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주재-805화 (804/1,000)

805화. 용상

대천세계의 만도대륙(萬島大陸)은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졌고 섬마다 상당히 큰 아주 특이한 대륙이었다. 그중, 가장 큰 섬은 심지어 일부 대륙과 비슷했다.

한편, 만도대륙의 중심 구역에 대나무가 가득 자란 거대한 섬이 있었는데 구름이 자욱하게 낀 섬에 웅장한 천지의 영력이 잔뜩 모여있는 보기 드문 수련 성지였다.

가까이에서 보면 섬에서 자란 대나무들은 비취처럼 은은한 빛을 발했고 내뿜는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다스리고 체내의 영력을 활성화하는 작용을 했다.

이는 벽령죽(碧靈竹)이라는 대나무로 벽령향(碧靈香)을 만들 수 있는데 수련할 때 사용하면 수련 효율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련하다가 자칫 잘못해 나쁜 길에 들어서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수련자들한테 더 없는 보물이었다.

벽령향 한 개에 지존영액 만 방울 정도 한다고 들었는데 해당 섬에 벽령죽이 가득 자라났으니 지존영액으로 바꾸면 적어도 10억 방울은 될 것이다.

이는 일부 정예 세력을 탈탈 털어도 절대 내놓을 수 없을 정도의 돈이었다.

하여 다들 이곳을 차지하지 못해 안달이 나야 정상인데 강자로 가득 찬 만도대륙에서도 감히 벽령도(碧靈島)를 건드리지 않았다.

벽령도는 대천세계의 5대 고족 중 하나인 부도신족의 땅이었다.

부도신족은 대천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 중 하나로 실력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천지존급 강자들도 감히 덤비지 못했다.

그렇기에 벽령도는 만도대륙에서 가장 안전한 구역이었고 누구든 벽령도에만 오르면 감히 이상한 마음을 품지 못했다.

그들은 비록 만도대륙에서 명성과 지위가 상당하지만 부도신족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부도신족을 잘못 건드려 그쪽에서 천지존급 강자라도 파견하면 그들이 세운 세력이 몰락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 * *

슉!

벽령도의 위쪽 하늘에 한 갈래 영광이 번쩍이더니 섬을 감싼 영진을 건너 누군가 중심에 놓인 산맥에 내려앉았다.

대나무로 가득 찬 산 정상에 수수하게 생긴 석탑들이 있었는데 그는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석탑으로 다가갔다.

그 석탑 아래에는 회백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조용히 앉아있었는데 영력 파동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기운을 방출하곤 했다.

사내는 눈을 꼭 감고 있는 노인 앞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수련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이에 사내는 온몸을 파르르 떨며 황급히 답했다.

“다름이 아니라 수배령에 오른 죄인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퍽!

순간, 노인의 체내에서 경천의 영력이 폭발하더니 꼭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사내를 노려보며 물었다

“수배령에 오른 죄인이라…… 혹시 대장로가 언급했던 그 아이를 말하는 것이냐?”

“네!”

사내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영옥을 꺼내 영력 광막을 띄웠다.

광막에서 치열한 대결을 펼쳐지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목진과 영전자의 대결이었다.

그러다 목진이 수정 부도탑을 선보이자 회백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광막을 한참 보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며 간신히 놀란 마음을 다스렸다.

“저…… 저건 성부도탑이 아니냐?”

성부도탑은 부도신족에서도 아주 보기 드문 물건으로 천부적 재능이 가장 뛰어난 사람만 수련해낼 수 있었다.

현재, 부도신족 젊은이 중, 성부도탑을 수련해낸 사람은 오직 한 사람으로 최근 천년 이래 보기 드문 천재라고들 하여 다들 그를 차기 부도신족의 족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광막 속 성부도탑을 소환한 젊은이는 절대 부도신족의 천재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녀석인 것으로 보아 우리 종족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성부도탑을 수련해냈으니 몸에 우리 종족 혈맥이 깃들었겠구나. 그럼 녀석은 틀림없이 대장로가 말한 죄인이겠구나.”

노인이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부도신족도 여러 개 파벌로 나뉘었다. 그는 마침 천재 젊은이를 지지하는 편이라 그를 차기 족장 자리에 앉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일단 성공하면 이들한테도 엄청난 권력이 주어질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성부도탑을 수련해낸 목진이 나타났다. 그는 이제 부도신족의 죄인일 뿐이라 지위라고 말할 것도 없지만 변고 따위를 용납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생각에 노인이 이내 정색하자 주위의 온도가 확 떨어졌다.

“용상(龍象) 호법을 부르거라.”

노인은 손을 휘익 저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쿵!

푸르른 대나무숲에서 나지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는데 대지마저 그 힘을 못 이기듯 파르르 떨렸다.

그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늘씬한 중년 사내였다. 사내는 회백색 도포를 입은 노인한테 다가가 멈춰 섰다.

“무슨 일로 절 부른 건가요?”

이에 노인은 고개를 들고 중년 사내를 지그시 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용상아, 지지존 대원만급에 이른 것을 축하한다.”

등에 수많은 산맥을 업고 있는 것 같은 중년 사내는 힘의 파문을 방출했는데 주위의 공간마저 파르르 떨렸다.

“반보 지지존 대원만일 뿐이에요.”

중년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너의 천부적 재능으로 그 정도 경지에 이르면 머지않아 진정한 대원만급 강자가 될 거란다.”

중년 사내는 이번만큼은 노인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도 자신이 머지않아 진정한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되리라 굳게 믿었다.

“무슨 일로 저를 부른 건가요?”

중년 사내가 다시 한번 묻자 노인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너한테 맡길 임무가 있단다.”

“그게 뭔가요?”

“누군가를 잡아 오거라. 그의 실력은 하위 지지존이란다.”

말을 마친 노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한 갈래 영광이 앞쪽에 나타나더니 목진의 모습을 그려냈다.

“하위 지지존 따위에 굳이 제가 나서야 하나요?”

중년 사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허허, 저 아이는 보통 하위 지지존이 아니란다. 그는 하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서천대륙 대륙의 후손 쟁탈전의 상위 지지존 전장의 최후의 승자가 되었단다. 그는 심지어 서천전황이 직접 수련시킨 친전 제자까지 쓰러뜨렸으니 대단하지 않느냐?”

노인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마 상위 지지존 중에서 녀석을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란다. 하여 난 너를 파견하려는 거란다.”

“제법이군요.”

중년 사내는 그제야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이토록 놀라운 성과를 따냈다는 것은 부도신족 출신인 그한테도 놀라운 일이었다. 부도신족 젊은이들도 목진 정도의 성과를 이뤄내지 못할 것이다.

“녀석이 누구기에 잡아 와야 한단 말인가요?”

중년 사내의 질문에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대장로께서 직접 내린 명이란다.”

중년 사내는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설마 일전에 내린 수배령에 오른 그 아이란 말인가요?”

“그렇단다.”

쿵!

중년 사내는 이내 정색하더니 체내에서 무서운 영력을 끌어올려 용과 코끼리의 포효와 함께 노인한테 엄청난 공격을 개시했다.

크으으으!

이에 노인의 뒤쪽에 황금색 사자가 나타났는데 녀석이 포효하자 상대방이 형성한 무서운 위압감이 바로 사라졌다.

이렇게 중년 사내는 뒤로 반보 물러났고 노인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중년 사내는 비록 반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일 뿐이지만 타고난 힘이 남달랐고 그가 수련한 용상부신결(龍象伏神訣)에 깃든 힘은 무시무시했다. 하여 양자가 정말 싸우기라도 하면 그는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상대방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용상, 설마 부도신족의 명령을 거역할 셈이냐?”

말을 마친 노인이 중년 사내를 노려보자 무섭기 그지없는 위엄이 형성되었다.

“저 아이는 아씨의 아들이지 죄인이 아니에요. 고사황(顧獅皇),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세요!”

용상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노인을 한참 노려보더니 눈길을 거두며 답했다.

“흥, 청연정은 한때 네 주인이었지만 지금은 부도신족의 규칙을 어기고 우리 종족의 고귀한 혈맥을 더럽힌 죄인일 뿐이란다.”

“불만이 있으면 장로원에 가서 말하거라. 저들의 생각이 바뀌면 난 그 뜻을 따를 거란다.”

“그래도 싫어요. 전 안 가요!”

용상이 콧방귀를 뀌며 한 말에 노인은 고개를 푹 숙이며 타이르기 시작했다.

“벽령도의 벽령죽이 곧 여물 거라 난 반드시 이곳을 지켜야 한단다. 그러니 네가 가지 않으면 난 이 소식을 종족에 알려야 하는데 그때 가서 대장로가 누굴 파견할지…….”

“용상아, 난 죄…… 저 아이를 산 채로 잡으려는 것뿐이란다. 네가 가면 녀석이 살아남을 수는 있겠지만 대장로 쪽에서 사람을 보내면 녀석이 어떻게 될지 알게 뭐냐?”

용상은 음산한 눈빛으로 노인을 한참 노려보며 고민하더니 한숨을 쉬며 답했다.

“알겠어요, 제가 갈게요!”

용상이 가면 적어도 목진을 죽이지는 않을 텐데 청연정을 싫어하는 쪽 사람이 가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 말해주니 정말 고맙구나.”

노인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용상아, 절대 빈손으로 오면 안 된단다. 안 그럼 난 네가 벽령도에 가둔 계집을 종족에 맡길 거란다. 그때 가서 형벌이 내려지면 그녀의 처지가 좋지는 않을 거란다.”

용상은 다시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노인을 쏘아보며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고사황, 정도껏 하세요. 아씨가 비록 갇혀 있지만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믿어요. 아무리 대장로라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또 아씨의 심기를 잘못 건드리면 누구도 당신을 구해줄 수 없을 거예요.”

“당신은 아씨가 손가락을 대충 움직이면 죽일 수 있는 벌레처럼 하찮은 존재일 뿐이에요!”

용상의 말에 노인은 눈가를 파를 떨더니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녀석을 노려봤다.

“흥, 갇힌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

노인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목진의 어머니가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천지존이 그를 죽이려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었다.

이에 용상이 그를 흘겨보고는 바로 떠나려 했다.

“소주께서 족장이 되면 부도신족은 우리 수중에 들어올 거란다. 그때 가면 우린 절대 대장로처럼 우유부단하지 않을 거란다. 일단 녀석을 잡으면 청연정은 말을 듣게 되어있다.”

노인은 음침한 눈빛으로 용상을 바라보더니 이를 갈며 외쳤다.

* * *

용상은 석탑을 떠난 뒤, 대나무숲의 깊숙한 곳에 있는 흑탑으로 향했다.

흑탑 밑바닥의 깊숙한 곳은 어둡고 조용했으며 흑석으로 만들어진 감옥이 있었는데 돌에서 은은한 영광을 발하는 것이 영진을 형성해 감옥을 봉인한 모양이었다.

용상은 감옥에 조용히 앉아있는 하얀색 치마를 입은 여인을 지그시 바라봤다.

머리를 축 드리운 채 앉아있는 여인은 수려한 외모에 지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목진이 그녀를 봤으면 분명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녀는 바로 북창령원에서 헤어진 뒤, 더는 소식이 없던 영계였다.

“영계야.”

용상은 미소를 지으며 영계한테 말을 건넸다. 그는 영계가 보면 볼수록 청연정을 닮아가는 것 같았다.

“용상 오라버니.”

감옥에 조용히 앉아있던 영계도 용상을 보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네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구나. 이곳은 부도신족의 땅이라 대원만급 강자가 지키고 있는 걸 알 텐데 말이야.”

용상은 씁쓸하게 웃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영계는 목진과 헤어지고 혼자서 벽령도에 뛰어들었고 고사황한테 잡혀 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영계는 가볍게 웃더니 반듯한 지면을 보며 답했다.

“정 이모도 이곳에서 한참 있었다고 들었어요.”

영계의 답변에 용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용상 오라버니, 여긴 왜 온 건가요?”

영계가 미소를 지으며 묻자 용상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주인님의 아이에 관한 소식을 확보했단다.”

이에 영계는 고개를 번쩍 들었는데 3년 동안 무뚝뚝했던 얼굴이 이내 화색이 되었다.

“목진아, 드디어 너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구나.”

그녀는 고개를 드리운 채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