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화. 영진 장악권 박탈
“그럼 인제 데려온 두 아이를 부르지 그러냐?”
고사황이 상냥하게 웃으며 한 말에 용상은 음산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는 고사황이 목진과 낙리가 근처에 있는 걸 알아챘을 줄 몰랐다.
크으으으!
용상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용과 코끼리의 울음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이는 벽령도에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세 명이나 있다는 것을 목진한테 알리는 용상의 경고음이었다.
이에 녹사노조가 미간을 찌푸리며 옷깃을 휘날리자 귀청을 찌르는 듯한 뱀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이에 용상의 고함이 점차 묻히기 시작했다.
잇따라 고사황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령도 밖을 향해 외쳤다.
“죄인 목진, 여기까지 왔으면 나타나지 않고 뭘 하는 것이냐? 네가 나서지 않으면 난 용상과 영계를 부도신족에 보내 처분할 것이다.”
고사황의 말이 울려 퍼지자 주위의 바다에마저 파도가 일었다.
쿠쿵!
그때 벽령도 밖의 바다에 갑자기 수만 장 정도의 파도가 일더니 무서운 기세로 벽령도로 향했다.
만 장의 파도는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날아와 벽령도 위쪽에 멈춰 섰다.
고사황 등이 자세히 살펴보니 파도 위에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중, 청년의 눈에서 예리한 기운을 방출하는 것이 꼭 절세의 검 같았다.
그는 바로 목진으로 세 명의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쓰윽 훑더니 고사황한테 눈길을 멈췄다.
“내가 나타나 주면 당신이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목진의 목소리는 벽령도에 울려 퍼져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고사황은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더니 늘씬한 청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상위 지지존 따위가 감히 나한테 이따위 말을 하다니, 참 겁도 없구나.”
쿵!
고사황이 말을 마치자마자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무서운 음파가 휘몰아쳤다.
일반 상위 지지존이었다면 난폭하기 그지없는 음파에 닿자마자 피범벅이 되었을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중상을 입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서천대륙 상위 지지존 전장에서 우승한 목진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앞으로 나서 입을 쩍 벌렸는데 용음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으으으!
진정한 용과 진정한 봉황의 위엄이 깃든 음파가 휘몰아쳐 고사황의 음파와 힘껏 부딪치자 천지에 경천의 뇌명이 울려 퍼졌고 아래쪽에 만 장의 파도가 일더니 폭우가 되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목진이 자신의 음파를 막아낸 것을 확인한 고사황은 인상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는 비록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지만, 상위 지지존이라면 절대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의 공격을 이토록 쉽게 막아낼 수 없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목진은 해냈다.
“흥, 제법이군. 믿는 구석이 있어서 감히 여기까지 온 거였군.”
고사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대단해 봐야 상위 지지존일 뿐이지 않느냐?”
잇따라 양사어가 씨익 웃더니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노려보며 물었다.
“저 녀석이 그 죄인인가? 천부적 재능은 괜찮아 보이는데 소주님과 비교하면 많이 뒤처지는 것 같네. 자네 너무 신중한 것 아닌가?”
양사어는 부도신족에서 고사황과 같은 편으로 차기 족장이 될 가능성이 있는 소주의 지지자였다. 목진이 그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먼길을 달려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이에 고사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저 아이도 성부도탑을 수련해냈을 가능성이 있네. 그것만으로도 절대 이대로 살려둘 수 없네. 그러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
그들은 비록 소주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고사황은 변고가 생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기회가 되면 목진을 없애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고사황의 말에 양사어는 입을 삐쭉 내밀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소주가 차기 족장이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 만약 일이 틀어지면 큰일이었다. 그러니 최대한 걸림돌은 없애는 편이 나았다.
“그럼 오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녀석을 죽여야겠군.”
양사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
“대장로께서 저 아이를 산 채로 잡아오라고 하셨는데 잡는 과정에서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분명 우리를 용서해 주실 거야.”
고사황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벽령도에는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세 명이나 있으니 목진의 수단과 방법이 아무리 많아도 절대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용상도 어느새 목진과 낙리한테 다가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말했다.
“조심하세요, 고사황은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두 명이나 더 불러왔어요. 지금 저쪽엔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만 세 명이에요!”
아무리 용상이라도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세 명이나 상대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의 실력으로 목숨을 걸고 덤비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어느 정도 상대할 수는 있을 테지만 대결에서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더구나 상대편에는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세 명이나 있으니 말이다.
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목진은 상당히 평온해 보였다. 그는 처음부터 벽령도에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한 사람뿐만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죄인 목진, 넌 오늘 절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테니 그냥 항복하거라. 그럼 다른 사람들은 풀어줄 수 있단다.”
이와 동시에, 고사황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과연 그럴까요?”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한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는 비록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세 명이나 상대하고 있지만, 전혀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목진의 담담한 태도에 고사황 등은 흠칫 놀랐다. 그들은 목진이 분명 믿는 구석이 있어 그런다는 것을 알았지만 상위 지지존 밖에 안 되는 녀석이 얼마나 강력한 수단을 확보해야 감히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세 명이나 상대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어리석은 녀석, 내가 오늘 절망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주마.”
고사황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씨익 웃으며 옷깃을 휘날렸는데 벽령도에서 수많은 영광이 솟구쳐 무서운 기운을 내뿜는 거대한 영진을 이뤘다.
“이건…… 주천낙성진이 아닌가요? 당신이 정녕 주천낙성진을 장악했단 말입니까?”
용상은 벽령도 위쪽에 나타난 거대한 영진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목진도 미간을 찌푸린 채 거대한 영진을 노려봤는데 익숙한 파동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허허, 그전까지는 주천낙성진을 장악하지 못했는데 양사어가 부도신족에서 가져온 만진패(萬陣牌)로 마침 영진의 장악권을 획득했단다.”
고사황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이 영진은 네 어머니 청연정이 직접 친 것이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자신의 아들을 공격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해당 영진은 목진의 어머니께서 직접 친 거라 익숙한 파동을 읽었던 것이었다.
“고사황,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셋이나 되는데 보호 영진까지 소환해야 하나요?”
용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목적만 달성하면 되지 과정이 뭐가 중요할까?”
고사황이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이에 목진은 한기 가득한 눈빛으로 고사황을 노려봤다. 고사황이 어머니의 영진으로 자신을 잡으려 하다니, 그의 행동에 목진은 제법 화가 났다.
“더는 말하기도 귀찮으니 잡고 보자꾸나.”
말을 마친 고사황이 옷깃을 휘날리자 거대한 영진에서 십수 갈래의 성광이 휘몰아치더니 운석처럼 목진이 서 있는 쪽으로 향했다.
고사황 등은 만일에 대비해 영진의 힘으로 목진을 잡으려 했다. 그래야 목진이 준비해둔 수단을 선보이면 대처할 시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심하세요!”
용상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목진은 그를 달래고 조용히 서 있었다.
“멍청한 녀석, 설마 영진이 사람을 알아보기라도 하는 줄 아는 것이냐?”
목진은 고사황이 피식 웃으며 한 말을 무시한 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성광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슈슉!
그런데 성광은 목진의 몸에 닿기 직전에 갑자기 괴이한 궤적을 그리며 돌아서 성광 감옥을 형성하더니 차마 피하지 못한 녹사노조를 가뒀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목진을 제외한 모두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사황, 이게 무슨 짓인가!”
녹사노조도 너무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한 것이 아니네!”
고사황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청색 영패를 꺼내 녹사노조를 풀어주려 했다.
“젠장, 영진의 장악권을 빼앗겼네!”
고사황은 안색이 확 어두워져 대지의 깊숙한 곳을 바라보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
“영계 그 계집이네!”
그런데 그는 영계가 무슨 수로 주천낙성진의 장악권을 획득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늘 일은 점차 그의 예상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 * *
어두운 지하 감옥에 조용히 앉아있던 여인은 가볍게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지면을 뚫고 벽령도 위쪽에 떠 있는 청년을 보기라도 한 듯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목진아…….”
그녀는 일전에 벽령도의 보호 영진을 장악하면서 섬 전체의 상황을 파악했는데 앳된 모습에서 벗어난 성숙한 목진의 모습을 훤히 볼 수 있었다.
목진은 몇 년 동안, 제대로 성장한 모양이었다.
“목진아, 내가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한 사람쯤은 제압할 수 있으니 나머지 두 사람은 너희가 알아서 해야겠구나.”
벽령도의 보호 영진은 청연정이 친 거라 녹사노조가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라고 해도 영계는 그의 발목을 묶어둘 자신이 있었다.
이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에 고사황과 양사어는 목진 등한테 맡겨야 했다.
“여태껏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자꾸나.”
영계는 까마득한 지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 * *
주천낙성진이 공격 상대를 바꿔 녹사노조를 가두자 용상도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갑작스러운 변고에 깜짝 놀랐다.
“영계 누이가 영진을 장악한 것 같아요.”
목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일전에 영진에서 영계의 파동을 읽어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영진사인 목진은 충분히 느껴졌기에 고사황이 영진을 소환하려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영진의 공격 상대는 바뀔 테니 말이다.
“영계?”
용상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벽령도는 어머니께서 수련하던 곳이라 무언가 남기셨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영예 누이는 여태껏 이곳에 남아 몰래 수련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목진이 벽령도를 살피며 한 말에 용상은 흠칫 놀라 말했다.
“난 영계가 겁도 없이 왜 혼자 벽령도에 왔나 했더니 따로 목적이 있었던 거였군!”
이에 목진이 가볍게 웃더니 성광에 갇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녹사노조를 힐끗 바라봤다.
“영계 누이가 우리를 도와 한 명을 처리해 줬으니 나머지 두 사람은 우리끼리 알아서 해결해야죠.”
목진의 말에 용상은 헛웃음만 나왔다. 녹사노조가 영진에 갇혔다고 해도 고사황과 양사어도 진정한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인데 무슨 수로 제압한단 말인가?
“용상 형님, 낙리와 함께라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한 명은 상대할 수 있겠죠?”
용상은 멈칫하여 낙리를 바라봤다. 그는 낙리의 엄청난 전투력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비록 하위 지지존일 뿐이지만 용상마저 제법 공을 들여야 낙리와의 대결에서 우세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두 사람이 함께라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상대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목진 혼자서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상대해야만 하지 않는가?
“목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분명 믿는 구석이 있어 저러는 거예요.”
낙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목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철수합시다. 그렇다고 고사황이 정말 영계를 처리하지는 않을 거예요.”
용상이 쓸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말에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웃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