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8화. 이 정도면 될 것 같나요?
어느덧 하루가 지났다.
쏴아아!
바닷물이 요동치며 산맥을 힘껏 때려 뇌명 같은 소리를 냈고 목진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자 눈동자에서 영광이 번쩍이더니 서서히 사라졌다.
잇따라 그는 먼 곳 섬들을 쓰윽 훑더니 그곳에서 은밀한 영력 파동을 읽었다.
목진은 주위의 살기가 더 짙어진 것을 느꼈고 섬에 숨어든 사람들도 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목진이 호랑이 무리에 빠져든 늑대처럼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녀석들은 바로 달려들어 그의 전인을 모조리 빼앗을 것이다.
다만, 아무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고 적당한 기회를 기다렸다.
그러다 목진이 햇빛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해면을 보더니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는데 저 멀리 바닷물이 놀라운 속도로 빨갛게 물들더니 뇌명과 함께 만 장 정도의 선홍색 파도가 일었다.
1각도 안 되는 사이, 선홍색 파도는 목진과 수만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닿더니 구룡시선진의 변두리에 멈춰 섰고 선홍색 도포를 입은 낯익은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름 아닌 혈신족의 혈령자였다.
혈령자는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봤는데 곧 잡힐 사냥감을 보는 것 같았다.
“당신일 줄이야…….”
목진은 멈칫하더니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틀 동안 당신의 파동을 느끼긴 했는데 계속 숨어만 있더니 지금은 어찌 모습을 드러낸 건가요?”
혈령자는 이내 정색하며 답했다.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감히 까불다니!”
이에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오늘, 당신한테는 큰 화가 닥칠 거예요.”
목진은 혈령자에 대한 살기를 전혀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꼭 혈령자를 죽이고 싶었다. 낙리의 아버지께서도 혈령자 때문에 사망하셨고 낙천신도 녀석의 혈독 때문에 몇 년 동안 고생했으며 낙리마저 낙신족에 돌아온 뒤로 녀석 때문에 엄청난 압력,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 받았었다.
혈령자는 낙신족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낙리는 목진한테 혈령자가 저지른 일을 알리지 않았는데 그건 목진이 위험을 무릅쓰고 녀석을 죽이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진정한 강자가 되면 직접 혈령자를 죽이고 싶었다.
그러니 목진이 혈령자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이번에 상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오면서 낙신족의 천적인 혈령자를 완전히 제거하리라 마음먹었는데 제 발로 찾아왔으니 마침 잘 되었다.
“허허, 겁도 없는 녀석!”
혈령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중급 종사급 영진만으로 여기서 언제까지 우쭐거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설마 서천대륙에는 영진 종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냐?”
혈령자가 말을 마치고 옷깃을 휘날리자 옆에서 갑자기 흑광이 번쩍이더니 회색 도포를 입은 삐쩍 마른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어두운 빛을 발하는 자그마한 눈으로 목진이 친 구룡시선진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중급 종사급 영진이군. 그래서 여태껏 감히 나서는 사람이 없었던 거였어.”
“허허, 귀대사는 중급 종사급 영진사가 된 지 오래되었으니 해당 방면의 조예가 어린 녀석과는 전혀 다를 것이네.”
혈령자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귀대사가 히쭉 웃었다.
“혈령자, 내가 저 영진을 해결해줄 수 있네. 그럼 녀석의 전인 중 절반은 나한테 넘겨야 할 뿐만 아니라 자네도 나한테 전인을 하나 따로 줘야 하네.”
혈령자는 상대방의 요구에 마음이 아팠지만 결국 승낙했다.
“저 녀석을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겠네!”
“하하, 좋네!”
산봉우리에 앉아있던 목진은 호탕하게 웃는 귀대사를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영진 종사를 모셔왔단 말이지…….”
* * *
이와 동시에, 서천전성의 백옥 광장 주위에 모인 사람들도 목진을 비춘 광막에 집중했다.
이들은 혈령자와 귀대사의 출현에 수군대기 시작했다.
“혈령자가 귀대사를 모셔왔다니!”
“귀대사는 중급 종사가 된 지 오래되었으니 목진이 친 영진이 더는 작용을 하지 못하겠군.”
“영진을 잃은 목진은 이가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으니 드디어 패배하겠군!”
* * *
낙천신도 안색이 어두워진 채 광막을 보더니 혈령자를 쏘아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혈령자, 네 이놈!”
드넓은 바다에 파도가 미친 듯이 요동쳤고 주위는 살기로 가득 찼으며 사람들은 섬에 몰래 숨어 바닷물이 빨갛게 물든 먼 곳 바다 위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살폈다.
“혈령자가 목진을 상대하기 위해 귀대사를 모셔오다니!”
“그럼 목진은 이번 대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겠군.”
“귀대사는 서천대륙에서 이름을 날린 지 오래된 영진 종사라 목진이 친 영진을 뚫는 것에 문제가 없을 것이네.”
* * *
일부 사람들이 목진을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목진이 며칠 동안 저지른 일로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외부인이 감히 서천대륙에서 행패를 부리다니, 이는 서천대륙의 강자들을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한편, 혈령자는 혈랑 위에 서서 씨익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밖에서는 너를 건드리지 못하겠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너를 죽여도 염제가 뭐라 하지 못하겠지.”
그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혈령자는 목진이 정말 두려웠다. 겨우 하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상위 지지존 전장에서 활보하는 것을 보면 정말 상위 지지존이 되면 지지존 대원만급에 이른 무서운 실력을 갖추게 되지 않을까?
목진은 그야말로 요물이라 두 사람의 원한이 걷잡을 수 없어진 상황에서 혈령자는 반드시 녀석을 없애야만 했다.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오.”
목진도 낙신족을 위해 혈령자를 죽이고 싶었다. 혈령자만 죽으면 혈신족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낙신족의 상황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하지만 혈령자는 혈신족에 숨어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강자를 곁에 뒀고 지리적 우세까지 있어 목진이 목부 사람들은 전부 불러와도 녀석을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상위 지지존 전장보다 더 좋은 기회는 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히 그따위 말을 하다니, 참 겁도 없구나!”
자신을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목진의 모습에 혈령자는 피식 웃으며 옆에 서 있는 귀대사한테 눈길을 돌렸다.
“대사, 우리 함께 영진에 들어갑시다. 자네가 영진을 억제하면 내가 나서 저 녀석을 죽이겠네.”
영진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목진은 혈령자한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좋네.”
귀대사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이 친 종사급 영진은 범상치 않긴 하지만 그의 실력으로 억제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더구나 혈령자가 더 위험한 목진을 상대한다고 했으니 못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함께 구룡시선진에 뛰어들었다.
쿵!
잇따라 영진에서 경천의 영력 파동이 일더니 영력 거룡 아홉 마리가 강대한 압박감을 방출하며 나타나 혈령자와 귀대사를 노려봤다.
“제법이군.”
귀대사는 영력 거룡 아홉 마리를 보더니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목진은 역시 훌륭한 인재군. 저렇게 어린 나이에 영진 방면의 조예가 이 정도에 이르렀다니 말이야.”
정작 혈령자는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그는 목진이 선보인 천부적 재능이 뛰어날수록 죽이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해졌다.
“귀대사, 해당 영진을 억제할 수 있겠나?”
“이 영진이 대단하긴 하나 나한테는 어림도 없네.”
혈령자의 말에 귀대사는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슉!
말을 마친 귀대사가 옷깃을 휘날리자 수많은 영인이 날아올라 허공에 스며들었다.
위잉!
순간, 귀대사의 주위에도 영진이 신속하게 이뤄졌고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아홉 개의 영력 사슬이 되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영력 거룡 아홉 마리를 감쌌다.
“나의 박룡진(縛龍陣)이 마침 이 영진을 억제할 수 있네.”
귀대사는 미소를 지으며 인법을 바꿨는데 그윽했던 영무가 서서히 사라지며 통로를 이뤘다.
“지금부터 이 영진은 자네를 방해하지 않을 테니 어서 가보게. 자네가 목진을 죽이면 영진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네.”
혈령자는 귀대사가 목진이 친 영진을 없앨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잠시 억제만 한 것을 보고는 조금 화가 났다.
말이야 쉽지 영진을 뚫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혈령자는 목진의 영진이 작용하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 이 정도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한 갈래 혈광이 되어 영무 통로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해면에 우뚝 솟아오른 산맥 앞에 나타났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정상에 목진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녀석, 영진의 도움이 없이 어찌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혈령자는 서서히 날아올라 목진한테 다가가 피식거리며 물었다.
“그거야 싸워봐야 알죠.”
“어디서 센 척이냐!”
“혈신답천족(血神踏天足)!”
혈령자가 이내 정색하며 발을 힘껏 구르자 발에서 혈광이 휘몰아치며 거대한 선홍색 발을 이뤄 짙은 부식의 기운을 실은 채 목진이 앉아있는 산맥에 내려앉았다.
쿵!
목진이 운석처럼 내려앉는 거대한 선홍색 발을 보며 깊게 숨을 들이켜자 눈 속 깊숙한 곳에 수정 부도탑이 나타났고 체내의 웅장한 영력을 전부 수정 영력으로 전환하여 온몸에 퍼뜨렸다.
잇따라 그가 손을 들자 수정 같은 영력이 솟구쳐 위쪽에 수정 광막을 형성했다.
쿵!
거대한 선홍색 발이 수정 광막을 힘껏 짓밟자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충격파가 미친 듯이 휘몰아쳐 주위의 공간이 부단히 부서졌다.
쿠쿵!
수정 광막은 비록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무서운 힘이 스며들어 아래쪽 산맥이 그 힘에 못 이겨 빠르게 무너졌고 목진도 따라 추락했다.
그러다 해면 위에 멈춰선 목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서히 사라지는 거대한 선홍색 발을 바라봤다. 영력만 놓고 보면 그는 아무리 수정 부도탑이있어도 진정한 상위 지지존보다 못했다.
“인제 상위 지지존과의 진정한 차이를 알겠느냐? 영진 없이 영력만 보면 너는 상위 지지존의 상대가 안 된단다.”
혈령자는 허공에 서서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목진을 쳐다봤다.
그는 목진의 영력이 상당히 괴이한 것을 알아차리고 육신을 접촉할 기회를 아예 주지 않고 원거리 영력 폭격을 가했다. 그리하면 하위 지지존인 목진의 열세가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당장 지존법상을 소환하거라. 안 그럼 이제 소환할 기회가 없을 거란다.”
“당신 따위를 상대하는 데 지존법상까지 소환할 필요는 없어요.”
목진도 피식거리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혈령자의 한기 어린 말투에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발을 힘껏 굴렀는데 바닷물이 요동치더니 안에서 사람 천 명이 날아올라 그의 뒤에 모였다.
순간, 웅장한 전의가 휘몰아쳤다.
혈령자는 갑자기 나타난 군대를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드디어 저들을 내세운 것이냐? 그런데 저들만으로는 상위 지지존을 상대하기는 버거울 것 같구나!”
목진이 소환한 군대는 도령위로 혈령자와 구면이었다. 목진은 낙하에서도 도령위로 혈신족의 하위 지지존 한 명을 가뒀었다.
그런데 그것이 도령위의 한계라 이들로 상위 지지존을 상대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목진은 갑자기 괴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들로 안 되면…… 더 부르면 되죠.”
쿵!
목진이 말을 마치기 바쁘게 바다 밑에서 상당히 무서운 전의가 폭발했다. 혈령자는 전의의 강력함에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러다 해면에 물기둥이 일더니 사람들이 날아올라 목진의 뒤에 모였다.
그들도 천 명 가까이 되었고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 검은색 낫을 쥐고 있었으며 몸에는 오래된 부적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이 방출한 전의는 심지어 도령위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들은 상고의 천궁의 첫 번째 전주 휘하의 최정예 부대인 부마위였다.
“이 정도면 될 것 같나요?”
목진은 고개를 들고 안색이 확 어두워진 혈령자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