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화. 팔부부도(八部浮屠)
벽령도와 멀리 떨어진 부도신족에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음산한 눈빛으로 온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고사황과 양사어를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나를 이용하여 그 죄인을 없애게 하려고 부적을 줬다고 생각한 것이냐?”
고사황과 양사어는 죽상이 되었고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당장 나와 함께 소주님을 뵈러 가자꾸나. 가서 녀석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려 드리고 소주님의 결정을 따르자꾸나.”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두 사람의 태도에 한숨을 쉬며 바로 뒤돌아섰다.
세 사람은 오래된 전각들을 지나 절벽에 놓인 석대에 이르렀다. 안개가 자욱한 이곳에는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조용히 앉아 수련하고 있었는데 눈 속 깊숙한 곳에 수정 같은 부도탑이 만 장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한테 다가가 서자 고사황과 양사어는 황급히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소주님을 뵙습니다.”
“그 녀석을 만난 것이냐?”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서서히 눈을 뜨더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질문에 고사황과 양사어는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미리 나한테 알리지 않은 것이냐?”
사내의 상냥한 말투에 고사황과 양사어는 무서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우리가 먼저 녀석을 잡아 소주님께 바치려 하였는데 일을 그르쳤습니다. 우리 생각이 짧았어요. 부디 용서해 주세요.”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길쭉한 손가락으로 무릎을 가볍게 때리며 두 사람을 쓰윽 훑었다. 그는 녀석들이 땀범벅이 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비록 나 몰래 움직였지만 나를 오래 따른 노고를 생각해 없던 일로 할 것이다. 대장로한테는 내가 잘 말할 테니 벌은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고맙습니다, 소주님!”
고사황과 양사어는 이내 화색이 되어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 녀석도 성부도탑을 수련해냈다지?”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묻자 고사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소주님, 그 녀석은 천부적 재능이 뛰어나 상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저를 상당히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성부도탑을 수련해낸 것이 분명해요. 그러지 않고서야 상위 지지존의 영력으로 절대 그토록 강할 수는 없습니다.”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사황의 말을 듣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청연정의 아들답구나. 부도신족의 지원 없이 그 정도의 성과를 이룩했으니 말이야.”
“녀석이 아무리 대단해도 소주님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입니다.”
양사어의 말에 고사황도 거들었다.
“그럼요. 소주님은 부도신족에서 천 년에 한 번 겨우 나타난 절세의 천재이니 앞으로 반드시 부도신족을 장악하실 겁니다. 목진은 소주님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사황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녀석과 싸우다 보니 본체와 실력이 똑같은 화신이 두 명이나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단에 하마터면 잡힐 뻔했습니다.”
“본체와 실력이 똑같은 화신이라…….”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한참 생각하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말로만 듣던 36가지 절세의 신통 중 한 가지인 일기화삼청이란 말인가?”
이에 옆에 서 있던 검은색 도포를 입은 천지존도 흠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통 영력 화신은 본체의 1할 정도의 실력을 보유할 수 있을 텐데 고사황의 말처럼 화신의 실력이 본체와 똑같다면 일기화삼청만 가능할 것 같네요.”
“일기화삼청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고 들었는데 그 녀석이 다시 수련해냈다니, 운이 참 좋기도 하지.”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마저 일기화삼청이 탐나는 눈치였다. 하긴, 그 정도 등급의 신통이라면 천지존한테도 엄청난 유혹이었다.
“소주님 정도는 되어야 그 정도 절세의 신통을 소유할 수 있죠!”
고사황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는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직접 나서서 목진을 혼내주었으면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여전히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있었다.
“일기화삼청이 탐나긴 하지만 난 지금 녀석을 혼내줄 시간이 없구나.”
“소주님의 말대로 당장 상고의 성연이라 일단 이번 성연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소주님께서 이번 성연을 통해 부도신족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절세의 신통인 팔부부도를 얻게 되면 다른 경쟁자들을 완전히 초월하고 차기 족장이 되실 수 있을 것이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천지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팔부부도라…….”
고사황과 양사어는 흠칫 놀라 물었다.
“설마 36가지 절세의 신통 중 한 가지인 팔부부도를 말씀하신 건가요?”
“그리 놀랄 거 없다. 팔부부도는 부도신족의 조상님께서 만들어내신 것인데 그해, 상고의 성연(上古聖淵)에서 역외사족의 천마제와 싸우시다가 별세해 팔부부도의 수련법도 유실된 것이다. 부도신족에서는 여태껏 최선을 다해 그 수련법을 찾아 나섰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상고의 성연은 상고 시기, 대천세계와 역외사족의 결전하던 장소 중 하나로 환경이 나쁘기로 유명해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라고 해도 자칫 잘못하면 즉사할 수 있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천지존도 이내 감탄하며 말했다.
“해당 지역은 대천세계와 역외족의 접점인데 천지존을 상당히 배척하여 일단 접근하면 공간 난류를 일으켜 역외사족의 지역으로 보내곤 한단다.”
고사황과 양사어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그러다 정말 역외사족의 지역에 가게 되면 아무리 천지존이라도 결국 죽게 될 것이고, 심지어 마제를 끌어들이면 대천세계는 큰일이었다.
“현재, 부도신족의 다른 소주들도 최선을 다해 상고의 성연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들 팔부부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니 일단 저들이 이를 획득하면 소주님은 철저히 열세에 처하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치자 검은색 도포를 입은 천지존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고 고사황과 양사어도 이내 정색하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보니 목진을 상대하는 것보다 소주님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비록 상고의 성연에 집중해야 하지만 그 녀석도 잘 살피거라. 난 일기화삼청도 욕심이 나는구나.”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팔부부도와 일기화삼청의 수련법을 획득하면 지지존 대원만급의 실력으로 진정한 천지존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말로만 듣던 절세 신통의 전투력은 분명 엄청날 것이다.
“네, 소주님. 해당 보물은 소주님 정도는 되어야 장악할 자격이 있죠. 그 녀석은 소주님에게 일기화삼청의 수련법을 제공해 드리는 것만 해도 영광입니다.”
고사황의 말에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상냥한 말투로 명을 내렸다.
“사람을 파견하여 그 녀석의 뒤를 밟거라. 언젠가 상고의 성연이 끝나면 내가 직접 녀석을 찾아가겠다.”
“녀석이 스스로 일기화삼청의 수련법을 건네면 내가 그를 위해 대장로한테 청을 올려줄 수도 있겠구나.”
“그보다…… 녀석을 수중에 넣으면 청연정을 지지하는 세력까지 장악할 수 있겠구나. 그럼 내가 차기 족장이 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청연정은 비록 구속된 지 오래되었지만 따르는 사람이 제법 있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녀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죠.”
검은색 도포를 입은 천지존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에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이내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들고 안개가 자욱한 어딘가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고 보면 그 녀석은 나한테 더도 없는 복덩이로구나.”
* * *
목진은 깊숙한 곳에 조용히 앉아있는 여인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영계는 제법 잘 지낸 것 같았다.
영계도 고개를 들고 흐뭇하게 웃으며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은 앳된 모습을 완전히 벗어 던지고 강인하고 듬직한 사내가 되었다. 여전히 훤칠했지만 이제는 소년이 아니라 성인 남자의 매력이 물씬 풍겼다.
영계는 목진을 보자 미소가 점차 부드러워졌다. 북창령원에서 수련하던 어린 소년은 이제 혼자서도 대천세계를 거닐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영계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았고 정 이모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장했다.
영계는 목진이 벽령도에 왔을 때부터 진정한 강자로 거듭났다는 걸 깨달았다.
“정 이모, 목진은 이제 진정한 어른이 되었으니 더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부도신족에서 더는 목진으로 당신을 협박할 수 없을 거예요.”
“영계 누이.”
목진은 활짝 웃으며 영계를 바라보고는 감옥을 부수려고 장풍을 쐈는데 감옥은 끄떡없었다.
“흠…….”
목진은 흠칫 놀라 감옥을 살폈는데 이 또한 영진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영계가 일전에 장악했던 영진 못지않았다.
목진은 멋지게 영계를 구해내려 했는데 실패하게 생겼다.
풉.
그때 낙리가 피식거리자 영계도 입을 가리며 웃더니 한 손으로 결인하자 바닥에서 영력 파동이 일더니 어둠의 감옥이 조금씩 흐릿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영계야, 이곳의 영진을 벌써 장악했구나!”
용상이 깜짝 놀라 말했다.
“이곳의 영진은 정 이모께서 친 거라 3년 동안 수련하면서 모든 영진을 장악했어요. 하여 당신들이 찾아오지 않아도 고사황은 나를 건드리지 못했을 거예요.”
영계가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목진 등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들이 괜한 짓을 한 모양이었다.
“목진아, 네가 나를 구하러 와줘서 너무 기쁘구나.”
영계는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그런데 여기 온 것이 너한테도 좋은 일이야.”
이에 목진이 어리둥절해하자 영계는 손으로 반듯한 흑석 지면을 가리켰는데 마치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여기…… 정 이모께서 너한테 남겨주신 선물이 있거든.”
영계의 말에 목진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선물이라니…….”
목진은 이내 화색이 되어 영계를 바라봤다. 그는 영계의 말에 순간 흥미진진해졌다.
이에 영계가 손을 휘두르자 앉아있던 구역의 반듯한 검은색 지면에서 어두운 빛을 발하며 눈부신 별빛 공간을 이뤘다.
목진은 흑석에 나타난 수많은 광점이 반짝이는 별빛 공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별들의 궤적에서 오묘한 파동을 읽었다.
“정 이모께서는 벽령도에서 수련하면서 느낀 점들을 흑령경(黑靈鏡)에 남기셨단다. 이건 진정한 영진 대종사가 남긴 거라 영진사한테는 엄청난 보물이야.”
영계는 멍하니 지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난 3년 동안 여기서 수련한 끝에 드디어 2달 전에 고급 영진 종사가 되었어.”
“누이, 벌써 고급 영진 종사가 됐어?”
목진은 잔뜩 놀라 영계를 바라봤다. 영계와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영진 대사일 뿐이었는데 3년 사이, 벌써 고급 종사가 되다니!
이건 엄청난 비약이었다.
“난 기억을 잃기 전부터 영진 종사였는데 기억이 돌아오니 실력도 돌아왔어. 더구나 정 이모께서 남긴 물건이 있어 더 빨리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거야.”
목진은 영계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영계는 원래 영진에 관한 천부적 재능이 뛰어났고 어머니께서 직접 가르치셔서 다른 사람들보다 실력이 훨씬 빨리 향상되었다. 더구나 벽령도에는 어머니께서 남긴 물건까지 있어 엄청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계는 목진처럼 영진, 전진, 영력을 전부 수련한 것이 아니라 영진의 수련에만 집중했으니 고급 영진 종사가 된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에 영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곳에 남아 열심히 수련하면 너한테 제법 도움이 될 거야. 영진 방면의 조예가 고급 종사가 될 수 있을지는 너한테 달렸지만 말이야.”
영계의 말에 목진은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그는 영계와 헤어진 후, 영진 수련을 홀로 해왔고 지금은 영진 종사이긴 하지만 영계와 비교하면 훨씬 뒤처졌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곳에 영진 수련에 관한 정보를 가득 남기셨으니 목진한테는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으로 목진은 영진의 경지를 돌파할 가능성이 생겼고, 만약 성공하면 그 역시 고급 종사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는 천제검을 사용하지 않아도 고사황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여기서 수련해.”
영계는 가볍게 웃더니 우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목진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반듯한 흑석 지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낙리를 힐끗 보고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목진을 여기서 수련하게 내버려 둬.”
목진이 수련 상태에 진입한 것을 확인한 영계는 미소를 지으며 낙리를 바라보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감옥을 떠났다.
이렇게 이곳은 다시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