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화. 대천궁, 주마왕(誅魔王)
이렇게 반 시진도 안 되는 사이, 규모가 큰 도성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 놓인 커다란 도성은 원고의 흉수처럼 상당한 압박감을 방출하며 엎드려 있었다.
도성과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목진은 도성의 주위에 거대한 광막이 쳐진 것을 발견했는데 광막에서 지극히 무서운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대종사급 영진이라니!”
목진은 광막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영진 종사인 그는 광막이 대종사급 영진인 것을 바로 알아챘다.
또한, 해당 영진은 대종사급 중에서도 위력이 제법 강한 영진이었다.
“이는 상고 시기, 천진노인(天陣老人)이 친 영진이란다. 허허, 천진노인은 무려 성급 대종사였고 상고 때의 최정예급 강자이기도 했단다.”
“내가 전력을 다해도 이 영진은 뚫을 수 없단다.”
“성급 대종사요?”
적염노선이 가볍게 웃으며 한 말에 목진 등은 화들짝 놀랐다. 특히 영진사인 목진과 영계는 성급 대종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종사경은 천지존과 같은 등급으로 영급, 선급, 성급으로 나누고 성급 대종사는 성급 천지존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존재였다.
“바로 영진의 구체적인 형태가 그려지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내가 만약 강제로 해당 영진을 그리려 했다면 한순간에 기력이 다 닳았겠네요.”
영계가 이내 감탄했다. 고급 영진 종사인 그녀는 보통 영진을 단번에 파악할 수가 있었는데 도성의 주위에 쳐진 광막을 강제로 파악하려 했다가는 몸에 무리가 갈 것이다.
“성연대륙은 역외사족과의 접점이라 성연성은 대천세계의 위엄을 내세워 녀석들을 감시할 책임이 있기에 최상급 방어벽이 필요하겠죠.”
낙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만 들어가자꾸나.”
적염노선도 고개를 끄덕이며 목진 등을 데리고 신속하게 방대한 도성 근처에 가서 무서운 파동을 내뿜는 광막을 통과했다.
순간, 은밀한 파동이 목진의 육신을 훑었는데 체내에 숨긴 비밀이 온전히 드러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는 영진의 점검 절차로 역외사족을 발견하면 파멸의 공격을 개시하게 되어 있었다.
도성은 상당히 시끌벅적하고 번화했으며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목진 등은 도성의 절반도 넘는 사람이 내뿜는 영력 파동이 적어도 지지존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긴, 이 정도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감히 성연대륙에 오지 못할 것이다.
잇따라 목진 등은 도성의 중심에 놓인 수만 장 정도의 큰 석비를 발견했다. 지극히 강력한 영력 파동을 내뿜는 오래된 석비의 꼭대기에는 빨간색으로 뭔가가 적혀 있었다.
“주마방(誅魔榜)!”
적광이 번쩍이며 한기를 내뿜는 글 옆에는 금광을 발하며 엄청난 위엄을 풍기는 글이 함께 적혀 있었다.
“대천궁(大千宮), 립.”
“대천궁이라…….”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세력이기에 감히 대천세계를 이름으로 사용한단 말인가!”
목진의 중얼거림에 적염노선은 괴상하게 웃으며 ‘대천궁’ 석 자를 빤히 쳐다보더니 한참 지나서야 서서히 입을 열었다.
“대천궁은 대천세계의 모든 세력과 고족을 초월한 존재로 대천세계에서 제일가는 세력이란다.”
“대천세계에서 제일가는 세력이요?”
적염노선의 말에 목진 등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대천궁이란 세력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정녕 5대 고족과 유명한 최정예급 세력보다 강하단 말인가?
“그럼 대천궁 궁주는 누군가요?”
목진은 이토록 무서운 세력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는 분명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일 것이다.
“대천궁에 지금은 궁주가 없단다. 상고 시기, 한 사람이 있긴 했는데 바로 불후대제였단다.”
“불후대제요?”
적염노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 말에 목진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천제한테서 불후대제가 만고불후신의 수련자였단 사실을 들었는데 대천궁같이 강대한 세력의 주인일 줄은 몰랐다.
“그런데 왜 대천세계에서 제일가는 세력이 대천궁이란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죠?”
영계가 어리둥절하여 묻자 적염노선은 히쭉 웃으며 답했다.
“이는 역외사족이 대천세계를 공격할 때만 존재하는 세력으로 지금처럼 평화로운 시대에서는 일종의 상징일 뿐이란다.”
목진 등은 그제야 깨달았다. 대천궁은 역외사족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세력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대천세계의 제일가는 세력이 되었단 말인가?
“상고 때부터 전해진 규칙에 따르면 대천세계의 대부분 천지존에 관한 기록은 대천궁에 남아있을 것이고 심사를 통과하면 대천궁의 객경(客卿)이 될 수 있단다.”
“그리고 성급 천지존경에 이른 사람은 대천궁의 장로가 되는데 이 세상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지 않는 이상, 객경과 장로들은 대천궁을 위해 나설 필요가 없단다.”
“이 정도 인재를 확보한 세력이 대천세계의 제일가는 세력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적염노선은 히쭉 웃으며 목진 등을 바라봤다.
이에 목진은 저도 모르게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제일가는 세력이 이런 존재일 줄 몰랐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천궁이 엄청나긴 했다. 이는 대천세계 연맹으로 이 세상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천세계의 모든 힘을 취합해 함께 적을 물리치도록 했기 때문이다.
역외사족 같은 강적을 물리치려면 대천세계는 반드시 힘을 최대한 끌어모아야 했으니, 대천궁의 불후대제는 훌륭한 존재가 틀림없었다.
“대천궁이 지금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지만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단다. 이 세력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 실력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강하단다.”
“그리고 대천궁은 대천세계에서 지위가 상당해 5대 고족마저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한단다. 대천세계에서 대천궁의 객경은 심지어 5대 고족의 장로보다 지위가 높단다.”
객경이란 말에 적염노선은 괜히 으쓱했는데 보아하니 그도 대천궁의 객경인 듯했다.
“대천궁의 객경이 되면 아무리 부도신족이라도 감히 너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적염노선이 힐끗 쳐다보며 한 말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객경이 되려면 천지존이 되어야 하는데 목진이 천지존경에 이르면 더 이상 부도신족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대천궁의 객경은 천지존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적염노선은 목진의 속내를 꿰뚫어 본 듯 말을 이어갔다.
“그래요?”
목진은 흠칫 놀랐다. 정녕 다른 방법이 있단 말인가? 목진이 대천세계에서 제일가는 세력인 대천궁의 객경이 되면 나쁠 건 전혀 없었다. 세력의 구속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도신족의 태도도 바뀔 것이다.
적염노선이 주마방을 가리키자 목진은 바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제야 석비에 번쩍이는 영광으로 새겨진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최상단에 적힌 이름이 자금색 빛을 발했고 햇볕 아래에서 엄청난 한기를 내뿜었다.
주마왕, 진천(秦天).
다들 경외의 눈빛으로 주마비의 최상단에 적혀 있는 패주의 이름을 우러러봤다.
주마왕 진천 밑에도 영광을 발하는 글이 가득 적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고급 주마사(誅魔師), 유제봉(劉帝峰).
고급 주마사, 여산(呂山).
중급 주마사, 육령우(陸翎羽).
저급 주마사, 노서(魯書).
주마비에 빼곡히 적힌 이름은 부단히 영광을 번쩍였고 새로 나타난 이름도 있었는데 등급도 따라서 변경되었다.
목진은 주마비를 아무리 봐도 무엇으로 순위를 정한 것인지 가늠되지 않아 적염노선을 바라봤다.
“성연대륙에 온 사람은 대천궁에서 주마령(誅魔令)을 가질 수 있고 역외사족을 한 명씩 죽일 때마다 일정한 양의 주마점(誅魔點)을 획득한단다. 획득한 주마점으로 대천궁의 보물을 바꿀 수 있는데 양이 충분하면 절세의 신통, 심지어 순위권 20위권에 든 지존법신의 수련법도 얻을 수 있단다!”
“절세의 신통도 바꿀 수 있다고요?”
목진은 깜짝 놀랐다. 적염노선이 언급한 절세의 신통이 36가지 절세 신통은 아닐 테지만 일반 절세의 신통이라고 해도 실로 엄청났다. 천지존도 대부분 절세의 신통이 없어 수련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런데 대천궁에서는 주마점으로 절세의 신통을 바꿀 수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밖에 20위권에 드는 지존법신의 수련법은 더욱 놀라웠다. 그 정도 등급의 지존법신 수련법은 상당히 진귀했기 때문이었다.
“대천궁의 규칙에 따르면 주마점을 천 점 확보해야 저급 주마사에서 중급으로 승급할 수 있고, 삼천 점이 되면 고급 주마사가 될 수 있단다. 일단 고급 주마사가 되면 천지존이 아니라도 자연스레 대천궁의 객경이 될 수 있단다.”
적염노선은 목진에게 주마점을 충분히 모아 대천궁의 객경이 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주마점 삼천 점을 획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석비만 봐도 고급 주마사는 스무 명도 안 되었다.
“규칙에 따르면 하위 지지존 정도 되는 역외족 강자를 죽이면 주마점 오십 점, 상위 지지존은 백 점, 지지존 대원만은 이백 점…… 마제는 삼천 점, 선급 천지존은 오천 점을 획득할 수 있단다. 그리고 천마제 한 명을 죽이면 주마점을 만 점 획득할 수 있지.”
적염노선의 말에 목진 등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마점을 획득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이대로라면 중급 주마사가 되기 위해 하위 지지존급 역외족 강자를 20명 죽이거나 상위 지지존급 역외족 강자를 10명을 죽여야 가능했고 고급 주마사가 되려면 지지존 대원만급 역외족 강자만 15명을 죽여야만 했다.
그러나 그 정도 실력자들을 죽이기가 쉬울 리가 없었다.
석비에 적힌 고급 주마사가 20명밖에 안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주마사가 되려면 상당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럼 그들은 주마점을 도대체 얼마나 오래 모아 고급 주마사가 된 걸까?
“주마왕이 되려면 주마점이 얼마나 필요한가요?”
목진이 이마에 난 식은땀을 닦아내며 묻자 적염노선은 한숨을 쉬며 답했다.
“주마왕이라…… 별것 아니란다. 주마점 만 점만 있으면 되니 천마제 한 명만 죽이면 되겠구나.”
목진 등은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천마제를 한 명만 죽이면 된다니! 말이 쉽지 이 세상의 최정예급 강자를 죽이는 것이 어찌 쉬울까? 더구나 역외사족도 대천세계처럼 최정예급 강자를 한 명 잃는 것은 제법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진천 선배님께서도 천마제를 죽이신 건가요?”
낙리가 궁금하여 묻자 적염노선은 경외의 뜻을 담아 답했다.
“진천이라…….”
“오래전 진천이 너희만큼 젊었을 때, 사람들을 거느리고 성연대륙에 수련하러 왔었는데 역외사족의 강자를 만나 그를 제외한 모두가 사망했단다.”
“그 뒤로 그는 성연대륙에 남아 이백 년 동안 역외사족이 나타났단 정보만 접하면 바로 달려가 녀석들을 죽이곤 했지.”
“그러다 이백 년 사이에 천지존경에 이른 그는 시공간 돌풍에 휘말려 역외사족의 땅으로 전송되었단다. 다들 그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끝까지 살아남았고 마제의 시체까지 가지고 돌아왔단다.”
“그 뒤로 그는 대천세계의 첫 번째 주마왕이 되었고 여태껏 그가 이룬 성과를 초월한 사람은 아직 없단다.”
적염노선의 말에 목진 등은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진 채 한참 서 있었다. 그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로 쳐다봤는데 다들 적잖게 놀란 듯했다.
이건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주마왕은 진정한 독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