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8화. 부도신족 도착
“적염노선, 이번엔 빨리 왔군.”
빨간색 치마를 입은 늙은 여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뒤쪽에 서 있던 적염노선한테 말을 건넸다.
“허허, 하파, 성연에 온가네 조상은 없는데 왜 매번 오는 것인가?”
“상고의 성연이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 온가가 못 올 이유도 없지 않은가?”
적염노선이 괴상하게 웃으며 한 말에 하파라 불리는 늙은 여인은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적염노선은 더는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은 듯 눈을 희번덕거렸고 하파도 엮이고 싶지 않은 듯 매대에 서 있는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한테 눈길을 돌렸다.
“만봉(萬峰) 장로, 이 아이들에게 주마령을 만들어주게.”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옷깃을 휘날렸는데 1각도 안 되는 사이, 주마령 여러 개가 온청선 등한테 날아갔다.
“너희도 상고의 성연 때문에 온 거야?”
주마령을 건네받은 온청선은 목진과 낙리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좋아. 우리가 오랜만에 또 함께하게 됐어!”
목진과 낙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온청선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온청선을 쓰윽 훑었는데 그녀는 이미 하위 지지존경에 이르러 있었다. 온청선도 집에 돌아간 후, 실력이 부쩍 는 모양이었다.
“정예급 세력을 뒷배로 두는 것이 좋긴 하네.”
목진은 이내 감탄하며 생각했다.
보아하니 상고의 성연 때문에 찾아온 세력이 결코 적지 않았다. 상고의 성연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또 얼마나 강력한 세력이 나타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번 쟁탈전도 상당히 치열할 것이다.
“일단 쉴 곳부터 찾자꾸나.”
적염노선이 먼저 떠나려 하자 목진과 낙리는 온청선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하나 같이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문 쪽을 바라봤다.
목진도 덩달아 고개를 들었는데 세 무리가 동시에 대천루에 들어왔다. 그들이 형성한 무형의 압박감이 순식간에 누각 전체를 휩쌌다.
성연대륙에서 생사를 오가는 순간을 수도 없이 겪은 사람들마저 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는데 목진은 그들이 입은 옷에 새겨진 흑탑 모양의 그림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는 다름 아닌 부도탑이었다!
대천세계에서 부도탑을 무늬로 옷에 새길 수 있는 종족은 오직 하나로 5대 고족 중 하나인 부도신족이었다!
녀석들은 바로 부도신족 사람들이었다!
세 무리가 들어서면서 형성한 무형의 압박감에 떠들썩했던 대천루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그중, 우두머리는 세 명으로 각각 검은색과 은색 도포를 입은 백발노인 두 명과 여인 한 명이었다. 조금 느리게 걷는 삐쩍 마른 두 노인을 감히 무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잔뜩 경계하거나 경외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바보가 아닌 이상, 대천루 전체를 감싼 압박감이 그들이 형성한 것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일부러 압박감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영력이 천지와 일종의 공진을 이뤄 자연스레 생긴 것이었다.
그 외, 궁장을 입은 여인은 제법 아름다운 외모에 성숙미가 물씬 풍겼는데 두 노인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을 보니 역시나 천지존이었다.
그들 뒤에 서 있는 세 사람도 상당히 이목을 끌었다. 그중 한 사람은 청색 도포를 입은 훤칠한 사내로 상냥하게 웃으며 주위를 훑자 눈을 마주친 사람마다 호감을 품었다.
그러나 감응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상냥한 듯한 눈빛에 얼마나 무서운 한기가 깃들었는지 금세 눈치챘다.
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 뒤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서 있었는데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와 달리 조용히 서서 주위를 쓰윽 훑는 것이 꼭 굶주린 독사가 먹이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궁장을 입은 여인 뒤에도 하얀색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서 있었는데 늘씬한 몸매와 달리 한기 가득한 표정을 보니 접근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사람인 듯했다.
그리고 그들 뒤에 서 있는 젊은 남녀들은 비록 앞쪽 사람들보다 실력이 뒤처지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제법 뛰어났다.
“쯧쯧, 부도신족은 정말 대단하구나. 이번에는 무려 세 소조나 파견하였으니 말이야. 팔부부도를 찾아내고 말 기세구나.”
부도신족 사람들의 등장에도 목진은 무덤덤하게 서 있는 듯했다. 하지만 오직 낙리만이 그의 표정이 변한 것을 발견했다.
옆에 서 있는 영계와 용상도 이내 정색하며 앞으로 나와 목진을 감쌌다.
그들은 비록 부도신족의 천지존의 상대는 안 되지만 절대 코앞에서 목진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부도신족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빛을 무시한 채 매대를 향해 직진하더니 그 앞에 서 있는 적염노선과 온가네 하파를 발견하고 잠시 멈춰 섰다.
“태령고족과 온가가 먼저 왔을 줄은 몰랐군.”
부도신족의 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자 나머지 두 명의 천지존도 적염노선을 힐끗 보더니 자연스레 목진한테 눈길을 돌렸다.
쿵!
순간, 세 명의 천지존의 눈에서 영광이 폭발하더니 부도탑이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목진은 체내의 성부도탑이 이끌림을 받는 것이 느껴졌고 그의 눈에도 영광이 번쩍이며 수정 같은 부도탑이 회전하며 나타났다.
목진은 잽싸게 부도탑을 거두고 안색이 어두워진 채 뒤로 물러났다. 그는 부도신족의 천지존을 만자나마자 체내의 부도탑이 마음대로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부도탑이라니!”
세 명의 천지존은 갑작스러운 변고에 깜짝 놀라 목진을 바라봤고 뒤에 서 있던 부도신족 사람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바라봤다. 그들도 순간, 목진 체내의 부도탑의 파동을 느꼈다.
천지존 뒤에 서 있던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도 흥미진진한 얼굴로 목진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흥미롭군. 저 죄인이 감히 성연대륙에 오다니,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겠군.”
“너도 부도신족 사람이냐? 그렇다면 왜 태령고족 쪽에 서 있는 것이냐? 네 부모님은 누구고 스승은 누구냐?”
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인상을 쓰며 쏘아보자 목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
“전 부도신족 사람이 아니에요.”
“부도신족 혈맥이 없으면 절대 부도신족의 공법을 수련할 수 없단다.”
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이에 온청선은 흠칫 놀라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이 5대 고족 중 하나인 부도신족과 연관이 있을 줄이야.
“허허, 묵은(墨銀) 장로, 저 아이는 확실히 부도신족 사람이 아니에요. 저 아이는 부도신족의 죄인이에요.”
그때 콧방귀 소리와 함께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 뒤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는데 바로 목진 등과 벽령도에서 싸웠던 고사황이었다.
“뭐라?”
부도신족 사람들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은 부도신족에 간 적은 없지만, 그 어머니의 지위 때문에 다들 익히 알고 있었다.
“네가 바로 대장로가 말했던 그 죄인이로구나!”
은색 도포를 입은 장로가 멈칫하더니 목진을 쏘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네 이놈, 네가 감히 내 앞에 나타나다니. 오늘, 난 너를 부도신족으로 데려가 대장로에게 엄벌을 내리라고 할 것이다!”
말을 마친 노인이 나서자 주위의 공간이 파르르 떨렸고 천지의 영력은 족쇄처럼 목진의 몸을 봉인했다.
퍽!
그런데 그때 메마른 손이 나타나 족쇄들을 부숴버렸다.
“적염, 태령고족에서 왜 부도신족 일에 끼어드는 건가?”
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목진의 옆쪽을 보자 적염노선이 앞에 나서서 그를 감쌌다.
“자넨 절대 저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을 것이네. 안 그럼 내가 어렵게 이룬 일은 다시 수포가 될 것이네.”
“흥, 이건 우리 부도신족 일이니 자네가 간섭할 자격이 없네!”
적염노선이 말에 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이내 콧방귀를 뀌더니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한테 눈길을 돌렸다.
“흑광, 자넨 저 녀석을 이대로 놓치고 말 텐가? 대장로한테 뭐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검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그제야 가볍게 웃으며 음산한 눈빛으로 목진을 쏘아보다가 자신 뒤에 서 있는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를 바라봤다. 그러자 상대방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절세의 신통인 일기화삼청을 수련했기에 그를 잡아 수련법을 획득하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대답을 얻은 흑광은 그제야 앞으로 나섰으니, 적염노선은 상대방이 형성한 압박감에 미간을 찌푸린 채 빨간색 조롱박을 꺼냈다.
세 명의 천지존 사이의 대결은 영력이 전혀 오가지는 않았지만 내뿜는 무서운 압박감만으로도 대천루 사람들은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매대에 서 있던 노인도 미간을 찌푸린 채 상황을 살폈다.
“잠깐!”
그런데 그때, 누군가의 말소리에 세 사람은 잠시 대결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다름 아닌 부도신족의 세 번째 천지존인 궁장을 입은 여인이었다.
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
“청훤(清萱) 장로, 왜 그러는가? 설마 우리가 죄인을 잡는 걸 반대하는 건가?”
“왜 그리들 급한가? 대장로가 천지존 더러 나서지 말라고 하였으니 당신들은 규칙을 어긴 것이네.”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한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그는 여인이 자기편을 들어줄 줄 몰랐다.
“청훤 장로, 저 녀석은 죄인일 뿐이니 규칙을 따질 필요 없네. 지금 보니 급한 건 우리가 아니라 따로 있었군.”
흑광 장로가 히쭉거리며 한 말에 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잠시 잊었군. 자넨 청연정의 언니이니 저 아이가 자네 조카가 되겠군. 자네 설마 저 녀석 편을 들려는 건가?”
목진은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궁장을 입은 여인을 바라봤다.
저 여인이 어머니의 친언니라니!
목진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봤다. 다시 보니 어머니와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았다.
흑광 장로의 말이 사실이라면 목진은 상대방을 이모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소주님, 청훤 장로는 확실히 청맥(清脈) 사람이고 당신의 친척이에요.”
용상도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는 비록 외부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부도신족 사람이라 종족 내부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다만…….”
용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주인님과 청맥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아요.”
용상은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목진은 자신과 연관이 있는 일임을 바로 알아채고 마음이 점차 가라앉았다.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정말 어머니와 자매 사이여도 의지할 수 없을 것이다.
목진은 이리 생각하며 점차 안정을 되찾았는데 마침 궁장을 입은 여인의 눈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무렇지 않게 눈길을 거뒀다.
반면, 궁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은 목진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차가운 눈빛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졌다. 그녀는 목진의 얼굴에서 청연정을 얼핏 보았다.
그런데 목진은 시무룩해졌다가 금세 안정을 되찾고 묵은과 흑광 장로한테 고개를 돌렸다.
“난 그저 대장로가 정한 규칙을 알려주려고 했을 뿐이네. 당신들이 기어코 규칙을 어기려 한다면 막아 나서지는 않을 테지만 그 대가는 직접 안고 가게.”
묵은과 흑광은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당연히 청훤 장로가 말한 대가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대장로는 청연정과 싸운 뒤, 천지존은 목진을 잡으러 나서면 안 된다는 규칙을 정했기 때문이다.
청연정의 영진 방면의 조예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