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화. 고급 종사경
“목진은 너무 오만한 것 같아요. 우리가 도와주겠다는데 왜 거절한대요?”
정원에서 나온 청령은 청상한테 달려가 투덜거렸다.
“현라와 묵심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서 저러는 건 아니겠죠? 아무리 지지존 대원만급 강자라도 전혀 우세를 차지하지 못하는데 상위 지지존일 뿐인 목진이 무슨 수로 저들을 상대한단 말인가요? 이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청령은 목진 같은 사람은 처음 겪어보는 것 같았다. 더구나 그들은 좋은 마음으로 타이르러 왔는데 목진은 그따위 태도를 보이다니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 이모께서 부도신족에 갇혀 계신 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우리 종족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지. 보아하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 것 같던데 우리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것도 당연해.”
오히려 청상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기지도 못할 싸움에 왜 굳이 저러는지 모르겠네요!”
청령이 입을 삐쭉 내밀며 한 말에 청상은 미간을 찌푸리며 뒤쪽 정원을 힐끗 쳐다봤다.
“과연 그럴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상위 지지존 따위가 어떻게요?”
청령이 언짢은 듯 투덜대자 청상은 인상을 쓴 채 답했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목진한테서 위험한 기운이 문득 느껴졌어. 이건 내가 현라와 묵심을 상대했을 때와 비슷했어.”
청령은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청상 언니, 그게 가능해요? 녀석을 과대평가한 것 아닌가요? 목진을 어찌 현라와 묵심 같은 요물들과 비교하는 건가요?”
이에 청상은 입술을 깨물며 잠시 생각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정말 그녀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현라, 묵심과 비교하면 목진의 실력은 확실히 많이 뒤처졌다.
* * *
성연성은 점차 떠들썩해졌고 찾아오는 세력들도 더 많아졌다.
상고의 성연은 상고 시기, 대천세계와 역외사족이 결전한 장소 중 하나로 그곳에서 사망한 정예급 강자가 상당히 많았다. 이에 강대한 세력들마저 그 속에 깃든 물건들이 탐이 나 속속 모여들었다.
상고의 성연의 시공간 돌풍만 아니었으면 천지존들마저 나섰을 것이다. 절세의 신통은 천지존들도 없어서 수련하지 못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이에 다들 상고의 성연에서 계승을 받을까 싶어 최대한 강자들로만 소조를 구성했다.
이로 인해 현재의 성연성은 정예 세력들의 집결지가 되었고 최근 들어 가장 떠들썩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목진은 방에 숨어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영진에 관한 느낌과 경험을 탐구하기에 바빴다.
그는 곧 경지를 돌파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고의 성연은 무서운 시공간 돌풍에 휩싸여 다들 돌풍이 조금이나마 사그라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야 천지존들이 나서 사람들을 상고의 성연에 들여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아직은 다들 성연성에 모여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목진은 바로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기 전까지 고급 영진 종사가 되고 싶었다!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면 상당히 치열한 대결이 펼쳐질 거라 최종 승리를 위해서는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만 했다.
* * *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성연성 어딘가의 방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곳에는 푸른색 죽향이 방을 가득 했는데, 향기의 도움으로 수련 효과는 배가 되었다.
수련을 한 시진 정도 한 사내는 서서히 눈을 뜨더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그러는 것이냐? 설마 또 거절당한 것이냐?”
이에 고사황이 뒤에서 나와 안색이 한껏 어두워진 채 답했다.
“너무한 것 아닌가요? 제가 소주님의 초대장을 두 번이나 건넸는데 녀석이 바로 거절하더군요!”
“태령고족을 곁에 뒀다고 감히!”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는 바로 부도신족의 현라 소주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녀석에게 보다 편한 길을 제시해 주려고 했는데 내 호의를 거절했으니 더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
말을 마친 현라 소주의 눈빛이 금세 차가워졌다.
“흥, 자기 주제도 모르는 놈. 일기화삼청의 수련법을 내주면 소주님께서 도움을 주실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그리되면 부도신족에 잡혀가도 고생을 덜 수 있잖아요?”
고사황 옆에 서 있던 양사어의 말에 현라는 피식 웃었다.
“괜찮다, 녀석이 원하지 않는다는데 어쩌겠느냐? 고생을 사서 하는 팔자이니 남 탓할 것도 없지.”
“지금은 적염노선이 녀석을 지켜줄 수 있겠지만 일단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면 내 손에 잡힐 수밖에 없을 거란다. 그럼 난 절대 녀석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현라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목진을 진정한 상대로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묵심이 먼저 그를 잡을까 봐 걱정할 뿐이었다.
묵심이 일기화삼청의 수련법을 획득하면 그한테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 팔부부도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목진을 잡는 건 그저 부수적인 일일 뿐이지.”
현라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보아하니 성연성에 정예 세력들이 잔뜩 모였던데 이번에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정보가 필요하구나.”
현라는 비록 자신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신중한 성격이라 상대방이 자신한테 위협이 될만한 존재인지 파악해야 했다.
“네!”
고사황과 양사어는 공손하게 인사를 올린 뒤, 바로 떠났다.
방안이 다시 조용해지자 현라는 길쭉한 손을 가볍게 튕기며 고개를 들어 차가운 눈빛으로 성연성의 어딘가를 바라봤다.
순간, 주위의 공기마저 얼어붙었다.
“주제도 모르는 멍청한 녀석…….”
현라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그럼 너를 폐인으로 만들어서 부도신족으로 데려가야겠구나. 그때 가서 네 어머니가 무슨 수로 너를 구할지 궁금해지는구나.”
죄인한테는 인정을 베풀 필요가 없는 법, 그러다 청연정이 참지 못하고 나서면 부도신족 전체를 건드리는 것이니 대장로는 전력을 다해 그녀를 제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청연정이 제압되면 현라의 명성과 수단으로 장로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 분명하니 차기 족장은 그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 *
이와 동시에, 성연성의 다른 한 정원에서 청훤 장로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현라가 초대장을 두 번이나 건넸는데 목진이 이를 전부 거절했단 말이냐? 현라는 도대체 왜 그런단 말이냐? 녀석은 절대 목진한테 호의를 베풀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글쎄요.”
청령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하더니 입을 삐쭉 내밀었다.
“목진이 우리한테는 센 척하더니 현라는 아예 만나보지도 않네요?”
“절대 목진을 무시하면 안 된다.”
청훤 장로는 청령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나도 상위 지지존이니 녀석은 기껏해야 나와 실력이 비슷하겠죠. 그게 뭐가 대단하단 거죠?”
청령은 청훤 장로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온전히 자기 힘으로 상위 지지존경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서천대륙의 대륙의 후손을 따냈고 무한의 화역의 염제와도 관계가 남다른 사람이 과연 얼마나 평범할까?”
청훤 장로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청령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옆에 조용히 서 있던 청상마저 깜짝 놀랐다.
“그게 사실인가요?”
청상의 질문에 청훤 장로는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 정보를 겨우 알아냈는데 듣고 제법 놀랐단다.”
청훤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녀석, 정이 아들이라 그런지 천부적 재능은 역시 남다르구나. 부도신족에서 자랐으면 아마 현라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자가 되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대단해도 지금은 상위 지지존일 뿐이니 현라, 묵신과는 실력 차이가 상당하죠.”
청령이 입을 삐쭉 내밀며 대꾸했다. 이에 청훤 장로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현라나 묵심을 상대하기에 조금 버거워 보였다.
“내가 알기로 보름만 지나면 상고의 성연에 들어갈 최적의 시기가 올 것이다.”
청훤 장로는 청상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게 되면 최선을 다해 목진을 보호해야 한다. 절대 현라와 묵심이 그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 녀석은 정이의 아들인 데다 체내에 청맥의 혈맥이 깃들지 않았느냐?”
이에 청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훤 이모. 절대 목진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 * *
성연성에 모인 여러 정예 세력들의 기다림 끝에 보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튿날 아침 햇살이 두꺼운 구름을 뚫고 성연성을 비추자 도성은 놀라운 활력으로 가득했다.
슈슉!
사람들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성연대륙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고 곳곳에서 지극히 강력한 영력 파동이 피어올랐다. 각 세력의 천지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보름 동안 조용히 수련 중이던 목진 역시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검은색 눈동자에는 억만 갈래의 빛이 반사되어 상당히 아름다워 보였다.
목진이 손을 벌려 웅장한 영력을 끌어모으자 수많은 영인이 주위에 스며든 것이 느껴졌다.
주위의 공간이 바로 뜨거워지며 빨갛게 닳아 올랐다.
1각도 안 되는 사이, 목진의 손바닥에 파멸의 파동을 내뿜는 빨간색 공간이 나타났다.
후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손바닥에 생긴 빨간색 공간을 빤히 쳐다보던 목진은 서서히 백기를 내뿜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빨간색 공간은 바로 고급 종사급 영진인 염황진이었다!
수련을 통해 드디어 경지의 돌파를 이루고 고급 영진 종사가 되었다!
목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들끓는 성연성을 보고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현라…… 묵심…….”
목진이 옷깃을 휘날리자 손바닥에 생겼던 빨간색 공간이 조용히 사라졌다. 그는 중얼거리며 그 자리를 떠났다.
“팔부부도는 나의 것이야!”
슉!
한 갈래 적광이 운석처럼 어둡고 음침한 공간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끔씩 떨어지는 파멸의 기운이 깃든 벼락은 적광과 백 장 정도 떨어졌을 때 엄청난 고온에 증발되었다.
적광은 다름 아닌 빨간색 조롱박으로 그 위에 목진, 낙리, 용상, 영계와 적염노선이 앉아 있었다.
“성연대륙의 깊숙한 곳은 역시 말이 아니군.”
목진은 고개를 들어 미친 듯이 요동치는 벼락을 보더니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이런 곳에서는 아무리 상위 지지존이라도 자칫 잘못하면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적염노선이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목진 등만 있었다면 성연성에서 시공간 돌풍 주위에 이르는 데만도 열흘 넘게 걸렸을 것이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란다. 상고의 성연은 이곳보다 훨씬 더할 거란다.”
적염노선은 정색하며 앉아 있는 목진을 보더니 히쭉 웃으며 말했다.
이에 목진은 순간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상고의 성연이 정녕 이토록 위험한 곳이란 말인가?
“상고의 성연에서 사망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렇단다. 그들은 사망했음에도 영력이 너무 강대해서 흩어지지 않고 이런 이상 현상을 만들어냈단다.”
적염노선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상고의 성연에 형성된 잔혹한 환경과 이상 현상은 사망한 천지존이 이룬 것일 테니 무서울 수밖에 없겠지…….”
목진, 낙리, 영계와 용상은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사망한 천지존이 이룬 이상 현상이라니. 적염노선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상고의 성연의 환경이 안 좋으니 부디 조심하고 다른 소조 사람들도 주의하거라. 이번에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는 사람이 제일 많을 거라고 들었다. 엄청난 세력들뿐만 아니라 성연대륙에 있던 주마사들도 소조를 이뤘다더구나. 그들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란다.”
적염노선의 엄숙한 말에 목진은 흠칫 놀랐다. 주마사들은 절대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고급 주마사의 실력은 현라, 묵심 등 부도신족의 소주들 못지않을 것으로 강적일 것이 분명했다.
시공간 돌풍은 천지존만이 건널 수 있다고 들었는데 주마사들은 무슨 수로 상고의 성연에 들어간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