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화. 두 여인의 대결
목진이 돌아오자 낙천신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목진을 한참 쳐다보더니 어깨를 다독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잘했구나. 낙리의 안목이 참 훌륭해”
목진은 가볍게 웃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낙천신을 힐끗 쳐다봤다. 낙천신은 그날, 북창령원에서는 절대 이리 말하지 않았다.
이에 낙천신은 괜히 어색해져 헛기침하더니 이내 정색하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혈령자를 없앤 것은 낙신족한테 엄청난 은혜란다. 낙리도 알면 분명 고마워할 거란다.”
낙천신은 갑자기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낙리의 아버지도 혈령자와 싸우다가 크게 다쳤고 결국 죽고 말았다.
“가족끼리 왜 그러시나요? 낙신족은 앞으로 더 잘될 겁니다.”
목진의 말에 낙천신은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낙리가 낙신족을 완전히 휘어잡았고 낙신의 계승까지 받았으니 머지않아 두 번째 낙신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때가 되면 낙신족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다.
“다른 전장은 아직인가요?”
목진은 바로 화두를 돌렸다.
“지지존 대원만 전장은 이미 끝났고 승자는 너와도 구면이란다. 바로 서천전전의 늠동노인이란다.”
낙천신의 말에 목진은 흠칫하더니 이내 혀를 내둘렀다. 이번에 그와 낙리만 아니었으면 아마 세 명의 대륙의 후손은 전부 서천전전 사람이 됐을 것이다.
“그럼 하위 지지존 전장은요?”
“거긴 아직이란다. 하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간 사람이 제일 많은 것도 있고 상위 지지존 전장 못지않게 흥미롭더구나.”
낙천신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그래요?”
“상위 지지존 전장과 달리 하위 지지존 전장은 두 무리로 갈라졌는데 각 무리에 수백 명의 강자가 포함되어 있단다.”
“두 무리라…….”
목진은 흠칫 놀랐다. 하위 지지존 전장에 주어진 자리는 결국 하나뿐인데 어찌 두 무리씩이나 생겼단 말인가? 그럼 양자가 싸워 한쪽이 이기면 누구를 최후의 1인으로 올린단 말인가?
“두 무리 중 한쪽은 서천전전의 영비자를 우두머리로 뒀단다. 그녀는 전장에 들어가자마자 서천전전을 내세워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자신과 같은 편이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전인을 빼앗았단다.”
“그러다 영비자의 행동에 불만이 생긴 사람들이 몰래 뭉쳐 함께 움직였는데 결국 패하고 말았단다.”
“다행히 낙리도 영비자를 싫어하는 강자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점차 키워나가더니 어느덧 상대방 못지않은 진영을 이뤘단다.”
목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영비자는 낙리를 쓰러뜨리기 위해 저러는 것이고 낙리가 이를 발견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반격하려는 거군요.”
영비자는 낙리를 상당히 싫어해 하위 지지존 전장에서 이목을 드러내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이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낙리를 쓰러뜨리려 할 것이다.
그런데 영비자 혼자서는 낙리를 이길 자신이 없어 이런 방식으로 무리를 이뤄 기타 강자들과 함께 낙리를 상대하려 하는 것이다.
다만, 낙리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자마자 반격을 시작했다.
영비자는 서천전전의 유명세 덕분에 강자를 제법 모았지만 낙리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낙리는 일부러 영비자가 여기저기 들쑤시며 사람들의 불만을 사게 놔두었고 일정한 시기가 되자 비로소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다들 하위 지지존 전장은 두 여인 사이의 전쟁이 되었다고들 하더구나.”
낙천신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취지가 좋은 쟁탈전이 영비자와 낙리 때문에 이런 꼴이 된 것이 우습긴 했다.
“그런데 형세를 보니 하위 지지존 전장도 곧 결전을 시작할 것 같더구나. 현재, 전장에 두 무리를 제외하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이에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려는데 백옥 광장의 위쪽에 갑자기 거대한 광막이 나타났다.
광막은 하위 지지존 전장을 비췄다.
잇따라 하위 지지존 전장에 남아있는 두 무리는 사방에서 날아와 산맥 위쪽에 멈춰 섰다.
목진은 그중 한 무리의 가장 앞쪽에 서 있는 여인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하위 지지존 전장은 역시나 두 여인의 전쟁터가 되어있었다.
* * *
겹겹이 쌓인 산맥의 위쪽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강력한 영력 파동과 함께 수만 장 높이 걸려있던 구름이 쭉 찢어지며 두 갈래의 방대한 무리가 산맥의 양측에 나타나 호시탐탐 서로를 노려봤다.
우측 최전방에는 현의를 입은 여인이 서 있었는데 새하얀 피부에 영롱한 몸매, 경국지색의 외모까지 더하여 손짓 하나만으로도 사내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내뿜는 우아하고 존귀한 기품은 진정한 여황처럼 고상했다.
이러한 절세의 가인은 낙리 외에 더는 없었다.
그리고 낙리 뒤에는 수백 명의 하위 지지존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영비자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하위 지지존을 쓰러뜨려 쫓아냈다. 가끔 용기 내어 반항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전장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그때, 낙리가 놀라운 속도로 사람들을 모으더니 처음으로 반항에 성공했다.
그 뒤로 낙리는 영비자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을 부단히 모아 세력을 키웠고 뛰어난 매력으로 중립의 태도를 견지했던 정예급 강자들까지 영입하여 영비자 못지않은 진영을 만들었다.
보름도 안 되는 사이, 낙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고 심지어 영비자의 진영 못지않은 무리를 갖췄다. 그 엄청난 수단에 다들 놀라워했다.
하여 그 누구도 낙리를 여인이라고 무시하지 않았고 그녀의 명령에 무조건 따랐다.
그때 낙리의 뒤쪽에 서 있던 청색 도포를 입은 훤칠한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낙황은 참 대단하지 않은가? 보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스무 명도 채 안 되었는데 지금은 영비자 쪽을 상대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네.”
사내의 이름은 여봉선(呂鳳仙)으로 서천대륙 하위 지지존 중에서 상당히 유명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상위 지지존경에 이를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아마 낙리가 영입한 사람 중 최강 전력일 것이다.
“영비자는 서천전전만 믿고 우쭐거리는 것뿐이지 실력만 따지면 절대 낙황보다 못할 것이네.”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옆에 서 있던 튼실한 사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는 등괴(藤魁)로 여봉선 다음으로 실력이 강했다.
“낙황의 명이 떨어지면 난 녀석들의 진형부터 뚫을 것이네!”
등괴 뒤에 서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는 미간에서 은은한 금광을 발했는데 나지막한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제법 무서워 보였다.
말을 마친 사내는 여봉선을 힐끗 쳐다보더니 바로 앞쪽에 서 있는 낙리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연모의 뜻이 담긴 듯했다.
그의 이름은 수호(俞虎)로 서천대륙 사람들은 그를 호왕(虎王)이라 부르곤 했는데 역시나 실력이 막강해 싸움이 벌어지면 아무리 여봉선이라도 그를 제압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셋은 서천대륙 하위 지지존 중 상당히 유명한 강자들로 지금은 잠시 낙리의 명을 따르기로 했다.
수호의 심상치 않은 눈빛에 여봉선은 무안한 듯 웃더니 낙리를 힐끗 쳐다봤다. 그처럼 여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내마저 낙리한테 마음이 가는지라 서천전황이 그녀를 성녀의 자리에 앉히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마 낙리 휘하에 들어온 강자 중 적어도 절반은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어왔는데 차마 드러내지 못할 뿐이다.
이에 낙리는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말다툼할 필요 없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이네. 나머지는 우리 하늘에 맡깁시다.”
“낙황의 명에 따르겠네!”
여봉선 등의 말에 뒤에 서 있던 강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외쳤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저것이!”
산맥의 다른 한 측에 서 있던 영비자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낙리 쪽을 보더니 이를 깨물었다.
그녀는 서천전황의 제자라 서천대륙에서 공주처럼 자랐고 여태껏 수많은 천재가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데 낙리가 나타난 뒤로 다들 그녀를 언급하기 시작했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게다가 서천전황까지 낙리를 서천전전의 성녀로 책봉하겠다고 나섰다. 성녀의 지위는 영비자보다 훨씬 높았다.
이에 질투심에 눈이 먼 영비자는 하위 지지존 전장에 들어와 낙리를 철저히 제압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그녀는 서천대륙 사람들한테 낙리와 자신의 실력의 차이가 천지 차이란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촉우(蜀羽), 촉광(蜀光), 촉신(蜀辰), 여봉선 등은 당신들한테 맡기겠네.”
영비자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힌 뒤, 뒤에 서 있는 세 사람에게 말했다.
이들은 서천전전이 배양하고 있는 정예 세력 중 하나인 촉문(蜀門) 출신으로 촉문 젊은이 중 최정예급 강자라 여봉선 등보다 훨씬 유명했다.
영비자의 말에 촉우 등은 입을 삐쭉 내밀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영비자는 서천전전의 제자라 신분이 존귀해 그녀의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흥, 낙리가 이룬 세력이 서천전전 사람들을 어찌 상대할 수 있을지 보자꾸나.”
영비자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실력으로 따지면 영비자 쪽이 더 강했다. 영비자가 이끄는 무리의 사람들은 서천전전의 부하들로 전황이 부여한 자원이 상당히 많아 낙리 쪽보다 강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마친 영비자는 먼저 한 줄기 빛이 되어 나섰고 부하들이 바로 그 뒤를 따랐다.
낙리도 고개를 들고 한기 어린 눈빛으로 영비자를 힐끗 보더니 동시에 손을 휘두르며 외쳤다.
“공격하라!”
순간, 웅장한 영력이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날아올라 싸움을 벌였다.
쿵! 쿵!
난폭한 영력 폭격에 천지마저 격렬하게 진동했다.
슉! 슉!
양쪽의 최정예급 강자들은 영력 충격파를 뚫고 정해둔 상대를 향해 강력한 공격을 날렸다.
여봉선 등의 상대도 마침 촉우 등이라 바로 지존법상을 소환해 격렬한 싸움을 시작했다.
이 구역은 성대한 불꽃놀이를 시작한 듯 떠들썩해졌는데 아름다운 불꽃에 위험하기 그지없는 파멸의 힘이 깃들어 아래쪽 산맥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러다 낙리와 영비자도 마주쳤다.
“제법이군. 내가 쫓아낸 상갓집 개들을 전부 모아놨더군.”
영비자는 피식 웃으며 낙리를 노려봤다.
“자네가 너무 우쭐거려 싫어하는 사람이 어지간히 많아야지…… 덕분에 사람들을 빨리 모았네.”
“보잘것없는 녀석들일 뿐이군.”
낙리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한 말에 영비자는 괜히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낙리의 무덤덤한 태도가 너무 싫었다.
“흥, 목진은 지금쯤 제발 살려 달라고 영전자한테 무릎을 꿇고 빌고 있을지도 모르네.”
영비자는 낙리가 목진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일부러 이리 말했다. 그 말에 역시나 낙리는 웃음을 거두더니 조용히 서서 영비자를 노려보기만 했다.
영비자는 순간 낙리의 눈빛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녀는 낙리가 자신이 한 말에 진정 화가 났다는 걸 깨달았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자네가 그 대가를 치르고도 목숨이 붙어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네.”
낙리는 말을 마치자마자 웅장하고 강력한 영력을 끌어올리며 뒤쪽에 상당히 아름다운 여인의 그림자를 그렸다. 이와 동시에,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압박감이 휘몰아쳤다.
백옥 광장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목진은 흠칫하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낙신법신이라…… 영비자가 낙리를 제대로 건드렸나 보군. 이거 불쌍해서 어쩐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