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8화. 조기
목진은 낙신궁 뒷산, 조용한 산봉우리에 놓인 청석에 눈을 감고 앉아 있었는데 바람이 불자 옷깃이 휘날리는 모습이 상당히 멋스러워 보였다.
그가 두 손으로 결인하자 천지의 웅장한 영력이 휘몰아쳤고, 끊임없이 목진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목진이 지지존경에 이른 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천지의 영력의 양이 엄청났다. 지지존경에 이르기 전, 사람들은 지존해로 영력을 보존하지만 지지존경에 이르면 지존해를 부수고 이를 육신과 융합해 육신 전체가 지존해나 다름없게 된다. 그래서 받아들일 수 있는 영력의 양이 당연히 지존경 때보다 훨씬 많았다.
이렇게 목진은 한 시진 동안 수련하고 나서야 서서히 눈을 떴는데 눈에서 영광이 번쩍이더니 천천히 사라졌다.
그는 체내의 웅장한 영력을 느끼고는 가볍게 숨을 내뱉었는데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는 낙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서천전전의 4대 성자라…….”
낙리의 말대로라면 4 성자를 제외한 나머지 세 성자는 상위 지지존을 죽인 것만 봐도 실력이 엄청날 것이다.
상위 지지존이 되면 쓰러뜨리는 것과 죽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지지존의 생명력은 너무 완강해 육신이 대부분 부서져도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여 상위 지지존을 완전히 죽이려면 육신에 깃든 생기를 모조리 없애야 했다. 목진이 혈신족의 하위 지지존을 죽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를 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 정도 경지에 이르면 상대방과의 실력 차이가 크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천전전의 세 성자는 상위 지지존을 죽인 적이 있다고 했으니 그들의 진정한 실력은 일반 상위 지지존을 훨씬 뛰어넘었음을 의미했다.
그들은 이번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서 목진의 최대의 적이 될 것이다.
더구나 서천전황은 목진을 미워해 염제 때문에 직접 나서지 못하지만 세 성자한테 부탁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목진과 세 명의 성자 사이에는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이들과 비교하면 성진각 각주, 낭야검선과 패도가 오히려 상대하기 쉬웠다. 그들도 비록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지만 세 성자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서천대륙은 참 능력자가 많군.”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서천대륙은 엄청난 대륙은 아니지만 서천전황 덕분에 천라대륙보다 더 강했다.
이번에 목진이 대륙의 후손이 되려면 필경 혈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이를 잘 아는 목진은 조금 걱정되었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염제께서 애써 구해주신 자격이라 그는 어떻게든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다.
후우.
목진은 깊게 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결인했는데 주위의 공간이 요동치더니 상고의 천궁의 천지에서 수련하고 있는 두 화신이 느껴졌다.
목진은 이들과의 오묘한 연결에서 조금이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세 성자의 실력이 엄청나긴 하지만 목진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중, 일기화삼청이 바로 목진이 상위 지지존을 상대할 필살기 중 하나였다.
그는 비록 지금까지 한 번도 일기화삼청을 선보인 적이 없지만 그 힘에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라 굳게 믿었다.
다만, 목진은 절세의 신통이 있다고 자만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수단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뭐가 있을까…….”
목진은 눈을 감고 한참 고민하다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오래도록 내려놨던 공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왠지 망설여졌다.
그건 바로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대부도결이었다.
대부도결은 부도신족의 기초 수련법으로 심오하기 그지없는데 목진의 신분이 드러날까 봐 수련을 멈췄다. 그런데 지지존경에 이르러 이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생겼으니 다시 수련을 시작해도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도신족은 대천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 중 하나로 실력이 상당한지라 대부도결도 필경 범상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목진의 실력이 너무 미약해 그 오묘함을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진정한 힘을 끌어내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이러한 생각에 그는 바로 눈을 감고 결인해 대부도결의 심법을 외웠고 체내의 웅장한 영력도 대부도결의 경맥 노선을 따라 회전시켰다.
위잉!
목진이 대부도결을 소환하자 웅장한 영력이 체내에서 휘몰아치며 한데 모여 검은색 부도탑을 이뤘고 그는 서서히 대부도결의 심법에 빠져들었다.
역시나 지지존경에 이른 뒤, 예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한꺼번에 이해되었고 가장 깊숙한 곳에 숨은 오묘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새, 목진은 대부도결의 수련에 푹 빠져 며칠 동안, 꼼짝없이 자리에 앉아 수련을 계속했다.
그 사이, 낙리가 다녀갔는데 수련 중인 목진을 보더니 조용히 옆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시 몰래 떠났다.
눈 깜짝할 사이, 열흘이 지나갔다.
열흘째 되는 날, 목진은 갑자기 온몸을 파르르 떨었는데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흐르던 대부도결 심법이 분해되고 낯선 심법이 나타났다.
“부수고 새로 쌓아야 하되, 마음으로 길을 찾아 조기(祖氣)를 모아서 형성한 것이라야 진정한 부도다.”
목진은 해당 심결을 한참 중얼거리더니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거였어…….”
잇따라 목진 체내의 검은색 부도탑이 와르르 무너지며 눈부신 빛을 발했다.
그는 스스로 부도탑을 부쉈다!
부도탑은 결국 완전히 무너졌고 어두운 빛이 휘몰아쳐 목진 체내 곳곳을 비췄다.
“마음으로 길을 찾으라…….”
목진은 무한의 어두운 빛이 체내를 비추도록 내버려 뒀는데 마음속이 흐릿해지더니 부도탑이 부서진 곳에 어두운 빛이 모여 어딘가로 향한 통로를 만들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어두운 빛을 발하는 통로에 들어갔는데 순간 눈앞이 어두워지며 시공이 일그러졌고 마음이 먼 곳으로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어둠이 가시고 목진이 다시 눈을 뜨자 낯선 곳에 도착했다.
“여긴…… 어디지?”
목진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지극히 오래된 땅에 도착했는데 그는 중심에 놓인 거대한 부도고탑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부도고탑은 상당히 오래돼 보였고 표면에 난 흔적들은 하나 같이 오묘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았다.
목진은 상당히 오래된 부도고탑에서 천지존보다 훨씬 강력한 위압감을 느꼈다.
“여…… 여긴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는 체내의 부도탑을 부쉈더니 갑자기 통로가 생겨 이곳으로 안내한 것이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이와 동시에, 저 멀리 부도신족의 어두운 탑 내에 조용히 앉아 있던 한 여인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눈가가 촉촉해진 채 고개를 들고 어딘가를 바라보며 그리운 듯 말했다.
“목진아, 내 아들! 벌써 족지에 들어갈 정도로 강해졌단 말이냐?”
조용하고 오래된 땅에 도착한 목진은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히더니 이곳에 온 이유도 대충 알아냈다.
그가 일전에 더 깊은 단계의 대부도결을 깨우쳤고 부도탑을 부순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이곳은 부도신족과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전 단계의 대부도결도 대단하긴 하지만 지지존한테는 큰 도움이 안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부도신족의 기초 수련법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더 깊은 깨달음과 더 깊은 단계의 대부도결을 수련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건 아마 목진이 있는 오래된 땅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오래된 땅의 중심에 놓인 오래된 부도탑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목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오래된 부도탑으로 다가갔는데 수십만 장 정도 되는 것 같은 부도탑은 너무 커 사람이 서 있으면 먼지처럼 하찮아 보이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참으로 무서운 물건이군.”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부도탑에서 서천전황보다 더 무서운 위압이 느껴졌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오래된 위압에 그는 서천전황을 상대했을 때보다 훨씬 강한 압박을 느꼈다.
아마 염제나 무조의 하늘이 무너져도 끄떡없는 기세라야 오래된 부도탑의 위압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목진은 그제야 대천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다.
위잉!
그때 부도탑이 목진의 정체를 발견하고 갑자기 파르르 떨었고 그는 바로 마음을 거두려 했다. 신비로운 부도탑이 공격이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런데 오래된 부도탑은 한 갈래 어두운 빛을 내뿜어 목진을 감쌌다.
순간, 목진은 오묘한 파동이 마음을 읽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그는 어두운 빛이 무한의 공간을 넘어 낙신궁 뒷산에 앉아 있는 육신까지 자세히 훑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다행히 어두운 빛은 목진을 자세히 훑은 뒤, 서서히 사라졌고 목진은 오래된 땅이 그를 인정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에 그는 흠칫 놀랐다. 아마 오래된 부도탑은 어두운 빛으로 부도신족의 혈맥을 찾았던 게 분명했다.
만약 침입자 체내에 부도신족의 혈맥이 없었으면 불통이라 오래된 부도탑은 바로 침입자를 죽였을 것이다.
“다행이야.”
목진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 부도탑의 검사를 통과했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잇따라 오래된 부도탑 꼭대기에서 갑자기 무한의 기류를 내뿜어 목진을 감쌌다.
목진은 신비로운 기류에서 방출한 오래된 기운에서 상당히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같은 종족에서 비롯된 힘이었다.
“이것이 조기란 말인가?”
목진은 신비로운 기운이 곧 대부도결 심법에서 언급한 조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기를 모아서 형성한 것이라야 진정한 부도다!”
심결을 다시 읊던 목진은 바로 결인하더니 체내에서 강력한 빛을 방출해 조기를 모조리 흡수했다.
그는 조기를 흡수할수록 육신이 격렬하게 떨렸고 온몸의 피가 비등했으며 혈맥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었던 힘이 스며져 나왔다.
위잉!
목진의 마음에서 만 장의 어두운 빛을 발하더니 오래된 부도탑에서 나온 조기를 미친 듯이 흡수했다.
그러다 만 장의 어두운 빛에서 십수 장 정도 되는 부도탑이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는데 일전의 검은색 부도탑이 아니라 유백색으로 조기가 많아질수록 투명해졌다. 꼭 불순물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았다.
활활!
이와 동시에, 낙신궁 뒷산에 앉아 있는 목진의 몸의 피가 비등하더니 어두운 화염으로 변해 육신을 태웠다.
이건 부도신족 혈맥의 힘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유백색 부도탑 밖에 있는 목진의 마음에도 어두운 빛을 띤 화염이 나타났는데 불이 거세질수록 부도탑은 점차 투명하고 영롱해졌다.
목진은 비록 유백색 부도탑은 처음이지만 투명할수록 좋다는 건 바로 알아챘다.
이에 그는 바로 마음을 움직여 어두운 빛을 띤 화염으로 부도탑을 제련하고 조기의 흡수 속도도 끌어올렸다.
유백색 부도탑의 주요한 재료가 곧 신비로운 조기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오래된 부도탑은 진귀한 조기를 부단히 내뿜어 목진한테 도움을 줬고 그 덕분에 유백색 부도탑은 점차 투명해졌다. 이대로라면 목진의 부도탑은 머지않아 완전히 투명해질 것이다.
* * *
부도신족의 오래된 제단 위쪽의 석대에 두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메마른 몸에서 진부하고 오래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들이 숨을 쉴 때마다 주위의 공간이 부서지는 것으로 보아, 그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깊이 잠든 것처럼 눈을 꼭 감은 채 앉아 있던 두 사람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족지에서 이상한 파동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이지?”
두 노인은 서로 마주 보더니 옷깃을 휘날려 영광으로 앞쪽에 영력 광경을 만들어 오래된 땅의 상황을 살폈다.
그러다 거울이 번쩍이더니 거대하고 오래된 부도탑을 비췄는데 두 노인은 그 주위에 나타난 수정처럼 투명한 부도탑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신성한 기운을 내뿜는 영롱한 부도탑은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이…… 이건 성부도(聖浮屠)가 아닌가? 부도신족에 언제 성부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단 말인가? 참으로 대단하군.”
말을 마친 두 사람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두 사람은 족지의 수호자라 이들이 함께 족지를 열지 않는 이상 부도신족 사람들은 조기를 이용해 부도진탑을 만들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오늘, 족지에 가지도 않았으니……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족지에 들어갔단 말인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두 사람은 안색이 확 어두워져 소리쳤다.
“당장 족지를 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