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5화. 대륙의 후손
목진과 낙리도 어리둥절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해, 무조는 빙령비(冰靈碑)로 아내를 부활시키려고 빙령족에 찾아갔는데 빙령족은 거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지존 세 명을 불러 그를 상대하게 했단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서천전황이란다.”
그때 염제가 몰래 영력으로 말을 전했다.
“서천전황은 미인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빙령비에서 무조의 아내의 아름다운 영혼을 보고는 그녀를 후궁으로 들이게 해달라고 했단다. 또한, 전황은 하위면 출신의 무조를 상대로조차 여기지 않아 이 사실을 알려주기까지 했단다.”
목진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무조를 본 적이 있어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다. 그런데 서천전황이 그런 사람 앞에서 그따위 말을 했다니, 무조가 녀석을 가만둘 리 없었다.
염제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허허, 그날 무조는 잔뜩 화가 나 홀로 빙령족에 가서 빙령족 노조를 쓰러뜨리고 서천전황을 포함한 세 명의 천지존과 사흘 동안 싸워 나머지 두 사람을 내쫓았고 서천전황은 한 달 내내 쫓아다녔단다. 그 뒤로 서천전황은 무조가 나타난 곳이면 피하기 바빴고 서천전전도 무경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웠단다. 네가 만약 오늘 무조를 불렀다면 서천전황은 제법 골치 아팠을 거란다.”
목진은 그제야 염제가 말한 인연의 뜻을 알아챘고 서천전황이 무조의 이름을 듣자마자 안색이 확 어두워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목진도 염제의 마지막 한마디에 동의하는 바였다.
염제는 서천전황과 맺힌 원한이 없으니 상대방이 선을 잘 지키면 절대 화를 내지 않을 것이고 최대한 유연한 방식으로 쫓아낼 것이다.
하지만 목진이 무조를 불렀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무조의 성격으로 보아 서천전황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올라 입을 열기도 전에 싸우려 했을 것이다.
그때는 서천전황이 패배를 인정하고 싶어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고, 엄청난 대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분명 서천전황이 낭패를 보고 끝났을 것이다. 무조가 전황을 한 달 동안 추격한 것만 봐도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염제를 부른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무조가 전황을 철저히 죽이지 않는다면 낙신족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저 녀석이 무조를 불러와도 난 전혀 두렵지 않네!”
안색이 조금이나마 밝아진 전황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다들 억지란 걸 알았다.
전황과 원한이 전혀 없는 염제는 그를 봐줄지 몰라도 무조는 오자마자 한마디 말도 없이 바로 공격을 개시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무경이 세력을 움직여 서천전전을 없애려 하면 큰일이었다.
“목진아, 그럼 무조를 부르거라. 무조가 여기 오면 바로 너한테 새로운 보상을 줄 거란다.”
염제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은 바로 수수한 부적을 꺼내 으깨려 했다.
“잠깐!”
뇌명 같은 전황의 목소리에 목진은 머리가 핑 돌았다.
“이번만큼은 염제를 봐서 저 녀석의 무례를 용서하겠네!”
서천전황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이를 갈며 말했다. 그 말에 다들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지존 사이의 대결은 보기 드물긴 하지만 무조와 서천전황이 싸우면 괴로워지는 건 이곳에 모인 사람들뿐이었다.
사람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목진이 염제 뿐만 아니라 무조까지 움직일 수 있다니…….
대천세계에서 전설 같은 두 사람이 목진과 관계가 각별하다니!
목진의 인맥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혈령자와 혈신족 강자들도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목진을 보더니 더는 그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고 몰래 숨어 낙신족을 호시탐탐 노리던 세력들도 바로 마음을 접었다. 앞으로는 아무도 감히 낙신족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고 심지어 서천전전도 눈치를 보게 되었다.
낙신족에게 은혜를 입은 염제는 이제 누구든 낙신족을 건드리면 염제를 건드린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했고, 무한의 화역에서 그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해주리라 생각했다.
또한, 목진과 낙리의 관계가 알려진 이상 그의 도움으로 낙신족이 다시 전성기를 되찾을 날도 머지않았다. 더구나 낙리도 낙신의 계승을 받았다.
“대범하군.”
염제는 미소를 지으며 전황을 칭찬하더니 갑자기 화두를 바꿨다.
“부탁할 일이 있네.”
“또 뭐란 말인가?”
전황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서천대륙에서 대륙의 후손(大陸之子)을 선발할 때가 되지 않았나?”
전황은 흠칫 놀라더니 경계하는 눈빛으로 염제를 노려봤다.
“그게 자네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대륙의 후손은 대천세계에서 천지존경에 이를 잠재력과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만 년 사이, 대천세계의 천지존 10명 중 7명 정도는 ‘대륙의 후손’이란 호칭을 획득했다.
규모가 어느 정도에 이른 대륙에는 오묘한 힘이 깃들어 있었는데 다들 이를 대륙의 힘이라고 부른다. 대륙의 힘은 상당히 신기했다. 육신을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반을 다시 다져 완벽하게 가꿀 수 있고 수련자가 천지와 훨씬 잘 융합할 수 있게 도와 천지존경에 이를 확률을 끌어올린다고 했다.
이건 지지존들한테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그런데 대륙의 힘은 천지존만 움직일 수 있어 대륙의 후손은 천지존이 있는 대륙에만 나타난다. 천라대륙은 엄청난 대륙이긴 하지만 천지존이 없어 여태껏 대륙의 후손이 한 명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다만, 서천대륙은 서천전황이 있어 서천전황 휘하면 대륙의 후손이 될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매번 정해진 대륙의 후손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녀 언젠가 천지존경에 이를 수 있는데 이는 엄청난 세력에게 지극히 중요한 자원이라 전황은 염제의 말에 경계한 것이다.
“목진을 서천대륙의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 참가시키고 싶은데…….”
염제는 미소를 짓더니 손으로 목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 참가시키고 싶다니!”
전황은 순간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그건 안 되네. 대륙의 후손이 얼마나 진귀한 자원인지는 자네도 잘 알 거라 믿네. 그 사람은 머지않아 천지존이 될 수도 있네. 서천대륙의 규모로 천지의 힘을 수백 년 동안 배양해도 기껏해야 세 명의 대륙의 후손한테만 나눠줄 수 있네!”
전황은 염제의 제안을 칼같이 거절했다. 대륙의 후손의 자원은 너무 귀중하기 때문이었다.
대륙의 깊숙한 곳에 깃든 대륙의 힘은 천지존만 움직일 수 있어 서천전전은 대륙의 후손으로 강자를 영입하기도 했다.
서천전전의 규칙에 따르면 전전에 십 년 이상 있어야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건 지지존 대원만급에 이른 강자도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여 전황은 염제가 서천대륙의 대륙의 후손을 넘보자 과격하게 반응한 것이었다.
대륙의 후손이 되면 천지존경에 이를 확률이 훨씬 커질 것이다.
“대륙의 후손이 뭐야?”
목진이 어리둥절하여 묻자 낙리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목진은 자초지종을 듣더니 깜짝 놀랐다. 그는 염제께서 자신을 위해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려 할 줄 몰랐다.
“염제, 무한의 화역은 땅이 크고 실력도 막강하며 천지존도 여러 명이니 대륙의 후손이 서천대륙보다 훨씬 많지 않나?”
이에 염제는 무안하여 웃으며 답했다.
“무한의 화역은 백 년 전에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 참가한 뒤로 대륙의 힘을 너무 많이 소모해 다시 모으려면 적어도 백 년은 더 걸려야 하네. 그렇다고 성급하게 거절할 필요는 없네. 난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 참가할 자격이 필요한 것뿐이지 목진이 어디까지 갈지는 그의 실력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나? 만약 실패해도 목진의 문제이니 난 할 말이 없네.”
염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설마 서천대륙에서 목진보다 강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위 지지존 따위는 서천대륙에서 아무것도 아니네. 그러니 목진이 대륙의 후손이 될 가능성은 없네.”
전황은 콧방귀를 뀌며 목진을 힐끗 쳐다봤다.
“그럼 뭐가 걱정인가?”
염제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일은 없지 않은가? 만약 저 녀석이 정말 대륙의 후손이라도 된다면 어쩐단 말인가? 그럼 내 손해가 얼마나 크겠는가? 서천전전 휘하의 수많은 세력과 강자들은 대륙의 후손 때문에 나한테 충성을 맹세했는데 목진이 불쑥 튀어나오면 난 저들한테 뭐라 말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 난 절대 목진한테 그 자격을 주지 않을 것이네.”
“선배님,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전황께서 원치 않으시니 강요하지 말지요.”
목진이 황급히 염제한테 말을 전했다.
목진은 대륙의 후손에 솔깃하긴 했지만 염제가 자신을 위해 체통을 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안 그럼 그 은혜는 너무 커서 갚기가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염제는 가볍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널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란다. 난 대천세계에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가 최대한 빨리 나타났으면 해서 이러는 것이다. 게다가 네가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라 여겨 이러는 거란다.
저들의 실력은 생각보다 훨씬 강해 나마저 불안할 정도란다. 대천세계가 역외족한테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강대한 존재가 더 많이 필요하단다. 그런데 대천세계에서 천지존이 있는 대륙 중, 서천대륙이 가장 먼저 대륙의 후손 쟁탈전을 펼칠 거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목진은 염제가 자신을 이토록 높이 평가할 줄 몰랐고 대천세계의 생사를 위해 목진을 돕는다는 말에 감탄했다.
잇따라 염제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익 젓더니 다시 전황한테 고개를 돌렸다.
“전황, 난 목진을 위해 하위 지지존이 아니라 상위 지지존의 자격을 구하려 하네.”
전황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괴상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염제, 저 녀석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대륙의 후손 쟁탈전은 세 개의 전장으로 나뉘는데 각각 하위 지지존 전장, 상위 지지존 전장, 지지존 대원만급 전장이 있었다.
즉, 하위 지지존 전장은 실력이 하위 지지존에 오른 사람들의 전장이고 상위 지지존 전장은 서천대륙의 상위 지지존들이 힘을 겨루는 싸움터다.
전장마다 대륙의 후손을 한 명씩 정하는데 세 단계의 강자 중 제일 강한 이를 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섞어놓으면 대륙의 후손을 취득한 세 사람은 결국 모두 지지존 대원만급 노인네들일 텐데 이들은 대부분 젊은이보다 의지가 박약해 천지존경에 이를 확률이 훨씬 낮았다. 하여 대륙의 후손을 세 개 전장으로 나눈 것이다.
목진은 하위 지지존이라 하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염제는 그를 상위 지지존 전장에 보내려고 하니 전황의 입장에서는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목진이 선보인 수단들이 제법이긴 했고 하위 지지존 중에서 최정예급 강자라 할 수 있지만 상위 지지존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다.
혈령자와 다른 상위 지지존들도 이상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다들 염제가 목진을 과대평가했다고 생각했다.
“흥, 염제께서 목진을 저리 높이 사다니, 그러다 녀석이 상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가자마자 죽으면 어쩌려고 저런단 말인가!”
혈령자는 피식거리며 중얼거렸지만 오히려 목진이 상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이번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 참석할 거라 목진과 마주치면 바로 그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가서 목진이 정말 죽기라도 하면 실력이 부족한 것이니 그의 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목진을 상위 지지존 전장에 들이면 안심되는가? 그런데 목진이 상위 지지존 전장에서 대륙의 후손이 되면…… 틀림없는 목진의 몫으로 받아들이게.”
염제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전황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생각했다. 목진의 실력으로 하위 지지존 전장에 들이면 우승할 가능성이 크지만 상위 지지존 전장이라면 불가능했다.
상위 지지존들은 누구 하나 교활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실력도 상당해 하위 지지존인 목진은 그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전황은 이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이번 일은 염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산됐지만, 그는 목진을 혼내지 못한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목진이 지금은 염제 덕분에 무사할 수 있지만 일단 상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가면 전황의 귀띔에 다들 그를 상대할 거라 바로 꼬리를 내리고 도망갈 수도 있었다.
전황은 초라한 모습으로 도망가는 목진의 모습을 상상하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