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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812화 (811/1,000)

812화. 적염노선(赤炎老仙)

한편, 주천낙성진에 갇힌 녹사노조는 완전히 열세에 처한 고사황과 하얀색 도포를 입은 목진 수중의 천제검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그는 하얀색 도포를 입은 목진이 하마터면 고사황을 죽일 뻔한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

“참 괴상한 녀석이군. 상위 지지존경밖에 안 되는데 본체와 실력이 똑같은 화신이 두 명이나 있고 수중의 검은 분명 천지존의 것이지 않나!”

“설마 녀석의 뒷배가 천지존이란 말인가?”

이러한 생각에 녹사노조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는 부도신족 같은 강대한 뒷배가 없었다. 만약 목진을 보호하고 있던 천지존이 나타나면 부도신족에 찾아가지 않을지는 몰라도 지지존 대원만 밖에 안 되는 녹사노조를 없애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고사황 등은 부도신족을 등에 업고 있지만 그는 혼자라 믿을 구석이 없었다.

“젠장, 감히 날 이런 데 끌어들이다니! 저 녀석이 어딜 봐서 뒷배가 없어 보인단 말인가!”

녹사노조는 속으로 고사황을 한없이 나무랐다. 상황을 보니 고사황이 말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더는 여기 있으면 안 되겠어. 이건 저 녀석과 부도신족 사이의 일이니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

녹사노조는 이를 악물며 황금색 부적을 꺼냈다.

그건 순간 이동 부적으로 상고의 유적지에서 우연히 획득한 것인데 일단 사용하면 바로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이 부적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목진을 보살피던 천지존이 나타나면 더는 도망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별다른 수가 없었다.

녹사노조는 바로 수중의 부적을 불태웠는데 강력한 공간 파동이 폭발해 공간 소용돌이를 형성하자 주천낙성진의 봉인은 금세 뚫렸다.

“녹사, 뭘 하려는 건가?”

강력한 공간 파동에 고사황은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녹사노조는 이를 무시한 채 뒤도 안 돌아보고 공간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젠장!”

고사황은 혼자 도망간 녹사노조가 너무 얄미웠다. 인제 녹사노조가 도망갔으니 영계는 주천낙성진으로 나머지 사람들을 상대할 텐데 상황이 더욱 불리해졌다.

위잉.

아니나 다를까, 주천낙성진은 녹사노조가 도망가자마자 파르르 떨리더니 성광을 내려 고사황을 가두려 했다.

고사황은 자신을 향하는 성광을 보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해당 영진은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를 상대할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어 전성기 때였으면 전혀 두렵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크게 다쳤을 뿐만 아니라 목진이 쉴 틈 없이 쫓아와 일단 갇히면 오늘 벽령도에서 죽을 수도 있다.

“이건 다 네가 자초한 것이야!”

고사황은 너무 무서워 이를 악물며 말하더니 옥책 하나를 꺼내어 으깼다.

퍽!

옥책은 부서져 무한의 영광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거대한 공간 소용돌이를 이뤘는데 그 속에서 상당히 무서운 파동이 전해졌다.

그 광경에 목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해당 영력을 잠시 느끼는 것만으로도 절망감이 휘몰아쳤다.

“천지존이야!”

목진은 고사황이 부도신족의 천지존을 소환하려 할 줄 몰랐기에 서둘러 무조가 준 부적을 꺼내 들었다. 부도신족에서 천지존을 파견하면 그는 무조를 모셔오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낙리 쪽도 싸움을 멈췄다. 양사어는 고사황한테 다가가더니 거대한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장로께서 저 녀석을 상대하는 데 천지존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 그걸 생각할 때인가?”

고사황은 이를 갈며 말했다.

“흑광 장로(黑光長老)는 우리 사람이니 우리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걸세.”

양사어는 고사황의 의견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공간 소용돌이를 파괴해요!”

목진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공간 소용돌이만 파괴할 수 있다면 천지존은 이곳에 올 수 없을 것이다.

목진의 말에 주천낙성진은 수많은 성광을 내려 공간 소용돌이를 공격했고 그도 불후금신으로 불후신문을 만들어내 소용돌이를 공격했다. 용상과 낙리도 전력을 다해 공간 소용돌이를 파괴하려 했다.

그런데 이들의 공격에도 고사황은 피식 웃기만 했다.

목진 등의 공격이 닿으려 할 때, 빠르게 커진 공간 소용돌이에서 엄청난 위압이 깃든 창로한 목소리가 먼 공간을 뚫고 주위에 퍼졌다.

“네 이놈, 감히 내 앞에서 무슨 소란이냐?”

쿵!

잇따라 공간 소용돌이에서 영력 거수가 나타나 목진 등의 공격을 무산시키더니 벽령도 전체를 감쌌다.

용상은 순간 사색이 되었다. 천지존의 위엄에 이들은 반항할 힘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이들 앞쪽 공간이 갑자기 부서지더니 빨간색 조롱박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내가 어렵게 찾아낸 아이를 부도신족에서 없애면 태령고족(太靈古族)에서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네!”

빨간색 조롱박과 함께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목진의 옆에서 들려왔다.

하늘을 가릴 정도의 커다란 손이 신령의 손처럼 엄청난 위엄을 실은 채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때, 목진의 앞쪽 공간이 갑자기 부서지더니 빨간색 조롱박이 튀어나와 무한의 적광을 방출했다. 멀리서 보면 화산이 암장을 분출하듯 보였고 적광은 암장 바다 같았다.

이에 천지의 온도가 순식간에 올라갔고 주위의 해역마저 비등하기 시작했다.

쿵!

그러다 무한의 적광은 사정없이 내려앉는 신령 거수와 부딪쳤는데 천지가 격렬하게 떨리더니 구름마저 무서운 고온에 활활 타올랐다.

쿵!

무서운 온도가 깃든 적황이 휘몰아치자 커다란 손은 빠르게 메마르며 균열이 일더니 확 굳었다.

쿠쿵!

커다란 손은 결국 부서져 석우가 되어 떨어져 해역에 엄청난 파도를 일으켰다.

허공에 서 있던 고사황과 양사어는 거대한 손이 부서진 것을 보더니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

그들이 내세운 사람은 진정한 천지존인데 그의 공격마저 쉽게 무산시킬 정도의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실력은 또 얼마나 뛰어나단 말인가?

이 정도 등급의 실력자 앞에서는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도 별 볼 일 없었다.

후우.

빨간색 조롱박은 상대편 천지존의 공격을 무산시킨 뒤, 목진 등의 뒤쪽에 멀지 않은 곳으로 향했다. 목진 등은 그제야 한 노인이 지팡이를 쥔 채 그들 뒤쪽에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빨간색 조롱박을 들더니 빨간색 암장 같은 액체를 들이켰다. 그들은 비록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빨간색 액체가 얼마나 뜨거운지 느껴졌다. 노인이 술로 마시는 암장 액체는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목진과 낙리는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빨간색 조롱박을 들고 있는 노인은 너무 신비로웠다. 보아하니 그는 진정한 천지존인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자신을 도와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인은 암장 액체를 마시더니 고개를 들고 고사황 뒤쪽에 형성된 공간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부도신족의 유명인사가 직접 나서서 후배를 상대할 필요까지 있을까?”

노인의 말에 고사황과 양사어는 감히 나서지 못했고 뒤쪽 공간 소용돌이 속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태령고족의 적염노선이었군. 부도신족과 태령고족은 원한 관계가 없는데 왜 오늘 일에 굳이 끼어들려 하는 건가?”

이에 적염노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 내가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아이가 있는데 부도신족에서 죽이게 놔둘 수야 없지 않겠나?”

“흥, 저 아이는 우리 부도신족의 죄인이네. 태령고족에서 데려가려 한다면 자네가 아무리 적염노선이라고 해도 감당하기 버거울 것이네!”

공간 소용돌이 속에서 화가 난 듯한 소리가 전해져 주위의 공간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말한 사람은 저 여인이지 청년이 아니라네.”

적염노선은 어이없다는 듯 낙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목진도 괜히 어색해져 어깨를 들썩였다.

공간 소용돌이 속 사람은 안심이라도 한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럼 여인은 데려가게. 대신, 저 청년은 반드시 남겨둬야 하네.”

“목진이 이곳에 남으면 저도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말을 마친 낙리는 바로 적염노선한테 고개를 돌렸다.

“저를 소중하게 여겨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죄송합니다.”

적염노선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공간 소용돌이를 향해 말을 건넸다.

“내가 저 녀석도 함께 데려가야 할 것 같네. 그러길 바라지 않으면 내가 직접 부도신족의 부도탑의 위력을 느껴봐야겠지?”

말을 마친 적염노선 수중의 빨간색 조롱박에서 적광을 발하자 무서운 고온이 휘몰아쳤다.

적염노선의 확고한 대답에 공간 소용돌이 속 사람도 잠시 머뭇거렸다. 오늘 일은 부도신족의 천지존인 그가 종족 사람들 몰래 벌인 일이라 알려지면 큰일이었다.

특히, 청연정이 이 일을 알면 대장로마저 그녀를 제압할 수 없을 거라 벌을 받는 사람은 결국 그가 될 것이다.

그때 적염노선이 목진을 쓰윽 훑더니 흠칫 놀랐다.

“너도 천부적 재능이 아주 뛰어난 녀석인데 부도신족에서 왜 저러는지 모르겠구나. 너 같은 아이를 잘만 키우면 분명 천지존경에 이를 수 있을 텐데 굳이 죄인으로 만들다니 말이야.”

적염노선의 평가에 공간 소용돌이 속 천지존은 헛기침 소리를 내더니 결국 생각을 접었다.

“적염노선, 자네가 기어코 이 일에 간섭하겠다면 그리하게. 대신, 무슨 대가를 치르게 되든 감당할 수 있길 바라네!”

“그건 내가 고민할 문제네.”

적염노선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공간 소용돌이 속 사람은 더는 목진을 잡아가지 못할 걸 알고 고사황과 양사어를 꿀꺽 삼켰다.

잇따라 공간 소용돌이가 사라지자 무서운 위압감도 빠르게 사라졌고 하늘도 다시 밝아졌다. 목진과 낙리, 용상은 그제야 시름을 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지존이 주는 압력은 역시 강력했다. 이는 아직 이들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선배님.”

목진은 돌아서서 적염노선한테 공손하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내가 나서지 않았어도 너를 건드리지 못했을 거라는 걸 잘 안단다.”

적염노선은 이상한 눈빛으로 목진을 흘겨보며 말하더니 아직 거두지 않은 부적을 힐끗 쳐다봤다. 그마저 부적에 깃든 강대한 기운에 흠칫 놀랐다.

“그런데 낙리는 왜 찾으시는 건가요?”

목진은 미소를 지으며 낙리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일부러 부적을 거두지 않았다. 아직 적염노선의 목적을 몰라 좋은 일이 아니라면 바로 무조를 불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천지존경의 힘이 없다고 천지존을 상대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낙리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적염노선을 바라봤다.

“사실 간단하단다. 난 저 아이를 태령고족의 성녀로 만들고 싶어 찾아온 거란다.”

“또 성녀라니!”

목진과 낙리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태령고족의 성녀와 서천전전의 성녀는 완전히 다르단다.”

적염노선은 바로 해명에 나섰다. 보아하니 그는 서천전황이 낙리를 성녀의 자리에 올리려 한 일을 알고 있는 듯했다.

“선배님, 저는 현재 낙신족의 족장이고 태령고족 사람도 아니라 안 될 것 같아요.”

낙리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적염노선의 호의를 거절했다. 태령고족은 비록 대천세계 5대 고족 중 하나지만 굳이 그곳의 성녀가 될 생각은 없었다.

이에 적염노선은 잠시 넋이 나갔다. 대부분은 태령고족과 인연을 맺지 못해 안달이 났는데 낙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으니, 그 모습에 적염노선은 상당히 괴로웠다.

그때 목진이 낙리를 바라보더니 벽령도의 깊숙한 곳으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일단 영계 누이부터 구하자.”

두 사람은 적염노선만 남기고 영계를 구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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