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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814화 (813/1,000)

814화. 성연의 비밀

목진의 마음은 완전히 가라앉아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처럼 물결이 일지 않았다.

타닥!

그러다 언젠가 물방울이 떨어져 물결이 일자 목진은 주위의 환경이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공간을 헤엄치는 것 같았다.

그러다 한 갈래 성광이 추락하더니 목진의 앞쪽에 멈춰서서 여인의 모습을 이뤘다. 장발을 드리운 채 인자하게 웃는 모습을 보자 목진은 순간 넋이 나갔다.

“……어머니?”

목진은 여기서 어머니를 뵙게 될 줄 몰랐다.

비록 그녀는 령영일 뿐이었지만 북창대륙에서 뵌 뒤로 처음이었다.

“아들아…….”

청연정도 멍하니 목진을 바라보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다가가 목진을 살포시 끌어안았다.

그녀의 령영은 본체의 정서와 연결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순간, 목진은 머리가 하얘졌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는데 여태껏 이루지 못했었다.

그가 안고 있는 것은 령영일 뿐이지만 목진은 마음이 따뜻해졌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목진아, 어느새 진정한 어른이 되었구나.”

한참 지나서야 마음을 추스른 청연정은 목진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목진이 방긋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 령영을 본 것을 보니 벽령도에 간 모양이구나.”

청연정은 목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께서 저한테 선물을 남겨주셨다고 영계 누이가 그랬어요.”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말에 청연정은 생긋 웃었다.

“여긴 너와 영계만 들어올 수 있고 내가 남긴 경험들도 너희 둘만 느낄 수 있단다.”

그녀는 목진을 쓰윽 훑으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칠 수 있는 가장 강대한 영진을 쳐보거라.”

이에 목진은 바로 수많은 영인을 형성해 신속하게 허공에 주입하더니 용음과 함께 거대한 영진의 형태를 만들었다.

이는 목진이 장악한 영진 중 가장 강력한 구룡시선진이었다.

청연정은 구룡시선진을 힐끗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흥미롭구나. 영진 방면의 조예가 벌써 중급 종사가 되었을 줄은 몰랐구나.”

그녀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진이 스스로 영진 수련을 이렇게까지 해낸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겨우 합격이라고 볼 수 있겠구나.”

중급 종사가 청연정한테는 겨우 합격이란 말에 목진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이는 천라대륙에서 세력을 만들고도 남을 실력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영진 대종사이니 중급 종사를 그리 생각할 법도 하다고 여겼다.

“영진 방면의 조예를 어느 정도 이뤘지만 지금부터의 길은 완전히 낯설 거란다.”

목진은 어머니의 말을 잠시 되새기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한 길은 대종사 경지일 것이다.

해당 경지는 목진한테 낯설 수밖에 없었다.

“영진사는 보통 영진으로 천지와 소통하고 천지의 영력을 빌려 바람 과 비를 부른단다. 지금의 네가 바로 그 단계란다.”

“그런데 대종사는 천지와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할 수 있으니, 하나의 영진이 곧 한 개의 세상이라 누구든 영진에 갇히면 하나의 세상과 적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란다.”

청연정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 뒤, 주먹을 쥐었는데 손바닥만 한 정교한 영진이 수중에 나타났다.

목진은 그 속에서 느껴지는 무서운 위력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만약 그가 그 영진에 갇혔다면 바로 죽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대종사경이란 말인가? 영진으로 세상을 이뤄 누구든 그곳에 갇히면 스스로 하나의 세상과 맞서야 한다니…….”

목진은 그 말에 매료돼 어머니의 말을 경청했다. 청연정은 목진을 위해 미지의 세계의 대문을 열어주었다. 영진사의 더 높은 단계는 이토록 오묘하고 신비로웠다.

영진 대종사가 괜히 천지존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청연정은 목진의 표정을 보더니 생긋 웃으며 손으로 미간을 가볍게 찍었는데 순간 대량의 정보가 뇌리에 스며들었다.

이는 그녀가 여태껏 영진을 수련하며 느낀 것들과 경험이었다.

만약 목진이 이를 잘 소화하고 깨우치면 영진 방면의 조예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고 앞으로 대종사경을 돌파하는 데도 유익할 것이다.

눈부신 빛으로 휩싸인 목진은 깊은 잠에 빠진 듯 꼼짝없이 서 있었다.

저 멀리 부도신족의 어두운 공간 속에 조용히 앉아있던 청연정의 본체가 파르르 떨더니 서서히 눈을 뜨고 어딘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목진아, 네가 영진 대종사가 될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으마.”

* * *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낙리와 영계는 벽령도의 한 정자에 앉아 바둑을 두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주위의 경치마저 이들의 미모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두 여인은 목진이 수련하는 동안, 벽령도에 남아 기다리기로 했다.

슉.

그때 창로한 적염노선이 귀신처럼 나타나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낙리를 바라보았다.

“아가야, 정녕 우리 태령고족의 성녀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냐?”

적염노선은 한 달 동안, 똑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했는데 낙리는 단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었다.

“선배님, 저는 낙신족의 여황인데 어찌 태령고족의 성녀가 되려고 백성을 버릴 수 있겠어요?”

낙리는 이번에도 한숨을 내쉬더니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태령고족은 다른 우매한 고족과는 다르단다. 우리는 혈맥 따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천부적 재능만 뛰어나면 얼마든지 성녀가 될 수 있고 누구든 일단 그 자리에 오르면 다들 진심으로 따른단다.”

적염노선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을 이어갔다.

“역사상, 우리 종족 사람은 아니지만 성녀로서 인정받은 사람이 적잖게 존재한단다.”

이에 낙리는 흠칫 놀랐다. 이런 종족은 처음이었다. 그건 꼭 체내에 낙신족 혈맥이 전혀 없는 사람을 낙신족 황위에 올리는 것과 같았다.

“낙리야, 선배님의 말씀대로 태령고족은 확실히 대천세계에서 포용력이 최강인 고족이야.”

옆에 있던 영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부도신족도 이랬으면 정 이모께서도 목진과 헤어지지 않으셨을 텐데.”

낙리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더 이상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가 아니었기에 방대하고 오래된 고족일수록 파벌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낙리는 지금 낙신족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태령고족의 성녀까지 되려면 상당히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곳은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낙리는 복잡한 종족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꼭 너와 함께 상고의 성연에 갈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아쉽구나.”

적염노선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상고의 성연이요?”

적염노선의 말에 영계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천세계의 유명한 흉지로 상고 시기, 역외사족과 결전하던 장소 중 하나인 상고의 성연이요?”

“그것도 아는 것이냐? 그렇단다, 바로 그 상고의 성연이란다.”

적염노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상고의 성연은 시공간 소용돌이에 있어 스스로 나타나기 전까지 찾아내기가 절대 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 곧 모습을 드러낸다던가요?”

영계가 눈가를 파르르 떨며 물었다.

“저도 상고의 성연에 대해 들은 것이 있어요. 상당히 위험한 곳이라고 하던데요? 환경이 극악이라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들어가도 자칫 잘못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했어요. 설마 언니도 가고 싶어요?”

낙리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상고 시기, 상고의 성연에서 펼쳐진 역외사족과의 결전에서 사망한 대천세계의 천지존은 열 명 정도나 되었고, 그중에 성급 천지존은 네 명이나 된다고 들었어.”

영계는 이내 정색하며 답했다.

대천세계의 천지존도 영, 선, 성 등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누는데 성급 천지존은 최강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네 명의 성급 천지존이라니!”

영계의 말에 낙리마저 안색이 어두워졌다. 엄청난 실력의 강자들이 사망하면서 대천세계의 손해가 상당했을 것이다.

이것만 봐도 상고 시기, 대천세계가 역외사족을 물리치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날,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지만 역외사족 측 상황도 좋지만은 않았단다. 그들도 열 명이 넘는 마제를 전쟁에 투입했는데 순위권 15위권에 든 네 명의 천마제가 죽었지.”

옆에 서 있던 적염노선이 말을 덧붙였다.

역외사족의 천마제는 대천세계의 천지존과 비슷했고, 순위권 15위권에 든 것을 보면 역외사족 내부에서도 최정예급 존재였을 것이다.

“대전 쌍방이 최정예급 강자를 잃어 수많은 천지존의 계승과 절세의 신통 및 고급 단계를 초월한 절세의 성물이 그곳에 묻혔단다. 하여 상고의 성연은 상당히 위험한 곳이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려고들 하는 거지. 그러다 운 좋게 천지존의 계승이라도 받으면 횡재가 아니더냐?”

“대신 상고의 성연은 시공간 소용돌이에 있어 천지존이 아니고서는 사람을 들여보낼 수 없단다. 그 덕분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들어간 사람이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단다…… 심지어 태령고족도 마찬가지란다.”

적염노선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어갔다.

“그해, 사망한 네 명의 성급 천지존 중 한 분이 바로 태령고족의 조상님이었단다. 그분이 수련한 태령통천광(太靈通天光)은 대천세계 36가지 절세의 신통 중 한 가지로 위력이 상당했단다. 이는 태령고족에서 최정예급 신통으로 불렸는데 조상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수련법을 계승 받지 못했다. 하여 태령고족 사람들은 해당 절세의 신통을 찾아내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단다.”

“누구든 태령통천광을 찾아내면 태령고족 백성의 인정과 지지를 받아 우리 태령고족의 성녀가 될 수 있단다!”

“성녀도 경쟁자가 있는 건가요? 태령통천광을 찾아내야 진정한 성녀가 될 수 있었던 거예요?”

낙리의 질문에 적염노선은 순간 표정이 굳더니 헛기침하며 답했다.

“난 태령고족의 순계사 중 한 명으로 성녀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내 임무란다.”

낙리의 생각대로 태령고족의 성녀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낙리는 그저 후보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낙리가 흘겨보자 적염노선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이렇게 잠시 정적이 흘렀는데 영계가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절세의 신통인 태령통천광을 제외하고도 사망한 네 명의 성급 천지존 중에는 부도신족의 조상님도 있지 않나요?”

“그렇단다. 부도신족의 조상도 대단한 사람이었단다. 그가 수련한 팔부부도도 36가지 절세의 신통 중 한 가지인데 현재, 부도신족의 소주들은 하나같이 이를 얻고자 칼을 갈고 있단다.”

적염노선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부도신족은 팔부부도를 획득한 사람만이 차기 족장이 될 수 있다는 규칙을 세웠단다.”

영계는 이거다 싶었고 낙리도 그녀의 표정에서 바로 속내를 알아챘다. 영계는 목진에게 팔부부도를 찾으러 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일단 성공하면 목진은 다른 방식으로 부도신족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낙리도 그 방법에 찬성했다. 부도신족을 정면으로 상대하기에는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다.

낙리는 잠시 고민이 되었다. 그녀는 태령고족의 성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낙신의 계승을 받아 낙신법신까지 수련해 천지존경에 이르러도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낙리가 태령고족의 성녀가 되면 목진이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도신족과 맞서야 할 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낙리는 그제야 낙신족만으로는 목진한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목진에게 도움이 되려면 태령고족의 힘을 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목진을 위해서라면 원치 않는 태령고족의 성녀도 얼마든지 될 수 있었다.

이에 낙리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어 영계와 눈을 마주쳤는데, 영계는 바로 낙리의 속내를 꿰뚫은 듯했다.

영계는 낙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태령고족의 다른 성녀 후보들과 경쟁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낙리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목진은 자신을 위해 서천전황까지 건드렸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금세 의논을 마친 낙리는 죽상이 된 적염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님, 한 가지 조건만 들어주시면 성녀의 경쟁에 참여할게요.”

“뭐?”

절망스러웠던 적염노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게 무엇이냐?”

“우리를 상고의 성연에 들여보내 주세요.”

낙리는 생긋 웃으며 가녀린 손가락으로 목진이 수련하고 있는 장소를 가리키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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