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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819화 (818/1,000)

819화. 야간 접견

부도신족에서 청연정 하나쯤은 없앨 수는 있지만 그럼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를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생각에 묵은과 흑광 장로는 서로 마주 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부도신족의 죄인을 코앞에 두고도 잡을 수 없다니, 이보다 괴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엔 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거라. 대신 네 어머니의 고생을 최대한 덜어주려면 직접 부도신족에 자수하러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묵은과 흑광 장로가 한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며 한 말에 목진도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노려보며 피식 웃었다.

“반드시 부도신족에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자수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모시러 갈 거예요. 그때 가서 당신들이 내 앞길을 막는다면 부도신족을 발칵 뒤집어 놓을 거예요!”

목진의 말에 대천루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목진을 바라봤다. 상위 지지존 밖에 안 되는 젊은이가 이토록 담대하다니, 감히 5대 고족 중 하나인 부도신족을 상대로 이런 말을 하다니!

이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다.

“녀석, 정말 건방지구나.”

온가네 하파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아무리 온가라도 부도신족 같은 오래된 종족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상위 지지존 밖에 안 되는 목진은 부도신족한테는 벌레만도 못한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온청선은 입술을 깨물며 괴상한 눈빛으로 목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몇 년 전, 북창령원에 있었던 목진은 지존경도 돌파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벌써 상위 지지존이 되었어요.”

“상위 지지존은 당신한테 아무것도 아니고 온가에서 키운 천재들보다도 못하니 부도신족의 소주들과는 비교도 안 될 거예요. 그런데 목진은 뒷배가 아예 없어 저처럼 손만 뻗으면 취할 수 있는 자원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는 모든 걸 스스로 해내야만 했어요.”

“이건 온가네 천재들도 부도신족의 천재들도 목진보다 더 잘 해내지는 못할 거예요. 그러니 절대 목진을 무시하지 마세요. 그러다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요.”

“정녕 그렇단 말이냐?”

온청선의 말에 하파는 흠칫 놀랐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목진의 천부적 재능은 엄청났다.

그는 언젠가 천지존경에 이를 가능성도 있는 아이였다.

“하하, 패기 넘치는 녀석, 마음에 들어!”

적염노선이 호탕하게 웃으며 목진의 어깨를 가볍게 때렸다.

“네가 부도신족의 혈맥만 아니었으면 난 어떻게든 너를 태령고족에 영입했을 거란다, 하하!”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묵은 장로가 언짢은 듯 말했다. 이에 목진을 노려보던 부도신족 사람들도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상위 지지존 따위가 감히 부도신족을 발칵 뒤집겠다고 하다니, 이보다 우스울 수는 없었다.

정작 목진은 점차 안정을 되찾고는 더는 묵은 장로와 말다툼을 하지 않고 태연하게 뒤로 반보 물러났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지라 말을 아무리 많이 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었다.

목진은 더는 그날의 나약한 소년이 아니었기에 더는 부도신족을 피해 다녀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부도신족에서 천지존을 파견했다고 해도 상대할 방법이 있었고 부도신족의 천지존들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적염 선배님, 이만 가시지요.”

목진의 말에 적염노선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먼저 나섰고 목진과 낙리는 바로 그 뒤를 따랐다.

목진은 청훤 장로 옆을 지날 때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혈연관계라고는 하지만 목진한테는 낯선 사람일 뿐이었다. 더구나 그는 이제 혼자인 것이 습관이 되었고 상대방의 도움도 원치 않았다.

목진의 태도에 궁장을 입은 여인도 표정이 복잡미묘해져 주먹을 꽉 쥐었다.

“연정아, 네 아들은 너처럼 고집이 세구나.”

“흥, 오만하기 그지없는 녀석. 어디서 까불고 있어!”

목진이 대천루를 떠나자 묵은 장로는 씩씩거리며 외쳤다. 목진 때문에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묵은 장로, 말을 가려서 하게. 부도신족의 장로가 후배를 괴롭히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네. 정말 자신이 있으면 그 말을 내 동생 앞에서 하게!”

청훤 장로가 바로 인상을 쓰며 말하자 묵은 장로는 말문이 턱 막혔다. 대장로마저 청연정한테 꼼짝하지 못하는데 그가 감히 그따위 말을 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청연정은 아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이다.

“그럼 저 죄인을 이대로 풀어준단 말인가?”

묵은 장로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묻자 흑광 장로 뒤에 서 있던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허허, 그럴 수는 없죠. 대장로께서는 천지존이 나서면 안 된다고만 하셨지.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가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으셨어요.”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상위 지지존 따위는 절대 우리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 현라가 장담해요. 우리가 성연대륙을 떠날 때는 반드시 녀석을 데려갈 수 있을 거예요.”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온화한 말에 확신이 가득 찼다.

“그럼 누가 먼저 죄인을 잡는지 볼까?”

이때, 묵은 장로의 뒤에 서 있던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내도 서서히 입을 열었다.

“묵심(墨心)아, 너마저 나와 다투려는 거야? 그럼 어디 해볼까, 누가 먼저 저 녀석을 잡는지?”

현라는 어깨를 들썩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목진이 전혀 안중에 없었다. 단지 그를 쉽게 포획할 수 있는 사냥감으로 여겼다.

묵은과 흑광은 그제야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현라와 묵심이 나서면 목진은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반면, 청훤 장로의 안색은 확 어두워졌다. 현라와 묵심은 부도신족 젊은이 중 최정예급 강자라 이들이 나서면 목진한테는 꽤 불리한 상황이었다.

* * *

어둠이 깃들어도 성연대륙에서 가장 방대한 성연성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떠들썩했다.

주위를 감싼 거대한 영진 덕분에 도성은 험악하기 그지없는 대륙에서 얼마 안 되는 안전한 곳으로 꼽혔고, 일단 이곳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시름 놓고 쉴 수 있었다.

한편, 목진은 도성의 어느 조용한 정원에 눈을 감고 앉아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영진에 대한 깨달음을 토대로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해당 수련을 멈춘 적이 없었고 효과도 제법 좋았는데 날이 갈수록 영진 방면의 조예가 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목진은 곧 고급 영진 종사가 될 것이다.

그는 한 시진이 지나 서서히 눈을 뜨고 길쭉한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였는데 손바닥에 수많은 영인이 나타나더니 얽히고설켜 상당히 복잡한 영진을 이뤘다.

퍽.

그러나 영진은 곧 형태를 이뤄가다 파르르 떨리며 갑자기 부서졌는데 목진은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이는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고급 종사급 영진 염황진이었다.

목진은 요즘 염황진을 열심히 연구한 끝에 어느 정도 숙련이 되었는데 대부분의 시도가 실패로 이어졌다.

고급 영진은 역시 쉽게 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목진의 성장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그는 점차 빠르게 염황진의 요점들을 장악했는데, 완벽히 파악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뭐지?”

그런데 그때, 목진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고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왔으면 이만 나오게.”

잇따라 저 멀리 어딘가의 공간이 파르르 떨리더니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중 한 사람은 백의를 입은 여인으로 오늘, 대천루에서 봤던 부도신족의 청훤 장로를 뒤따르던 여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젊은 여인으로 역시나 청훤 장로 일행인 것 같았다.

“난 부도신족 청맥의 청상(清霜)이라고 해.”

냉미녀 청상은 목진 앞에 다가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청맥 청령(清靈)이야.”

나머지 한 사람도 덩달아 입을 열었는데 조금 오만해 보였다.

“너희가 그리 말한다고 내가 알까?”

목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할 말이 있으면 당장 해. 너희가 나를 부도신족에 데려가고 싶다고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에 청령은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

“흥, 네 성깔은 상위 지지존경인 네 실력보다 더 드세구나.”

청령도 상위 지지존이고 수련 기반이 단단해 일반 상위 지지존은 그녀의 상대가 아닌지라 목진의 태도에 기분 나쁜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목진은 청령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냉미녀 청상이 주도권을 장악한 것 같았다.

“그따위 말을 하러 온 거면 당장 돌아가.”

“훤 이모가 우릴 보냈어. 이모는 네가 당장 성연대륙을 떠났으면 하셔.”

청상이 서서히 입을 열자 목진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불가능해.”

“규칙대로라면 부도신족의 천지존은 나설 수 없지만 현라와 묵심이 널 잡아 오기로 했어. 그들은 부도신족 젊은이 중, 최정예급 강자이고 천지존경에 이를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들이야. 상위 지지존의 실력으로 그들과 맞서는 건 상당히 불리해!”

청상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현라, 묵심이라…….”

목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그는 용상한테서 현라와 묵심이 부도신족의 차기 족장이 될 확률이 제일 높은 사람이란 것과 고사황은 현라 소주의 부하란 걸 알게 되었다.

“마음은 알겠는데 난 이대로 떠나지 않을 거니까 얼마든지 찾아오라고 해.”

목진은 점차 마음을 가라앉히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라와 묵심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모르지만 목진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너 제정신이야?”

청령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부도신족에서 현라와 묵심의 지위가 어떤지 알기나 해? 아무리 청상 언니라도 저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데 네가 감히 상대하려 하다니. 빨리 죽고 싶어 환장했어?”

“우리가 좋은 마음으로 여기까지 와서 소식을 알렸으면 너도 바로 눈치를 채야지!”

“내가 죽는 걸 두려워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어.”

목진은 고개를 들고 청령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여태껏 혼자서 모든 걸 해냈고 강적과의 대결에서 매번 생사의 고비를 겪었지만 결국 이겨냈다. 만약 목진이 상대방의 실력이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마냥 도망 다니기만 했다면 과연 이 정도 성과를 이뤘을까?

그는 현라나 묵심 등 다른 소주들처럼 영단, 성물, 신통 등 자원을 쉽게 얻을 수 없었고 모든 걸 목숨을 걸고 싸워 얻어내야만 했다.

목진의 말에 청령도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목진의 말에 담긴 뜻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청년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지만 청년이 지금까지 겪은 일들은 그들과 전혀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청상도 눈가를 파르르 떨며 목진을 보더니 문득 소름이 끼쳤다.

목진한테는 비록 극강의 어머니가 있지만 그녀한테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처지만 더 위험해졌다. 그의 말대로 목진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자신의 노력 덕분이었다.

소주들은 부도신족이란 뒷배가 없었다면 아마 목진 정도의 성과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청상은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우린 이 소식을 전하러 온 것뿐이니까 결정은 네가 해.”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성연대륙에 남기로 했으면 부디 조심해. 그러다 현라와 묵심을 만나게 되면 나를 찾아와도 좋아. 내가 널 도와줄게.”

냉미녀 청상의 말에 목진은 눈빛이 조금이나마 흔들렸다. 그녀는 보기와 다르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더 할 말이 없으면 이만 돌아가.”

그런데 목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청상과 청령의 호의가 느껴졌으나 부도신족 자체가 싫었기에 그들의 도움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청상도 더는 뭐라 하지 않고 목진을 힐끗 보더니 뒤돌아섰고, 청령은 발을 동동 구르다 씩씩거리며 목진을 쏘아보다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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