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3화. 낭야검선, 패도
목진이 1위에 오르자 백옥 광장 주위에도 광막이 나타났는데 바로 상위 지지존 전장의 순위였다. 사람들은 1위가 된 목진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세상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7위였던 목진이 어찌 갑자기 1위가 되었단 말인가?”
“유성진이네! 유성진이 사라졌네. 목진이 유성진의 전인을 빼앗았나 보네!”
“쯧쯧, 싸움은 다른 사람과 하고 전리품은 목진이 가져갔군.”
“교활한 녀석, 유성진이 영전자와의 대결에서 크게 다쳐 실력이 폭락한 틈을 타서 전인을 빼앗았나 보군!”
“이건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니네. 영전자는 분명 화가 나 녀석을 찾아갈 것이네.”
* * *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목진이 1위가 된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유성진도 영전자의 대결에서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비록 상위 지지존 전장의 신예 강자지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인 영전자와 비교하면 명성이든 실력이든 제법 그 차이가 컸다.
낙천신도 순위권을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목진이 유성진, 낭야검선, 패도 초문이 3대 성자와 승패를 가린 뒤, 적당한 기회를 찾아 나설 거라 여겼는데 갑작스러운 변고에 목진은 바로 영전자의 적으로 몰렸다.
아무리 목진을 굳게 믿는 낙천신이라도 영전자의 무서운 실력을 확인했던 터라 소년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허허, 목진이 1위가 되었군. 참 놀랍지 않은가?”
서천전황은 염제를 바라보며 히쭉 웃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서천전황과 염제는 목진과 유성진이 싸우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목진은 온전히 영전자 덕분에 유성진의 전인을 얻어낸 것이었다.
그런데 전장에서 이런 행운은 화를 부르곤 했다.
“목진은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전장에 들어간 것이니 이를 거절할 리가 있을까? 다른 사람이었으면 아마 감히 유성진의 전인을 건네받지도 못했을 것이네.”
염제가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서천전황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진이 1위의 자리를 지킬 능력이 있길 바랄 뿐이네.”
* * *
상위 지지존 전장의 서북쪽 어딘가에 서 있던 수수하게 생긴 사내도 광막을 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목진의 이름 뒤에 붙은 40개의 전인을 본 탓이다. 그러나 그는 금세 미소를 지었다.
“내 전리품을 낚아채는 사람이 생겼다니, 흥미롭군.”
유성진이 순위권에서 사라진 것을 보니 목진이 영전자가 애써 이룬 성과를 낚아챈 것임이 틀림없었다.
“하하, 너한테도 이런 날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두 갈래 빛줄기가 날아왔다. 그들은 다름 아닌 서천전전의 두 성자인 영검자와 영룡자였다.
영전자는 두 사람을 힐끗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성진과 초문, 소모가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손을 잡았다고 들었는데 내가 유성진을 쓰러뜨렸으니 나머지 두 사람은 너희가 알아서 해결해.”
이에 영검자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낭야검선이고 뭐고 꼭 싸워보고 싶었어. 내가 녀석의 검을 잘라 버리면 더는 그따위 호칭을 사용하지 못할 거야.”
유난히 튼실한 영룡자가 히쭉 웃으며 말했다.
“나도 패도의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참이야.”
“쟁탈전은 곧 끝날 테니 일단 보잘것없는 녀석들부터 처리하고 나머지 세 사람을 상대하자.”
영전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영검자와 영룡자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비록 서로 경쟁 관계지만 일단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안 그러면 전황께서 분명 노발대발하실 것이다.
영검자와 영룡자는 각자 흩어졌고 영전자는 다시 전인 광막 중 1위에 오른 목진의 이름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자리에 조금만 더 앉아있게 해주마. 전장에 남은 보잘것없는 녀석들을 전부 쫓아내면 내가 직접 가서 너를 1위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말을 마친 영전자는 광막을 거둔 뒤, 서서히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이렇게 1위가 되다니…….”
다들 1위의 주인이 바뀐 것에 잔뜩 놀랐을 때, 목진은 왠지 우스워 어깨를 들썩였다.
사람들은 아마 목진이 천운이 따라 유천도의 전인을 전부 건네받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운인지 실력인지는 마지막까지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제 따로 전인을 빼앗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겠군.”
목진은 한 산봉우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최후의 대전을 시작하기만 기다렸다. 그는 더는 전인을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어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이에 그는 서서히 눈을 감고 다시 삼령전진의 수련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두 갈래 영력 파동이 놀라운 속도로 가까워지는 것을 발견하고 눈을 번쩍 뜨고 저 멀리 하늘을 바라봤다.
멀리서 날아온 두 갈래 빛줄기는 눈 깜짝할 사이, 두 사람이 되어 목진의 앞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한 사람은 청색 도포를 입은 채 등에 녹슨 철검을 멘 사내로 온몸에서 내뿜는 예리한 검의에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찌릿할 정도였고, 다른 한 사람은 튼실한 장발 사내로 투박한 얼굴에서 패기가 흘러넘쳤다.
“낭야검선 소모와 패도 초문이군.”
목진은 고개를 들고 두 사람을 보더니 전혀 놀라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네가 유성진의 전인을 빼앗은 것이냐?”
패도 초문이 예리한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보며 물었다.
“마침 마주쳤을 뿐이에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한 답변에 초문은 조금 화가 난 듯 말했다.
“유성진은 분명 우리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우리가 가서 상처를 치유해주면 서천전전의 3대 성자를 상대할 수 있을 텐데 네가 갑자기 나타나 그를 쫓아낸 건 아니냐!”
이에 목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전장에서 친구가 어디 있나요? 그러니 내가 유성진을 살려줘야 할 필요는 없죠. 그리고 당신들이 한 약속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목진의 말에 낭야검선 소모가 흠칫하여 말했다.
“유성진이 이 일을 너한테 알려준 모양이구나.”
“유성진은 영전자와의 대결로 크게 다쳐 더는 대결에 참가하지 못할 것 같아 전인을 전부 나한테 넘긴 거예요. 유성진은 영전자를 상대하라고 그런 거라고요.”
“어림도 없는 소리!”
패도 초문은 이내 정색하며 외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네가 영전자를 상대할 수나 있단 말이냐!”
유성진도 영전자와의 대결에서 패했는데 하위 지지존 밖에 안 되는 목진이 저따위 말을 하다니,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못할 것도 없죠.”
“네 이놈!”
목진이 태연하게 웃으며 한 말에 초문이 버럭 화를 내자 옆에 서 있던 낭야검선이 앞을 막아 나서며 말했다.
“유성진이 전인을 너한테 준 것인지 네가 유성진의 전인을 빼앗은 것인지는 상관없단다. 다만, 네가 전인으로 보물을 바꾼 뒤 바로 전장에서 나가려는 것이면 우리는 그 전인을 돌려받아야겠구나.”
이에 목진은 무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내 목표는 상위 지지존 전장의 최후의 1인이 되는 거예요.”
목진의 말에 소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현재 전장의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느냐?”
“3대 성자가 전장을 싹쓸이해 우리마저 제거되면 네가 혼자서 저들을 상대해야 할 거란다. 너 혼자서 가능할 것 같으냐?”
“뭘 말하고 싶은 건가요?”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물었다.
“네가 유성진의 자리를 맡아주면 된다. 우리 셋이 협력해야 3대 성자를 상대할 수 있단다. 안 그럼 최후의 1인은 결국 3대 성자 중 한 명이 될 거란다.”
“좋아요.”
목진은 바로 승낙했다. 그는 확실히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무리 일기화삼청이 있어도 혼자서 3대 성자를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목진의 반응에 소모는 크게 놀란 것 같지 않았다. 하긴, 목진도 최후의 1인이 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소모와 초문만이 그한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다행이구나. 대신…… 그 전에 확인할 것이 있단다.”
소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뭔가요?”
목진이 고개를 들며 묻자 소모는 등에 멘 녹슨 철검을 서서히 잡았다. 무서운 검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네가 우리와 함께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단다.”
위잉!
소모의 손이 등에 멘 녹슨 철검에 닿자마자 무서운 검기가 폭발해 주위의 공간에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흔적이 생겨났다.
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봤는데 일전의 인자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인사는 끝났으니 실력을 확인할 차례가 되었다. 그는 목진이 자신과 함께할 정도의 능력이 안 되면 바로 나서 수중의 전인을 빼앗을 것이다.
쌍방의 협력은 일정한 실력을 바탕으로 해야만 했다.
평등한 대우를 받고 싶으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목진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화를 내지 않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해요.”
목진이 두려워하지 않자 소모는 인정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최근 들어 목진이 유명해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실력도 어느 정도 있을 거라 예상했다.
다만, 그들이 상대할 이들은 서천대륙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3대 성자였다. 그러니 목진이 이들을 상대할 실력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안 그럼 목진이 가장 빨리 무너져 계획이 틀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유성진의 전인을 빼앗아 그것으로 보물을 바꾼 뒤, 전장에서 물러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이러한 생각에 소모는 바로 녹슨 철검을 잡고 가볍게 휘둘렀다.
위잉.
순간, 앞쪽 하늘에 물결이 일더니 검광이 폭발하여 예리하기 그지없는 검기가 하늘을 가르며 목진이 앉아있는 산맥으로 향했다.
소모의 공격은 이 세상 모든 장애물을 자를 수 있듯 예리해 상위 지지존이라도 감히 정면 상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소모는 전혀 봐줄 생각이 없었다.
“낭야검선은 역시 명불허전이군.”
목진은 휘몰아치는 검기에 이내 감탄하고는 옷깃을 휘날렸는데 웅장한 전의가 솟구쳐 현무 전령을 이뤘고 전령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앞쪽을 막아 나섰다.
슉!
그러다 검광이 현무 전령을 힘껏 때리자 전령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전의를 내뿜어 막아내려 하였지만 결국 반으로 잘렸다.
소모의 공격은 현무 전령의 방어를 뚫었다.
잇따라 훨씬 어두워진 검광은 여전한 속도로 목진에게 향했고 백 장 범위에 들어섰을 때, 구룡시선진이 나타나 웅장한 영력을 내뿜으며 검광을 공격했다.
퍽! 퍽!
눈 깜짝할 사이, 휘몰아치는 검광은 구룡시선진을 뚫고 목진의 앞쪽에 나타나 미간을 가리켰다.
“대단하군.”
현무 전령과 구룡시선진마저 소모의 절세의 검을 막아내지 못한 것을 발견한 목진은 이내 감탄하더니 눈동자에서 수정의 빛을 발했다.
슉!
그러다 검광이 미간을 찌르려는 순간, 미간에서 수정의 빛을 발하더니 정교한 수정탑을 이뤄 수정탑과 검광이 부딪쳤다.
탕!
맑은소리가 울려 퍼지자 목진이 앉아있던 산맥이 와르르 무너졌고, 수정의 빛을 발하자 검광이 파르르 떨리더니 점차 흐릿해지다가 광점이 되어 사라졌다. 수정탑도 다시 목진의 몸으로 돌아갔다. 목진은 전의와 영진을 거두고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낭야검선은 역시 대단하군요.”
목진의 말은 과대평가가 아니었다. 예리한 검기에 목진의 전진과 영진의 이중 방어마저 뚫었으니 소모가 상위 지지존 중 최정예급 강자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녹슨 검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군.”
목진은 낭야검선이 쥐고 있는 녹슨 검을 힐끗 보며 중얼거렸다. 그 검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아마 만다라 수중의 성진진마탑 같은 중급 성물일 것이다.
허공에 떠 있던 소모는 끄떡없는 목진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 옆에 서 있는 초문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일전의 공격에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지만 절대 대충하려는 뜻은 없었다. 그런데 목진은 결국 그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고 목진도 역시나 전력을 다한 것 같지 않았다.
즉, 목진은 소모를 상대하기 위해 새로운 필살기를 드러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