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2화. 한 주먹
“내 도전장을 받을 자신이 있느냐?”
웅패는 호시탐탐 목진을 노려보며 물었다.
군웅루는 순간 들썩였는데 대부분은 웅패를 응원했다. 목진은 서천대륙의 정예 강자들한테는 이방인일 뿐이었고 상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하위 지지존 따위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 창피했다.
하여 목진이 여기서 그 자격을 잃기를 바랐다.
낙천신과 낙리는 사람들의 태도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들은 목진이 서천대륙에서 이렇게까지 천대를 받을 줄 몰랐다.
그런데 이건 전부 서천전황의 태도 때문이었다.
목진은 서천대륙에서만큼은 아마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웅패를 무시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웅패 같은 사람이 또 나타나 그를 방해할 것이다.
이에 목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웅패를 쳐다봤다.
“정녕 나와 싸워보고 싶은것이오?”
솔깃해 하는 목진의 태도에 웅패는 이내 화색이 되었다.
“승낙한 것이냐?”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거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죠. 내가 대결에서 패배하면 가진 자격을 내줘야 하는데 당신은 겨우 사과만 할 건가요? 당신의 사과가 쟁탈전의 자격만큼 값진가요?”
“뭘 원하는 것이냐?”
웅패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 말에 목진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답했다.
“싸워드릴 수는 있는데…… 한 주먹에 지존영액 팔천만 방울이요.”
웅패는 버럭 화가 났다.
“한 주먹에 지존영액 팔천만 방울이라니, 네가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군웅루에 모인 사람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이 났다. 지존영액 팔천만 방울이면 저급 성물을 구매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목진이 가격을 너무 높게 불렀다고 생각했다.
“난 안 되지만 대륙의 후손 쟁탈전의 참가 자격은 그 가치를 하지 않을까요?”
목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하더니 바로 정색했다.
“이 정도도 못 낼거면 여기서 지껄이지 말고 당장 꺼져요!”
웅패는 너무 화가 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지존영액 팔천만 방울은 적은 숫자가 아니었고 그의 재력도 엄청난 것이 아니라 수중에 가진 것이 없었다.
하여 그는 혈령자한테 눈길을 돌렸는데 그는 딴청을 피웠다. 혈신족에서 낙신족을 상대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지라 지존영액 팔천만 방울이 없는 것도 있지만 웅패 따위에게 낭비하기도 싫었다. 목진의 괴이함을 제대로 경험했던 혈령자는 녀석이 감히 나서려 하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이러한 혈령자의 태도에 웅패는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목진의 말 한마디에 자신이 이토록 초라해질 줄 몰랐다.
이에 목진은 조용히 서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웅패의 체면을 깎아내리기 위해 그런 것도 있지만 사람들한테 알리려는 이유도 있었다. 그한테서 쟁탈전의 자격을 빼앗으려면 지존영액이 적어도 팔천만 방울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안 그럼 목진은 앞으로 수없이 몰려올 사람들을 모두 상대해야만 할 것이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다들 이번 기회에 목진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웅패가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허, 지존영액 팔천만 방울이라 그랬나? 많이도 불렀군. 돈은 내가 내지.”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고개를 돌려보니 3층에서 한 여인이 교태를 부리며 나타났다.
“서천전전의 4대 성자 중 한 사람인 영비자네!”
“저 사람이 왜 이 일에 끼어든단 말인가?”
“허허, 영비자는 낙리 때문에 저러는 것 같네. 여인들 싸움이란 가끔 남자보다 더 참혹할 때가 있지 않은가?”
* * *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여인의 등장에 수군대기 시작했다.
영비자는 바로 낙리한테 눈길을 돌렸고 낙리도 바로 고개를 들고 상대방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두 여인의 불꽃 튀기는 눈빛 싸움을 보더니 하위 지지존 전장의 두 우승 후보가 지금부터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잇따라 영비자는 영광이 번쩍이는 옥병을 웅패한테 넘기며 말했다.
“지존영액 팔천만 방울이네. 웅왕, 부디 우리를 실망시키지 말게.”
웅패는 날아온 옥병을 확 낚아채더니 이내 화색이 되었다.
“걱정하지 말게, 영비자. 내가 곧 저 녀석이 서천대륙에 와서 우쭐거린 것을 후회하게 해줄 것이네!”
이에 영비자는 생긋 웃었다. 지존영액 팔천만 방울은 그녀한테도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웅패가 목진의 자격을 빼앗을 수만 있다면 전황을 대신해 목진을 혼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낙리의 체면도 구길 수 있으니 아주 값진 장사였다.
그때 미소를 지으며 낙리를 바라봤는데 너무 태연하게 서 있어 상당히 언짢았다. 하지만 목진이 웅패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하면 낙리는 더 이상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게 서 있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핑계를 대려는 건 아니지?”
웅패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목진이 자신을 내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목진은 씨익 웃으며 영비자를 힐끗 쳐다봤다. 그는 영비자가 낙리 때문에 그에게 지존영액을 건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리되면 그는 더 이상 물러서면 안 되었다.
하여 목진은 나아가 손을 내밀더니 살짝 굽혀 흔들며 말했다.
“그럼 난 이곳에 서서 꼼짝하지 않고 당신의 공격을 받아낼게요.”
목진의 말에 다들 흠칫 놀라더니 자못 흥미진진해졌다.
목진은 웅패의 도전장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건방지게 말을 내뱉었다.
하위 지지존이 강제로 상위 지지존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3층에 서 있던 영비자도 순간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목진이 이렇게 패기 넘치는 사내였다니, 제법 설레는걸? 웅왕, 상대방의 요구는 기꺼이 들어주는 것이 낫지 않겠나?”
영비자의 말에 다들 피식거렸다. 여인이 독기를 품으면 역시 무서운 법이었다. 그 한 마디에 목진은 물러설 곳을 완전히 잃었고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웅패를 상대해야만 했고, 목진은 아마 자신이 한 망언을 한없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목진은 영비자의 말을 못 들은 척 태연하게 서 있기만 했고 다들 그한테 엄청난 수단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하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상위 지지존을 정면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반면, 웅패는 살기를 가득 품은 채 목진을 노려봤다. 그는 상대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무시할 줄 몰랐다.
웅패는 정면 돌파가 특기였고 일부 상위 지지존도 그의 거센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녀석,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웅패는 시뻘겋게 그을린 눈으로 목진을 쏘아보았는데 꼭 눈으로 그를 삼킬 것 같았다.
“말이 왜 이렇게 많은 거죠? 싸움은 언제 시작할 건가요?”
목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한 말에 웅패는 화가 나 눈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간신히 마음을 다스렸다.
“좋다, 내 오늘 너를 제대로 상대해주마!”
쿵!
말을 마치기 무섭게 웅패의 체내에서 난폭한 기운으로 가득 찬 빨간색 영력이 돌풍처럼 휘몰아쳐 주위 공간에 균열이 일었다.
웅패의 영력은 흉악하고 난폭했으며 그 안에서 마치 곰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와 동시에, 웅패의 육신도 순간 팽창해 작은 거인이 되었고 얼굴은 일그러져 곰의 형태를 이뤘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흠칫 놀랐다.
“웅패가 수련한 공법은 상고의 신수, 열천혈웅(裂天血熊)의 피와 자신의 영력을 융합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일단 융합에 성공하면 상당히 난폭해져 하늘을 가르고 땅을 찢을 힘을 획득하게 된다네.”
누군가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낙천신도 웅패의 변신에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고 목진이 걱정되었다. 보아하니 웅패는 영력을 한껏 끌어올려 목진을 한 방에 죽이려는 듯했다.
한편, 목진도 미간을 찌푸린 채 웅패가 내뿜는 포악한 영력을 느끼고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크으으으!
그러다 웅패 체내의 영력이 정상에 이르자 그는 길게 아우성쳤는데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음파가 퍼져 공간이 부서졌다.
퍽!
잇따라 웅패는 시뻘겋게 그을린 눈으로 목진을 노려보더니 발을 힘껏 굴렀는데 특수한 재료로 만들어진 단단한 바닥이 순간 가루가 되었다.
웅패는 한 갈래 빛이 되어 목진에게 향하며 오른쪽 주먹을 서서히 휘둘렀다.
순간, 그의 뒤에 방대하기 그지없는 상고의 곰이 나타나 손을 내밀어 웅패의 주먹과 한곳에 모였다.
퍽! 퍽!
권풍은 빨간색 기의 회오리처럼 날아갔는데 공간이 모조리 부서졌고 수많은 공간 파편은 권풍에 닿자마자 수많은 광점이 되어 우수수 떨어졌다.
“대마열천권(大魔裂天拳)!”
곰의 울음소리와 함께 웅패가 주먹을 휘두르자 군웅루에 모인 상위 지지존들마저 흠칫 놀랐다. 그들마저 웅패의 공격에서 위협감을 느꼈다.
그의 공격에는 웅패의 혼신의 영력이 담겨 있었다. 녀석은 목진한테 엄청난 수단이 있을까 봐 가장 직접적인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그는 상위 지지존의 엄청난 영력으로 목진을 철저히 쓰러뜨리려 했다.
이는 언뜻 보면 멍청한 수법인 것 같지만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 넘치는 행위였다.
상대방의 수단이 아무리 많아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쓰러 눕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상위 지지존의 웅장한 영력으로 하위 지지존의 방어는 쉽게 뚫을 수 있었다.
하여 웅패의 공격에 사람들은 이내 감탄했다. 이 정도 공격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지만, 목진은 내뱉은 말이 있으니 스스로 사지에 걸어 들어간 셈이었다.
영비자도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그녀는 목진이 엄청난 대가를 치를 거라 확신했다.
목진도 자신을 향한 공격을 확인하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며 두 발을 벌리고 손을 서서히 뻗어 상대방의 공격을 억지로 받아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때, 목진의 눈 속 깊숙한 곳에서 수정 같은 빛이 번쩍이기 시작하더니 체내의 모든 영력이 수정 부도탑을 통해 웅장한 수정 영력으로 변했다.
목진의 몸에서 은은한 수정의 빛을 발하는 순간 웅패의 난폭하기 그지없는 공격도 마침내 그에게 닿았다.
“죽거라!”
웅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무서운 살기와 함께 그의 주먹은 목진의 손바닥을 힘껏 때렸다.
쿵!
양자가 부딪치자 뇌명과 함께 목진의 옷이 미친 듯이 펄럭거렸고 그의 손바닥은 빨개졌으며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는 웅패의 난폭하기 그지없는 영력 충격 때문이었다.
빨간색 영력이 이룬 소용돌이가 두 사람을 감쌌다.
“네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웅패가 사악하게 웃자 난폭한 빨간색 영력이 홍류를 이뤄 그의 주먹을 따라 목진의 체내로 미친 듯이 스며들었다. 그는 안에서부터 목진의 육신을 철저히 부수려 했다.
웅패의 이런 수법은 처음이 아니었다. 일전에 이 수법을 당한 두 하위 지지존들은 육신이 산산이 폭발해 죽었다.
쿵!
그런데 웅패는 목진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곧 죽을 텐데 어디서 장난질이냐!”
웅패는 바로 목진 체내의 난폭한 영력을 폭발시키려 했다.
그런데 그는 목진의 체내에 사정없이 주입했던 자신의 영력과 연계가 끊어진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이건 꼭 목진의 육신이 어떤 영력이든, 그 양이 얼마든 순식간에 삼키고 와해시키는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웅패는 표정이 확 일그러진 채 중얼거렸다.
정작 목진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웅패의 영력이 난폭하기 그지없는 건 사실이지만 목진은 더 이상 체내에 스며든 타인의 영력이 두렵지 않았다.
그의 체내에 깃든 빨간색 영력은 체내에서 부단히 휘몰아치는 수정 영력에 닿자마자 봉인되어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흠칫 놀랐다. 웅패가 아무리 미친 듯이 영력을 끌어올려 목진의 육신을 으깨려 해도 목진은 끄떡없었고 전혀 물러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사람들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