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5화. 화포 사내(火袍男子)
목진은 공간 소용돌이를 지나자마자 다시 눈을 떴는데 황혼 무렵이라 노을로 빨갛게 물든 하늘이 펼쳐졌고 들어선 공간은 상당히 조용하고 황량했다.
“이곳이 바로 대륙의 후손 쟁탈전을 치를 전장이란 말인가?”
목진은 드넓은 공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는 서천전황이 만들어낸 자그마한 공간인 것 같았고 모든 상위 지지존이 들어왔으니 지극히 잔혹한 쟁탈전이 예상되었다.
전장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누구든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목진은 그리 긴장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특수한 파동을 내뿜는 전인을 꺼냈다.
이는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서 없으면 안 될 물건이었다. 일단 빼앗기면 패배자가 되어 바로 전장에서 쫓겨나기 때문이었다.
또한, 전인은 천지존인 서천전황의 보물 창고와 연결되었고 보물들의 가치는 엄청날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신속하게 전인에 한 줄기 영력을 주입했는데 영력 광막이 나타나더니 보물들의 정보가 생성되었다. 그것은 비록 보물들의 진정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엄청난 기운을 내뿜었다.
“대신통, 인성신술(引星神術)…… 전인 10개.”
“백룡장(百龍杖), 저급 성물…… 전인 4개.”
“만산령비(萬山靈碑), 중급 성물…… 전인 13개.”
“영성대법신(靈聖大法身), 99등급 지존법신 순위권 중 79위, 전인 9개.”
* * *
목진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보물들을 쓰윽 훑더니 침을 꼴깍 삼켰다. 전황은 천지존이라 그런지 창고에 들어있는 물건들 모두 엄청난 보물들이었다.
그런데 전황은 이를 깜짝 선물로 공개했으니, 서천전황의 재력에 놀랄 따름이었다.
“만산령비가 중급 성물이군.”
목진은 만산령비가 욕심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만다라에게 넘긴 성진진마탑도 겨우 중급 성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저급 성물인 풍신선과 부해인 밖에 없었다.
“획득 조건이 전인 13개라니…… 그럼 적어도 상위 지지존 열세 명은 쓰러뜨려야 한단 말인가?”
목진은 보물이 탐나긴 했지만 그 조건을 보고는 이내 한숨을 쉬었다. 전인을 13개 얻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들 너무 비싸군.”
목진은 보물 창고를 한참 훑어보더니 무안한 듯 한숨을 쉬었다. 탐나는 물건은 많았지만 그 대가가 엄청났다.
보통 정예급 상위 지지존은 운이 좋아 봐야 전인을 일곱 개 정도 획득할 수 있을 텐데 이것으로는 중급 성물조차 바꿀 수 없었다.
그리고 전인으로 보물을 교환하면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서 우승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전인을 가장 많이 획득한 사람이 대륙의 후손이 되기 때문이었다.
대륙의 후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전황 보물 창고에서 전인으로 보물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 속의 보물이 탐나도 말이다.
이건 꼭 쟁탈전에서 우승하지 못할 사람들을 위한 보상인 듯했다.
“싸고 좋은 물건은 없나?”
목진은 입을 삐쭉 내밀며 투덜거리더니 전인을 거두려 했다.
“뭐지?”
그런데 그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살폈다.
“삼령 전진이라…….”
이는 보기 아주 드문 전진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상은 단, 세 사람뿐이었다.
이건 너무 이상했다. 전진은 전진사의 수단이고 전진사가 장악한 군대만 해도 만 명이 넘을 것이며 훌륭한 전진사는 백만, 심지어 천만 명도 넘는 군대를 거느릴 수 있었다.
그런데 삼령 전진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목진은 그 정체가 궁금해 상세 정보를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삼령 전진은 상고 시기, 대천세계의 오백만 전문의 전진사가 만들어낸 전진이었다. 이 정도 경지에 이른 전진사는 상위 지지존 중에서도 정예급에 속했다.
그런데 그의 생각이 상당히 기발했다. 그는 수천수만의 군대를 거느린 것이 아니라 두 사람과 함께 다녔다.
정확히 말하면 그 두 사람은 그의 쌍둥이 형제였고 전부 상위 지지존경에 이른 강자였다.
보통 백만문의 전진사는 절대 두 명의 상위 지지존의 전의를 이용하지 못했다. 상대방의 실력이 너무 강해 이룬 전의에 깃든 자아의식도 유난히 강력할 거라 자칫 잘못하면 도리어 크게 다칠 것이다.
그런데 그는 나머지 두 사람과 쌍둥이 형제라 마음이 잘 통해 자아의식으로 가득 찬 전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여 백만문 전진사는 상위 지지존경에 이른 두 사람의 전의로 수백만, 심지어 천만 명의 정예 군대와 비슷한 전의를 이룰 수 있었다.
세 사람 사이의 완벽한 궁합과 삼령 전진의 오묘함 덕분에 그는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도 죽인 적이 있었다.
보통 상위 지지존 세 명이 함께 나서도 지지존 대원만의 상대는 안 될 텐데 백만문 전진사는 쌍둥이 형제들 및 삼령 전진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내고 이름을 날렸다.
“세상에 이토록 신기한 일이 있다니.”
뇌리에 스며든 정보를 확인한 목진은 제법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백만문 전진사가 두 명의 상위 지지존을 군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 다른 전진사한테는 불가능할 일이었다. 상고 시기 백만문 전진사와 함께 한 두 사람은 그의 쌍둥이 형제라 마음이 잘 통해 자아의식으로 가득 찬 강대한 전의를 무사히 장악하고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죽인 것은 삼령 전진이란 오묘한 전진이 세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힘을 대폭 끌어올려 가능했던 일이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목진은 이를 해낼 수 있었다.
목진은 삼령 전진을 보자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한테는 쌍둥이 형제는 없지만 일기화삼청이 있었다.
화신들과의 연결은 쌍둥이들보다 더 강력해 삼령 전진은 아마 목진한테 더 어울릴 것이다.
이건 목진을 위해 만들어진 전진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비록 일기화삼청으로 삼령 전진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이를 획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전진이 있으면 일기화삼청이 가진 전투력도 폭등할 것이다.
하여 목진은 바로 삼령 전진의 가격을 살폈다.
삼령 전진, 전인 4개.
목진은 조금이나마 시름이 놓였다. 전진은 오묘하긴 하지만 요구 조건이 너무 높았다. 쌍둥이 형제나 자매를 두 명 따로 둔 전진사는 이 세상에 얼마 없어 전화의 보물 창고에서 그 가치는 저급 성물 정도밖에 안 되었다.
비록 목진한테는 대신통보다 훨씬 좋은 수련법이지만 말이다.
잇따라 목진은 전인을 거두고 고개를 들어 빨갛게 물든 하늘을 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는 최대한 빨리 전인 4개를 얻어내야 했다. 안 그럼 누군가 삼령 전진을 먼저 구매하면 그한테 엄청난 손해였다.
“그럼…….”
목진은 서서히 주먹을 쥐며 미소를 지었다.
“슬슬 사냥을 시작해야겠군.”
말을 마친 목진은 옷깃을 휘날리며 한 줄기 빛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의 첫 번째 목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인을 4개 획득하는 것이었다.
슉!
한 갈래 선홍색 빛이 일망무제한 하늘을 가르며 지나갔는데 그는 선홍색 도포를 입은 사내로 몸에서 뜨거운 불이 활활 타올랐다.
이건 그가 수련한 화염 영력이 지극히 왕성하다는 표현으로 영력이 화의처럼 온몸을 감싼 채 그를 보호했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훑고 있었다.
일단 실력이 조금이라도 약한 사람을 발견하면 바로 나서 상대방의 전인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장에서 사냥꾼과 사냥감의 신분은 언제든지 바뀌기 마련이라 그는 늘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가 엄청난 위협감을 느끼면 바로 물러났다.
그는 독특한 화둔 신통(火遁神通)을 수련해 속도가 상당히 빨라 같은 등급의 강자라도 그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또한, 상대방이 끝까지 몰아붙이면 그는 속도의 우세로 상대방과 소모전을 벌이면 되었다. 그럼 그는 분명 엄청난 우세를 차지할 것이다.
일전에 그는 이런 방식으로 전인 하나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손에서 서서히 회전하는 두 개의 전인을 바라봤다. 강자들로 가득 찬 이곳에서 그의 실력으로 최후의 승자가 되기란 거의 불가능했기에 대륙의 후손이 될 거라 여기지 않았다. 대신 최대한 많은 양의 전인을 수집해 전황의 보물 창고에서 마음에 드는 보물을 한 가지라도 얻어가고 싶었다.
그러다 보물을 수중에 넣으면 그는 바로 전장에서 나올 생각이었다. 그는 최후의 승자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뭐지?”
이리 생각하던 화포 사내는 은밀한 영력 파동이 몰래 빠져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저 멀리 산맥을 바라봤다.
영력 파동의 주인은 최선을 다해 영력을 감추려 했지만 결국 화포 사내한테 들키고 말았다.
이에 그는 눈에 화광을 모으더니 먼 거리와 그 사이에 가려진 장애물들을 넘어 산맥의 깊숙한 곳에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하위 지지존이라니!”
화포 사내는 젊은이를 발견하고 흠칫하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설마 목진이란 녀석인가?”
상위 지지존 전장의 유일한 하위 지지존은 바로 목진이었다.
이와 동시에, 목진도 상대방의 시선이 느껴져 한 줄기 빛이 되어 신속하게 움직였다.
“허허, 제 발로 찾아온 걸 그냥 보낼 수야 없지.”
사내는 씨익 웃으며 발을 힘껏 굴러 선홍색 화염을 내뿜더니 순간 제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바로 산맥의 위쪽 하늘에 나타나 장풍을 쐈다.
그는 목진과 웅패가 서천전성에서 한 대결을 전해 들었다. 이에 목진을 상대할 때 최대한 직접적인 영력 접촉을 피하려 했다.
하여 그는 아예 거리를 두고 영력 폭격을 가했다.
쿵!
불이 활활 타오르는 영력 거수에 산맥의 대부분 숲을 화해로 만들었다.
퍽!
다행히 목진은 거수가 닿기 전에 마침 그 범위에서 벗어났지만 난폭하기 그지없는 뜨거운 충격파에 제법 낭패를 봤다.
이에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미친 듯이 도주했다.
“어딜 가려고 그러는가?”
화포 사내는 피식 웃더니 바로 목진의 뒤를 쫓은 것이 아니라 산맥에 은밀한 영력 파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나섰다.
다른 상위 지지존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쓰러뜨리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에 하위 지지존의 전인을 빼앗기가 훨씬 쉬웠다.
대신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그러다 변고가 생기면 큰일이었다.
이러한 생각에 화포 사내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목진을 뒤따랐고 가끔 파멸의 파동이 깃든 영력 공격을 개시하며 소모전을 시작했다.
이렇게 그들이 지나간 곳들은 화해가 되었고 최전방에서 목진은 전력을 다해 도망갔다.
* * *
서천전성의 백옥 광장 주위에 꽉 찬 사람들은 광장의 위쪽에 펼쳐진 광막들을 쳐다봤다.
광막들은 세 개의 전장에서 벌어진 일들을 비추고 있었는데 다들 치열하게 싸웠다.
일단 전장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바로 사람들한테 보여주었다.
“영전자는 참 대단하지 않은가?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상위 지지존을 세 명이나 쓰러뜨렸으니 말이야!”
“상위 지지존을 두 명 쓰러뜨린 영검자와 영룡자도 훌륭하네.”
“쯧쯧, 하위 지지존 전장에서는 낙리의 앞길을 막을 사람이 없군.”
“영비자의 성과도 상당한걸?”
* * *
사람들은 광막을 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한편, 낙천신도 고개를 들고 광막을 봤는데 낙리가 하위 지지존 전장에서 펼친 실력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낙리는 비록 하위 지지존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낙신의 계승을 받아 기반이 예상 밖으로 단단했고 일부 수단은 그마저 처음 보지만 상당히 훌륭했다. 보아하니 이는 낙신족의 수단이 아니라 낙신의 계승을 통해 획득한 수단인 듯했다.
“낙리는 아직 낙신법신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일단 법신을 소환하면 그녀한테 위협이 될만한 상대는 얼마 안 될 거야.”
낙천신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광막들을 쓰윽 훑더니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여태껏 목진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아직 대결을 펼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낙천신은 하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상위 지지존을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잘 알고 있었기에 목진이 최대한 순조롭게 대결을 마치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