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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764화 (763/1,000)

764화. 낙신화(洛神花)

여인의 은하수 같은 장발은 햇빛에 눈부시게 빛났고 흠잡을 데 하나 없이 정교한 얼굴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예술품 같았다.

쏴아아!

그녀가 옥대에 나타나자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었다.

“여황을 뵙습니다.”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가 낙신성에 쩌렁쩌렁 울려 퍼져 한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그 광경에 다른 지역에서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흠칫 놀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멸망할 것 같았던 낙신족의 사기가 이 정도라니!

이에 그들은 놀란 듯한 눈빛으로 옥대 위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쳐다봤다. 그녀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고난을 잊게 할 만큼 놀라웠고 그녀만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낙신족의 차기 여황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낙리도 백성들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서서 고개를 가볍게 젖혔는데 우아하고 존귀한 기품에 다들 탄복했다.

“나의 여황이여!”

낙리 뒤에 있던 두 젊은이도 한쪽 무릎을 꿇고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앞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에는 연모의 뜻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낙신족 젊은이 중 가장 훌륭했던 이들로 목진이 있었으면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그들은 바로 낙천신과 함께 북창령원에 왔던 낙청애와 낙수였다.

그 후, 그들의 실력은 9급 지존경 원만급에 이르렀다. 어린 나이에 이 정도 실력에 오른 것은 낙리가 지원해준 대량의 자원 때문이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천부적인 재능 덕분이었다.

“낙신제를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테니 최선을 다해 막거라.”

낙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낙청애와 낙수는 낙리의 명으로 낙신족의 모든 군사를 장악해 영향력이 상당했다.

“내가 죽지 않은 이상, 아무도 이곳에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낙청애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싸우다 죽어도 내 시체는 적의 몸을 감싸 당신의 눈을 더럽히지 않겠습니다.”

낙수가 히쭉 웃으며 말하더니 바로 살기를 품었다.

“죽지 말거라.”

낙리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말에 낙청애와 낙수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가 거느린 군대로 향했다. 그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낙리를 지킬 것이다.

낙청애와 낙수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낙리는 어딘가를 힐끗 쳐다봤다. 그쪽에도 한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의 우두머리는 세 노인으로 강대한 영력 파동을 내뿜는 하위 지지존이었다.

그런데 낙리는 기쁘긴커녕, 오히려 걱정되었다. 그들은 낙신족 황족의 친족으로 황족 이외에 실력이 가장 강한 세력이었다.

아쉽게도 그들은 황족에 완전히 충성하지 않을뿐더러 황권을 약화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낙천신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이미 나서서 황위를 빼앗으려 했을 것이다.

이에 낙리는 이번 낙신제에서 그들을 의지하기보다는 경계했다.

“천룡 삼촌.”

낙리의 말에 낙천신 옆에 서 있던 튼실한 중년 사내가 앞으로 나서서 가볍게 허리를 굽혔다. 그는 낙천룡(洛天龍)으로 낙신족 황족 중, 낙천신을 제외한 두 하위 지지존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때 낙리의 아버지의 절친한 벗이었는데 낙리의 아버지가 죽은 뒤, 종족 내부의 분쟁을 보고는 마음을 접고 은퇴했다. 이에 낙리가 낙신족에 돌아와 몇 번의 사정 끝에 다시 그를 모셔왔다.

“저쪽 사람들을 잘 살펴 주세요.”

낙리가 낙천룡에게 말했다.

낙천룡은 하위 지지존 밖에 안 되어 하위 지지존 세 명을 살피는 것이 버거웠지만 낙신족 적계 황족 실력이 미약해 이것이 낙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수고하세요.”

낙천룡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자 낙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네 아버지께서 낙신족에 한 가장 큰 공헌은 바로 너처럼 훌륭한 딸을 낳은 거란다. 난 낙신족이 네 손에서 어느 때보다 강대해질 거라 굳게 믿는다. 그러니 뭐든 말만 하거라!”

낙천룡은 히쭉 웃으며 바로 상대방과 옥대 사이에 다가가 살기 가득한 얼굴로 녀석들을 바라보며 경고했다.

이에 상대편의 세 노인도 무덤덤하게 낙천룡을 힐끗 보더니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옥대에 서 있는 여인을 쳐다봤다.

낙천룡도 떠나자 낙리는 낙천신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자꾸나.”

낙천신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그는 낙리의 완벽한 대처에 뿌듯했지만 그들의 적은 이들뿐만이 아니란 걸 낙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낙신제는 아마 최근 들어 가장 위험한 제사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위험한들 반드시 진행해야만 했다.

그때 옥대에서 짙은 영광을 발하더니 낙리의 발아래에 백옥 연화대를 이뤘고 그녀는 서서히 내려앉았는데 은하수 같은 장발이 축 드리워진 것이 너무 아름다웠다.

낙리는 고개를 들어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백성들을 보고는 반드시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의 성공은 낙신족의 미래를 상징했기 때문이었다.

낙리는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혀끝을 깨물어 정혈을 아래쪽 낙하에 뱉었다.

쿵!

낙하는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더니 수많은 암홍색 광점이 날아올라 낙리의 몸에 내려앉았다.

낙리의 하얀색 치마도 서서히 암홍색으로 변했다.

암홍색이 점점 짙어져 활활 타오르는 암홍색 화염이 되어 낙리를 감쌌는데 순간, 오래된 가요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쥔 채 활활 타오르는 암홍색 화염을 쳐다봤다.

낙신제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활활!

암홍색 화염이 낙리의 몸에서 활활 타올랐는데 멀리서 보면 거대한 암홍색 횃불이 우뚝 솟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이와 동시에, 낙리의 손에서 계속 피가 떨어져 아래쪽 낙하에 스며들었다.

낙하는 원고 시기, 낙신족의 선조인 낙신이 죽으며 형성한 하천으로 낙신의 힘이 깃들었는데 가장 순수한 낙신족 황족 혈맥만 가동시킬 수 있다.

낙리의 피에 낙하는 점차 빨갛게 물들었고 선홍색 광점이 피어올라 그녀의 몸을 맴돌더니 암홍색 화염도 점차 강력해졌다.

낙천신은 낙리의 오른편에 서서 한껏 정색한 채 아래쪽 요동치는 낙하를 힐끗 쳐다봤다. 낙신족 황족 혈맥이 순수할수록 낙하와 이룬 공명이 더 강력하고 보다 순수한 힘을 전수받을 수 있는데 낙리가 바로 낙신족에서 황족 혈맥이 가장 순수한 사람이었다.

이건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검증된 사실이었다. 이에 낙천신은 낙리의 낙신제가 필경 남다를 거라 확신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저 멀리 하늘을 쳐다봤다. 호시탐탐 이곳을 노리는 사람들이 기회를 틈타 낙신제를 파괴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낙천신은 절대 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낙리는 낙신족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겨우 다시 모인 낙신족은 순식간에 와해되어 멸망할 것이다.

낙천신은 비록 상위 지지존이긴 하지만 크게 다쳐 전처럼 실력이 왕성하지 않아 따르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다. 안 그럼 그는 이미 강제로 황족 친족의 하위 지지존 세 사람을 제압했을 것이다.

아무튼 누구든 낙리의 낙신제를 파괴하려 든다면 몸을 내던져서라도 상대방을 찢어 죽일 각오가 되어있었다.

이러한 생각에 그의 표정이 점차 표독스러워졌다.

쏴아.

그때 아래쪽 낙하가 갑자기 비등하더니 선홍색 물거품이 계속해서 생성되어 다들 눈길이 한곳으로 모였다.

퍽!

그러다 한 물거품에서 선홍색 빛이 솟아올라 손바닥만 한 선홍색 꽃을 이뤘는데 표면에 선홍색 화염이 활활 타올랐고 꽃잎마다 여리여리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이와 동시에, 꽃은 웅장하고 오래된 혈맥의 힘을 방출했다.

낙천신, 낙천룡 등 낙신족 강자들은 선홍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꽃을 보고는 이내 화색이 되었다.

“저건…… 저건 낙신화네!”

다른 낙신족 황족 사람들도 화들짝 놀라 외쳤다.

낙신제에서는 혈맥이 순수한 정도에 따라 다른 현상을 나타내는데 혈맥이 가장 순수할 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낙신화였다.

낙신화는 선조 낙신의 피로 이뤄진 존재로 낙하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가 가장 순수한 혈맥의 부름을 받고 나타난다고 했다.

낙신족이 오랜 시간 존재하긴 했지만, 낙신화가 출현한 횟수는 얼마 안 되어 다들 그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황족 친족의 하위 지지존 세 사람도 활짝 피어난 선홍색 꽃을 보더니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어…… 어찌 낙신화란 말인가!”

그들은 마주 보며 애써 놀란 마음을 달랬다. 그들도 낙리의 혈맥이 상당히 순수한 걸 알고 있었지만 낙신제에서 낙신화를 불러낼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역시 낙리의 낙신제는 범상치 않았다. 그녀가 낙신의 계승까지 받으면 분명 지지존경에 이를 것이고 그녀의 미래는 상당히 밝을 것이다.

아무도 낙리가 낙신족의 두 번째 낙신이 될지는 몰랐지만 일단 그렇게 되면 그녀의 지위를 흔들 사람은 더는 없을 것이고, 황족 친족이라도 꼬리를 내리고 더는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그때 가면 그들처럼 낙리의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은 분명 처벌을 받을 텐데…….

이러한 생각에 이들은 이내 살기를 품었다.

반면, 멀리서 낙하에 피어오른 선홍색 꽃을 발견한 낙신족 백성들은 하늘이 떠나갈 듯 환호했다.

낙신족 백성들도 낙신족 혈맥이 조금씩 섞여 있어 선홍색 꽃에 숨어 있는 혈맥의 힘이 느껴졌다.

그들은 지금껏 낙신제에서 이런 상황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범상치 않은 낙신제의 모습에 상당히 흥분되었다.

선홍색 낙신화가 서서히 낙리의 몸에 닿자 그녀를 감싼 암홍색 화염이 순식간에 팽창했다.

활활!

횃불은 수백 장 정도의 불기둥이 되어 활활 타올랐고 공기는 혈맥의 냄새로 가득 찼다.

또한, 화염이 강해질수록 낙리 체내에서 방출하는 영력 파동도 점차 강해졌다.

낙리의 영력 파동은 지지존의 한계로 향했다.

이를 발견한 낙천신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허허, 역시 낙신족의 절세의 천재는 남다르군. 낙신제마저 이렇게 범상치 않다니 말이네.”

그런데 그때, 멀리서부터 갑자기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와 낙천신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져 저 멀리 하늘을 쳐다봤다.

“혈신족, 혈령자(血靈子)!”

파랗던 하늘이 갑자기 피바람 불 듯 빨갛게 물들더니 선홍색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나타나 시뻘건 눈동자를 굴리며 낙천신을 바라봤다.

“낙신족에서 낙신제를 한다고 하여 혈신족에서 보러 왔네.”

쏴아아!

이에 낙하 양측에 서 있던 군사들은 강력한 영력을 끌어올렸고 낙청애와 낙수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갑자기 나타난 선홍색 도포를 입은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체내의 영력을 뒤편의 군대와 융합해 강력한 전의를 이뤘다.

두 사람은 전진사였다. 하지만 기껏해야 만문 전진사 정도밖에는 안 되었다.

그때 아래쪽 낙신성도 떠들썩해졌는데 낙신족 백성들도 씩씩거리며 허공에 떠 있는 사내를 쳐다봤다. 다들 그를 아는 눈치였다. 그는 바로 혈신족 족장, 혈령자였다.

그는 소서천계에서 이름만 내세워도 어린아이를 겁먹게 할 수 있을 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썩 꺼지거라! 낙신족은 너를 환영하지 않는다.”

낙천신은 혈령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웅장한 영력을 끌어올렸다. 이에 뒤쪽에 영력이 돌풍처럼 휘몰아치자 주위 공간이 격렬하게 일그러지며 무서운 영력 위압감이 형성되었다.

“허허, 소서천계에 혈신족이 가지 못하는 곳이 있을까?”

혈령자가 히쭉 웃으며 옷깃을 휘날렸는데 뒤쪽에서 무서운 영력 파동을 내뿜는 다섯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들은 전부 하위 지지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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