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6화. 목황
전황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염제의 체면을 구기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 참여하는 자격은 너무 귀중하여…….”
이에 염제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한 갈래 빛이 전황한테 날아가 용안 정도의 단약으로 변했다.
단약은 수정처럼 투명했고 주위에 용과 봉황이 날아다녀 무척 신기했다. 게다가 특이한 향기를 풍겼는데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체내의 영력이 웅장해지는 것 같았다.
“이건…….”
전황이 흠칫 놀라 물었다.
“용봉천존단(龍鳳天尊丹)이 아닌가?”
용봉천존단은 상당히 고급지고 신기한 신단으로 천지존한테도 제법 유용한 단약이었다. 이 정도 등급의 단약은 너무 희귀해 나타나기만 하면 천지존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앗아갈 것이다.
상황을 살피던 사람들은 시뻘겋게 상기된 눈으로 단약을 바라봤다. 대천세계 사람들은 염제의 실력보다 그의 독보적인 연단술이 훨씬 부러웠다.
염제가 만든 단약 중 평범한 건 없었다!
염제가 제련한 단약은 수많은 강자가 꿈에도 그리는 물건이라 용봉천존단의 등장에 전황마저 눈에서 빛이 났다.
“인제 거절하지 않겠지?”
염제가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전황은 입맛을 다시며 잠시 고민하더니 용봉천존단을 거뒀다. 그는 확실히 신단이 욕심났지만 염제의 제안을 여러 번 거절하는 것이 더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무조와의 관계가 안 좋은 지금 염제와 무한의 화역까지 건드리면 앞으로 대천세계에서 살아가기란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하여 그는 신단을 거두고 목진을 힐끗 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염제를 봐서 저 녀석에게 서천대륙 대륙의 후손 상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갈 자격을 주겠네. 하지만 전장은 위험하니 저 녀석의 실력이 부족해 죽어도 부디 날 원망하지 말게.”
전황의 말에 염제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전황.”
“한 달 뒤, 서천대륙에서 대륙의 후손 쟁탈전을 시작하니 전황전에 와서 관전하게.”
“알겠네.”
“그날만 기다리겠네. 그럼 이만…….”
전황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마친 뒤 염제와 인사를 나누고 금광을 방출해 늠동 노인과 함께 사라졌다.
그는 염제가 나타난 뒤로 낙리를 성녀로 임명하는 일은 절대 언급하지 않았다. 목진이 염제를 부른 순간, 불가능하단 걸 바로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전황이 하위 지지존 밖에 안 되는 목진을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만 이 세상에서 발휘하는 힘이 실력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목진은 하위 지지존의 신분으로 염제를 등에 업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비범함을 증명했다. 대천세계에서 이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목진은 염제 뿐만 아니라 무조도 부를 수 있었다. 이에 전황은 천지존이지만 하위 지지존인 목진을 제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앞뒤 따지지 않고 밀어붙이다가 염제와 무조가 나서면 아무리 전황이라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전황은 과감하게 낙리를 서천전전의 성녀의 자리에 앉힐 생각을 포기했다. 이건 전부 하위 지지존인 목진 때문이었다.
그는 하위 지지존 따위 때문에 이런다는 것이 답답했지만 한편으로는 목진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은 하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천지존의 손에서 무사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 참석할 자격까지 획득했다.
전황은 이제야 염제 같은 사람이 목진을 그토록 보살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목진은 확실히 범상치 않았다.
그가 떠나자 낙신성 전체를 감쌌던 위압은 완전히 사라졌고 낙신족 백성들은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환호했다.
이는 파멸의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한테서 비롯된 기쁨이었다.
낙신족 백성들은 몇 차례의 절망 속에서 오늘이 바로 낙신족이 멸족하는 날이라 여겼다. 그런데 수많은 변수 끝에 낙신족은 살아남았고 가장 완벽한 이득까지 취했다.
앞으로 낙신족에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다.
낙리는 낙신의 계승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조상님의 인정까지 받아 낙신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황이 될 가능성이 컸다. 아마 낙신족은 낙리 덕분에 원고 시기의 영광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경외와 감격의 눈빛으로 허공에 떠 있는 젊은이를 바라봤다.
오늘 이 영광은 전부 목진이란 청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목진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낙신족에 와서 혈신족의 음모를 깼고 서천전이 끼어들었을 때, 강력한 태도를 취했다. 게다가 서천전황이 강림했을 때는 무한의 화역의 염제까지 모셔왔다.
오늘 낙신족은 자칫 잘못하면 멸망할 수도 있었는데 목진 덕분에 위기를 극복했다.
목진은 오늘, 낙신족 전체의 마음을 얻었다. 그들은 목진처럼 훌륭한 사내라면 존귀하기 그지없는 여황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목황!”
“목황!”
낙신족 백성들은 갑자기 격동되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목황! 목황!”
낙청애, 낙수 등 낙신족 강자들은 잔뜩 흥분한 채 소리를 지르는 낙신족 백성들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낙신족의 황은 낙리 한 사람뿐이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낙신족의 인정을 받으면 그 상대는 낙신족의 두 번째 황이 될 것이다.
낙신족 백성들은 낙리와 목진의 관계를 알아채고 목진을 진심으로 인정해 그를 황으로 모시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민심이었다.
낙청애, 낙수 등 낙신족 강자들도 감탄하며 마주 보고는 낙신족 백성들과 함께 외쳤다.
목진은 낙신족의 백성들의 마음만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낙신족 강자들의 마음도 얻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그처럼 천지존을 앞에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비책을 마련할 사람은 얼마 없기 때문이었다.
낙천신도 피식 웃으며 목진을 바라보더니 이내 감탄했다. 그는 문득 몇 년 전, 북창령원에 낙리를 데리러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날의 목진은 많이 어렸고 담대하긴 했지만 많이 서툴렀다. 낙천신은 그때까지만 해도 목진을 그저 우연히 낙리의 마음을 얻은 운 좋은 소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4년 만에 목진이 구세주처럼 떡하니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목진의 앳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놀라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정예 강자로 거듭났다.
“역시 낙리가 안목이 좋군.”
낙천신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낙리는 최근 몇 년 사이, 낙신족에서 압력을 제법 받았고 다들 그녀의 안목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존귀하고 우아하게 서 있던 낙리도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가볍게 젖혔다.
그녀는 낙신족 사람들이 목진에게 보내는 호칭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이는 목진을 인정한다는 뜻이고 두 사람 사이도 허락한다는 의미였다.
낙리가 낙천신을 바라보자 낙천신도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목진은 괜히 부끄러워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서서 낙리를 바라봤는데 낙리의 아름다움에 오히려 심장이 쿵쾅거렸다.
“낙리야…….”
목진은 작은 목소리로 낙리를 부르더니 부끄러운 듯 말을 이어갔다.
“내가 했던 약속을 전부 지키지는 못한 것 같아…….”
몇 년 전, 북창령원에 있던 소년은 소녀에게 언젠가 절세의 강자가 되어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낙리는 목진의 훤칠한 얼굴을 보더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다들 목진이 한 약속이 우습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녀만큼은 목진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라는 걸 잘 알았다.
절세의 강자가 되는 과정은 상당히 고달프기에 아무리 의지가 확고한 사람도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여 낙리는 목진이 오늘의 성과를 이루기 위해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을 수도 없이 겪고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이 갔다.
낙리는 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고생했어.”
낙리는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말했다.
“낙리야, 네가 떠나기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낙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낙리는 아직도 그날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목진이 했던 말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낙리야, 난 널 좋아해. 아직 낙신족이 나한테는 너무 버겁고 네 할아버지와 낙신족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 데다 저들은 네가 그저 운 좋은 소년을 좋아한 거라고 네 안목마저 의심받고 엄청난 압박을 받겠지만…….”
“부디 날 믿어줘. 난 언젠가 낙신족에 찾아갈 거야. 그때 가서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평범한 돌이 아니라 이 세상 어떤 돌보다 눈부신 보석이란 걸 증명할 거야.”
목진은 앞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지금까지 너한테 했던 말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어.”
낙리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 * *
전황이 떠나자 낙신성을 감쌌던 위압은 완전히 사라졌고 낙신족을 파멸로 이끌 뻔했던 겁난도 완전히 사라졌다.
하여 혈령자는 혈신족 강자들을 데리고 몰래 도망갔다.
혈령자 등은 낙신성에서 멀어져서야 겨우 속도를 줄였는데 시들시들해진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번에 혈신족은 낙신족을 없애려고 정예 강자들을 전부 파견했는데 멸망해야 마땅할 낙신족한테 기적이 찾아왔다.
“이건 다 목진 탓이야, 젠장!”
혈신족 강자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오늘 목진만 아니었으면 혈신족은 최후의 승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승자는커녕,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마 몰래 빠져나오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을 잃었을 것이다.
혈령자도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이를 갈며 서 있었다. 그는 목진 때문에 낙신족을 없앨 가장 완벽한 기회를 잃었는데 이런 기회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혈마독 때문에 곧 죽음에 이를 것 같던 낙천신도 염제 덕분에 체내의 혈마독이 사라졌으니 휴식만 취하면 전성기 때의 힘을 되찾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불안한 것은 낙리와 목진이었다.
낙리는 낙신의 계승을 무사히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낙신법신까지 수련했다. 그녀의 엄청난 재능과 잠재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낙리가 있는 한, 내우외환의 낙신족은 하나로 뭉쳐 그녀의 곁을 지킬 거라 앞으로 더는 내부를 공략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증스러운 목진…….
녀석은 실력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혈신족보다 더 강한 세력인 목부까지 갖고 있었다. 게다가 염제, 무조와도 알고 지내는 사이이니 이제 소서천계에서 낙신족을 건드릴 존재는 더는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 살려두지. 녀석이 상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가면 혈신족 일에 끼어든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혈령자는 음산한 눈빛으로 낙신성 쪽을 노려보며 말했다.
“가자!”
말을 마친 혈령자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혈신족으로 돌아갔다.
이와 동시에, 몰래 숨어 낙신족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세력들도 조용히 떠났다. 끝까지 있어 봐야 아무런 수확도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외, 낙신족과 관계가 제법 좋았던 세력들은 갑자기 나타나 낙천신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며 호의를 표했다.
앞으로 낙신족의 상황은 더욱 좋아질 것이고 잘만 하면 서천대륙의 최정예급 세력으로 거듭날 가능성도 있었다.
한편, 하늘에서 대화를 나누던 낙리와 목진은 낙신족 황족 친족 무리에게 향했다.
낙신족 황족 친족 사람들은 바로 안색이 어두워진 채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고, 가장 앞쪽에 선 세 명의 하위 지지존들은 사색이 된 채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번에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너희는 혈신족과 결탁하여 낙신족을 없애려 하였다. 내 말이 맞느냐?”
낙리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세 명의 하위 지지존들을 노려보며 물었다.
“우리 세 사람은 멍청해 혈신족의 유혹에 넘어갔으나 다른 황족 친족 사람들은 무고하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세 명의 하위 지지존들은 절망스러운 눈빛으로 낙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그들은 죽을죄를 지었고 낙리가 엄벌을 내린다고 해도 동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다른 황족 친족 사람들도 그들을 원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