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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재-821화 (820/1,000)

821화. 화령풍(化靈風)

“허허, 주마사는 대천궁 소속이라 주마점만 충분하면 대천궁의 천지존을 모셔올 수 있단다.”

적염노선은 목진의 속내를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마점은 정말 좋은 물건이군요.”

목진도 생긋 웃으며 말했다. 주마점으로 천지존을 불러올 수 있을 줄이야.

“주마점의 양만 충분하면 일반 천지존은 물론이고 주마왕 진천도 부를 수 있는데 그는 무려 성급 천지존이란다. 대신, 이유가 적당해야 한단다. 주마왕은 절대 도의에 어긋나는 일에는 동참하지 않기 때문이지.”

목진과 낙리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성급 천지존은 대천세계의 최정예급 강자로 지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대천세계에서는 염제나 무조를 만나기도 어려운데 쉽게 도움을 구하다니! 엄청난 존재거나 상대방에게 엄청난 은혜를 베풀지 않고서야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대천궁에서는 이런 존재를 움직일 수 있다니. 대천궁에서 주마점 흥행을 위해 큰 공을 들인 모양이었다.

한편, 빨간색 조롱박은 부단히 공간을 뛰어넘으며 나아갔는데 그 엄청난 속도에 목진 등은 이내 감탄했다. 천지존의 수단은 역시 남달랐다.

또 한 시진이 지나 목진 등은 천지의 파동이 진득해지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이에 고개를 들었는데 주위의 공간에 균열이 일었고 지극히 무서운 압박감이 휘몰아쳐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그들뿐만 아니라 적염노선마저 안색이 어두워진 채 속도를 줄였으니, 곧 성연대륙의 깊숙한 곳에 도착할 모양이었다.

“저것이 바로 시공간 돌풍이란다.”

적염노선의 말에 목진 등은 앞쪽을 바라봤는데 부서진 천지에 은백색 돌풍이 휘몰아쳤다. 아무런 물질도 없는 것이 꼭 허무의 땅 같았다.

방대하기 그지없는 은색 돌풍과 비교하면 목진 등은 먼지처럼 하찮아 일단 휘말리면 순식간에 소멸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적염노선은 시공간 돌풍에서 수만 장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섰는데 조롱박이 발하는 적광마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강한 파멸의 벼락도 조롱박의 적광에 영향을 주지 않았는데 시공간 돌풍은 가까이 간 것만으로도 그 빛이 일그러졌다.

이것만 봐도 시공간 돌풍에 깃든 파멸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었다.

“2각만 더 지나면 시공간 돌풍에 들어갈 최적의 시간이 된단다.”

적염노선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시공간 돌풍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목진 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점차 긴장되었다.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면 일단 청선한테 연락할까? 온가에서 천지존의 사망 장소를 파악한 것 같다고 들었어.”

낙리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는데 목진은 흠칫 놀랐다.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기도 전에 정보를 수집하고 이미 목표를 정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저들이 힘들게 얻은 정보인데 우리가 끼어들어도 될까?”

목진은 금세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런 곳에서 정보는 상당히 귀했다. 한시라도 먼저 도착해야 계승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타인을 끌어들이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이건 청선이 제안한 거야. 정보를 얻은 건 온가뿐만이 아니고. 그렇다면 상당히 격렬한 쟁탈전이 펼쳐질 텐데 우리는 아주 훌륭한 협력 대상이잖아?”

낙리가 미소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런 거라면 해볼 만했다. 그러다 팔부부도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지금은 청선의 덕을 좀 봐야겠네?”

목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상고의 성연에 들어가는 소조는 예상보다 많았고 실력이 강한 소조도 많았기에 청선은 목진과 낙리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저들도 우리를 택한 걸 다행으로 생각할 거야.”

낙리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비록 그들 중 최강자는 고급 영진 종사인 영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낙리는 실제 전투력이 강한 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음, 이번에 사람이 정말 많이도 왔구나.”

적염노선이 갑자기 저 멀리 바라보며 한 말에 목진 등이 고개를 돌렸는데 무서운 압박감이 느껴졌다.

시공간 돌풍에서 이러한 압박감을 내뿜을 수 있는 존재는 천지존 뿐이었다.

목진이 대충 짐작한 것만 해도 비슷한 압박감이 십수 갈래나 되었는데 그건 주위에 있는 천지존이 열 명도 넘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에 목진은 이내 감탄했다. 평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던 천지존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나다니…… 상고의 성연은 정말 대단했다.

꽈르릉!

그때 저 멀리 시공간 돌풍에서 뇌명이 들리더니 천지마저 격렬하게 떨렸다.

그러다 미친 듯이 휘몰아치던 시공간 돌풍이 점차 회전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목진 등은 상고의 성연에 들어갈 최적의 시기가 왔음을 바로 깨달았다!

“지금이다!”

말을 마친 적염노선이 발을 힘껏 구르자 빨간색 조롱박 아궁이에서 암장 홍류가 휘몰아쳤다.

“상고의 성연을 떠나고 싶으면 내가 준 옥 부적을 부수거라. 그럼 바로 성연대륙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란다!”

목진 등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나섰는데 적광을 벗어나자마자 암장 홍류가 휘몰아쳐 그들을 감쌌다.

쿵!

암장 홍류는 적룡처럼 포효하며 목진 등을 은색 시공간 돌풍으로 끌어들이더니 적광을 번쩍이며 빠르게 사라졌다.

그곳은 유난히 많이 부서진 천지로 창망하고 오래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둑한 하늘에 걸린 잔양마저 부서진 듯 미약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대지에는 깊숙한 균열이 있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뻗어 있는 것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누군가 일부러 그곳의 생기의 규칙을 파괴한 것만 같았다.

“여기가 바로 상고 시기, 대천세계와 역외사족이 싸웠던 장소란 말인가?”

목진과 낙리, 영계, 용상은 외진 산봉우리에 서서 앞쪽의 부서진 천지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특히, 땅에 있어야 할 산맥마저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발견하고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는 그 구역의 법칙이 파괴되어 공간이 뒤바뀌면서 생긴 현상으로 가장 근본적인 규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곳은 압박감이 엄청나서 숨이 막히네.”

낙리가 이내 정색하며 말했다.

이런 곳에서 싸운다면 대천세계에서보다 영력 소모가 더할 것이다. 압박감을 견뎌내면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망한 천지존이 제법 있는 것 같아. 그들이 남긴 기운이 부서진 천지에 스며들어 압박감을 이룬 거야.”

영계의 말에 용상도 이내 감탄했다.

“대천세계의 유명한 흉지는 역시 남다르군.”

반보 대원만급 강자인 그도 불안감을 느꼈다. 이에 목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낙리를 바라봤다.

“일단 온청선부터 찾을까?”

온천선 일행이 천지존의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파악했고 그들도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목진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목진 등은 상고의 성연에 막 들어와 이곳에 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낙리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푸른색 나비를 꺼내 영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영롱한 푸른빛이 발하며 낙리 앞쪽에서 날개를 팔랑거리며 방향을 감별하다가 서쪽으로 날아갔다.

“나비를 따라가면 청선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이만 갑시다!”

낙리가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목진이 먼저 나섰고 다들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상고의 성연은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기에 갑작스러운 변고라도 생길까 봐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역시 예상은 그들을 비켜 가지 않았다.

휘익.

상고의 성연에 흐릿한 광풍이 종종 일었는데 공격력이 없어 보이는 바람은 영력을 바로 바람과 모래로 분해해 버렸다.

바람을 피하고자 동굴 속에 숨어있던 목진 등은 이러한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

일전에 차마 피하지 못해 바람에 적중한 용상의 팔이 흐릿해지며 영력이 분해되어 하마터면 한쪽 팔이 모래가 되어 사라질 뻔했다.

목진이 잽싸게 그를 잡아당겼으니 다행이지, 안 그럼 그는 반보 대원만급 실력으로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을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바람일세!”

용상은 안색이 확 어두워진 채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놀랐던 적이 없었다. 자신이 자칫 모래가 되어 사라졌을 거란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화령풍일 거예요.”

낙리가 정색하며 동굴 밖에서 휘몰아치는 광풍을 보며 말했다. 이에 목진 등은 흠칫 놀랐다.

“화령풍이라…….”

“난 보름 동안 너처럼 수련한 것이 아니라 적염 선배님과 성연성에서 상고의 성연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거든.”

낙리가 흘겨보며 한 말에 목진은 히쭉 웃기만 했다. 그는 영진 수련에 집중하느라 정보를 수집할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세심한 낙리가 이를 대신해 주었다.

“상고의 성연에 지극히 무서운 천재가 있는데 화령풍이 그중 한 가지야. 화령풍은 영력이 없는 생물한테는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영력에는 치명적인 파괴력이 있어. 화령풍은 일단 영력과 접촉하면 이를 분해해 바람과 모래로 만들어.”

“용상 오라버니는 일전에 영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육신이 영력의 제련을 받은 지 오래라 자연스레 영력이 깃들어 하마터면 팔이 사라질 뻔했던 거예요.”

낙리의 말에 용상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영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절대 화령풍을 건널 수 없었다. 그들의 육신에도 영력이 깃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우린 화령풍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그럴 수밖에요.”

영계의 질문에 낙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 무안한 듯 답했다. 그들도 바람 따위에 낭패를 볼 줄 몰랐다.

“화령풍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요.”

“그럼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립시다.”

말을 마친 목진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화령풍을 바라봤다. 화령풍은 위험하긴 하지만 잘만 사용하면 아주 좋은 무기라 수집해 적한테 던지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화령풍이 탐나?”

낙리는 바로 목진의 속내를 꿰뚫고 그를 바라봤다. 그녀는 목진이 참 담대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에 영계와 용상도 화들짝 놀라 목진을 바라봤다. 다들 화령풍을 보면 도망가기 바쁜데 목진은 이를 수집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화령풍이 위험하긴 하지만 수집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목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화령풍은 영력을 분해하는 힘이 있으니 그 힘을 잠시 봉인하면 조용해질 거예요.”

“봉인이라니, 봉인의 힘으로 화령풍의 힘을 상대하겠단 말이야?”

영계 등은 인상을 찌푸리며 목진을 바라봤다. 대천세계에서 봉인의 힘에 제일 능숙한 종족이 바로 부도신족이 아닌가?

“소주님, 부도신족의 봉인의 힘은 강대하긴 하지만 등급이 존재해요. 일반 봉인의 힘은 화령풍의 상대가 안 될 거예요.”

용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는 부도신족의 봉인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일반 봉인의 힘은 당연히 안 되겠죠.”

말을 마친 목진이 가볍게 웃더니 눈에서 수정의 빛을 발했는데 수정 같은 부도탑이 앞쪽에 나타나 신성한 기운을 내뿜었다.

“내가 가진 성부도탑의 봉인의 힘은 일반 봉인의 힘보다 훨씬 강해요.”

“성부도탑이었어?”

영계는 수정처럼 보이는 부도탑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녀 역시 이 정도 등급의 부도탑은 부도신족에서도 상당기 보기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했다.

“대담한 녀석, 성부도탑에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지도 않아?”

영계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물었다. 목진의 방법은 가능하긴 했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부도신족 사람들은 수련한 부도탑을 이 세상에서 제일 진귀한 물건으로 생각해 쉽게 사용하지 않는지라 목진처럼 성부도탑으로 화령풍을 상대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목진처럼 성부도탑을 만들어낸 부도신족의 현라 소주는 절대 목진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위험한 건 어쩔 수 없어. 이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목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숱한 모험과 경험을 통해 성장해왔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때로는 목숨까지 걸고 덤벼야 할 때도 필요했다.

“그럼 어디 해 봐. 그러다 느낌이 안 좋으면 바로 멈춰.”

낙리는 목진의 결정을 반대하지 않고 응원하기로 했다.

목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굴 앞에 나아가 휘몰아치는 화령풍을 보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성부도탑에서 만 장의 빛을 발했고 그는 거침없이 동굴 밖으로 나섰다.

위잉!

성부도탑은 수정의 빛을 발하며 화령풍의 분해의 힘을 막아냈고 탑 밑에서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속도로 화령풍을 미친 듯이 흡입했다.

잠시 후, 목진이 옷깃을 휘날려 성부도탑을 수중에 넣더니 체내의 영력을 모조리 주입했다.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했다. 그는 성부도탑의 봉인의 힘으로 화령풍을 전부 봉인해야 했는데 일단 실패하면 성부도탑마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목진은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봉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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