하더니 서로 마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천제는 원고 시기, 유명한 최정예 강자로 절세 신통인 일기화삼청은 위력이 엄청났다. 이에 일반 천지존이었다면 얻지 못해 안날이 났을 테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일기화삼청이 아무리 대단해도 두 사람은 자신이 만든 수련법에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또한, 천제의 일기화삼청을 수련하면 천제의 계승을 받아야 하는데 이건 두 사람의 지위와 위치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염제와 무조는 천제의 대의를 존경해도 그 수련법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후배들도 있는데 어린아이들과 계승을 다투기도 싫었다.
하여 두 사람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기회는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남겨주세요.”
천제도 그리 놀라지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염제와 무조는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일기화삼청이 욕심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염제와 무조보다 더 적합한 계승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일전에 한 말은 시험 삼아 한 말일 뿐이었다.
이에 천제는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목진한테 고개를 돌렸다.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목진은 순간 멈칫했다. 그는 천제께서 일기화삼청을 염제나 무조한테 주는 줄 알고 조금 아쉬워했다. 두 사람이 절세 신통을 이어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은 불후금신을 수련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거절하자 천제께서 갑자기 자신한테 질문을 던져 깜짝 놀랐다.
그때 옆에 서 있던 구유가 몰래 목진을 툭 건드렸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놓치면 얼마나 아쉽단 말인가? 목진이 정말 일기화삼청을 획득하면 앞으로의 수련에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래전부터 일기화삼청에 대해 들은 바 있었고 배우고 싶었는데 이를 이어받을 정도의 천부적 재능과 기회가…….”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말에 염제와 무조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절세 신통은 엄청난 세력에서도 얻지 못해 안달인데 목진이라고 다를까? 오히려 통쾌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하, 떳떳해서 좋구나.”
천제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목진의 답변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