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화. 절망
혈의는 목진이 아직 같은 등급의 상대를 세 명이나 정면 상대할 정도로 강하지 못해 영진과 전의의 힘으로 수적 우세를 없애려 한 거라 여겼다.
그럼 그가 혈동과 혈수가 빠져나올 때까지 시간만 끌면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혈의는 당황하던 모습을 완전히 거두고 고개를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네 계획이 그리 완벽한 건 아닌 것 같구나.”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목진은 다시 자신감을 되찾은 혈의를 발견하고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네 영진과 전진은 확실해 대단하구나. 난 벌써 너를 이긴다는 생각도 버렸다. 하지만 저들이 네가 친 덫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너를 상대할 수는 있지 않겠느냐?”
위잉!
혈의는 말을 마치더니 체내에서 도천의 선홍색 영력을 방출해 뒤쪽에 수만 장 정도의 거대한 혈영을 이뤘다.
혈영은 유난히 어두운 빨간색 가사를 입었는데 강렬한 피비린내와 부식의 기운이 깃든 가사의 등장에 주위의 공간에 순식간에 균열이 생겼다.
이는 혈의가 수련한 지존법신인 혈가사법신(血袈裟法身)으로 혈신족에서 등급이 아주 높은 법신이며 99등급 지존법신 중 5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혈의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이토록 자신만만한 모양이었다.
암홍색 가사를 입은 지존법상이 나타나 도천의 혈기를 내뿜자 하늘마저 시뻘겋게 물들었는데 이와 비교하면 수백 장 정도밖에 안 되는 불후금신은 난쟁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순간 겁이 났다. 지존법상의 크기는 보통 수련자의 영력의 강력한 정도에 따른 거라 클수록 천지의 영력을 더 많이 수용할 수 있고 위력도 더 강했다.
“네가 종사급 영진과 군대를 조종하느라고 영력을 많이 소모했나 보구나.”
혈의는 혈가사법신의 어깨 위에 올라타더니 목진의 뒤쪽에 서 있는 불후금신을 보며 피식 웃었다.
불후금신은 너무 희귀한 존재라 혈의마저 목진의 영력 소모가 지나쳐 지존법상의 크기가 줄어들었다고 여겼다.
그런데 목진은 그저 웃으며 불후금신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혈의를 쳐다봤다.
“서두릅시다.”
혈의는 목진의 태도에 잔뜩 화가 났다. 그는 감히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을 오랜만에 봤다.
“저들이 빠져나오면 네가 지금처럼 우쭐거릴 수 있나 보자꾸나!”
말을 마친 혈의가 씨익 웃으며 두 손으로 결인하고 입을 벌리자 선홍색 홍류가 휘몰아쳐 눈 깜짝할 사이에 선홍색 바다를 이뤘다.
하얀색 해골이 떠다니는 혈해는 무한의 원령이 깃든 듯 음산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풍겼다.
“황천혈해!”
혈의가 음침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손을 휘두르자 혈해는 바로 목진에게 향했다. 그는 목진을 상대로 처음부터 살수를 뒀다.
황천혈해는 혈신족에서 유명한 신통으로 엄청난 살육을 저지른 뒤, 자신이 죽인 생령들의 피로 바다를 이뤄 밀법으로 제련해야 비로소 이룰 수 있었다. 그 속에 깃든 무한의 힘은 지존법상한테도 독특한 파괴력이 있었다.
혈의는 해당 공격으로 적잖은 하위 지지존들과 싸웠고 그중 일부의 지존법신은 원래 모습이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식이 되었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요동치는 도천의 혈해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다들 혈신족의 유명한 신통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황천혈해는 목진과 아래쪽 불후금신을 감싼 뒤, 선홍색 바닷물로 양자를 부단히 씻어내렸다. 이에 사람들은 흠칫 놀랐고 혈신족의 해당 신통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아는 사람들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여태껏 혈신족의 음험한 신통 때문에 큰코다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하, 겁도 없는 녀석!”
혈의는 황천혈해가 목진과 그의 지존법상을 휘감자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는 같은 등급 강자들과 대결하면서 같은 방법으로 늘 승리를 거머쥐었고 그를 무시했던 상대방은 결국 피의 대가를 치르곤 했다.
목진은 자기 수단만 믿고 피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는데 황천혈해의 쓴맛을 보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쏴아아아!
황천혈해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부식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자 하늘마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런데 혈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표정이 확 굳었다. 황천혈해가 갑자기 놀라운 속도로 옅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음? 뭐지?”
혈의는 흠칫 놀라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이를 악물고 황천혈해를 체내에 힘껏 빨아들였다. 이건 그가 다년간 심혈을 기울여 배양한 거라 손상을 입으면 가슴이 아플 것이다.
그런데 그때 혈해에서 갑자기 엄청난 흡인력이 느껴지더니 황천혈해가 놀라운 속도로 줄어들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도천의 황천혈해는 점차 작아져 목진과 불후금신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목진은 여전히 뒷짐을 쥔 채 불후금신의 어깨에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서 있었고 불후금신은 입을 쩍 벌리고 웅장한 황천혈해를 전부 빨아들였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누구도 혈신족이 자부하던 신통인 황천혈해가 목진의 지존법상을 녹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되려 먹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혈의는 순간 사색이 되었고 멀리 떨어져 서 있던 혈령자도 화들짝 놀랐다.
황천혈해를 모조리 삼킨 불후금신이 자금색 빛을 발하는 혈구슬을 뱉자 목진은 이를 잡고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내던졌다.
“이게 그리 중요한가요? 그럼…… 다시 돌려줄게요.”
혈의는 목진이 황천혈해가 깃든 혈구슬을 자신한테 내던지자 너무 무서워 식은땀을 흘렸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
혈의는 순간 황천혈해와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을 발견했다.
슉!
혈구슬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자 혈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미친 듯이 도망갔다. 그는 갑자기 자신과 황천혈해의 연계가 끊어진 것을 발견했다.
혈구슬에는 그의 황천혈해가 깃들어 있긴 하지만 혈의는 더 이상 이를 장악할 수가 없었고 구슬도 그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혈구슬은 상당히 위험한 시한폭탄이었고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선보일 것이다.
황천혈해는 지존법신에 극강의 부식성이 있어 수중에 쥐면 무기지만 지금처럼 타인이 자신에게 무기로 사용한다면 반드시 경계해야만 했다.
혈의는 혈구슬과 닿을까 봐 최선을 다해 도망갔다.
반면, 목진은 불후금신의 어깨 위에 무덤덤하게 서서 상황을 살폈다. 황천혈해의 위력은 확실히 상당했고 지존법신에 대한 독특한 파괴력도 존재했다. 만약 목진의 지존법신이 대일불멸신이었다면 혈의의 공격에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지존법신은 불후금신으로 진화했다!
순위를 따지면 불후금신은 99등급 지존법신 중 15위권에는 들 수 있을 것이고 위력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불후금신이 방출한 진정한 불후의 기운은 모든 부식의 힘에 저항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침투한 독에서 자유로웠다.
황천혈해처럼 말이다.
심지어 불후금신은 황천혈해를 삼키고도 자신이 손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혈구슬로 응축시킨 뒤, 불후의 힘으로 감싸 황천혈해를 상대방의 장악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했다.
목진은 그제야 불후금신의 오묘함을 제대로 느꼈다. 이건 순위권이 뒤편에 있는 지존법신한테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당신이 불후금신의 첫 번째 제물이 되겠군.”
목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는 불후금신을 수련한 뒤로 같은 등급의 강자와 싸우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결과가 제법 만족스러웠다.
그는 미친 듯이 도망 다니는 혈의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혈구슬은 갑자기 속도가 빨라져 혈의의 앞에 나타나더니 ‘퍽!’ 하고 폭발했다.
순간, 도천의 혈해가 미친 듯이 휘몰아쳐 혈랑이 일며 혈의와 그의 혈가사법신을 적셨다.
혈의는 바로 소리를 지르며 인법을 바꿨는데 혈가사법상에서 만 갈래 혈광을 발하며 주위에 선홍색 방어벽을 형성했다.
퍽! 퍽!
혈랑의 매서운 충돌에 방어벽은 빠르게 부식되어 얇아지다가 부서지더니 결국 혈가사법상에 적중했다. 순간 혈의의 비명과 함께 선홍색 혈무가 피어올랐다.
위잉!
거대한 혈가사법신은 웅장한 영력을 폭발해 겨우 요동치는 황천혈해에서 벗어났고 혈의는 황급히 선홍색 병을 내던져 절반 정도밖에 안 남은 황천혈해를 다시 거둬들였다.
황천혈해가 폭발해 표면을 감쌌던 불후의 힘도 사라져 혈의는 다시 황천혈해와 연계가 닿아 이를 거둘 수 있었지만 상태가 상당히 초라했다. 혈가사법신이 발하는 혈광도 훨씬 어두워졌고 방대한 육신에 눈에 띄는 혈반이 가득 생겼다.
혈의의 영력 속성이 황천혈해와 비슷하지 않았다면 혈독만으로도 엄청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혈가사법상은 큰 타격을 입은 듯 웅장하게 발하던 영광이 훨씬 어두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광경에 적잖게 놀랐다.
사람들은 혈의의 강력한 공격이 목진한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혈구슬이 되돌아와 상대방을 공격해 낭패를 보게 할 줄 몰랐다.
눈치가 빠른 일부 강자들은 목진의 수백 장도 안 되는 불후금신에 눈길을 돌렸다. 이제 더는 목진의 신비로운 지존법상이 영력이 부족해 작아졌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목진의 신비로운 지존법상의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태연하게 불후금신의 어깨 위에 서 있는 목진이 아무리 봐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때 혈의는 혈동과 혈수 쪽을 힐끗 쳐다봤는데 두 사람은 미친 듯이 영진과 정예 부대를 공격하며 최대한 빨리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머지않아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역시 장악하는 사람이 없는 종사급 영진과 부대는 지지존을 구속하기에 부족했다.
이러한 생각에 혈의는 조금이나마 안심되어 다시 독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진의 앞길을 막아야 했다!
결정을 내린 혈의가 혈가사법상의 어깨에 앉아 신속하게 결인하자 법상도 함께 결인했다.
위잉!
혈가사법상의 체내에서 수많은 혈광이 솟구치며 범음이 들렸는데 마음이 평온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기로 물들었다.
그러다 혈안이 된 혈의의 몸에서 피가 흐르더니 온몸의 껍질이 한 층 벗겨졌다.
윙!
시뻘건 사람 가죽이 벗겨지자 혈가사법상도 이내 포효하며 거대한 혈가사를 내던졌는데 양자가 아우러져 하늘을 가릴 만큼 커다란 인피 가사를 이뤘다.
인피 가사에 선홍색 부적과 한껏 일그러진 얼굴이 가득 새겨졌고 주위는 혈기가 그윽해졌다.
“지존신통, 혈마대가사(血魔大袈裟)!”
피범벅이 된 혈의가 시뻘건 눈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고래고래 외치자 거대한 인피 가사는 선홍색 천막처럼 목진과 불후금신을 향해 내려앉았다. 이는 거대하기 그지없는 선홍색 포대처럼 목진과 그의 지존법상을 가두려 했다.
일부 강자들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혈의는 혈마대가사로 유명해졌는데 그의 대가사는 무궁무진한 혈마를 생성해 가둔 사람을 핏물이 될 때까지 괴롭힌다고 들었다.
다만, 혈마대가사를 시전하고 나면 혈의의 방어력이 확 줄어들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쉽게 선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진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내 혈가사를 어떻게 뚫는지 보자꾸나!”
목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릴 듯한 기세로 내려앉는 혈가사를 바라봤는데 가사에서 부단히 피가 흘러나오더니 온몸이 빨간 혈마들을 형성했다. 녀석들은 형태와 무게가 없어 대부분의 방어벽을 뚫을 수 있고 영력마저 쉽게 녹일 수 있었다.
“제법이군…… 그런데 인제 내가 나설 차례가 된 것 같은데…….”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니 불후금신의 어깨에 앉아 두 손으로 결인했다. 그러자 불후금신에 자금색 빛이 모이더니 앞쪽에 오묘한 자금색 광문 한 갈래가 나타났다.
이는 불후금신의 신통 중 한 가지인 불후신문이었다!
목진이 불후신문을 힐끗 보고 다시 인법을 바꾸자 체내의 영력이 밀물처럼 솟구쳐 불후금신에 스며들었다.
혈가사를 뚫으려면 불후신문 한 갈래로는 부족했다.
그때 불후금신의 몸에서 발하는 자금색 빛이 점차 강해지더니 불후신문이 계속 생겼다.
목진은 상고의 천궁에 있을때는 불후신문을 두 갈래밖에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몇 달 동안의 수련을 거쳐 신통에 대한 깨달음은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