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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761화 (760/1,000)

761화. 낙신

목진이 잠시 고민하다가 만다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앞으로 상고의 천궁을 기반으로 둘 것이니 상고의 천궁이라고 할까?”

그는 천제를 위해 대천세계에 뭐라도 남겨주고 싶었다. 목진은 천제한테서 엄청난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다라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천제께서 상고의 천궁의 시대는 지났다고 하셨으니 억지로 남길 필요는 없어. 그 이름은 그냥 흘려보내.”

목진은 멈칫하더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다라에게 상고의 천궁은 각별했지만 그곳 사람이라곤 그녀밖에 남지 않아 그 이름을 듣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그럼…….”

목진이 뾰족한 수가 없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리자 만다라는 손으로 턱을 괴고 눈동자를 돌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참! 새로운 세력의 주인이 너니까 ‘목부’라고 하자! 얼마나 간단하고 좋아!”

목진은 너무 단순한 이름에 순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유천도 등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좀…….”

‘목부’란 이름이 일단 알려지면 다들 목진의 세력이란 걸 바로 알아챌 것이다.

정예 세력 주인이었던 유천도 등은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도 딴마음을 품고 있단 말인가?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떠나도 좋네. 대신 앞으로 절대 후회하지 말게.”

만다라가 이내 정색하며 한 말에 유천도 등은 흠칫 놀라더니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목부’로 합시다.”

유천도 등이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극히 방대한 자원이 필요한데 이들만으로는 북계에서 한 세력의 주인이 될 수는 있지만 천라대륙 같은 엄청난 대륙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북계에서 벗어나면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대천세계에서 마음 편히 수련하려면 뒷배가 강해야 하는데 ‘목부’는 새로운 세력이긴 하지만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인 만다라가 있어 충분히 목부가 강대해질 때까지 보호해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목진은 아직 하위 지지존일 뿐이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앞으로 죽지만 않으면 필경 대천세계의 거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목부는 대천세계의 엄청난 세력으로 무한의 화역, 무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유천도 등은 더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보아하니 만다라는 목진을 위해 기반이 든든한 세력을 만들어 주려는 것 같은데 그러려면 북계 연맹이 더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하여 유천도 등은 진심으로 목부에 가입해 얼마나 장대해지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만다라는 그제야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사흘 뒤를 ‘목부’의 개각일로 할 것이네!”

“여러분은 목부의 원로이고 이건 어떤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을 것이네!”

만다라는 유천도 등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목부가 장대해진다고 이들의 지위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잇따라 유천도 등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자 목진도 신중하게 답례했다.

그 후, 유천도 등은 이 소식을 알리러 각자의 세력으로 돌아갔다. 비록 적잖은 소란이 일어날 테지만 그들의 수단과 위엄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목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만다라를 바라보며 맥없이 웃었다.

“이 자리는 네가 더 어울려.”

이에 만다라는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언젠가 너는 나를 뛰어넘을 거야. 그러니 목부는 네가 있어야 대천세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어.”

“그날이 되기도 전에 난 귀찮아 죽을 거야.”

목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오늘 일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려 앞으로 몰려올 수많은 문제에 벌써 겁이 났다.

“누가 보면 네가 구유궁을 직접 관리한 줄 알겠어. 구유궁도 결국 너 없이 혼자서 잘만 성장했잖아?”

만다라가 피식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괜히 머쓱하여 머리를 긁적였다. 구유궁은 당빙이 관리했고 목진과 구유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만다라는 목진이 구유궁 때처럼 하면 된다고 알려주는 거나 다름없었으니, 훨씬 안심되는 말이었다.

그때 목진이 만다라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목소리를 파르르 떨며 물었다.

“그럼…… 인제 낙리에 관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어?”

목진은 대전에 서서 두 손을 파르르 떨며 만다라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창로하고 우람진 노인이 낙리를 데려갔을 때의 무기력함과 소녀가 떠나기 전, 어쩔 수 없는 이별 때문에 흘리던 눈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목진은 낙리를 지켜줄 능력이 없어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할 걸 알면서도 말이다.

“다음번엔 더는 너를 빼앗기지 않을 거야. 그게 누구든 말이야!”

그날 외쳤던 소년의 확고한 말투가 또렷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목진은 그 뒤로 북창령원을 떠나 진정한 대천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몇 년 후, 소년은 수많은 생사의 난을 거쳐 앳된 모습을 거두고 강인함으로 가득 찬 성숙한 사내로 거듭났다.

드디어 목진에게 마음껏 날개를 펼칠 자격이 생겼다.

그는 더 이상 그날의 나약한 소년이 아니었다. 이제 낙천신을 마주해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목진이 모든 필살기를 선보이면 진정한 상위 지지존도 두려움에 떨 것이다. 목진은 이제 넘을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노인을 상대한 실력을 갖췄다.

목진은 손녀가 선택한 사내가 별 볼 일 없는 돌멩이가 아니라 갈고 닦으면 눈부신 빛을 발하는 보석이란 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목진은 그날을 위해 지금껏 노력해왔다.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밝게 빛나는 눈빛으로 만다라를 바라봤다.

만다라는 그런 목진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 아이를 여간 아끼는 것이 아닌가 보구나.”

만다라는 목진이 한 여인 때문에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건 처음 보았다.

이에 목진은 괜히 부끄러워 고개를 긁적이다가 다시 만다라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낙신족에 대해 얼마나 알아?”

만다라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묻자 목진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낙신족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천라대륙의 정예 세력 정도일 것 같았다.

“낙신족이 지금은 너무 뒤처져 별 볼 일 없지만 잘 나갔을 땐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강했어.”

만다라가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상고 시기, 낙신족이 잘 나갔을 때 절세의 미인이 나타났는데 실력과 명성을 비교하면 천제보다 훨씬 대단했지.”

목진은 깜짝 놀라 만다라를 바라봤다. 낙신족에 천제보다 뛰어난 인물이 있었다니!

“그 사람은 낙신으로 대천세계 최정예급 강자일 뿐만 아니라 상고 시기, 대천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어. 쯧쯧, 그때 수많은 천지존이 그녀한테 반했다고 들었는데…….”

만다라가 혀를 끌끌 차며 한 말에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고 시기, 대천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낙신족 사람이었다니…….

“낙신족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존재한 종족이야. 역외족만 아니었으면 낙신족도 상고족에 속했을 거야.”

만다라가 안타까운 듯 말했고 목진은 이내 혀를 내둘렀다. 대천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만 고족이라 부를 수 있다. 마하고족처럼 말이다. 그런데 낙신족도 그럴 뻔했다니…….

“낙신은 그럼 역외족과 싸우다가 죽은 거야?”

목진의 질문에 만다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정색하며 답했다.

“그해, 대결전 때 낙신은 혼자서 역외족에서 순위권 8위, 9위인 천마제 두 명을 상대했다고 들었어.”

상고의 천궁에서 구시천마제의 실력을 직접 확인한 목진은 순위권에 든 천마제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았다. 게다가 8위, 9위인 두 천마제라면 분명 실력이 범상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낙신이 혼자서 이들을 상대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날 낙신은 죽었고 천마제 두 사람 중 한 놈은 죽고, 나머지 한 놈은 크게 다쳤다고 들었어.”

만다라는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그녀는 대천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자못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목진도 대전 결과에 적잖게 놀랐다. 천제도 전력을 다해야 구시천마제를 봉인했을 뿐인데 낙신은 한 놈을 죽이기까지 했으니 만다라의 말대로 천제보다 실력이 뛰어나단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낙신은 죽어서 낙하란 하천을 이뤘고 낙신족은 대대로 그 하천을 지키고 있어. 소문으로는 낙신이 계승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대천세계에서 유명한 낙신법신이라고 들었어.”

“99등급 지존법신 순위권 중 11위인 낙신법신 말이야?”

목진이 눈가가 파르르 떨며 물었다. 그는 유난히 신비롭고 보기 드문 지존법신이 낙신족에 있을 줄 몰랐다.

낙신법신과 비교하면 불후법신도 크게 우세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목진은 이제야 낙신족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종족이란 걸 깨달았다.

“다만…….”

만다라는 갑자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여태껏 아무도 낙신법신을 수련해내지 못했고 낙신의 계승을 받은 사람도 단 한 명도 없어. 그래서 낙신족이 점차 몰락해 이 지경이 된 거지.”

역시 낙신법신을 수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재 대천세계에서 낙신법신을 수련한 사람이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힘은 없는데 엄청난 보물을 지니고 있으니 이목을 끌 수밖에.”

만다라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소서천계에 4대 신족이 있는데 각각 낙신족, 혈신족, 역신족과 골신족(骨神族)이야. 낙신족은 비록 쇠약해졌지만 지금까지 네 종족의 수장 자리를 지켜왔어.”

“그런데 나머지 세 종족이 강해지고, 낙신족이 점점 쇠퇴하면서 지금은 소서천계에서 혈신족이 가장 강한 종족이 됐어.”

“혈신족은 낙신족과 깊은 원한이 있어서 천 년도 넘게 싸웠는데 강해지자마자 낙신족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 난 거지.”

“그런데 낙신족은 이토록 위급한 상황에서도 한데 뭉치지 않고 뿔뿔이 흩어졌으니, 멸족의 위기가 오지 않을 수가 없지.”

만다라는 피식 웃으며 목진을 힐끗 쳐다봤다.

“네 정인이 제법이더라? 그녀가 낙신족에 돌아간 뒤로 혼자 애써 종족을 정돈한 덕분에 낙신족은 혈신족의 피 말리는 공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어.”

그런데 목진은 썩 기뻐 보이지 않았고 안색이 확 어두워져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그녀가 낙신족을 지키기 위해 괴롭고 억울한 일을 얼마나 많이 겪었을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지금은 어때? 아까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던 것 같은데…….”

목진이 깊게 숨을 들이켜며 작은 목소리로 묻자 만다라도 웃음을 거두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들은 바로 낙천신이 요즘 낙신제를 진행하려 하는 것 같아. 아마 낙리가 낙신의 계승을 받았으면 하나 봐.”

“만약 낙리가 정말 낙신의 계승을 받아 낙신법신의 수련까지 성공하면 두 번째 낙신의 탄생은 문제없을 거야. 그런데 이건 소서천계의 나머지 세 종족이 원하는 게 아니니 분명 방해하러 갈 거야.”

“또한, 낙신족 내부도 혼잡하다고 들었어. 다 네 정인 편은 아니더라고. 낙천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이번 낙신제를 무사히 마치기도 쉽지 않을 거야.”

후우.

목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낙신제는 언제 시작이야?”

“한 달 뒤.”

“목부의 힘을 사용할 수 있어?”

목진이 만다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낙신제에는 분명 수많은 강자가 모일 것이다. 목진이 아무리 지지존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혼자서는 낙신족에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이에 만다라는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목부의 주인인데 왜 나한테 물어?”

“고마워.”

목진은 만다라가 자신을 돕기 위해 북계 연맹을 포기하고 그를 주인으로 한 목부를 세운 걸 잘 알았다.

만다라는 기지개를 켜더니 느긋하게 말을 내뱉었다.

“네가 내 직속 후배잖아? 내가 후배를 어지간히 아껴야지. 그럼 우리 후배의 정인을 괴롭히는 녀석들은 당연히 죽여줘야겠지?”

낙리야, 조금만 기다려!

목진은 씨익 웃더니 이내 살기를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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