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2화. 유성진
쿵!
웅장한 전의가 바다처럼 휘몰아쳐 하늘을 가렸고 전의의 파도가 요동치자 천지마저 파르르 떨렸는데 그 중심에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쓸쓸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그는 반나절 전에 겨우 성진각 각주 유성진한테서 벗어났는데 바로 목진한테 걸려들게 될 줄 몰랐다.
현재, 상위 지지존 전장에서 목진이 군대의 전의로 열 명도 넘는 상위 지지존을 쓰러뜨린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지라 다들 감히 그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한편,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도 서천대륙에서 제법 유명한 사람이라 실력이 상당했는데 호호탕탕한 전의의 바다를 상대하려니 두려워졌다.
그는 전의의 바다에서 지극히 위험한 파동을 느꼈다. 이는 전의가 아니라 훨씬 위협적인 힘이었다.
그는 바로 손을 들며 외쳤다.
“내가 졌네!”
순간, 전의의 바다가 반으로 갈라지더니 늘씬한 소년이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왔다.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수중의 전인 네 개를 건넸다.
“고맙네.”
목진은 전인 네 개를 건네받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난 자네와 싸워 패배한 것이 억울하지 않네. 그런데 서천전전의 3대 성자, 유성진, 낭야검선, 패도 등과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할지는 궁금하군. 자넨 언젠가 그들과 반드시 싸울 것이니 멀리서 그 모습을 살펴보겠네.”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이제 그와 만날 기회가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빠르게 자리에서 사라졌다.
목진은 사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위 지지존 전장에 남은 사람은 점차 적어졌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전부 최정예급 강자들이었다.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언급했던 여섯 사람은 대륙의 후손 쟁탈전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된 이들이었다. 아무리 목진이라도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쓰러뜨리고 최후의 1인이 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사색에 잠겼던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인 순위권이 적힌 광막을 띄웠다.
그중, 1위는 서천전전의 영전자로 전인을 30개 획득했고 2위는 성진각 각주 유성진으로 전인을 25개 획득했다.
그 뒤로는 서천전전의 나머지 두 성자와 낭야검선 소모, 패도 초문 등 네 사람으로 획득한 전인의 개수 차이가 크지 않았고 7위가 목진으로 전인을 18개 획득했다.
“녀석들, 따라잡기 참 힘들군.”
현재, 전인 순위권에는 1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목진은 곧 6위권 녀석들과 마주칠 것이다.
상당히 치열한 대결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목진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저들은 서천대륙 상위 지지존 중 유명인사겠지만 목진을 쓰러뜨리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목진은 아직 선보이지 않은 필살기가 남아있었다.
그가 일기화삼청을 내세우면 전진과 영진이 없어도 상위 지지존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뭐지?”
그때 목진은 갑자기 이상한 파동을 느꼈고 고개를 들어보니 먼 곳에서 한 갈래 성광이 날아와 앞쪽에 나타났다.
상대방은 별무늬가 가득 새겨진 검은색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였는데 의젓하고 상냥하게 생겼다.
이에 목진은 바로 웅장한 전의를 끌어올렸다. 상대방은 현재, 순위권 2위인 성진각 각주 유성진이었다.
그런데 유성진은 고개를 숙여 목진 주위를 감싼 웅장한 전의를 힐끗 보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에 목진이 조금씩 웅장한 전의를 거두자 유성진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저 멀리 뒤쪽을 쳐다보다가 다시 성광이 되어 다른 쪽으로 향했다.
목진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슉!
그런데 멀리서 다시 파동이 느껴지더니 잔영을 이루며 날아와 유성진이 멈춰 섰던 곳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수수하게 생겼지만 몸 전체에서 지극히 위험한 기운을 내뿜었다.
목진은 상대방의 정체를 발견하고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서천전전의 4대 성자 중 대성자인 영전자였다.
영전자도 목진을 힐끗 보더니 나서지 않고 다시 잔영을 이루며 유성진을 쫓아갔다.
목진은 두 사람을 보더니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영전자가 유성진을 쫓아 가다니!
드디어 1위와 2위가 싸우기 시작했다.
즉, 대륙의 후손 쟁탈전은 이제 가장 잔인한 탈락 단계에 진입했다는 말이었다.
영전자와 유성진 중, 과연 누가 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까?
목진은 멀어져가는 유성진과 영전자를 한참동안 바라봤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 경천의 대결이 벌어질 것을 알았지만 굳이 쫓아가지 않았다. 나쁜 마음을 품고 따라갔다가 두 사람의 눈 밖에 나면 오히려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여 목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유성진과 영전자 중 한 사람은 오늘의 대결로 전장에서 쫓겨날 테지만 누가 떠나든 상위 지지존 전장의 탈락 속도는 빨라질 거라 대륙의 후손 쟁탈전은 가장 치열한 단계에 진입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잠시 멈춰 선 뒤, 뒷쪽을 쳐다봤다. 지극히 난폭한 영력 파동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비록 멀리 떨어졌지만 영력 파동의 강력함이 느껴졌고 그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진 것이 보였다.
아마 상위 지지존 전장에 남아있는 사람들 전부가 느꼈을 것이다.
“영전자와 유성진은 역시 엄청나군.”
목진은 이내 정색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력 파동으로 보면 영전자와 유성진은 그가 상대했던 모든 상위 지지존들보다 훨씬 강했다.
만약 목진이 일전에 두 사람과 마주쳤다면 도령위와 부마위만으로는 절대 우세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목진은 자리에 서서 무서운 영력 파동을 느끼고는 대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도 누가 이길지 무척 궁금했다.
갈수록 강해지는 영력 파동에 저 멀리 하늘은 점차 무너져 어두워졌고 한 시진 정도가 지나자 난폭한 영력 파동이 갑자기 놀라운 속도로 사라졌다.
“드디어 끝난 건가?”
목진은 바로 전인을 꺼내 순위권을 살폈다. 두 사람 중 우승자의 전의의 수가 분명 폭등할 것이다.
“뭐지?”
그런데 영전자와 유성진의 전인의 수량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설마 무승부인 건가?”
목진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무승부가 아니고서야 상대방의 전인을 빼앗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서천대륙에는 강자가 참 많군.”
목진은 이내 감탄했다. 그는 유성진이 영전자를 상대로 무사히 물러난 것에 적잖게 놀랐다. 영전자는 서천전황이 직접 배양한 친전 제자인데 말이다.
천지존의 가르침과 서천전전의 풍부한 자원은 목진마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목진은 지금껏 스스로 모든 걸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목진은 다시 어딘가로 향했다. 이제 전장에 남아있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져 그는 몰래 숨은 녀석들을 찾아내 그들의 전인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위를 한참 살펴봐도 큰 수확이 없었다. 녀석들은 전인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접근하면 빠르게 도망갔고 전황 보물 창고에서 전인으로 보물을 바꾼 뒤, 바로 전장에서 벗어났다.
다들 최후의 1인이 될 가망이 없다는 걸 알아 보물을 얻고 과감하게 물러나기로 한 모양이었다.
목진은 전인을 얻는 것이 훨씬 어려워져 잠시 멈추기로 했다. 이제 전인을 얻으려면 여태껏 사용했던 방법으로는 안 될 것이다.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6위권에 든 녀석들한테서 전인을 빼앗아야만 한다.
이러한 생각에 목진은 깊게 숨을 내뱉고는 일단 몸을 잘 추스르고 제대로 싸워보기로 했다.
“일단 휴식부터 하자.”
목진은 적당한 산맥을 찾아 내려앉으려 했는데 깊숙한 곳에서 은밀한 영력 파동을 발견했다.
이는 절대 낯선 영력 파동이 아니었다.
목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바로 산맥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주위를 쓰윽 훑었다. 그러자 커다란 나무 아래, 머리가 희끗희끗한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성진각 각주 유성진이었다.
사색이 된 채 앉아있는 유성진은 몸에 구멍이 잔뜩 뚫려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불쌍해 보였다.
목진은 유성진의 모습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보아하니 유성진은 영전자와 싸우다가 이렇게 된 모양이었다.
유성진도 목진을 발견하고 눈을 뜨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운이 좋나 보네요. 크게 다친 당신을 이렇게 마주치다니 말이에요.”
목진이 괴상하게 웃으며 한 말에 유성진도 가볍게 웃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서천전황의 친전 제자는 역시 대단하더구나.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아니더구나.”
“일전의 대결에서 패배했나 보네요. 대신 운 좋게 도망쳤고요.”
목진은 유성진이 영전자와의 대결을 무승부로 끝낸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유성진은 크게 다쳤지만 다행히 도주에 성공해 전진의 개수에 변화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에 유성진은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전자가 어찌나 독하던지…… 내가 소모, 초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생겼구나.”
“그게 무슨…….”
목진은 흠칫 놀랐다. 유성진, 낭야검선 소모, 패도 초문 사이에 따로 약속이 있었다니?
“우리는 서천전전의 3대 성자가 못마땅해 상위 지지존 전장에서 힘을 겨뤄보기로 한 것뿐이란다. 그중에 내가 영전자를 상대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다쳤으니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
유성진 등은 서천전전의 3대 성자가 뭉치면 나머지 사람들은 대륙의 후손이 될 자격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라 셋이서 저들을 상대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걸 왜 저한테 말하는 건가요? 설마 내가 당신의 전인을 빼앗을까 봐 그러는 거예요?”
목진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유성진을 노려봤다. 유성진은 크게 다쳐 실력이 폭락했고 목진은 분명 그한테서 전인을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란다. 오히려 난 내 전인을 너한테 전부 주고 싶지만 네가 받지 않을까 봐 걱정되는구나.”
유성진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답했다.
“왜죠?”
유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몸을 완전히 추슬렀을 때면 대결은 이미 끝났을 거라 이곳에 남아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란다. 난 그저 전인을 영전자한테 넘기기 싫어 이곳에 숨어있었던 것뿐이다. 대신 너만 괜찮다면 내 전인을 전부 네게 건네주고 싶구나.”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거라. 영전자는 나를 사냥감으로 여기고 있고 상위 지지존 전장에서 감히 그의 사냥감을 노릴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그러니 네가 내 전인을 건네받으면 새로운 1위가 될 거고 녀석은 바로 널 찾아올 거란다.”
“영전자가 찾아올 것을 알면서도 내 전인을 받을 것이냐?”
유성진은 목진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그런데 목진은 여전히 태연하게 서 있다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못할 것도 없죠. 난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상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왔어요. 그러니 당신의 전인이 없어도 영전자를 찾아가 싸웠을 거예요.”
유성진은 흠칫 놀라 목진을 쳐다보고는 이내 정색했다. 그는 목진한테서 두려움이란 감정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센 척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목진은 정말 처음부터 영전자와 싸울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목진이 상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온 뒤로 이룬 성과를 보면 그는 절대 멍청하거나 거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저리 말한 것을 보면 분명 믿는 구석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상위 지지존 전장에서 영전자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더구나.”
유성진은 한참 지나서야 눈길을 거두고 천천히 말했다.
“그럼 어떡할 건가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유성진은 호탕하게 웃더니 수십 개의 전인을 건네며 답했다.
“비록 난 영전자와의 대결에서 패배했지만 골칫거리를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단다.”
“목진아, 네가 정녕 담대한 녀석이라면 내 전인을 받거라. 내가 밖에서 너와 영전자의 대결을 지켜볼 것이니 부디 실망시키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목진은 바로 유성진의 전인을 거두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
유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이 서서히 흐릿해지다가 결국 전장에서 사라졌다.
잇따라 목진 수중의 전인에 광막이 나타났고 그의 이름이 순위권 1위로 올라갔다.
1위, 목진, 전인 개수, 43개!
순간, 전장 내외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