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8화. 3대 지지존 대원만
며칠 사이, 용상은 더는 힘만으로 목진과의 대결에서 우세를 차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아무리 못해도 반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이고 수련법이 육신의 힘에 치중돼 있어 같은 등급의 강자를 상대해도 뒤처지지 않았다. 그런데 용상은 지금 상위 지지존일 뿐인 목진과의 대결에서 전혀 우세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목진은 끝까지 다른 수단을 선보이지 않았다. 정말 목숨을 걸고 싸우면 최후의 승자는 목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주님은 역시 대단하세요.”
용상은 이내 감탄했다. 상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이런 전투력을 선보인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용상은 목진의 훤칠한 얼굴을 보자 자신이 생겼다. 목진이라면 영계를 벽령도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이에 목진은 그저 웃기만 했다. 목진은 강력한 육신뿐만 아니라 체내에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령이 있어 용상과 육신의 힘이 막상막하였다.
그는 영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육신의 힘만으로도 상위 지지존 중 최정예급 강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고, 용상 같은 반보 대원만급 강자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반보 대원만급 강자를 쓰러뜨리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이리 생각하던 목진은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멀지 않은 곳 산봉우리에 절세의 미인이 조용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주님, 소인은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용상은 바로 눈치를 채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흘 뒤, 벽령도로 갑시다.”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용상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고 떠나자 목진은 바로 낙리한테 다가갔다.
낙리는 낙신족 회의를 마치자마자 거처로 돌아와 화려한 보라색 치마를 입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존귀하고 우아해 보였다. 게다가 잘록한 허리에 영롱한 몸매, 아름다운 얼굴과 가벼운 바람에 하늘하늘 날리는 은하수 같은 장발을 보노라니 순간 넋이 나갔다.
목진은 낙리를 보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고 자연스레 긴장이 풀렸다.
목진은 그녀 앞에서만큼은 안정을 되찾곤 했지만 낙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이에 낙리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흘겨보자 목진이 앞으로 확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목진은 품속에 안긴 여인의 수줍은 얼굴을 보자 더는 참을 수 없어 더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낙리가 가슴팍에 손을 대고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러지 마.”
목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여태껏 낙리에 대한 감정을 너무 오랫동안 참아왔기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여긴 낙신궁 뒷산이라 순찰대가 다니곤 했는데 목진이 낙신족 여황을 괴롭히는 걸 발견하면 사망의 공격을 개시할지도 모른다.
한편, 낙리는 목진이 동작을 멈춰서자 안심했다. 그는 목진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반항했는데 다른 곳이었으면 아마 내버려 뒀을 것이다.
순간, 낙리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아이고 아까워라.”
목진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천지존이 되어 어머니를 구해내면…… 그때는 네가 원하는 뭐든지 다 들어줄게.”
낙리는 목진의 어깨를 가볍게 때리고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목진은 목소리마저 떨며 말하는 낙리의 모습에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목진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얼굴은 바로 빨갛게 달아올랐고, 낙리는 이를 발견하고 입을 삐쭉 내밀며 목진을 물리쳤다.
“그럼 없던 일로 해.”
“뭐?”
목진은 멍하니 서 있다가 한참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낙신족의 여황이 했던 말을 번복하는 게 어디 있어?”
이에 낙리가 입꼬리를 씰룩거리자 목진은 다시 그녀를 안으며 물었다.
“날 놀린 거야?”
“히히!”
청년과 소녀는 꺄르르 웃으며 담소를 나눴다. 두 사람은 북창령원에서 헤어진 뒤로 마음 편히 웃은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오늘 같은 날이 더욱 소중했다.
잠시 후, 낙리는 목진과 함께 산봉우리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물었다.
“벽령도에 갈 거야?”
“영계 누이는 확실히 거기 있어. 난 반드시 그녀를 구해야 해.”
목진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벽령도에 가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기다리겠지만, 그는 가야만 했다. 영계는 그한테 엄청난 도움을 줬고 두 사람 사이도 각별했다.
“만다라한테 알리지 않아도 돼?”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인 만다라가 있으면 그들은 훨씬 안전할 것이다.
그런데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목부는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은 북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천라대륙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세력이 너무 많아서 만다라가 반드시 지키고 있어야 해. 안 그럼 북계는 다시 흩어질지도 몰라.”
“그럼 이번엔 내가 함께 가줄게.”
낙리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생긋 웃으며 한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그는 낙리가 낙신족을 떠나려 하지 않을 줄 알았다. 낙신족에는 그녀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낙리와 헤어진 지 오래되어 한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낙신족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더는 변고가 없을 거야. 그리고 지금까지 혼자였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주고 싶어.”
낙리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감동했고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낙리가 함께 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목진은 소녀의 잘록한 허리를 꼭 끌어안고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좋아, 벽령도가 아무리 위험한들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거야!”
만도대륙의 번화한 도시에 놓인 거대한 전송 영진은 만 장의 영광을 발하며 수많은 사람을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을 이곳에 데려오곤 했다.
그때 목진은 낙리, 용상과 함께 전송 영진에서 나왔는데 비린내가 깃든 바닷바람에 천지의 영력마저 촉촉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가 바로 만도대륙이란 말인가?”
목진은 서천대륙 못지않게 번화한 도성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만도 대륙의 대부분은 바다였고 커다란 섬들이 놓여있다고 들었었다.
한편, 만도대륙도 천라대륙처럼 엄청난 세력이 없어 세력들이 전쟁을 통해 이익을 챙기곤 했다.
“이곳은 마라도(摩羅島)이고 지배자는 상위 지지존인데 만도대륙에서 제법 유명하답니다.”
옆에 서 있던 용상의 말에 목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벽령도는 어디 있나요?”
“여기서 이틀 정도는 가야 할 거예요.”
용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소주님, 고사황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니 부디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에 목진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세요, 벽령도에 천지존만 없으면 지지존 대원만급 실력으로 나를 잡지는 못할 거예요,”
목진은 비록 상위 지지존일 뿐이지만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의 손에서 무사히 벗어날 자신이 있었다.
용상은 그제야 시름을 놓고 한 줄기 빛이 되어 하늘을 가르며 바다 위를 건넜다. 목진과 낙리도 서로 마주 보더니 바로 그 뒤를 따랐다.
대부분 바다로 이뤄진 만도대륙은 위험한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가끔 영력과 무한의 한류가 모여 한류의 폭포를 이뤄 지지존경에 이른 사람들마저 살아남기 어려웠다.
다행히 용상은 만도대륙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목진 등은 이틀 동안 아무 일도 없이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다.
* * *
목진은 낙리, 용상과 함께 드넓은 바다 위에 서서 멀리 내다봤다. 그러자 저 멀리 어딘가에 그윽하기 그지없는 천지의 영력으로 휘감은 커다란 섬이 보였다. 이곳이 바로 수련 성지인 것이 분명했다.
비록 멀리 떨어졌지만 목진은 그 속에 깃든 웅장한 영력이 만도대륙에서 가장 강력할 거란 느낌이 확 들었다.
“역시 부도신족은 대단하군요. 이렇게 훌륭한 땅을 수련지로 정했는데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목진은 이내 감탄했다. 만약 다른 정예 세력이었으면 아무리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지키고 있어도 분명 그 땅을 빼앗으려고 찾아가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벽령도 주위 수만 리 범위에 싸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보면 다들 근처에 얼씬거리지조차 못하는 모양이었다.
“제가 일단 혼자 들어가 영계를 구해낼게요. 안 그럼 고사황이 영계로 소주님을 위협하려 할 거예요.”
용상의 말에 목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영계를 몰래 구해낼 수만 있다면 그는 이대로 조용히 만도대륙을 떠나도 괜찮았다.
그리고 용상은 반보 대원만급 강자라 고사황이 눈치를 채더라도 그를 바로 제압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와 낙리는 바다 밑에 숨어있을게요. 부디 조심하세요.”
이에 용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깊게 숨을 들이켜며 벽령도로 향했다. 목진과 낙리는 천천히 바다 밑으로 들어가 영력을 숨기고 몰래 벽령도에 접근했다.
슉!
용상은 바로 벽령도에 진입했고 앞길을 막는 사람이 없어 곧장 섬의 깊숙한 곳에 놓인 흑탑 앞에 도착했다.
회백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여전히 흑탑 아래에 조용히 앉아있었는데 용상의 등장에 서서히 눈을 떴다.
“임무를 완성한 것이냐?”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용상한테 질문했다.
“목진은 하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상위 지지존을 쓰러뜨리고 서천대륙의 대륙의 후손이 되었으니 아무리 나라도 그의 상대가 아니에요.”
“그러니 당신이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아요.”
용상의 말에 고사황은 화를 내지 않고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일은 나한테 맡기고 너는 이만 물러나거라.”
고사황은 괴상한 눈빛으로 용상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참, 부도신족에서 사람을 보냈는데 소개해주마.”
고사황의 말에 용상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허허, 용상, 오랜만이네.”
대나무숲의 우측에서 하얀 머리에 빨간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걸어 나왔는데 옷에 검은색 대어가 새겨진 것이 여간 괴이해 보이지 않았다.
“양사어(梁邪魚)? 당신이 어찌 여기 왔단 말입니까?”
용상은 안색이 확 어두워지며 물었다.
양사어도 부도신족 사람으로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였다. 실제 실력 또한 고사황 못지않았다. 용상은 고사황이 양사어를 불러왔을 줄은 몰랐다.
“허허, 많이 놀랐나 보구나.”
고사황은 히쭉 웃더니 대나무숲의 좌측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양사어 한 사람만 불렀을 거라 여기는 것이냐?”
용상이 흠칫 놀라 대나무숲의 좌측을 보자 어느새 초록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초록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삐쩍 마른 데다가 눈빛이 더없이 차가웠고 옷깃은 밝은색 뱀 무늬로 수가 놓여있었다.
그한테서도 지극히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는데, 초록색 도포를 입은 노인도 진정한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였다.
“녹사노조(綠蛇老祖)?”
용상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녹사노조는 부도신족 사람은 아니지만 만도대륙에서 상당히 유명한 사람으로 만도대륙의 최강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존재가 여기까지 왔다니!
용상은 순식간에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세 명이나 상대하게 생겼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신중해지더구나. 내가 비록 너를 파견했지만 만일에 대비하여 두 친구를 불렀단다.”
고사황은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용상아, 어떤 것 같으냐?”
고사황의 말에 용상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네가 목진을 잡기 위해 무려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두 명이나 더 불렀다니. 변고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